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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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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다스리는 로봇의 나라

절대복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학살 등 국가범죄
의인을 처벌하고 범죄자 포상하며 ‘복종범죄’ 부추기는 국가
등록 2011-09-08 15:34 수정 2020-05-03 04:26

“피고(아이히만)가 존재하던 때 나치 법률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라 국가의 공식 행위이므로… 복종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습니다.”(유대인 학살 전범으로 기소돼 재판받던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의 변호인)
“스스로 가슴에 못 박는 소리지만 난 철저히 ‘상명하복’ 원칙을 지켰고 조직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고문기술자 이근안)
“대대장은 총살 집행할 권한이 없고, 연대장도 군법 권한으로서는 총살 집행을 지휘할 권한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부 지휘관의 명령을 복종한 것뿐이고 본인은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한국전쟁 때 경남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가해 부대 대대장 한동석)
“본인도 합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상관의 명령이므로 명령에 복종하였을 뿐입니다.”(한국전쟁 때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가해 부대 소대장 이종대)

절대복종, 잔혹행위의 중요한 원천

고문이나 학살을 자행한 자들이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이유는 자신은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거나 그 명령 자체가 국가와 조직을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고문경찰관 이근안의 1988년 수배 전단 사진. 한겨레 자료

고문이나 학살을 자행한 자들이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이유는 자신은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거나 그 명령 자체가 국가와 조직을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고문경찰관 이근안의 1988년 수배 전단 사진. 한겨레 자료

‘복종은 선이다’ ‘집단에서 벗어나면 절대로 안 된다’. 이것은 군국주의 일본, 파시즘하의 독일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에게 강요했던 논리다. 나치의 대량학살, 일본군의 잔혹행위는 모두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찬양하던 군대문화의 산물이다. 고문이나 학살을 자행한 자들이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이유는 자신은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거나, 그 명령 자체가 국가와 조직을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켈먼(Kelman)과 해밀턴(Hamilton)은 인권침해나 학살 등 대범죄가 복종의 이름으로 자행됐다는 점에서 그것을 ‘복종범죄’라 불렀다.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이야말로 잔혹행위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며, 경남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지휘관들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명령에 복종한 것”이라고 정당화했을 때 그것은 범죄가 된다. ‘상관의 명령은 천황의 명령이다’라는 공식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중국인과 연합군에게 잔혹행위를 저지르도록 명령한 일본군 지휘관은 명백히 전쟁범죄자로서 기소될 수밖에 없었다. 군사조직에서 공격적인 업적주의와 극단적인 위계질서의 강조는 언제나 동시에 존재하는데, 일본 교수 노다 마사아키는 그것이 바로 군국주의 일본을 움직이는 기본 논리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국가 혹은 국가의 권력자들이 잔혹행위를 저지르고도 상부의 명령이었다고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사실 틸리(Tilly)가 말했듯이, 조직폭력배 세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조폭들은 범죄를 저지를 때 명령을 거부하는 부하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가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바쳐 범죄를 자행하는 동료들에게 후한 포상을 한다. 숨겨야 할 것이 많은 조직에서 범죄는 용납되지만, 명령 거부는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 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전쟁 상태에 있을 때, 상관은 예하 병사들이 적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에게 범죄적인 잔혹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 승리의 명분 아래 그것을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모든 구성원은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전체주의나, 군인이나 경찰은 로봇처럼 움직여야 하고 관료에게는 복종과 집단추종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보는 군사독재 정권하에서도 체제 유지를 위한 복종 강요나 행정명령 이행 압박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원래 가치를 비웃는다.

명령 불복종 심하게 처벌한 MB 정부

이명박 정부하에서 절차적 위법이나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행정집행이라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비판하는 공직자에게 ‘파면’이라는 최고의 처벌 방법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자신이 추진한 과도한 실적주의를 비판하고 사퇴를 요구했다고 해서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을 파면했다. 바로 공격적 업적주의나 상관을 비판한 죄였다. 한편 촛불시위 때 ‘보이는 족족 검거하라’는 진압 방침을 거부한 전경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고등법원에서는 형량이 오히려 2년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일제고사 거부, 야외 체험학습을 허용한 교사 7명 중 4명을 해임하고 3명을 파면 조처했다. 국세청은 비리 혐의로 도피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한 직원을 파면 조처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국방부는 전대미문의 금서 조처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 2명을 파면하며 군 명예 실추 등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과거처럼 범죄를 저지르라는 명령까지는 아니었지만, 국민의 인권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논란이 되는 정책이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특히 파면된 군법무관은 5년 동안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는 등 치명적 처벌을 당했다. 이 공무원들에 대한 파면 사유는 명령 불복종, 곧 ‘직무 수행시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군법무관을 파면한 국방부는 “군인은 상관이 직무상 지시나 명령을 내렸을 경우 내부 건의 절차를 밟아서, 반드시 지휘 계통을 따라 단독으로 건의할 것”을 강조했고, “군법무관들에 대한 징계는 그런 과정을 무시한 것에 대한 징계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조직과 달리 군에서 명령이 그만큼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들 역시 국민의 일원이기 때문에 기본권인 재판청구권마저 제한당할 수 있다는 것은 헌법 정신과 배치될뿐더러 과도한 것이었다는 비판이 일었다. 우리나라 법원도 이전에 중앙정보부 직원의 경우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에게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담은 책자를 배포하거나 참고인으로 출석한 사람에게 가혹행위를 하라는 등 불법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으며, 그 경우 복종해 명령을 집행했다면 그 사람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군인, 국세청 직원, 교사 등 명령에 불복하거나 그것을 비판한 사람들에 대한 파면 조처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특히 교육계를 보면 비리·부정·독직·성희롱의 혐의를 가진 교장 등 관리자보다 명령 불복종, 민주노동당 후원금 납부 등을 한 평교사들을 엄하게 처벌했다. 국세청장을 비롯해 비리 고위 공직자들을 엄하게 처벌한 예가 없었다. 그것은 부정부패 등 반사회적 행동보다 자신들에 대한 명령 복종 여부를 최상의 원칙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하기야 쿠데타를 일으킨 5공 신군부 세력이야말로 조직 기강을 가장 심하게 흔든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파면당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명령 거부한 이종찬·유병진·이영구

반인권적인 행위, 심지어 고문·학살·불법처형까지 정당화한 공권력의 복종 지상주의는 바로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실천한 것들이었다. 이승만이 전시 부산에서 각의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군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종찬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파병을 거부했다. 그러자 이승만은 “귀관은 어찌하여 나라에 반역하고 나한테 반역하는가”라고 꾸짖으며 “대통령은 국군의 최소사령관이고 대원수다. 참모총장이라고 하더라도 대원수에 항명하면 극형에 해당한다. 극히 포살하여 전군의 시험으로 하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군 내부의 반발이 워낙 거세서 그 명을 거두었다. 유병진 판사는 조봉암 등 진보당 사건에 대해 1심에서 조봉암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에서 1심의 판결은 파기되고 결국 조봉암은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2심 판사가 부당한 명령을 거절했다면 조봉암은 사형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유병진 판사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연임이 거부당하고 법관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봉암 2심 판결과 사형은 잘못된 것이라고 결정했다. 결국 유병진 판사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었다.

유신 치하 긴급조치 9호 판결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이영구 판사는 소신대로 판결한 대가로 법복을 벗었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장, 대법원 판사,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등 요직을 차지한 이들은 모두 박정희의 의중을 잘 따르며 학생들에게 가혹한 판결을 내린, 동료들 사이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불린 사람들이었다. 복종의 대가는 승진으로, 거부의 대가는 승진 탈락, 심지어 변호사 개업 방해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시절 동안 거의 모든 군경과 판검사들이 이런 복종범죄를 저지르며 출세 가도를 달렸고, 인권과 국민의 편에 선 사람들은 복종을 거부한 대가로 가혹한 처벌을 당했다. 그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국민이었다. 내부의 부당명령 거부자를 처벌함으로써 국가나 권력자들이 저지른 범죄나 잘못된 공권력 행사는 잠시 은폐될 수 있었겠지만, 고문·간첩조작 등 심각한 인권침해와 부정부패는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강조된 경찰의 실적주의는 무차별적 검거 사태나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 등과 무관하지 않고, 교육과학기술부의 일제고사 강요는 학생들을 더욱 경쟁으로 몰아넣거나 심지어 ‘시험기계’로 만든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국방부의 금서 조처는 민주국가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공직자가 국가범죄 혹은 부당명령의 도구가 되면 국가나 사회의 위기 상황에서 바른 말을 하거나 몸을 던지는 공직자가 사라지고, 앞에서 인용한 아이히만·이근안·군학살자들처럼 어떤 일에도 책임지지 않고 모든 탓을 상부로 돌리는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도 오직 시키는 일만 하는 로봇이 될 것이다. 로봇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로봇이 된 인간의 존엄이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된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했다가 파면당하고 고발까지 당한 국세청 직원은 “어떻게 이렇게 야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지”라고 공무원에게 목숨과도 같은 직장을 빼앗았으면 됐지 무엇을 더 바라는가라고 항변했다. 도피성 출국을 한 전 국세청장은 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그를 비판한 직원에게는 엄한 처벌을 내리는 국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은 ‘기강’을 들먹거리지만 그렇게 단속하지 않으면 내부 비리를 잘 아는 직원들이 너도나도 비리를 고발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부당명령을 거부하는 ‘희망’

물론 밀그램(Milgram)의 유명한 실험처럼, 사람들은 폭력으로 강제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도록 하는 명령에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군인·경찰·검사 등 상명하복 원칙이 강조되는 조직에서 상부의 명에 대해 이견을 보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국가범죄나 내부 비리, 권력자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공직자가 한 명도 없다면 그 조직과 그 사회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비록 소수라도 부당명령을 거부하는 공무원이 존재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발해 비판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 사회에는 희망이 있고 대다수 국민의 인권은 보호될 수 있다. 역대 한국 정부는 진정한 의인들을 처벌했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자기 편이라는 이유로 포상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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