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6일 캐나다 밴쿠버의 한인회관에서 이색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전쟁기 경기도 파주의 신용덕씨가 캐나다 군인들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해 캐나다 정부가 유족에게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 기자회견을 주선한 사람은 빅토리아 대학의 존 프라이스 교수였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해 밴쿠버에 학술행사차 갔을 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도 잘 알고 있던 그는, 이번 캐나다 워털루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60년 기념 학술행사에 함께 참가하는 나에게 밴쿠버를 들를 수 있는지 물어왔다. 한국전쟁 중 캐나다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자는 것이었다.
15년형 받고 4개월 뒤 풀려나
처음 그가 밴쿠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가자고 제안했을 때 약간 머뭇거렸다. 내가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임기를 마친 민간인 신분인데다, 그가 말하는 캐나다 군인의 한국 민간인 학살 사건은 내가 진실화해위원회에 있을 때 미루다 처리하지 못한 채 나와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그 이유로 내가 기자회견에 나서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사건은 대략 이런 내용이다. 1951년 9월17일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판문점 근처에 유엔군이 주둔했는데,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파주 황방리의 어느 마을에 40살의 가난한 농부 신용덕씨와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캐나다 군인이 집에 들이닥쳐 총을 마구 난사해 신용덕씨와 아들 신현창씨, 한국군 사병이 총을 맞았다. 다른 방에 있던 아내 박종순이 뛰어나와 보니 남편과 아들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10살 난 딸의 목에 탄환이 스치고 지나갔다. 군인들이 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다음날 아내가 병원으로 가보니 남편은 이미 사망해 주검은 담요에 말려 있었고, 아들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끔찍한 장면이었다.
그 군인은 곧바로 체포돼 군사법정에 이송됐다. 신현창씨와 그의 여동생이 재판에 참석했는데, 통역자들은 가해 군인이 처벌을 받아서 캐나다로 압송됐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존 프라이스 교수가 캐나다 국립 도서관에서 찾은 군법회의 자료에 따르면, 가해자 캐나다 제57야전 공병 중대 소속 존 머리 스티브스는 사건 당일 아침 한국인들을 죽이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스티브스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여자를 찾다가 그냥 신용덕씨와 그 가족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그는 군사법정에서 살인죄로 15년형을 받았으나 캐나다로 이송된 뒤 4개월이 지난 1952년 5월1일 곧바로 면죄를 받고 석방됐다. 캐나다 군법회의는 그가 정신적으로 ‘비뚤어진’(wayward) 상태였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었다. 유족은 이 모든 사실에 대해 캐나다 정부로부터 어떤 공식 통보도 받지 못했다. 이후 스티브스와 대화한 직속 상관 미첼 중대장에 따르면, 스티브스는 매우 의식이 또렷했고 한국인들이 자신의 시계를 훔쳤기 때문에 그냥 3명에게 총을 쏘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총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들 신현창씨는 1999년부터 한국 국방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존 프라이스 교수의 주선으로 공익소송을 담당하는 밴쿠버 현지 변호사 게리 케롤라인을 통해 캐나다 정부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신씨는 진실화해위원회에도 진상 규명 신청을 했는데, 이 사건은 내가 떠난 이후 ‘각하’ 처리됐다. 진실화해법의 조사 대상인 집단학살도 아니고 국가 범죄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민간인 24명 살해 미군, 90일 징역
나는 프라이스 교수의 열성에 감복해 기자회견에 참석하기로 했다. 내 우려를 눈치챘는지 그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요구하는 것은 캐나다 정부의 ‘법적’ 책임이 아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임을 강조했다. 회견문에서도 “한국과 캐나다의 우의를 지속,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기 캐나다 군인들이 한국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범죄가 면밀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캐나다가 대내외적으로 인권국가임을 강조하면서도 과거 캐나다 군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하지 않고, 피해자인 한국인들에게 어떤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최근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어서 원주민인 인디안들에게도 사과와 보상 조처를 했고, 하원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도 통과시킨 나라다. 그리고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학생들을 퇴학시킨 일에 대해서도 명예 졸업장을 주는 등 나름대로 과거 잘못에 대한 시정 조처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보수당 정부인데도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많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사실 전쟁기에 이런 유형의 살인사건은 수없이 많다. 프라이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캐나다 군인이 한국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은 이외에도 많다. 미군에 의한 살인사건이 더 많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학자들은 이런 범죄를 ‘비조직적 폭력’이라 부른다. 전쟁과 혁명 등의 격변기에는 평화나 질서가 구축된 시기보다 군인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더구나 성욕이 왕성한 20대 초반의 병사들은 전쟁의 위험과 병영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닥치는 대로 성폭력과 폭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전쟁기 군사법정은 스티브스에 대한 판결처럼 개인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병사로 간주해 단순 살인죄를 적용해서 경미한 처벌을 하거나, 그나마도 대부분 면죄부를 준다,
지난 1월27일 미국 군사법정은 2005년 이라크 민간인 24명을 살해한 미 제1해병 연대 소속 하사관 프랭크 우터리치에게 90일 징역을 처하는 경미한 판결을 내렸다. 그는 2005년 11월19일 이라크 유프라테스 강가의 하티타에서 작전을 하던 중에 여성 4명과 어린이 7명이 포함된 이라크 민간인 24명을 죽였고, 어린아이의 머리에까지 총을 쏘았다. 그는 부하들에게 “먼저 쏘고 나중에 물어라”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24명을 죽인 군인을 오직 3개월형에 처한 데 이라크 사람들은 격분했다. 이 판결은 이라크 사람의 피와 인간성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고 흥분했다.
피해자가 백인이라도 그랬을까
전쟁기에는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사람은 찾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구나 살해자가 강대국 군인이라면 죽인 군인을 찾아내더라도, 그를 처벌하고 피해자들이 응분의 사과와 보상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질서가 잡힌 시기가 돼도 주둔 외국군에 의한 피해는 거의 미제 사건으로 빠지거나, 가해자는 자국으로 이송돼 면죄부를 받는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조중필(당시 23살)씨의 어머니는 살인자 중 한 명이던 아더 패터슨이 사건 뒤 14년 만인 2011년 5월 미국에서 체포됐다는 사실을 들었다. 미국 쪽에서 공식 통보를 받은 것이 아니고 계절마다 법무부에 전화를 걸어 수사 진행 상황을 물었는데 2011년 들어 두 번째 했던 전화 통화에서 아들을 죽인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14년째 집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고 이사도 가지 않으며 법무부의 연락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법무부 직원은 같은 날 오후 다시 전화를 걸어와 “시끄러워지면 괜히 안 좋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 당국이 유족에게 당연히 사건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한국 정부가 그것을 주선해야 마땅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사람만 억울한 셈이다.
현재 2만8500명인 주한미군은 미국의 국방전략에 따라 그 수가 계속 줄고 있지만, 범죄 건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민주통합당 박주선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 261건, 2009년 325건, 2010년 380건으로 꾸준히 미군 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미군 범죄가 214건 일어났다. 폭력, 절도 및 강도, 성범죄 등 강력범죄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재판까지 가기도 어렵지만, 험난한 과정을 거쳐 재판까지 가더라도 피의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1년 1월부터 8월까지 한국 법원에 선 미군은 모두 91명인데 이 중 1명은 무죄를 받았고, 유죄를 선고받은 90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미군은 4명에 불과했다. 3명은 집행유예, 나머지 83명(92%)은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프라이스 교수는 저서 <orienting canada: race empire and the transpacific>에서 신현창씨 가족 사건을 기본적으로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당시 캐나다 국방부의 고위층에 깊이 뿌리박힌 인종주의가 범죄를 저지른 자국 군인에게 면죄부를 준 구조적 이유라는 것이다. 백인우월주의, 즉 전쟁이라고 하지만, 한국인들에 대한 지독한 멸시가 당시 참전 미군이나 캐나다 군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고, 따라서 한국인들을 살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식이 이 사건을 처리한 국방부와 군법무관 등 모든 사람의 마음에 깔려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사건인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 전쟁기에 지휘명령에 의한 학살사건이건 비조직적 폭력사건이건, 처리되는 과정은 유사하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저질러지는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범죄사건 처리도 이와 유사하다. 과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백인이었다면 살인사건이 그렇게 만연했을 것이며,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었을까? 서울 이태원 살인사건의 조중필씨 어머니도 14년간 수렁에 빠진 미제 사건을 온몸으로 겪으며 가해자가 미군이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사건이 흘러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전쟁은 언제나 범죄를 만연케 하지만, 외국인이 전쟁에 투입됐을 때 그 정도는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외국군이 바로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 등 서방국의 군인이라면 작전 범위 안의 민간인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까? 일본 오키나와, 한국,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주둔지 주변에서 사는 민간인들은 과연 지금까지 어떤 일들을 겪었고, 그에 대해 각 국가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어느 캐나다 학자의 눈물
한국전에 참전한 많은 미군과 캐나다 군인들이 어려운 처지의 한국인들에게 먹을거리와 옷을 주고, 고아 입양을 하는 등 선행을 베푼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군인들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과연 어떻게 했는지 물어본다면 부끄러운 점이 더 많다.
밴쿠버 기자회견장에서 프라이스 교수가 몇 년 전 작고한 신현창씨 어머니의 결혼 반지 사진을 보여주며 울먹였다. 그녀의 한 많은 인생이 가해 국가 학자인 그의 말문을 멈추게 했다. 그런데 한국인 중 누가 이 가족의 비극을 위해 울어줄 수 있을까? “한국 쪽이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마당에 우리의 요구가 먹힐까?” 기자회견 뒤 점심 식사 자리에서 참석자 캐나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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