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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무자비한 시국치안 무성의한 민생치안

수원 납치 살해사건에서 도드라진 경찰의 무능력
정권에 기대 ‘깡패 권력’ 휘두른 한국 경찰의 귀결

제907호
등록 : 2012-04-17 10:44 수정 : 2012-04-2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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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1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희망텐트를 방문한 미국 하버드대 학생들은 최루액을 뿌려대는 경찰 헬기,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 동영상을 보았다. 이들은 ‘쇼킹’하다며 탄성을 질렀다. 미국에도 노사갈등이 있지만 이처럼 무자비한 폭력이 동원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들이 서울 용산 참사의 진압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다면 아마 한국은 여전히 전쟁 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실제로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4월9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지난 3월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해사건과 관련해 조현오 경찰청장이 유가족을 면담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민생치안 등한시한 점 인정한 조현오

며칠 전 경기도 수원에서 한 20대 여성이 납치당해 숨졌는데,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막장 경찰’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였다. 경찰청장이 인정했듯이 이번 경찰의 대처에는 무성의, 무능, 상황 오판, 허술한 대처, 부실 수색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실책이 포함돼 있다. 국민을 분노케 한 것은 경찰이 거의 10번에 걸쳐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거짓 해명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결국 4월9일 조현오 경찰청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영화평론가 이안은 “피해자는 3번 살해당했다”고 말한다. 먼저 신고 전화를 통해 생생히 전해지는 비명 소리를 듣고도 부부싸움 어쩌고 하며 죽도록 내버려둔 경찰로부터, 그다음엔 욕보이고 죽인 뒤 주검조차 엉망으로 만든 납치범에게서, 그리고 다시 그 처참한 주검을 보고도 거짓 발표로 고인을 욕보인 경찰로부터….

2008년 3월26일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경기도 일산 초등생 폭행 및 납치미수 사건의 용의자가 며칠 뒤 붙잡혔다. 사건 발생 초기, 경찰은 범행 장면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 녹화됐는데도 이 사건을 ‘단순폭행’으로 처리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피해 어린이의 부모가 직접 나섰고, 이런 내용이 방송을 통해 알려져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 사건으로 경찰 6명이 징계를 당했다.

이번 수원의 여성 살해사건에 대해 <조선일보>는 흉악범보다 ‘무능한 경찰’을 질타하며 경찰의 근무 기강을 바로잡고 112 신고를 받으면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위치추적을 할 수 있게 법을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산 초등학생 사건 때도 주류 언론은 똑같은 방식으로 경찰의 무능을 질타했다.

쌍용차 시위대 진압 현장에 있었던 경찰과 수원 토막살인 사건 현장의 경찰은 소속이 다르고, 두 사건의 성격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 두 사건은 모두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지휘하에 일어났고, 한 사건은 다른 사건과 연관돼 있다. 이명박 정부, 특히 조현오 전 경찰청장 지휘하의 경찰은 ‘시국치안’에서 노동자·철거민·시위학생들에 대해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민생치안’에서는 극도의 무능·은폐로 일관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앞 사건이 뒤의 사건과 연관돼 있다. 그리고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해, 시민의 일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성의와 무능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줄 ‘경찰’이 없었다는 점에서 결과는 동일하다. 즉 배경과 조건은 다르지만 두 사건에서 크게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우리 사회의 하층 약자, 응당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112 신고센터처럼 중요한 부서에 무능한 사람을 발령한 것은 전적으로 제 책임”이라고 자책했다. 사실상 민생치안을 등한시한 점을 인정한 것이다.


현장 전제군주인가, 자애로운 보호자인가

물론 경찰이 시국치안과 민생치안 모두 잘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제한된 인적·물적 자원을 필요한 곳에 집중 투하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일선 경찰의 행동을 좌우하는 경찰총장, 그리고 그를 임명해 자신이 원하는 임무를 맡기는 최고권력자의 의중이 어디 있는지에 따라 조직의 모든 행동이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반대를 무릅쓰고 위장전입 등 개인 비리 의혹과 각종 반인권적 발언, 양천서 고문 사건 등 무리한 수사로 지탄을 받았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임명을 강행한 것은, 그가 경기경찰청장으로서 쌍용차 시위대 진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직 때 시국치안에 강경한 자세를 보인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조 전 청장은 임명 직후부터 민생치안보다는 시국치안에 치중하라는 대통령의 방침을 확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법질서’를 강조하며 ‘체포전담반 신설’을 비롯해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찰은 등록금 폭등을 해결해달라는 학생들의 평화집회에 경찰 1만4천여 명을 동원했다. 국가정보원과 협력해 대운하를 반대하는 교수들을 ‘사찰’하고, 야당 정치인의 선거 유세 현장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촛불시위 이후 조계사에서 농성 중인 수배자를 잡으려고 하루 평균 50명의 경찰과 수백 명의 기동대를 동원했다. 시국치안을 위해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려니 민생치안에는 당연히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권력의 단물을 못 먹어본 각 경찰서의 보안·경비 담당자들은 이제 다시 승승장구해 출세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았고, 정작 민생치안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경찰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사기가 저하된 진짜 ‘민중의 지팡이’들은 이제 경찰 내 ‘실적주의’와 ‘정치’에 밀려나 조그만 사건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헛발질을 계속했다.

보통 시민들에게 경찰은 바로 국가다. 가장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그들과 접촉하고,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경찰을 통해 느낀다. 캐나다의 법학 전문가 마리아나 발베르데는 “경찰은 무력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구속하고 체포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무력이 제대로 사용되면 그 국가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를 최고 과제로 아는 국가이고, 그렇지 않으면 국가는 폭력조직처럼 돼버린다. 경찰 권력이 특별한 이유는 독일의 평론가 발터 베냐민이 말했듯이, 전제군주의 모습을 지니고서 입법적 전권과 행정적 전권을 동시에 행사하기 때문이다. 즉 사건 현장에서 경찰력은 단순한 법 집행자가 아니라, 현지 입법자의 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전쟁 등 국가의 비상 시기나, 극히 후진적 국가에서 경찰은 ‘즉결’의 이름으로 사법권까지 행사한다. 그래서 경찰은 때론 전제군주의 모습을 보이지만, 민주국가에서는 자애로운 국민 보호자의 모습을 지니기도 한다. 현장 전제군주로서 경찰은 오직 전권의 집행자이고, 자애로운 보호자로서 경찰은 사회적 약자의 보디가드다.

경찰국가로 재조직된 해방 후 남조선

1947년의 여운형 암살사건 배후 인물로 거론되는 친일 고등경찰 출신의 노덕술. <한겨레> 자료
그런데 지난 시절 한국 경찰은 정부에 항의하는 시민에 대해서는 잔인하고 험악한 표정을 한 호랑이였지만, 생업에 종사하는 보통 시민들에게는 무능하고 부패하고 불법을 일삼는 집단이었다. 이것은 일제시기 이후 지금까지 거의 변함이 없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경찰을 전면에 내세웠다. ‘순사’는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명사였다. 해방 직후 진주한 미군은 일본 경찰이 조선에서 가진 역할은 너무 크고 광범위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천황과 총독부의 충실한 지배 도구인 경찰은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가 묘사한 군국주의 아래 일본 지배층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지배층의 일상적 모랄을 규정하는 것은 추상적인 법의식도, 내면적인 죄의식도, 민중의 공복 관념도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천황과 동일시하고 자신의 반대자를 곧바로 천황에 대한 침해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배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의 민권운동에 대한 증오 내지는 공포감에는 확실히 이러한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일제 식민지 경찰 출신 한국인들은 일제하에서 천황의 충복 노릇을 하며 동포를 몹시 괴롭히고 못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해방 직후에는 숨죽이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가 대구 10·1 사건 이후 좌익세력 진압의 명분을 얻고, 과거 식민지 시기의 모습을 다시 찾았다. 초기 한국에 진주한 미 군정은 당시 조선 경찰에 대해 “조선 경찰은 철저하게 일본화됐고 폭정의 도구로 능률적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식민지 경찰이라는 자들이 동포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위협을 당했다”고 했다. 당시 온갖 고초를 겪은 한 사람은 “그 시절에 경찰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가족뿐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미 군정은 일제 경찰의 충성심과 효율성을 적극 활용했다. 변호사 로저 볼드윈은 “일본에서는 민주화라는 이름의 개혁을 통해 진보가 이루어졌으나 남조선은 경찰국가로 재조직됐다. …능률과 편의를 위해 민주주의가 희생당했다”고 진단했다.

해방 정국은 우익 폭력조직이 공권력을 대행·보조하거나, 폭력조직이 사실상 공권력과 공조관계를 유지한 파시즘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 군정 경찰과 초기 대한민국 경찰은 ‘빨갱이 잡기’의 명분 아래 고문과 테러를 자행했고, 권력의 비호를 받는 사설 테러조직과 폭력 청부업자들의 뒤를 봐주는 일까지 서슴없이 했다. 미 군정 관리인 리처드 로빈슨은 “경찰의 월권행위, 부패, 그리고 법을 집행함에서 정치적 편파성을 묵인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 남아 있던 조그만 명성마저 파괴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1947년의 여운형 암살사건 배후에도 경찰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송남헌은 “이 사건의 배후가 수도청장 장택상과 일본 고등계 형사 출신 이익흥·노덕술·최운하 등이 배후세력일 가능성이 크고, 행동책은 서북청년회의 혐의가 짙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방에서는 착취 조직이기도 했다. 일부 경찰서장은 정부 요인을 배경 삼아 부임한 자로 자기 치하에 있는 사설 단체, 예를 들어 구국동맹 등 우익 조직을 동원해 농민을 착취했다. 임실과 고창 등 전라도에서는 수십 가구의 농민들이 경찰서장에게 소를 빼앗기기도 했다. 이 지역들에서 경찰서장의 권력과 배경이 어찌나 강한지 도저히 건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국회에서 경찰 출신인 장택상 자신도 “전라도 일대는 이것이 과연 법치국가인지, 대한민국 영토인지 의심할 지경이다. …경찰이 사람 죽이기를 파리 죽이듯이 한다”고 개탄할 정도였다.

‘민주경찰’의 지워지지 않는 과거

이 시절 경찰은 힘없는 국민, 좌익에 동조한다는 의심을 받은 국민에게는 두려움 자체였다. 토벌을 명분으로 해서 주민들을 잡아다 패고, 고문하고, 동네에 들어가서는 소·돼지를 잡아서 포식하는 일은 전국 도처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들을 ‘산골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산골에서 경찰은 입법·사법·행정권을 가진 전제군주였다. 그들에게 이런 막대한 권력을 부여해준 것은 바로 이승만 정부였다. 식민지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폭행과 폭언을 당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에 잡혀가 고문을 당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재판을 받지 않은 채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오늘의 ‘민주경찰’이 아무리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과거 자신의 모습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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