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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는 21세기 ‘군주’의 근위병

등록 2012-07-31 09:07 수정 2020-05-02 19:26
기무사에 의해 불법 사찰당한 당시 민주노동당 최석희 민생희망본부 기획실장 등 관계자들이 2009년 7월 김태영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 회의장 앞에서 김 후보자에게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와 피켓을 전달하려다 경위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무사에 의해 불법 사찰당한 당시 민주노동당 최석희 민생희망본부 기획실장 등 관계자들이 2009년 7월 김태영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 회의장 앞에서 김 후보자에게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와 피켓을 전달하려다 경위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지난 5월29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군검찰은 군형법 제64조 2항 상관모욕죄에 의해 해당 장교를 기소했다”고 발표했고, 6월8일 이용식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공보관은 “우리에게는 수사권이 없어서 제보를 군검찰로 넘겼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인터넷상의 논쟁이었다. 대학생 A씨와 이 대위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로 논쟁을 했는데, 이 대위가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자 A씨는 이 대위를 힐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이 나눈 대화 화면을 모아 기무사에 제보했다. 하지만 기무사는 강정마을과 관련한 대화만으로 이 대위를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그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뒤졌다고 한다. 정부 수립 이후 검찰 등 공안기관이 관행의 이름으로 사용해온 전형적인 위법 ‘별건 수사’를 벌인 셈이다.

기무사 수사 범위 아닌 상관모욕죄

기무사는 먼지 털듯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 대위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여러 건의 글을 찾아내 사건을 군검찰로 이첩했다. 군검찰(제7군단 보통검찰부)은 이 대위를 상대로 두 차례 소환조사를 벌였다. 군검찰관은 조사 과정에서 “현 정부의 대통령을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글을 올리면 피의자가 현재 군인 신분으로서 상관 모욕 혹은 상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추궁했다고 한다. 이어 군검찰은 지난 3월22일과 4월26일 두 차례에 걸쳐 ‘상관모욕죄’로 이 대위를 기소했다. 그에게는 군형법 제64조(상관 모욕 등) 2항이 적용됐다. “가카 이 새끼 기어코 인천공항 팔아먹을라구 발악을 하는구나” “개독신문 제목 ‘MB는 하나님이 기름 부은 대통령’ 기회다! 불만 붙이면 되겠군” 등의 트위터 글 십수 건이 군 통수권자인 ‘상관’ 이명박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라고 하지만 군사작전과 관련되지 않은 일에서 대통령을 이 대위의 상관으로 간주한다는 것도 상식적 판단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 대위의 발언은 분명 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을 비판한 것인데도 기무사는 그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하에 이런 조항을 끌어내 그를 처벌하려 했다. 그런데 군사법원법 제44조 2호와 기무사령 제3조에 따르면 기무사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간첩죄 등에 한정해 직접 수사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상관모욕죄는 기무사의 수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재판부도 “이 대위가 트위터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면 기무사가 방첩 활동의 일환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군검찰과 기무사 편을 들었다. 즉, 현역 군인의 인터넷상의 모든 발언을 별건으로 수집해 검찰에 전달한 기무사의 활동이 ‘방첩 활동’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범죄가 아니라 개인의 모든 발언이나 행적을 먼지 털듯이 조사해 꼬투리를 잡은 다음 어거지 법을 끌어대 처벌하는 게 방첩 업무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보면, 드러난 행동만으로 처벌하기 어려우니 ‘별건 수사’를 통해서라도 표적이 되는 인물을 처벌하려는 전근대적 수사 관행과 방첩의 이름하에 진짜 간첩을 잡아야 할 시간에 군과 민간의 정권 비판자들만 ‘이적행위자’, 즉 간첩으로 간주해 불법적으로 수사해온 기무사의 저 오랜 전력, 그 어두운 과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런 월권을 정당화해준 법원의 오랜 직무유기가 또다시 얼굴을 드러냈다. 정권 비판자를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 즉 간첩으로 모는 국민의 ‘자발적 신고정신’도 되살아났다.

군국주의 독재정권하 비밀경찰 역할

기무사의 전신은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이며, 보안사의 전신은 방첩대(CIC), 특무대였다. 방첩대라는 명칭은 원래 “군 안전을 위협하는 활동을 미리 탐지·방지하고 적에 대한 정보·첩보를 수집하여 궁극적으로는 군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런데 전쟁 상황이 되면 온 사회가 군사작전의 영역이 되고 군이 입법·행정·사법부를 장악하게 되니까 군 정보, 적 탐지, 각종 공작을 임무로 하는 특무대는 정치, 일반, 온 사회를 자신의 활동 영역으로 삼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앙정보부가 생겨나기 전인 1961년 이전에는 방첩대가 모든 정치적 공작활동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 이후에는 중앙정보부와 경쟁하며 그런 활동을 수행했다.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 특무대는 간첩 잡는 일에 공로를 많이 세웠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 현대사에 엄청난 오점을 남긴 조직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동족 살해 사건인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은 바로 이 특무대가 주도한 것이었다. 1950년대와 80년대 초의 수많은 정치공작이나 간첩조작, 고문 등 인권침해 사건에도 최고권력자의 수족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특무대, 보안사는 자신의 원래 활동 영역인 군인은 물론 민간인에게도 공포 자체였고, 그들이 행사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할 세력은 없었다.

한국 특무대는 미군정이 만든 것이다. 미군정이 초기 한국 특무대 요원을 훈련시키고 모든 활동의 매뉴얼을 만들어주었지만, 시작부터 대통령의 정적 제거, 즉 정치적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 특무대의 본래 역할은 대북 첩보, 내부 방첩이었지만 실제로는 정치공작에 가장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이승만의 정적이던 조봉암을 두 번씩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거나 이범석의 조선민족청년단 계통(족청계)을 제거하려고 간첩조작 사건을 일으킨 것도 그 일환이었다. 실제 1956년 선거의 해를 맞아 특무대의 예산이 대폭 증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특무대를 만든 미군 자신도 “한국군 수사요원들은 동일한 관할권을 갖고 있었으며 관찰 영역을 원래 다른 기관이 담당했어야 할 민간 수사 영역까지 확대했다. 이러한 수사 양상이 애매하고 혼란스럽다면, 각각의 기관들의 수사 관할을 정해줄 수 있는 어떠한 구획 설정 협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이 중요한 정부기관에 침투해 들어왔을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즉 적과 나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그 정치적 역할이나 월권행위를 인정해주었다. 특무부대는 육군참모총장이나 사단 등 군내 지휘 명령을 받지 않은 채 대통령의 직속 명령 체계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단장을 비롯한 군 장병 전원을 감시·위협하는 조직이었고, 따라서 동료 군인들로부터도 군국주의 독재정권하의 비밀경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0년 10월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 소속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사실을 폭로했다. 윤 이병이 사찰의 증거로 제시한 사찰 대상자의 색인표, 개인별 파일 및 컴퓨터 디스켓들. 한겨레 자료

1990년 10월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 소속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사실을 폭로했다. 윤 이병이 사찰의 증거로 제시한 사찰 대상자의 색인표, 개인별 파일 및 컴퓨터 디스켓들. 한겨레 자료

법치주의에 어긋난 보복성 징벌

한국 특무대의 조직은 미군을 본뜬 것이지만 그 전통과 내용은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다. 원래 특무(特務)란 명칭도 일제시대 천황 직속의 헌병대, 군 참모본부 휘하의 특무부대, 내무성 소속의 사상 공안경찰을 합쳐 부른 말이었다.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인 만주국은 정치공작, 첩보, 선전, 모략을 담당하는 특무들의 천국이었다. 그리고 만주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항일운동가를 잔혹하게 탄압해 악명을 날린 일제 헌병, 비밀경찰 요원들이 해방 뒤 한국 특무대의 주역이 되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기에는 이런 정치공작의 담당 기관이 민간 공안기관인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로 넘어감으로써 기무사가 최고권력자의 호위부대 역할을 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러나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생긴 중앙정보부가 바로 과거 특무대 요원이던 김종필에 의해 창설됐으며 이 전통이 고스란히 민간 공안기관에 넘어갔다고 생각해보면, 과거 특무대는 이런 월권행위를 계속하는 모든 비밀 수사정보 기관의 모태라 할 만하다.

이 특무대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과거의 오명을 벗어버리려고 명칭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특무대는 다시 육군방첩부대로 개칭했고, 이후 1·21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국군보안사로, 다시 1991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이후 기무사로 변경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 2009년 8월 쌍용차 파업 당시 민주노동당원을 사찰하거나 2011년 8월29일과 9월1일 서울 송파에서 조선대 기광서 교수의 인명정보 파일을 해킹하고 광주의 한 PC방에서 기 교수의 논문 파일을 빼내가는 일을 벌인 것으로 보아 과거의 불법 월권 행태를 벗어던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이 대위 사건은 그가 현역 군인이라는 점에서 기무사가 수사에 개입할 수는 있지만, 수사의 단서가 이 대위의 간첩 활동이 아닌 단순한 대통령 비판 발언이라는 점에서 기무사의 직무 범위를 또다시 넘어 과거 식의 정치수사를 반복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군인의 개인적인 의사표현에 대한 수사를 ‘방첩 활동’의 일환으로 보아 ‘방첩’의 범위를 극도로 확대한 점에서, 기무사의 수사는 과거 권위주의 시기의 최고권력자 호위병 역할을 한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기무사는 간첩은 사회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는 전제 위에서 지난 60년 동안 수많은 불법·월권을 해왔는데, 이번 사건 역시 군인은 상관에게 무조건 충성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군인의 정치적 비판 의사까지 일부러 찾아내 그것을 ‘반란 행동’으로 간주했던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오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일제하의 일왕이나 전근대 시절의 왕과 같은 절대권력자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의 내면세계나 사적인 발언을 끄집어내 징벌하는 전근대 시절이 아니라 사회에 끼친 구체적 범법 행동을 통해 처벌해야 하는 근대 민주사회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공무원인 군인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해서 이렇게 표적 수사를 하는 것은 근대국가의 법치주의와 전혀 맞지 않는 보복성 징벌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초라한 현주소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가 무너지기 전에 최후까지 그를 호위하며 저항하는 민간인을 학살한 장본인이 모두 이런 독재자의 최측근 근위병, 즉 특수부대 군인들이었다. 최고권력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잡아다 처벌하는 건 권력자를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아닌 과거의 절대군주와 같은 존재로 보는 것이고, 이런 수사를 ‘방첩’의 이름으로 담당하고 있다는 말은 오늘 기무사가 곧 ‘왕’을 호위하는 근위병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안보 위기가 있는 한 특수한 임무를 하는 군인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국민’ 생명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를 최고권력자와 동일하게 보고 군인에게 무조건 충성을 요구하는 구시대 조직이 아직도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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