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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값은 ‘착한 일’로 내세요

거리에서 무료로 사진 찍어주고 판자촌 아이들 꿈 찾아주는 ‘프로 포토’ 운동가이자 ‘이름없는학교’ 대표 송재한씨
등록 2016-06-29 16:14 수정 2020-05-03 04:28
전북 김제시 금구면 불로 마을회관에서 매주 월요일 송재한씨가 할머니들에게 휴대전화 사진 촬영법을 가르쳐드린다. 연말에는 할머니들의 작은 사진전시회도 계획돼 있다.

전북 김제시 금구면 불로 마을회관에서 매주 월요일 송재한씨가 할머니들에게 휴대전화 사진 촬영법을 가르쳐드린다. 연말에는 할머니들의 작은 사진전시회도 계획돼 있다.

섭씨 30도를 웃돌던 6월17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차 없는 거리’.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며 선행 실천을 약속받는 ‘약속 청년’을 만났다. 송재한(36) ‘이름없는학교’ 대표. 이날도 그의 손에는 “프리 포토(Free Photo), 나눔을 약속해주세요”라고 적힌 골판지가 들려 있었다.

“사진 무료로 찍어드려요”

그는 틈나는 대로 거리에 나간다. 카메라 앵글에 다양한 사람의 표정을 담아 무료로 인화해준다. 대신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등의 한 가지 약속을 해야 한다.

골판지를 든 재한씨가 “사진 무료로 찍어드려요. 하나 가져가세요. 공짜예요. 바로 뽑아드려요. 돈 안 받아요!”라고 소리친다. 휴대용 인화기에서 자기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학생에게 재한씨가 말한다. “좋은 일 하나만 해줄래? 사진값으로 여기 지나가다가 쓰레기 떨어져 있으면 주워서 쓰레기통에 한 번 넣어줄래?” “네!” 하고 힘차게 대답하는 학생. “고마워. 너무 쉽게 대답하는 거 아니야? 꼭 해야 해! 너 형이랑 손가락 걸고 약속해. 증거 남겨야 해.” 그렇게 사람들은 한 장의 사진에 약속으로 응답한다.

올해로 4년째, 수많은 사람이 재한씨와 약속했다. “소소해 보이지만 너와 내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어요. 나눌수록 행복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재한씨가 말했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주목받게 됐네요. 나눔의 씨앗이 세상 곳곳에서 싹을 틔울 수 있도록 할 거예요.” 작지만 단단한 다짐이다.

처음에는 수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 앞에서 고개조차 제대로 못 들었다.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 카메라 앵글에 다양한 사람의 표정을 담는다. 전주 한옥마을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 방방곡곡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요즘은 시골 마을회관을 찾아다닌다. 할머니들에게 휴대전화 사진 촬영법도 가르쳐드린다. 나갈 때마다 사진 100여 장을 찍고 인화한다.

안정된 생활 접어들자 ‘나만 편해도 되나?’
홍익대 앞 재한씨 손에 ‘프리 포토(Free Photo) 나눔을 약속해주세요’라고 적힌 골판지가 들려 있다.

홍익대 앞 재한씨 손에 ‘프리 포토(Free Photo) 나눔을 약속해주세요’라고 적힌 골판지가 들려 있다.

사진작가인 재한씨의 원래 꿈은 영화감독. 2005년부터 서울 영화 촬영 현장에서 프리랜서 촬영감독으로 7년간 일했다. 6개월치 급여가 50만원. 박봉 탓에 빚을 내야만 생활이 가능했다. 한두 달씩 월세가 밀리기 일쑤였다. 딱한 사정이 있는 동료와 후배를 자진해서 돕다보니 빚은 더 불어났다.

어쩔 수 없었다. 잠시 꿈을 접고 전주로 돌아갔다. 지역 방송국에 취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빚을 청산했다. 생활이 전보다 조금은 단단해졌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안정된 생활이었다.

그때 재한씨는 서울에서 고생하던 동료를 떠올렸다. ‘나만 편해도 되나?’ 마음속에 지렁이 몇 마리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매년 한 명씩 어려운 친구의 꿈을 찾아주자’는 목표로 2012년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러고는 전주시 완산구 판자촌에 작은 카페와 사진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 그가 외진 곳에 카페를 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조손가정 등 소외계층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판잣집이 빗살처럼 빼곡한 마을에 화사한 카페가 생기자 동네 아이들이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다. 송씨는 카페로 찾아온 아이들에게 음료를 나눠줬다. 그리고 꿈을 물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는 아이들에게 진로를 찾아주기 위해 카페에 학교를 만들었다. ‘이름없는학교’의 시작이었다. 누구나 배울 수 있고, 자유롭게 재능을 나눌 수 있지만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의미로 학교 이름을 삼았다. “개인 사정보다 학교 일이 먼저여선 안 된다!” 교사의 규칙 1호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들에게 꿈을

재한씨는 말했다. “이름없는학교는 우리 학생이 취업해 얼마나 일 잘하고 오래 버티는지에 관심을 둬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전문가를 소개해주고 현장에서 일하게 합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요리사를 소개해주고, 직접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하는 식이죠. 자원봉사 교사 25명과 학생 12명이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목표와 꿈을 찾아주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기회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름없는학교와 약속 캠페인은 재한씨 삶의 원동력이자 기쁨이다.

재한씨가 ‘프리 포토’에 응한 사람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있다.

재한씨가 ‘프리 포토’에 응한 사람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있다.

홍익대 앞에서 재한씨가 나눔약속 사진을 찍고 있다. 하루에 100여 장의 사진을 찍고 인화한다.

홍익대 앞에서 재한씨가 나눔약속 사진을 찍고 있다. 하루에 100여 장의 사진을 찍고 인화한다.

“얼굴 찍을 때 목 자르면 안 돼요, 어깨까지 찍어야지. 카메라 켜봐. 가운데 거기 눌러서 그리고 빡 누르지 말고 가만히 눌러요. 잘했어요.”

“얼굴 찍을 때 목 자르면 안 돼요, 어깨까지 찍어야지. 카메라 켜봐. 가운데 거기 눌러서 그리고 빡 누르지 말고 가만히 눌러요. 잘했어요.”

김제고 3학년 박 아무개군이 자원봉사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다. 수강료로 매일 저녁 어머니 대신 설거지를 하기로 약속했다.

김제고 3학년 박 아무개군이 자원봉사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다. 수강료로 매일 저녁 어머니 대신 설거지를 하기로 약속했다.

재한씨는 결혼사진 촬영으로 경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낮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재한씨는 결혼사진 촬영으로 경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낮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김제·전주=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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