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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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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은 진짜 하나”

평양으로 돌아간 아이스하키 단일팀 북쪽 선수들을 만났다…

“남쪽 선수들 오면 평양랭면 백 그릇 먹여주겠다”
등록 2018-04-10 07:45 수정 2020-05-02 19:28
일본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기관지인 에서 평양으로 돌아간 남북 아이스하키 여자 단일팀 북쪽 선수들의 근황을 전하는 인터뷰 기사를 보내왔습니다. 일부 띄어쓰기를 제외하고 최대한 원문 그대로 원고를 싣습니다. 북으로 돌아간 선수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것은 ‘북남(남북)은 역시 하나’라는 당연한 사실이었습니다. _편집자
지난 평창겨울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참가했던 북쪽 선수들이 남쪽 선수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려송희, 김향미, 황충금 선수.

지난 평창겨울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참가했던 북쪽 선수들이 남쪽 선수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려송희, 김향미, 황충금 선수.

역사적인 올림픽 첫 북남 단일팀이 자기 활동을 마치고 서로 헤어졌으나 그들이 겨레에게 안겨준 감동은 시간이 가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북의 빙상호케이(아이스하키) 선수들의 훈련 거점인 평양빙상관을 찾아 황충금, 려송희, 김향미 선수(모두 대성산체육단)들과 잊지 못할 단일팀의 추억담을 나누었다.

이별 그리고 추억 평양에 온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려송희 경기 준비를 하느라고 한창 훈련을 하고 있다. 3월31일부터 슬로베니아에서 진행되는 2018년 세계녀자빙상호케이선수권대회 2부류(2부) A조에 출전하게 된다. 평양에 와서 하루 정도 휴식하고 곧장 훈련을 시작했다.

황충금 올림픽경기대회(평창겨울올림픽)에 출전한 12명 선수와 다른 선수들을 합친 팀으로 나간다. 올림픽에 나갔다 온 직후이기도 하니까 지금 팀의 기세가 매우 좋다. 이번 대회에서 꼭 1등을 할 결심이다.

남측 선수들과 헤어진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추억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일들이 생각나는가.

려송희 우리는 남측에 경기하러 두 번씩이나 나갔는데 남측 선수들은 평양에 한 번도 못 왔다. 그래서 남측 선수들이 평양에 막 오고파하면서 평양에 꼭 가겠으니 평양랭면을 무조건 먹여달라고 했다. 옥류관하고 청류관에서. 그래서 우리가 꼭 해주겠다고 했는데 “몇 그릇 해주겠나”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백 그릇 먹여주겠다”고 말해주었다.

김향미 평양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는데 개선청년공원·릉라인민유원지·릉라곱등어관1문수물놀이장…, 이런 것들을 말해주니까 우리 동생들이 ‘야, 멋있다’라며 특히 ‘개선청년공원에 제일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평양에 꼭 와서 함께 놀자고 약속했다.

황충금 내 인상에 남는 것은 떠나기 5일 전, 3일 전…이렇게 이별의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데 따라, 그전에는 만나면 서로 웃고 막 떠들던 것이 앞으로 얼마 안 있어 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남측 선수들을 보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섭섭해졌다. 그때 느낌이 인상에 남아 있다. 특히 헤어지는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다시 만나자고 울면서 부둥켜안고 가려고 하는데 서로 손을 굳게 잡으니까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려송희 버스가 조금만 더 늦게 떠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였다. 다시는 못 만날 수 있는데 울면서 우리 다음번 올림픽에 다시 단일팀으로 나가자고, 우리 훈련 잘하고 그때 다시 만나자고 약속도 했다.

첫 만남 그리고 한 핏줄 남측 선수들과의 첫 만남에 대해서 말해달라.

려송희 우리가 진천에 도착한 날 남측 선수들이 다 같이 나와서 꽃다발도 주고 환영해줬다. 북남이 따로 없이 섞여서 사진도 찍었다. 처음에는 그냥 선수로서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생각으로 기뻤는데 남측 선수들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단일팀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여서 나간다는 자각이 굳어졌다.

김향미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었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도 외쳤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는데 지내보니까 정말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한민족이라는것을 느꼈다.

황충금 남측 선수들과 난생처음으로 단일팀으로 나가는데 그들과 마음을 잘 맞추고 경기를 잘할 수 있겠는가 우려감도 없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모르니까 서먹서먹하기도 했다.

그 짧은 기간에 어떻게 정을 나누었는가.

황충금 진천선수촌에서 공동으로 훈련하며 가까이 지내니 진짜 피줄도 하나, 얼굴 생김새도 하나인 한민족이구나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잘 맞추고 경기를 잘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훈련장에서는 서로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가깝게 되였다. 북측 선수들은 누가 경기장에서 넘어지면 누구할것없이 다가가서 ‘일없나? 아프지 않나?’ 이렇게 위로해주는 집단주의가 있지 않는가. 그런 데서 남측 선수들이 우리를 따라주었던 것 같다.

려송희 주장인 박종아를 비롯해서 남측 선수들은 우리보다 나이가 아래인 동생이 많았는데 서로 언니·동생이라고 부르곤 했다. 동생들이 언니들에게 도덕을 지켜주려고 하고 우리한테서 배우려고 하는 그런 모습에서 역시 우리 조선사람들은 도덕적 측면에서 우월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황충금 이번에 남쪽에서 북측 선수 3명이 생일을 맞이했는데 다같이 축하도 해주었다. 북과 남에 생일을 축하해주는 노래가 각각 있는데 우리 노래도 부르고 남측 선수들이 자기네 노래도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축하합니다, 생일을 짝짝짝’, 이 노래를 남측 선수들이 막 좋다고 하니 그들 모두에게 배워(가르쳐)주었다. 김향미 선수 생일 때는 최지연이란 동생이 자기가 이 노래를 향미 언니에게 불러주겠다고 하면서 며칠 전부터 우리한테 찾아와서 배워달라고 했다.

김향미 내 생일에 지연이가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그때 정말 내 친동생처럼 여겨졌다. 우리 같은 민족이 더 이상 갈라지지 말고 하나가 되어, 통일이 되고, 우리 서로 만나서 그 노래를 다시 불렀으면 좋겠다.

려송희 강릉 바닷가에도 산보하러 갔는데 우리가 작년에 강릉에서 진행한 세계빙상호케이선수권대회에 출전했을 때도 그 바닷가에 가서 우리끼리 바닷물을 만지고 발도 담그고 놀았다. 그때도 바다를 보면서 조선의 바다로구나 해서 기분이 막 좋았는데 이번에는 남측 선수들하고 같이 한팀으로 가니까 감회가 완전히 새로왔다. 오륜 앞에서 집체(단체)사진도 찍었는데 그때 정말 기뻤다.

남북의 차이 그리고 소통 경기 용어의 차이 등 의사소통에서 호상(서로) 어려움은 없었는가.

황충금 처음 경기를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훈련과 경기를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훈련장에서 남측 선수들이 ‘체인지, 체인지!’라고 하는데 이건 선수교체를 말한다. 그런 외래어가 꽤 많았다. 반대로 남측 선수들은 우리 말로 경기하는 습관이 없으니까 우리가 하는 말을 못알아들었다. 그런 데서 조금 어려웠다.

려송희 외래어를 섞으면 우리가 리해(이해)를 잘 못하니까 그 외래어의 뜻을 조선말로 풀어서 말해주었다. 훈련 과정에 ‘이럴 경우에 말이 통하지 않았으니까 다음에 이렇게 하자’, 이렇게 약속하면서 소통을 해나갔다. 서로 리해하고 도와주면서. 어떤 때는 그들이 자기네도 번역하면서도 그 뜻을 조선말로 풀이 못해서 우리 보고 ‘어떻게 말해야 되나?’ 하고 거꾸로 물어보았던 적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대충 리해해서 ‘어! 알았어, 알았어’라고 해서 참 우습기도 했다.

김향미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몇 주일 정도가 아니고 단 며칠간이였다. 인차(차츰) 익숙해서 서로 의사소통하게 되였다. 사실은 어려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황충금 차이보다도 통하는 것이 더 많았다. 스위스와 경기가 끝난 다음날 팀에서 훈련경기를 했을 때이다. 나는 남측 선수하고 같이 방어를 했는데 남측 선수하고 나하고 자리가 쑥 바꿔졌다. 내가 남측 선수 자리에 가고 남측 선수가 내 원래 자리에 왔는데 그때 어느 한쪽이 자기 자리에 다시 돌아오면 한쪽에 공간이 생긴다. 그것을 알아서 서로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대로 그 자리를 지켜준 장면에서 남측 선수하고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다.

김향미 경기 때 실수를 하면 서로 포옹도 해주고 힘내라고 위로도 해주던 모든 일들이 추억에 남아 있다.

비록 경기 결과는 5전 5패였지만 북남이 하나로 된 모습은 온 경기장을 통일 열기로 들끓게 했다.

황충금 첫 경기부터 세계적인 강팀과 맞다들렸던(맞닥뜨렸던) 것만큼 이기겠다는 생각보다 민족이 하나로 된 모습을 보여주자는 공통된 지향과 결심을 가지고 경기장에 나섰다. 그런데 아무리 최상급의 팀들과 맞선다고 해도 선수들은 이기겠다고 경기에 나서지 않겠는가. 8개 팀들 중 꼴등이라도 할 수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1승 하겠다, 그런 정신으로 했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다.

려송희 관람석에서 하나된 모습, 하나된 목소리로 응원하는 우리 응원단, 남녘 동포들을 보면서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경기를 잘해야 되겠다는 자각을 더 가지게 되였다. 특히 “우리는 하나다!” 구호를 외칠 때 우리가 하나의 실점을 당했다 하더라도 잘해야 한다, 분발해서 이겨야 한다는 심정이였다.

김향미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된 우렁찬 박수소리, 환호… 그런 체험은 난생처음이였다. 특히 일본과 경기에서 우리가 한알(한점) 넣으니까 온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수치며 마치 우리가 이긴 것처럼 기뻐했다. 그 열기가 마지막 경기가 끝날 때까지 식지 않았다. 특히 반드시 이겨야 할 일본전에서 첫 꼴을 넣었으니까 그 기쁨이란 모든 경기에서 다 이긴 것과 같은 기쁨이였다. 서로 막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려송희 총련 응원단도 우리한테 꼭 이겨달라고 당부했다. 일본 전에서 꼭 이겼으면 하는 것은 남측도 같고 우리도 같고 총련 동포들도 모두 같은 한결같은 마음이였다. 경기 내용을 보면 대체로 우리 팀은 처음 대전할 때는 긴장감이 풀리지 않았는데 두 번째 대전할 때는 긴장감이 풀리고 알수 차이도 줄이고 경기활동도 좋았다. 그러니 다음 기회에는 우리가 꼭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조국통일 그리고 재회 마지막으로 남녘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려송희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맺은 정을 잊지 말고 앞으로도 조국통일을 위해서, 우리 서로 만날 그날을 위해서 힘껏 노력한다면 앞으로 다시 만날 그날이 꼭 올 것이다.

김향미 통일을 위해서 우리 서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다.

황충금 모든 선수들, 감독부터 시작해서 다 보고 싶다. 남측 선수들과 우리는 조국이 통일되여야 다시 만날 기회가 차례지니까(생기니까) 우리가 다시 만나고 싶은 심정이 있으면 조국 통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하며 힘껏 노력하자. 통일의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그때 다시 행복하게 만났으면 좋겠다.

김숙미 기자
사진 로금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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