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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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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개 NGO 회비 벌어야”

MB 구속, 통신비 원가 공개 소송 대법 승소 등 이끌어낸

한국 시민운동의 증인 안진걸 시민위원장… 20년 만에 참여연대 떠나
등록 2018-04-24 17:51 수정 2020-05-03 04:28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복학을 앞둔 1998년 가을, 난 참여연대를 기웃거렸다. 오전엔 참여연대 카페 ‘느티나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엔 의정감시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했다. 그때 안진걸(46·사진)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을 처음 만났다. 신입 간사였던 그는 후줄근한 입성에 사람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보던 운동권 선배 같았다(실제 그는 운동권 출신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그사이 참여연대의 얼굴이자 대표적인 시민운동가가 됐다. 은 ‘2017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NGO 지도자’로 그를 꼽았다. 최근 그가 참여연대를 그만뒀다. “후배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하도록 상근직을 내려놓았다. 앞으론 자원활동가로 정든 참여연대를 거들겠다”는 그는 계획을 묻는 질문엔 “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당장은 77개 시민단체에 매달 내던 회비를 버는 일이 급선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인터뷰는 세월호 4주기인 4월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이뤄졌다.

“대법 통신비 판결 다음날 사표 수리” 왜 그만뒀나.

후배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상근직을 내려놓았다. 참여연대를 넘어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무처장 임기가 2월 말로 끝난 상태인데 별다른 계기가 있었나.

내가 남아 있으면 나 중심으로 일이 진행될 듯한 기우가 들었다. (웃음) 후배들 중심으로 치고 나가서 일하는 게 맞다. 멀티플레이어들이 여기저기서 나와줘야 운동이 발전한다. 한두 명 중심으로 플레이를 많이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스스로의 경계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20여 년 동안 매일 긴장하고 살다보니 지치기도 했다.

안 위원장과 참여연대가 주도한 다스 비리 재수사 요구도 MB(이명박) 구속으로 이어졌고, 이동통신 요금 원가 공개 소송도 대법원에서 승소했는데.
원래는 3월 말에 그만두려 했는데 이 두 현안 때문에 늦어졌다. MB 구속으로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이 2018년 3월 비로소 완결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12일엔 우리나라 공익소송과 사회정책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판결 중 하나로 기록될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이동통신 서비스를 공공재를 활용한 중요한 공공서비스이자 국민 필수품으로 규정하고 통신재벌 3사가 전기통신사업법에 의거해 요금·이용약관 인가와 신고를 위해 정부에 제출한 원가 자료와 가입비, 기본료, 사용료, 부가서비스료, 실비 등의 요금 산정 근거 자료를 대부분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 대법원 판결 뒤 다음날 ‘내 할 일을 다 잘 끝마쳤다’는 생각에 사표 수리를 요청했다. (웃음)

참여연대의 저력과 존재 이유를 보여준 판결이지만, 한편으론 상황이 안 좋을 때 떠나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먼저 이동통신 요금 원가 자료와 요금제 산정 근거를 공개하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우리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가계통신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게 될 것이다.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무겁고 안 좋다. 주변에서도 만류하며 안식년을 가라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참여연대 사정을 뻔히 아는데 월급 받으면서 1년 동안 외국으로 연수 갈 염치가 없었다. 난 대한민국을 사랑해서 멀리 못 간다. (웃음)

“조·중·동의 참여연대 비판 허위” 그래서인데,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논란에 대해 안 물어볼 수 없다.

(잠시 뜸 들이며)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고 열정이나 능력도 대단한 사람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던데, 금융개혁이라든지 재벌개혁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어찌됐든 피감기관 지원을 받은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참여연대도 아마 그것에 대해 ‘실망’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우리 사회가 좀더 투명해지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적 공간에서 누군가를 비판하는 분들, 지적하는 분들은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참여연대 처지에선 비판 입장을 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시민단체는 평균적으로 보통 시민의 정서나 비판에 기반해서 활동한다. 평소 참여연대가 비판했던 내용이기도 해 입장을 낸 것으로 안다. 예전에 활동했던 분이라도 문제 있으면 비판받는 게 당연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민단체까지 음해하고 편견을 퍼뜨리는 분이 있는데 그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해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중·동 수구 기득권 언론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참여연대 죽이기’에 나선 모양새다.

현 정부의 인사들을 모두 참여연대 출신으로 묶으며 최대 이권단체처럼 비난하는데, 모두 거짓이고 허위다. 장하성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조국 민정수석 등은 10~15년 전에 참여연대에서 일한 적은 있지만 그 뒤 개인적으로 경제개혁연대, 학술단체 등 다른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거들지도 않았다. 그들 모두가 참여연대 출신이라고 묶어서 비판하는 건 불순한 음모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수십 건의 민형사 소송을 당한 대표적 권력 피해자인데.

경찰과 검찰로부터 모두 20여 차례 소환을 당했다. 미신고 집회를 기획했거나 경찰의 과잉대응에 항의하며 행진했다는 혐의로 형사 5개, 민사 2개에 피고로 이름이 올라 있다. 재판만 40여 차례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현재까지 법정에 서게 한 대부분의 혐의는 일반교통방해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이다. 지난 총선 때 만든 연대체인 총선넷 활동으로 기소돼,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6월8일에도 재판을 받으러 가야 한다. (웃음) 지난 정권의 실세인 김무성·최경환 의원을 비판했다가 그들로부터 고소당한 일도 있었다. 박근혜 퇴진운동을 벌였다고 극우단체로부터 고소도 당했다.

“아내가 알면 맞아 죽는데…”
안진걸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매달 후원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는 77개나 된다. 그 단체명을 정리한 메모지를 들고 그가

안진걸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매달 후원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는 77개나 된다. 그 단체명을 정리한 메모지를 들고 그가 "아내에게 걸리면 안 되는데..."하며 웃고 있다.

전문 시위꾼으로 20여 년을 살아왔다. 이제 집회 참여는 줄어드는 건가.

그럴 수 있나. 집회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집회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민중의 삶 터이며 민중의 희망 공간이 집회 현장이다. 개인 자격으로 앞으로도 힘 닿는 데까지 집회에 나갈 생각이다. (웃음) 18년 동안 평균적으로 하루 5시간 정도밖에 잠을 못 잤다. 밀린 잠을 자고 싶다. 그러나 당장 77개 시민단체에 내던 회비를 계속 내려면 라디오 방송 출연과 성공회대, 상지대 강의 등 알바를 열심히 뛰어야 해서 그것도 어려울 듯싶다. (웃음) 이거 아내가 알면 맞아 죽는데…. 좋은 정당, 노조, 시민단체에 가입하는 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 더 가입하시라.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면, 그 속에 시민운동가 안진걸의 고난과 희생이 녹아 있었음을 부인할 순 없다. 시민운동가이기 전에 매력적인 개인. 누구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 안진걸이 떠났다. 이제 참여연대도 조금은 심심하겠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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