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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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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고 이룬 ‘가수의 꿈’

음주 뺑소니 사고로 세상 떠난 음악가 김신영씨…

아내와 동료들 뜻 모아 유작 앨범 <아무 말 없이> 제작
등록 2018-02-28 14:31 수정 2020-05-02 19:28
지난해 4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음악인 김신영씨. 조주영 제공

지난해 4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음악인 김신영씨. 조주영 제공

“칭찬이라도 많이 해줄걸 그랬어요.”

음반사 직원과 음악가. 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대표적인 인디 음반사 ‘일렉트릭 뮤즈’의 A&R(Artist and Repertoire·아티스트를 발굴하고 레코드를 기획·제작, 곡목 관리 등을 하는 스태프)이었던 조주영씨는 부산에서 음악을 하던 김신영씨와 일로 처음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다.

노래를 멈추게 한 음주 뺑소니

당시 사람에 치이고 연애에 지쳐 있던 주영씨에게 착하고 순둥순둥한 신영씨는 더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신영씨는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와 주영씨와 성산동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영씨는 일렉트릭 뮤즈 소속 음악가들인 김목인, 이아립, 강아솔처럼 노래하고 싶어 했다. 부산에서 펑크 밴드도 하고 록 밴드 활동도 했지만, 혼자 기타 치며 노래하는 음악가의 삶을 꿈꾸었다.

현실은 꿈과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였고, 음악을 생업으로 삼을 순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 인터넷 설치기사로 생활하며 틈틈이 곡을 만들고 연주했지만, 만족스럽게 활동할 수 없었다. ‘클럽 빵’에서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지만, 막상 공연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불안해하는 만삭의 아내 주영씨를 두고 갈 수 없어 공연을 포기했다. 또 A&R 업무를 하던 주영씨는 신영씨의 음악을 독려하며 쉽게 칭찬해주지 않았다. “제가 원래 칭찬에 좀 인색한 사람이에요. 자기가 무슨 음악을 하고 싶은지 확신을 못했고, 그래서 구박도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미안해요. 칭찬이라도 많이 해줄걸 그랬어요.”

서울 성산동에 있는 성미산은 신영씨가 생활과 육아에 지칠 때 잠시 쉬면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였다. 휴일에 주영씨는 신영씨를 한두 시간 노래하고 오라고 성미산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신영씨는 기타를 치고 곡을 만들어 휴대전화에 녹음하곤 했다. 그렇게 만든 노래가 다. 이 노래에는 성미산의 새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하늘거린 저 꽃잎들은 살랑 춤추며 귀 기울여 듣던 소리는 마음에 그려지네/ 손끝 느껴지는 동안 작은 풀잎 날리고 발끝 느껴지는 동안 고운 모래 남기고/ 불어오는 저 바람도 들려오는 저 마음도 아무 말 없이 다가온다” 이 노래는 미발표곡으로 남았다. 신영씨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완성하지 못한 채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났다. 음주 뺑소니 교통사고였다.

“나는 운전할 때 베스트 드라이버야.” 사고를 낸 운전자는 술을 마신 상태로 차를 몰며 이렇게 말했다. 운전자는 주말에 위수 지역을 벗어나 홍대 클럽에서 밤새도록 논 현역 육군 중사였다.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아침이 돼서야 나온 그는 신호 단속에 걸리자 110km로 질주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던 신영씨는 그 무서운 속도에 부닥쳐 허공으로 떠버렸다. 사람을 치고도 그대로 달리던 차는 결국 벽에 부딪히고서야 멈췄다.

동료들이 바친 추모 음반

장아무개 중사는 얼마 전 2심 재판에서 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상고했다. 검사는 8년으로 확정될 거라며 주영씨를 위로했지만 변하는 건 없다. 신영씨는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주영씨와 신영씨가 끔찍이 아꼈던 아들 쿠마(애칭)뿐이다. 주영씨는 계속 같은 생각을 한다. ‘차라리 신영이를 부산에서 오지 말라고 했으면, 신영이와 결혼을 안 했으면, 신영이를 사귀지 않았으면, 신영이를 만나지 않았으면.’ 생각은 계속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지옥 같은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주영씨는 쿠마와 살기 위해 상담을 받으며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 자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건 알지만 쉽지 않았다. 새로운 걸 만나는 건 여전히 힘들어서 이미 익숙한 것들을 반복한다. 드라마도 이미 본 드라마를 다시 본다.

신영씨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새 10개월이 됐다. 처음엔 아빠를 찾던 쿠마에게 “아빠 어디 있어?”라고 물어보면 아빠의 영정사진을 가리킨다고 한다. “쿠마를 너무 많이 사랑했거든요. 같이 놀아주고 아이 앞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해주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쿠마가 커서 아빠의 그런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게 가장 슬퍼요.”

신영씨는 김목인과 함께 공연하는 게 소원이었다 한다. 매번 “목인이 형, 목인이 형” 하면서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신영씨는 세상을 떠난 뒤에야 소원을 이루게 됐다. 그가 생전에 남긴 음악이 음반으로 나왔다. . 생전에 너무 착하고 예의 바르던 신영씨에게 동료들이 바치는 헌정·추모 음반이다.

남편을 잃고 너무 힘들던 주영씨는 신영씨가 남긴 자료나 음원 등을 그들에게 통째로 넘기고 관여하지 않았다. 온전하게 남아 있는 노래는 없었다. 휴대전화에 녹음돼 있거나 라이브 영상에 담겨 있는 노래가 전부였다. 김목인, 빅베이비드라이버, 시와, 강아솔, 이호석, 이혜지 등 동료 음악가들이 그렇게 남겨진 노래들에 살을 입혔다. 노래의 코드를 따기 위해 유튜브를 보던 동료들은 세상에 없는 그의 영상을 보며 슬픔 속에서 작업해야 했다.

앨범 커버와 부클릿(소책자)에 쓰인 바다 사진은 부산에서 함께 음악을 했던 ‘세이수미’의 멤버 김병규가 부산 송정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신영씨가 남긴 노래 을 기리기 위해 광안리에서 송정까지 1시간 넘는 거리를 일부러 찾아가 찍었다. 그 많은 친구들의 도움과 고마운 마음이 모여 이 태어났다.

‘돌아봐도 소용없이 이젠’

주영씨도 음반의 첫 곡 을 가장 좋아한다. “을 들으면 바다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해요. 음악을 들을 때 그런 이미지를 주는 곡들을 좋아하거든요. 남편한테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노래를 쓰면 좋겠단 말을 자주 했는데, 음반 전체를 들어보니까 그래도 내 말을 허투루 듣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의 가사는 이렇다. 가사를 읽으며 신영씨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시원한 바람의 바다/ 답답한 얼굴 찡그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젠 바람에 날아와 이젠 추억에 날아와 다시 볼 순 없네/ 스쳐 가는 바람에 말 걸어봐도 상관없어 돌아봐도 소용없이 이젠”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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