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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도 혼자가 아니야 ‘공유 월세’도 있다

‘혼족 시대’ 월세 주거 늘지만 질은 낮아… 공유 공간 가치 극대화한 ‘소담소담’ 프로젝트
등록 2016-04-15 07:13 수정 2020-05-02 19:28
왼쪽부터 조장희 소장, 원유민 소장, 안현희 소장. 제이와이 아키텍츠 제공

왼쪽부터 조장희 소장, 원유민 소장, 안현희 소장. 제이와이 아키텍츠 제공

‘혼족(族) 시대’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노래 부른다. 이런 모습을 일컫는 혼밥, 혼영, 혼술, 혼곡 같은 말은 유행어가 됐다. 1인 경제주체라는 뜻으로 ‘솔로 이코노미’ ‘싱글슈머’(single-consumer)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이들을 ‘포미족’(for me-族)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나 홀로 즐기는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살아가는 데 없어서 안 될 ‘의식주’ 가운데 특히 주거 쪽이 그렇다. 그럴듯한 전세를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로 비유된다. 월세 평균 보증금마저 2015년 기준 8천만원을 웃도는 실정이다. 그나마 비좁은 화장실이 딸린 작은 방 하나, 빨래 널 장소조차 마땅찮은 게 현실이다.

나 홀로 즐기기 결정적 장애물, ‘주거’

지난해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의 ‘대학생 원룸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대학생 원룸 평균 월세가 42만원으로 조사됐다. 관리비를 포함하면 50만원을 넘는 경우가 흔하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대학교 2학년 여학생은 이렇게 고백했다. “1층에 도어락이 있는데, 배달 아저씨까지 누구나 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고, 가끔은 열려 있어서 무서워요.” 공용 공간 확보나 보안 문제 같은 건 고려하기 힘들다.

집주인의 ‘갑질’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됐다. “갑자기 보증금을 올려달라며 퇴실을 요구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남았다고 항의하니까 ‘그래도 시세보다 싼 것’이라며 무조건 올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3학년 남학생) 거주 기간에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 어렵다. “고장난 현관 센서등을 교체해달라고 항의했는데, 집주인이 아무 조처를 안 해줬습니다. 결국 계약 기간을 다 못 채우고 3개월치 월세를 내고 나왔습니다.”(3학년 남학생)

그러나 이들에게도 ‘꿈꾸는 집’이 있다. 안전한 집, 넉넉한 주방, 넓은 거실, 높은 층고,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욕조, 주말 저녁이면 지인들과 어울려 고기를 굽고 시원한 맥주 한잔쯤 즐기는 게 가능한 공간이다.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소담소담’은 이런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월셋집’이다. 입주자들이 자신의 공간을 조금씩 덜어내어 함께 쓰는 공간을 확보하는 ‘공유 주거’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서울 지하철 신림역에서 10분 거리인 소담소담은 여성 10명이 함께 사는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다. 회색 타일로 외장을 꾸민 소담소담의 첫인상은 단정하고 말끔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웃고(笑) 이야기(談)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과 닮았다. 전체 6층(다락층 포함)으로 된 건물의 내부는 크게 10개 방(층별 2개)과 공용 공간으로 나눠졌다.

국내 셰어하우스들은 대개 기존 주택을 손보거나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대여섯 가족이 살던 집을 10여 명이 살도록 억지로 꿰맞출 수밖에 없다. 소담소담은 국내외에서 건축을 전공한 설계 전문가들이 공용 공간의 효율을 최대한 살려 ‘공유 주거’의 가치를 극대화했다.

개인 공간인 방은 10m² 안팎의 크기다. 노출 콘크리트를 기본으로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도, 곳곳에 오렌지색 페인트를 칠해 밝은 느낌이 살아 있다. 침대와 책상이 갖춰졌고, 큰 수납장을 넣었다. 넉넉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여유롭다. 여성 전용 공간인 만큼 외부에서 건물로 진입하기 어렵도록 설계 과정부터 배려했고, 내부에서도 방문 손잡이를 그대로 번호식 자물쇠로 쓰는 등 보안에 각별히 신경 썼다.

넓고 높은 거실·욕조·바비큐장과 안전도 ‘공유’
셰어하우스 ‘소담소담’은 개인 공간을 조금씩 나눠, 함께 쓰는 공간을 확보하는 공유 주거의 가치를 실현했다. ①소담소담 전경 ②4층 공용 주방 ③개인 방 ④바비큐가 가능한 1층 공용 공간 ⑤스킵플로어로 구성한 4층 공용 거실. 제이와이 아키텍츠, 황효철 사진작가 제공

셰어하우스 ‘소담소담’은 개인 공간을 조금씩 나눠, 함께 쓰는 공간을 확보하는 공유 주거의 가치를 실현했다. ①소담소담 전경 ②4층 공용 주방 ③개인 방 ④바비큐가 가능한 1층 공용 공간 ⑤스킵플로어로 구성한 4층 공용 거실. 제이와이 아키텍츠, 황효철 사진작가 제공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공용 공간이 있는 1층과 4층이다. 특히 거실과 주방이 자리잡은 4층이 소담소담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거실 크기가 무려 26m²(약 8평)가량이다. 어지간한 30평대 후반 아파트 수준이다. 거실의 절반 정도 공간에 식탁이 있다. 여럿이 저녁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다. 나머지 공간에는 텔레비전이나 책을 읽기에 적합하도록 소파와 테이블이 놓였다. 두 공간이 높낮이 차를 두고 트여 있는데다, 층고가 4m나 돼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대개 아파트의 경우 층고는 2m를 겨우 넘는다.

공간 활용을 위해 ‘스킵플로어 구조’(계단을 절반쯤 오르면 나머지 공간이 나타나는 방식)를 적용했다. 거실 옆 주방의 길이가 5m를 넘는다. 이 밖에 햇빛·달빛을 받으며 몸을 담글 수 있는 욕조도 마련됐다. 원유민 소장은 “개인 공간을 조금씩 나눠, 여럿이 행복한 공간으로 쓴다는 ‘셰어하우스’의 개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국내 셰어하우스의 경우 1층에 거실을 만드는 방법을 택하지만, 이곳에선 햇볕 잘 들고 전망이 좋은 최상의 자리에 공용 공간을 만든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1층에 마련된 공유 공간도 특별하다. 1층 실내는 신발장과 창고, 공용 공간으로 구성됐다. 여성 전용 공간인 점을 고려해 진입로 한쪽 벽면 전체를 신발장으로 구성했다. 4층 거실이 누구나 찾아오는 ‘열린 관계의 공간’이라면, 1층은 이곳에서 친해진 이들이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는 내밀한 공간이다.

여기서 외부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벽돌과 철망으로 덧대 간이 테라스를 만들었다. 계절의 공기를 느낄 수 있고, 때때로 ‘바비큐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주택 외부에는 ‘주택용 무인택배함’을 설치했다.

집 자체뿐 아니라 건축주와 설계, 운영에서도 모두 ‘공유’ 개념이 녹아들어 있다.

설계를 담당한 ‘제이와이아키텍츠’(jyarchitects.com)는 ‘사회참여·재능기부형’ 젊은 건축가 집단으로 잘 알려졌다. 원유민, 조장희, 안현희 소장이 함께하는 제이와이아키텍츠는 2013년 전남 보성군 벌교에 화재로 집을 잃은 가족에게 ‘뽁뽁이 집’을 선물했다. 네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2평 창고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상황이 되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내놓은 예산 4천만원으로 ‘집방’(집 고쳐주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주택을 선물했다.

단독주택을 짓기에 터무니없는 예산이었지만, 뽁뽁이 단열재로 채광과 단열을 확보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활용했다. ‘쥐 소굴’ 같았던 전남 장흥의 다섯 자녀 집은 컨테이너 두 채를 연결해 역시 예산 4천만원으로 새집을 지었다. 이렇게 10건이 넘는 참여형 설계를 해왔다. 이들은 2013년 ‘젊은건축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운영과 관리는 ‘서울·소셜·스탠다드’(삼시옷·3siot.org)가 맡았다. 공식적으로는 ‘주택임대관리업체’지만, 대안적인 주거 환경을 위해 주거 운영 방법을 고민해온 ‘공유 기업’이다. ‘혼자이면서 함께 사는 집’이란 콘셉트로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공동체 주거를 시도했던 ‘통의동 집’을 비롯해 여러 셰어하우스 운영도 맡고 있다. 회사 이름도 서울(Seoul)을 배경으로 사람과 시간, 공간이 다양한 사회적(Social)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바람직한 표준(Standard)을 찾아간다는 뜻으로 지었다.

김민철 삼시옷 대표는 “국내에서 기존 셰어하우스는 대개 주택을 고치거나 리모델링했지만, 소담소담은 ‘따로 또 같이’ 살아야 하는 셰어하우스 입주자의 특성을 전적으로 고민해 지은 주택”이라며 “월세가 늘어나는 추세가 불가피하다면 ‘공유 월세’의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는 이런 방식의 주택을 고민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소담소담을 지을 때 기획 단계부터 힘을 보탰다. 3~4명이 함께 쓰려면 화장실이 몇 개나 필요한지, 신축 ‘공유 주택’에 필수적인 시설이 무엇인지 등 국외 사례를 찾고 효과적인 운영 방법에도 대안을 내놨다.

설계부터 운영·사후관리까지 ‘공유 개념’ 녹여

이들은 안전시설 관리, 청소, 수리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생활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도 일부 중재한다. “화장실이 막혔어요”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커요” 같은 것들이다.

김 대표는 “공유주택의 직접 운영자는 입주자들인 만큼 우리는 스스로 ‘제3의 운영자’라고 지칭한다. 아파트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거주지뿐 아니라 젊은 친구가 많이 사는 저층 거주지에서도 아파트 이상의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소담소담에서 아쉬운 점은 보증금 1천만원과 월세 50만원(관리비 5만원 별도)으로 정해진 주거 비용을 충분히 낮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건축주와 설계사무소 쪽이 애초 보증금 1천만원에 30만원대 월세로 맞추려 했지만, 방 개수가 늘어나면 개인들의 방 면적이 줄어들어야 하는 점을 고려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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