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해 보이는 이호철(36·가명)씨의 손에 ‘작은 소녀상’이 들려 있었다.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부부 조각가가 원래 크기를 20cm로 줄여 만든 ‘소녀상 미니어처’다. 거칠게 잘린 머리카락, 어깨 위의 파랑새, 하얀 나비를 품은 그림자와 문구까지 ‘평화의 소녀상’ 모습 그대로다. 발뒤꿈치를 들고 앉은 소녀상 곁에는 빈 의자 하나를 더 놓을 수 있게 했다. 언제든, 누구든 할머니들 곁에 찾아와 앉아주었으면 하는 연대의 바람이 담겼다.
‘소녀상 미니어처’ 1호 제작품
3월17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만난 이씨의 말투는 차분하지만 단호했다. “힘없는 어린 소녀들이 전쟁통에 적국의 성노예로 끌려가는데, 국가가 손을 놓고 있었잖아요. 그때의 위안부 소녀들이 할머니가 돼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하라고 요구하자, 이번엔 아예 우리 정부가 앞장서 이들의 바람을 짓밟고 있습니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씨는 3월20일 자신의 오토바이에 ‘작은 소녀상’을 태우고, 동해항에서 배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출발했다. 그는 이날부터 러시아와 유럽, 중앙아시아 52개국의 현지 일본대사관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예상 이동 거리만 무려 4만5천km, 5~6개월에 이르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는 대장정이다.
그는 각국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 ‘작은 소녀상’을 두고, 지금 ‘평화의 소녀상’이 주한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올 계획이다. 일본대사관이 없는 나라에선 그에 걸맞은 상징적인 장소를 찾을 생각이다.
경남 진주에 사는 이씨가 이날 서울을 찾은 것도 김운성 작가에게 지난 2월 초 부탁했던 ‘작은 소녀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달 김운성 작가에게 불쑥 연락해 부탁드렸다. ‘내가 하동 촌놈인데 비용이 넉넉지 않지만, 작은 소녀상을 만들어주면 각국 대사관에서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 작가가 ‘만들어지면 연락을 드리겠다’고 한 게 오늘이다”라고 했다.
김 작가 부부는 최근 소셜 모금을 통해 ‘소녀상 미니어처’ 100개 제작을 시작했는데, 이날 이씨에게 내놓은 것이 100-1호에 해당하는 첫 작품이다. 얼굴도 모르는 이가 자칫 엉뚱하게 들릴 만한 제안을 했는데도 기꺼이 미니어처를 내놨다. 김운성 작가는 “너무나 뜻깊은 일이라 망설임 없이 제안에 응했다. 이씨가 무엇보다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진주에서 작은 일본 가정식 요리점을 한다. 아내, 딸과 더불어 사는 평범한 가장이다. 한때 일본식 라멘을 배우기 위해 여러 달 동안 일본에 ‘라면 투어’를 떠났고, 그때 사귄 일본인 친구들이 몇 명 있는 것 외에 일본과 특별한 인연도 없다. 그는 왜 이런 일을 택했을까?
“후손마저 방관하면 너무 안타까워”“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데, 후손마저 똑같이 수수방관하면 너무 안타깝잖아요. 2000년 후반께 처음 생각을 했는데, 계획을 이제야 실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시작한 것뿐입니다.”
2009년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나면서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로 얘기했던 것 가운데 하나도 이번 여정이다. 그는 “먹고사느라 바빠서 미루기를 반복했는데, 지난달에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한 분 돌아가셨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가운데 44분밖에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자기 위안이라도 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계획은 빡빡하게 잡을 수밖에 없다. 아내와 14개월 된 딸이 있는데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도 후배에게 맡겨두고 떠난다. 이미 이동 경로는 좌표 형태로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에 모두 입력됐다. 예상 이동 경로가 무려 4만5천km에 이른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북유럽부터 서유럽, 동유럽을 거쳐, 우크라이나와 몽골, 중국을 타고 넘어오는 일정이다. 돌발 상황을 빼더라도,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혹독한 여정이 될 것이다. 오토바이와 함께 바다를 건너는 일정이 포함돼 선박을 이용해야 하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는 “다른 일정은 전혀 없다. 한 나라의 일본대사관에 도착하면 먹고 자고, 다시 다음 대사관으로 가는 식이다. 지도에 ‘한 붓 그리기’ 방식으로 떠나는 것이다. 일정이 조금 늦춰질 수 있겠지만 포기는 없다”고 했다.
예산은 배삯을 모두 포함해 800만원가량이다. 짐도 소형 오토바이 한 대와 가방, 배낭형 텐트, 침낭, 구급약 정도다. 휴대전화 2대도 챙겼다. 전화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식을 전하는 기능뿐 아니라 사진기, 내비게이션까지 ‘1인 3역’을 해줄 것이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간단한 오토바이 정비 기술도 배웠다.
“실제 계획한 돈은 기름값과 밥값 정도다. 그래도 중간에 일정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 먹는 것만큼은 잘 챙겨 먹으려 한다.” 이씨는 이번 여정을 무사히 성공하면, 내년부터 50여 개국씩 전세계 200여 개국에서 일본대사관을 찾아다닐 계획이다. 내년엔 2차 일정으로 미국을 포함한 북남미 50여 개국이 예정돼 있다. 3차, 4차는 각각 아프리카와 아시아다.
한 조각가는 각시탈 만들어 응원힘이 돼주는 이들이 있다. 이씨 가게에 자신을 조각가라고 소개한 단골손님은 ‘각시탈’을 만들어줬다. 국외에 있는 지인들이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가라”며 응원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힘이 크다. 3년 전 결혼한 아내에게 결혼 전 ‘버킷 리스트’로 이미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아내한테 반드시 안전하게 돌아온다고 ‘특별 브리핑’까지 했다. 원래 오토바이를 험하게 몰지 않는데다, 이번 여정 중에 잠자리가 주로 텐트인 만큼 반드시 경찰서나 소방서 인근에 자리를 펴겠다는 약속도 했다.” 태어난 지 14개월 된 딸도 그가 이번 여정을 떠나는 이유의 하나가 됐다.
“저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하잖아요. 저한테는 이번 여정이 그런 것이에요. 특히 이제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는 딸에게 아빠는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글·사진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이호철씨는 일본 정부가 자국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외국인에게 입국 거부를 취하는 경우가 있었던 점을 우려해 가명을 써줄 것을 요청해왔습니다. 은 이씨가 이번 여정 동안 보내오는 사진과 이야기를 페이스북의 정기독자 커뮤니티 ‘21cm’( facebook.com/groups/h.21cm) 등 온라인을 통해 소개할 예정입니다.※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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