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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관리하라 민주로 비자본주의로

<한겨레21> 청년 객원기자들 만난 ‘비판적 문화이론가’ 강내희 교수 “희망 없는 데서 희망 찾고, 단순 투표 넘어 사회변혁 원동력 되길”
등록 2016-03-17 16:40 수정 2020-05-03 04:28
강내희 전 중앙대 교수(가운데)와 <한겨레21> 객원기자들. 강 교수는 ‘다른 삶’을 강조했다. 정용일 기자

강내희 전 중앙대 교수(가운데)와 <한겨레21> 객원기자들. 강 교수는 ‘다른 삶’을 강조했다. 정용일 기자

‘책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노교수의 서재에 다다르는 길목마다 책이 밟혔다. 강내희(65) 전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의 서울 연희동 자택은 차라리 하나의 헌책방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강 교수는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그는 강단 생활 30년을 마치고 얼마 전 정년퇴임했다.

문화, 청년, 노동, 인문학, 대학, 언론 등 온갖 분야를 널뛰기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는 곧장 답변했다. 그리고 답변들은 이내 궤 하나를 그렸다. 그것은 이것이다. “청년들이 비자본주의적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만 이 세상에 희망이 있다. 희망이 없는 데서도 희망을 찾아야 한다.” 노교수가 필생 동안 구한 결론이다.

지난 2월20일, 강 교수는 30년간 써낸 글 가운데 19편을 추린 선집 (문화과학사 펴냄)를 냈다. 책을 읽고 나서 좀더 캐묻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비자본주의적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희망이 없는 데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청년 객원기자들이 강 교수를 찾아갔다.

지난 2월 정년퇴임을 맞아 강내희 전 교수는 신작 <길의 역사>와 선집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를 펴냈다.

지난 2월 정년퇴임을 맞아 강내희 전 교수는 신작 <길의 역사>와 선집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를 펴냈다.

문화를 강조하는 학자이고 문화운동을 주도해왔다. 그런데 문화라는 게 너무 포괄적인 개념 같다. 운동의 대상으로서 문화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문화라 하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태도를 취하면 그때부터 (문화에) 개입할 데가 굉장히 많아진다. 아주 옛날에는 사람들이 옷을 만들어 입었다. 나도 어릴 땐 집에서 만들어 입었다. 옷은 사더라도 필요에 따라 사는 것이었다. 근데 이제는 돈 주고 사게 됐다. 요즘은 필요 없는 것도 돈 주고 사게 만든다. 소비자본주의 시대로 들어선 거다. 한국은 대략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문화에 개입하고 들어갈 필요성이 생겼다.

소비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문화연구 같은 것이 시작됐다. 물론 그전에도 소비자본주의적 문화는 있었지만, 그때 한국은 대안문화 운동이 아주 유력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것이 사라진 게 대략 90년대 초부터다. 워낙 저쪽(자본)이 강해져버렸다. 그 이후 문화에 개입할 필요성이 생겼고, 한국에 새로이 문화연구 담론이나 문화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30년 강단 생활 마치고 정년퇴임오늘날 ‘청년문화’라는 것이 있다고 보는가.

대안문화로서 청년문화를 말하자면, 1980년대에는 ‘정답’이라고까지 말하지 못하더라도 강력한 형태로 존재했다. 하지만 오늘날 위력적인 청년문화는 눈에 안 띈다. 오늘날 청년문화는 지배문화에 포섭된 문화다. 자본주의 지배문화를 대체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문화에 포섭된 거다. 예전에는 청년문화가 대동제 형태로 나타났는데, 요즘은 대동제라고 하더라도 밖에서 걸그룹 불러다 하는 거 아닌가. 소비문화에 포섭된 축제가 되었다. 대안문화가 되려면 비자본주의적 가치와 삶의 형태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 게 보이지 않으니 청년문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노동거부권’이라는 주장이 낯설게 들린다.

노동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화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다. 여러 활동 중 하나지, 유일한 활동이 아닌 거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는 노동을 지배적 활동으로 만들었다. 취직을 못하면, 그래서 노동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먹고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노동이 전부 필요한가? 취업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기업은 돈을 쌓아놓고 취업을 안 시켜준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화를 만드는 데 노동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은 거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라면 그 노동을 민주적으로 나눠서, 일하는 시간을 확 줄이고 다른 걸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노동을 통하지 않고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사회적으로 보장한다거나 해서 노동에만 얽매여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오직 노동만이 살길’이라 하지 말고, 노동을 줄이기 위한 운동도 해야 한다. 노동을 절대시하지 말자, 그런 의미에서 노동을 거부해야 한단 얘기다.

청년문화는 지배문화에 포섭돼‘다른 세계’를 상상하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신자유주의 이행기에 태어나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청년기를 맞은 세대에게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나는 그 말에 반대한다. 내 세대는 전근대적 사회에서 태어났지만 무언가 나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공부했다. 왜 나쁜지, 나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더 좋은 건 무엇인지 공부했다. 지금 젊은 세대도 행복하지 않을 거다. 모르면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지금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할 거다. 근데, 그럼 해결책이 없다. 소비생활을 줄이고 그만큼 다른 걸 추구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계속 자본주의적으로 사는데 그 바깥이 안 보이는 건 당연하다.

공부의 필요성, 그러니까 구조 자체를 깨닫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수의 청년이 할 생각을, 엄두를 안 내고 있는 거다. 대중문화, 연예인 문화가 청년들을 지배하고 있다. 예컨대 유재석 같은 연예인이 하는 걸 보고 웃고 좋아하고, 그런 삶을 살면 그 이상을 못 본다. 대안문화는 다른 삶을 살려고 하는 문화다. 돈 안 드는 삶, 소비를 줄이고 자유 시간을 많이 가지려는 노력.

한편으로는 칼럼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건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령 성신여대는 3월2일 학과 구조조정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런 데서 희망을 보는가.

없는 데서도 희망은 찾아야 하니까. 지금은 희망이 안 보인다. 그런데 대학을 거부하려는 학생들이 있다. 대안을 추구하는 학생들. 그런 데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 그것도 참…. 거기서 희망을 본다고 말하는 거지만, 극소수다. 젊은 세대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그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쓴 것이다.

학생들 보면, 참 불쌍하다. 전망이 안 보인다. 지금의 대학교육을 거부하고 바꿔내는 움직임이 있을 때 희망이 있다. 그런 움직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오길 기대하고. 그런데 그 움직임이 대학 안에서 바로 나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밖이랑 안에서 같이 나와야 한다. 밖에서 총파업이나 자본주의 지배에 저항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거기에 호응해서 학생들이 움직이고. 이렇게 가야 하는데, 어렵다. 그걸 어떻게 해낼지를 공부하는 게 대안 찾기다. 그런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

대학 안과 밖에서 운동 일어나야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이 투표율을 올리자거나 대학 간 연합 조직을 만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그런다고 청년 투표율이 오를까.

얼마 전 기사를 보니까 20대에서 투표하겠다는 답변이 70% 가까이 된다고 한다. 바람직한 변화라고 본다. 그런데 대학생이 운동을 주도했던 1980년대에는 대학생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은 그럴 정도의 힘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가만히 있다가 투표만 하겠단 거다. 그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그걸 일으키기 위해서 나서야 한다. 투표는 그냥 하면 되는 거다. 다른 삶을 살려고 해야 한다. 선거를 넘어서서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이 고민이 필요하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을 운영하면서 대학 밖에 ‘코뮌’을 만드는 운동을 하고 있다. 대안대학의 최종 지향은 무엇인가.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의 관계를 없애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는 사람은 배운다고 하지만 가르치는, 그런 관계를 ‘지식순환’이라고 부른다. 이런 것이 가능해야만 진보적 교육이 제대로 된다는 취지에서 지식순환협동조합(지순협)을 만들었다. 대안대학은 지순협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다. 기존 대학은 여러 이유로 교육과 학문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다. 학문을 하고 싶어도 연구재단으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는 방식이 됐다. 제대로 해야 할 공부를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대안대학은 기존 대학을 넘어서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다. 대학에 가지 않았거나 대안학교를 나온 학생들은 이게 ‘대안’대학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대안대학엔 담임교수가 있다. 내가 학생들의 90%는 이름을 다 안다. 기존 대학에서 강의할 땐 얼굴은 알아도 이름은 몰랐다.

대학에 가지 않는 청년들도 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데.

요즘은 좀 줄고 있지만, 한국은 대학 가는 학생이 75% 정도 된다고 한다. 대학에 안 간 학생들은 대학 졸업해야 가는 직장을 안 가면 되는 거다. 어차피 자본주의는 2008년 이후 위기에 빠졌다. 앞으로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고등학교만 졸업한다고 도태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대학 안 가고 살 수 있는 길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기존 대학은 자본주의적으로 사는 능력을 기르게 할 뿐이다.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는, 그런 능력을 가진 졸업생들을 배출하는 게 대안대학의 목표고 희망이다.

경쟁 통해 이기는 방식은 희망 없어 이사장으로 있는 온라인 미디어 에서 라는 종이주간지를 내기 시작했다. 모두가 종이주간지는 사양산업이라 예측하는데.

나는 반대했다. (웃음) 실무자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다. 노동문제나 진보좌파의 의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주간지가 한국에는 없는 거지. 지금 한국에 진보좌파 정당의 영향력이 미미하다. 노동당·정의당 정도다. 그런데 좌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의제는 산적해 있다. 그런 걸 좌파적 관점에서 다루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참세상 식구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거다. 걱정은 되지만, 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잘 노는 게 뭔지 알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시간에 안 쫓기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게 뭘까, 꼭 해야 할 게 뭘까. 그래서 그런 걸 좀 가능하면 (청년일 때) 해봤으면 좋겠다. 비자본주의적 삶을 살려고 해야만 희망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통해 이기려는 방식으로는 희망이 없고, 자본주의적 세상을 넘어 비자본주의적 삶을 만들어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강남규 객원기자 slothlove21@gmail.com
이지민 객원기자 aaaa34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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