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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

최초 고공농성 여성노동자 강주룡의 일생

<체공녀 강주룡>
등록 2018-09-16 21:53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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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지음/한겨레출판 펴냄/1만3천원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지음/한겨레출판 펴냄/1만3천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례적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호명했다. 1932년 제주에서 해녀항일운동을 이끈 해녀 5명과 그 전해인 1931년 평양 고무공장 파업을 주도한 강주룡이 그들이다. 강주룡은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 농성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이 인상적인 장면 때문에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자로 꼽힌다. 그런 점에서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선배’라 할 수도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주체적이고 씩씩한 사람, 강주룡</font></font>

올해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박서련의 장편 은 바로 그 강주룡을 주인공 삼은 소설이다. 강주룡의 삶은 그가 잡지 과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과 파업투쟁, 을밀대 농성을 다룬 신문기사 등에 소략하게 남아 전한다. 작가는 이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거기에다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해 한 세기 전 사람 강주룡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그렇게 되살아난 강주룡의 인간적 면모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그가 매우 주체적이고 씩씩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보다 훨씬 성차별적인 시대를 살았음에도 성평등 의식과 그에 기반한 실천에 적극적인 인물로 그려진 점이 인상적이다.

가령 그는 남편 최전빈을 좇아 독립군 부대에 들어가는데, 그 안에서 태연하게 벌어지는 성희롱적 언동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그런 ‘동지’를 두둔하는 남편에게도 당당하게 맞선다. 이런 당찬 면모는 고무공장 노동자가 된 뒤 혁명적 지식인이 주도하는 독서 세미나에 참여했을 때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들 중에 여성은 자기 하나뿐인 것을 확인한 강주룡은 동료 남성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한다. “해가 저문 시방 이 시각에 여러분은 이 자리에 있구 그네들(부인들)은 가정을 지키구 있는 탓입네다. (…) 내심 아녀자의 무학무식이 당연하구, 여러분이 공산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하는 거이니 부인도 도매금으루 공산 부인인 거이 당연하다 여기시디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식민지 백성·여성·노동자’ 삼중고에 맞서</font></font>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친정에 돌아온 그를 나이 든 홀아비에게 떠넘기려는 부모의 결정에 반발해 집을 나온 강주룡은 “그저 제 한 몸 재미나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평양 고무공장에 취직한다. 그러면서 극장 구경도 하고, 커피에도 맛을 들이고, 양장에 ‘빼딱구두’에 실크 스타킹 차림인 ‘모단 껄’이 되고 싶어 잡지의 모단 껄 사진을 수집하기도 한다.

그런 그를 비웃듯 작업반장은 말한다. “강주룡이 모단 껄이면은 나하구 자유연애 한번 하자.” 이런 작업반장의 희롱을 대하는 그의 태도인즉 씩씩하고 통쾌하기 짝이 없다. ‘구남성의 박해를 받았으니 이는 도리어 모단 껄 되기의 제일보에 진입한 것이다.’

강주룡을 공산주의 세미나로 이끈 지식인 활동가 정달헌은 그를 가리켜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고 말한다. 비난의 뜻이 아니다. 정달헌은 강주룡을 “아주 탁월한 사람”이라고도 평가하는데, 그의 말처럼 강주룡은 식민지 백성이자 여성, 노동자라는 삼중고에 맞서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였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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