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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우리는 연결된다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과 북카페 ‘두잉’ 독서모임 사람들 공감과 공유의 시간
등록 2018-09-16 21:35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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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과 문화예술계 성폭력 말하기(#○○_내_성폭력) 이후 ‘페미니즘’이 사회 이슈가 되었다. 올해 초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를 시작으로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도 거세졌다. 이를 계기로 출판계에선 페미니즘 서적의 발간이 잇따르고 있다. 사회단체, 대학 등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토론과 좌담, 강연까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페미니즘을 책으로 함께 공부하는 이도 늘고 있다. 대학 동아리, 청소년단체, 페미니즘 책방과 북카페 등에서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꾸리고 있다. 함께 읽기를 통해 차별받은 경험을 나누고 연대의 힘을 확인한다.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의 지혜를 모은다. 독서모임 회원들이 페미니즘 함께 읽기를 통해 느낀 ‘연결’과 ‘연대’ 이야기를 전한다. 아울러 과 책지성팀이 이웃과 가족, 동료들과 함께 읽기 좋은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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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7일 오후 5시,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페미니즘 동네책방 ‘달리, 봄’.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이 책방은 지난해 8월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문을 열었다. ‘페미니즘 책방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바람이 모인 곳이다. 페미니즘 이론서, 젠더 관련 연구서적, 여성의 삶을 다룬 에세이 등 여성주의 관점에서 쓰인 책을 판다. 책 판매뿐 아니라 이곳 책방에선 3개의 독서모임이 열린다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신념

‘달리, 봄’ 류소연(29) 대표는 3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책을 ‘즐거운 숙제’처럼 읽는다. “책을 같이 읽으며 각자 느낌을 이야기할 때가 좋다. 모임에 온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나와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책 이야기를 나누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한다. 책을 통해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 같다.”

류 대표는 매달 5권 이상의 페미니즘 책을 읽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정희진의 이다. 처음 읽은 페미니즘 책이다. “페미니즘 책방을 운영해서 그런지 ‘페미니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페미니즘은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신념’이라고 대답한다. 내 대답을 곱씹어 생각해보니 그 책()을 읽어서 그런 구체적인 대답이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페미니즘에 대해 막연하게 여성이 차별받지 않게 하는 것,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달리, 봄’에서는 일요일마다 페미니스트 독서회가 열린다. ‘함께 모여 읽는다. 소리 내어 읽고, 인상 깊은 부분, 느낌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독서모임이다. 독서회 회원 다다(26·필명)씨는 이 모임에서 리베카 솔닛의 , 버지니아 울프의 등을 읽었다. 그동안 읽은 책 중 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에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는 구절이 있다. 흔히 다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투쟁을 하려면 각박하게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풍요로움 속에서 여유로울 수 있고 그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그 말이 나를 깨웠다.”

다다씨는 독서모임에 처음 참여했다. 혼자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멤버들이 각자 한 문단씩 소리 내 읽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서로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집중이 잘되고 공유되는 시간이 있다. 20대 비슷한 나이의 여성들이라 그런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안전하고 공감을 받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페미니즘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페미니즘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나다울 수 있는 길로 나아가려는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다움, 여성다움이라는 성역할을 강요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는 자기를 찾기 위해 페미니즘 책을 읽는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내 경험을 언어화하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페미니즘 북카페 ‘두잉’이다. 1997년 페미니스트 카페 ‘고마’ 이후 20년 만에 생긴 페미니즘 카페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았다. 두잉은 페미니즘과 LGBTQ(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퀴어), 소수자 인권 등에 관한 책 1천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에선 요일마다 열리는 독서모임이 10여 개 있다. 김한려일 대표는 “독서모임은 카페의 가장 중요한 커뮤니티”라며 “독서모임을 통해 책을 같이 읽고 성장하고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망고(23·필명)씨는 자신이 읽은 첫 페미니즘 책 을 통해 여성의 삶과 여성의 언어를 알았다. “남성인 난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뒤늦게 알고 부끄러웠다. ‘82년생 김지영’도 ‘62년생 우리 엄마’도 90년대생 내 친구들도 나이는 다르지만 여성으로서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제야 친한 여자친구들로부터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과 성추행 경험을 들었다. 행선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불안했던 기억, 남자 교수들에게 행동거지와 옷차림에 대해 ‘여자는 이래야 저래야 한다’는 훈계를 들었던 일 등을 말이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망고씨와 같은 독서모임에서 활동하는 김희연(30)씨는 “은 소설이 아니라 같은 세대 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현실”이라고 했다. 89년생 김씨 역시 ‘82년생 김지영’처럼 성차별과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이다. “남동생과 함께 자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자랐다. 내 친구들 중에는 딸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끝순이인 이도 있다. 뿌리 깊은 남아 선호 사상 탓이다.”

페미니스트이자 작가인 재닛 윈터슨은 “책은 나를 예전의 나로 돌아가게 하지 않는다. 책은 나를 새롭게 정의한다”고 했다. 그 말처럼 김씨는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기록도 한다.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며 나도 모르게 차별을 내재화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별인 줄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페미니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견고한 남성 중심 사회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한다.

수요일 독서모임의 박이지(31·가명)씨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지만 주위 사람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하긴 쉽지 않았단다. ‘페미’라는 말만 꺼내도 인신공격을 받거나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선 책 이야기뿐 아니라 페미니즘에 관한 다양한 사회 이슈를 말할 수 있어 좋단다. 박씨는 앞으로 모임 사람들과 ‘낙태죄 폐지’에 관한 책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싶단다. 페미니즘은 함께할수록 힘이 세지기에.

글·사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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