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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끝까지 밝혀줄게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세월호 엄마들이 무대에서 전하는 아픈 웃음과 따뜻한 위로
등록 2017-01-10 06:49 수정 2020-05-02 19:28
‘세월호 엄마’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옷을 입고 연극 무대에 올랐다. 아파트 경비원 역할을 맡은 박유신(왼쪽)씨와 이미경씨.

‘세월호 엄마’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옷을 입고 연극 무대에 올랐다. 아파트 경비원 역할을 맡은 박유신(왼쪽)씨와 이미경씨.

‘세월호 엄마’들이 무대에 올랐다. 아무 말 없이 가슴에 품은 한 글자 한 글자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노란색 손팻말에 적힌 일곱 글자는 ‘끝까지 밝혀줄께(게)’라는 문장을 완성한다. 세월호 진상 규명에 대한 절절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엄마들도, 관객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1월4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 ‘향’. 세월호 참사를 겪은 경기도 안산 단원고 피해(희생·생존) 학생 어머니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공연이 펼쳐졌다. 이미경(영만 엄마), 김명임(수인 엄마), 김춘자(동수 엄마), 박유신(예진 엄마), 김순덕(애진 엄마), 김성실(동혁 엄마), 김정애(주현 엄마), 오순이(시찬 엄마)씨가 노란리본의 단원이다.

엄마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극단 노란리본은 오세혁 작가의 코믹 옴니버스극 을 선보였다. 은 40년지기 고향 친구와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아파트 경비원 강호남·김영광, 파업 현장에 나간 청소노동자 엄마 순심과 ‘용역깡패’ 아들 수일, 장기투쟁을 하는 ‘사랑전자’ 노조위원장 순애의 이야기를 담았다. 엄마들은 이 작품으로 2016년 7월과 9월 쇼케이스를 거쳐 10월 경기도 안산에서 첫 공연을 했다.

세월호 엄마들의 연극은 우울하지 않고 경쾌하다. 배우가 된 엄마들은 익살스러운 대사에 흥겨운 춤도 추고 알콩달콩한 사랑도 보여준다. 극단을 이끄는 김태현 연출가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냥 웃음이 아닌 연극을 통한 웃음, 풍자와 해학으로 웃는 웃음 말이다. 웃을 일 하나 없는 현 상황에서 연극 연습할 때만은 웃게 해주려고 코미디극을 선택했다”고 했다.


연극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이면서 또 다른 세월호 이야기다. 장기투쟁 사업장 사랑전자에서 순애의 현실은 세월호 엄마들의 현재와 맞닿아 있다.

이 연극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이면서 또 다른 세월호 이야기다. 장기투쟁 사업장 사랑전자에서 순애의 현실은 세월호 엄마들의 현재와 맞닿아 있다. 엄마들은 전국을 돌며 세월호 특별법 개정 서명을 받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하고 삭발하며 기나긴 싸움을 해왔다. 1천 일의 시간 동안.

“이 조끼 벌써 300일 넘게 입었네요. 때론 이놈의 조끼가 지긋지긋할 때가 있어요. 1년 내내 조끼만 입고 있는 게 너무 원망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래도 이 조끼 덕분에 이 세상이 어떤지도 알고, 사랑스런 동료들도 만나고, 사랑스런 동지들도 만나고, 사랑스런 수일씨도 만나고.”( 순애의 대사 중에서)

아픔이 아픔을 어루만진다. 엄마들은 현실 속 순애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없는 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그동안 경기도 안산청소년수련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소극장, 충남 당진, 부산 촛불집회 등 전국 어디든 그들을 불러주는 무대에 섰다. 자신의 슬픔을 가슴에 담아두고 관객을 웃긴다. 아픈 웃음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시민이 세월호 가족을 위로하고 도와줬다. 이번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힘든 시민들의 아픔을 보듬고 토닥여주고 싶었다.”(김태현 연출가)

세월호 엄마들이 연극을 하기까진 쉽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세월호 참사 뒤 심리치유를 위해 커피공방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배웠다. 그 과정이 끝난 뒤 선생님이 연극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2015년 10월 연극 모임이 꾸려지긴 했지만 처음에는 대본을 읽는 것조차 힘들었다. 연극을 띄우기까지 기나긴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공연할 엄두는 못 내고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희곡 읽기부터 했다. 예닐곱 작품을 읽었는데 그중에서 어머니들이 가장 좋아한 작품이 바로 이다.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기까지

연극을 한다는 건 치유 과정이기도 하다. 연극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교감해야 한다. 수일 역할을 맡은 김춘자(동수 엄마)씨는 아들을 잃고 아들 연기를 하는 것이 힘겨웠지만 연극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힘겹게 회사를 다니다 2014년 12월 그만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연극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본도 못 읽겠고 마음도 열 수 없었다. 연극하러 온 어머니들을 만나고 수다 떨고 연극 속 인물과 융화돼 울분을 쏟아내고. 점점 아이들을 위해 (진상 규명을) 안 하면 안 되겠다 싶어 기자회견도 했다. 연극 하기 전에는 집에만 있었다.”

오빠 동수의 나이가 된 둘째딸이 연극을 보러 왔다. 엄마를 무대에서 보는 건 어땠을까. “둘째가 연극을 세 번 봤다. 처음에는 어색하다고 하더니 연극을 본 뒤 말없이 나를 안아주고 뽀뽀해줬다. 엄마가 안돼 보였나보다. 10년 만에 초등학생 이후 처음이다. 감동이었다.”

수일이 엄마 역할인 김명임(수인 엄마)씨도 연극을 통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10년 만에 엄마가 됐다. 그렇게 얻은 아이를 17년밖에 못 키우고 보냈다. 극 중에서는 아빠와의 사이에서 아들 편을 들어준다. 아들이 있을 때 못한 것을 한다. 아들 대하는 게 순간순간 아프지만 첫 출근을 도와주는 것은 수인이와 해보지 않은 일상이다. 그래서 위안이 된다.”

세월호 3주기 맞아 심판극 준비
극단 ‘노란리본’ 엄마들이 세월호 진상 규명을 염원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었다.

극단 ‘노란리본’ 엄마들이 세월호 진상 규명을 염원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었다.

“세월호 진상 규명 및 온전한 선체 인양과 특별법 개정과 사드 배치 반대 및 굴욕적 위안부 합의 반대 및 최순실 게이트. 최순실은 뭐고 게이트는 뭐야. 이거 왜 자꾸 길어지는 거야? 하여간,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가지고 나라꼴이 엉망이야!”( 교육국장 대사 중에서)

세월호 참사 1천 일이 다가오고 설 연휴도 맞게 되는 새해는 엄마들에게 힘겨운 시간이다. 동수 엄마 김춘자씨는 전남 진도 동거차도에서 새해를 맞았다. “바다를 보면 아프지만 편하다.” 지난해부터 동거차도에서 새해를 맞자고 가족들과 약속했다. “우리 네 식구가 다 모일 수 있는 곳”이기에.

사랑하는 아이들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이 어머니한테 크나큰 상처로 남았다. “회사 작업 라인에 들어갈 때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세월호 사고 난 것도 그날 오전 10시가 넘어서 알았다…. 나중에 보니 아이가 나한테 문자를 3개 보냈다. 그 문자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혹여 지워질까봐 사진기로 찍어놨다.”

주현 엄마 김정애씨는 지난해 마지막 날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4160 컵밥 나누기’ 행사에 참여했다. 주말마다 가는 광화문광장은 이제 어머니에게 익숙한 곳이다. 그곳에서 시민들이 전하는 위로와 응원의 기운을 받는다. “요즘에는 연극을 본 시민들이 와서 잘 봤다고 해주세요. 힘이 나죠.”

속절없이 세월이 가고 오는 4월이면 세월호 참사 3주기다. 어머니들은 3주기를 맞아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있는 이들을 법정에 세우는 풍자 모의 심판극을 준비하고 있다. 김태현 연출가는 “그 연극에서는 대통령도 세우고 김기춘도 세운다. 어머니들이 심판하고 죄인도 연기한다. 어머니들과 공동 창작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심판 장면과 대사를 넣을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약속해, 반드시 약속해”

“내가 울면 옆의 어머니까지 힘들까봐 감정을 자제한다. 많이 웃고 함께 연습하는 어머니들의 동지의식이 큰 치유제가 된다. 이래서 살아지나보다.”(동혁 엄마)

“관객석에 앉은 아기들 보니까 너무 예뻐서 어릴 적 예진이를 보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갈수록 미치게 보고 싶다. 예진이가 날 많이 닮았다. 미치게 보고 싶을 때는 거울을 보면서 ‘너 어디에 있니?’ 묻는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진실이 규명돼도 (예진이는) 못 오지만 우리 아이가 남긴 숙제는 끝까지 밝혀낼 거다.”(예진 엄마)

“우리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 지 1천 일이 다가온다. 힘든 가운데 이런 자리에서 할 수 있게 여러분들 동행해주고 응원해주고 감사하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 해야 할 몫이다.”(영만 엄마)

극을 마치고 연극배우에서 세월호 엄마가 되는 시간. 엄마들은 관객 앞에서 한 명씩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떨리는 목소리에 고통과 그리움, 고마움과 바람이 담겨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희극’을 보여준 엄마들은 관객과 공연의 마지막을 함께 마무리하자고 이야기한다. 엄마들과 관객은 한목소리로 윤민석의 세월호 추모곡 를 부른다. 아이들이 남긴 숙제를 끝까지 풀어가겠다는 다짐, 그리고 약속의 노래다.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중략) 그 누가 덮으려 하는가. 4·16 그날의 진실을 그 누가 막으려 하는가. 애끓는 분노의 외침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우리 모두 행동할 거야. 이마저 또 침묵한다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어. 끝까지 다 밝혀낼 거야. 끝까지 다 처벌할 거야. 세상을 바꾸어낼 거야. 약속해. 반드시 약속해.”(윤민석, )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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