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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부탁해

다시 11월이 오면 담쟁이처럼 이 벽을 넘자

박근혜 정권이 세운 불통의 벽에 맞선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점 의제는 국정교과서 폐기, 누리과정 예산 국비 편성, 교육 질 높이는 대학구조개혁

제1125호
등록 : 2016-08-15 16:09 수정 : 2016-08-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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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_ 20대를  부탁해

① 부산·경남 지역주의-김영춘 (더민주)


② 세월호 진실 규명-박주민(더불어민주당)

③ DJ의 정치 의식 계승-최경환(국민의당)

④ 사드와 국가안보-김종대(정의당)

⑤ 국정 역사 교과서와 교육-도종환(더불어민주당)

*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벌써 십수 년째다. 올해 8·15 광복절에도 보수단체들은 ‘광복’이 아닌 ‘건국’ 기념에 열을 올린다. ‘건국 68주년 기념식’ ‘68주년 건국절 행사’가 도처에서 열린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광복 3주년인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날을 건국일이라며 기념하는 행사들이다. 물론 명백히 헌법에 배치되는 주장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13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보수세력의 목소리에 유독 힘이 실린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들여 박근혜 정부에서 결실을 맺은 ‘성과’ 때문이다. 바로 지난해 11월 확정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다. 내년 3월 학생들이 배우게 될 국정 역사 교과서에는 뉴라이트 계열, 여당의 핵심 주장인 ‘1948년 건국’을 비롯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독립운동과 평화통일 노력을 폄하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9개월 넘도록 집필진, 집필 기준, 집필 과정 등을 철저히 비밀로 감추고 있다.

<한겨레21>은 연속기획 ‘20대를 부탁해’ 다섯 번째로 국정교과서 저지·폐기 투쟁의 중심에 있는 시인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국정교과서의 진행 상황과 대안을 물었다. 도 의원은 “역사는 우리 민족의 집단 자서전”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처럼 가정사의 한을 풀려고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사 교과서를 지키는 것이 지금 ‘역사 정의’를 지키는 것”이라며 ‘11월의 뜨거운 싸움’을 예고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더민주 간사이기도 한 도 의원은 국정교과서 외에 누리과정과 대학구조개혁 등을 시급한 교육 현안으로 꼽았다.

뒤이은 기사에선 최근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사태’의 배경으로 거론되는 대학구조개혁 문제의 뿌리를 살폈다. 무능·무책임한 정치권과 돈줄을 무기로 입학정원 감축을 밀어붙인 정부에 공동 책임이 있었다.

취재 서보미 기자, 편집 신소윤 기자, 디자인 장광석

김진수 기자

도종환  의원  약력

충북 청주 출생 (1954년)

충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1977년)

시 ‘고두미 마을에서’로 등단 (1984년)

시집 <접시꽃 당신> 발간 (1986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혐의로 해직·투옥 (1989년)

신동엽창작상 수상 (1990년)

해직 10년 만에 복직 (1998년)

자율신경조절증으로 27년 만에 퇴직 (2004년)

충남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2006년)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2007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2008년)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2010년)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당선(비례대표) (2012년)

신석정문학상 수상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위 위원장 (2015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충북 청주 흥덕) (2016년)

시를 쓰는 마음으로 정치를 해왔기 때문일까. 국회에서도 풀과 꽃을 찾아다녔기 때문일까. 재선인 도종환(62)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얼굴은 맑았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피부는 투명했고 표정은 부드러웠다. 피곤에 절어 있거나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다른 국회의원들과는 달랐다. 정치인보다는 문학인이란 말이 여전히 어울렸다.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임기가 끝날 무렵 그는 “자유로운 문학인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잠깐 생각했다. 정치를 하면서 보람도 많았지만 정치에 환멸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강행한 ‘중등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되돌리는 일’이었다.

“졸속·밀실·복면 집필”

지난해 치열했던 ‘국정화 정국’에서 그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위’ 위원장을 맡아 검인정교과서가 ‘자학·종북 교과서’라는 정부·보수세력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또 서명운동과 토크콘서트를 누비며 시민들에게 국정교과서의 부당성과 위험성을 알렸다. 27년간 국어교사였던 그는 ‘국정교과서로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부는 교육부 차관 전결 사항인 ‘고시’로 국정화를 밑어붙였고 국회가 더 이상 손쓸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는 지난 4월 “이대로 역사의 후퇴,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며 고향인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대 국회 개원 직후인 지난 6월에는 역사 교과서 소관 부처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의 더민주 간사를 맡았고, 7월에는 ‘역사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국정 역사 교과서 금지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시행되는 내년 3월을 불과 7개월 남겨둔 지금까지도, 그 역시 “집필진, 편찬 기준, 집필 상황에 대해 공식·비공식적으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했다. 당장은 국회가 입법으로 국정화를 저지하기 어렵고 이를 사법부에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다만 교과서 내용이 공개되는 11월에 반전의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다. ‘뜨거운 11월’을 앞두고 숨고르기를 하는 그를 8월1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2시간30분 동안 만났다.

‘내년 3월에는 학생들이 국정 역사 교과서로 수업을 듣게 하겠다’는 교육부의 계획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이미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은 끝났고 지금은 편찬심의위원들이 수정·검토하는 단계입니다. 편찬심의위원들은 필자들이 쓴 원고를 마음대로 고칠 수 있습니다. 저작권이 국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국정교과서입니다.”

교과서 집필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군요.

“네. 그래서 누가 편찬심의위원이냐고 국회에서 질문했는데, (교육부는) 대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졸속 집필, 밀실 집필, 복면 집필이 이뤄지고 있어요.”

교육부에서 꾸린 편찬심의회는 편찬 기준을 심의·확정하고 집필진에 수정·보완을 요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16명의 심의위원 명단은 물론 47명의 집필진과 편찬 기준을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야당·역사학계·교육계의 줄기찬 요구에도 교육부는 “(교육 관련 단체에 제공되는) ‘현장검토본’이 나오는 11월에 공개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편찬 기준을 감춘 채 교과서 초안 집필을 끝낸 거네요.

“네. 거꾸로 됐어요. 이준식 교육부 장관이 (편찬 기준은) ‘7월에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무슨 일인지 11월로 다시 번복했어요. 장관이 공개하고 싶어도 의지대로 못하는 힘이 작용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집필진이 누구인지는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하고 있나요.

“학계에서도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뻔하니까요. 요새 안 보이는 사람이 집필진으로 갔다고 추정하는 거죠.”

현장검토본 공개되는 11월 논쟁 재점화

도 의원은 2013년 친일·독재 미화 논란으로 학교에서 채택률 0%대에 그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을 겪은 뒤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세력이 국정화를 시도할 것”이라며 경계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정말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언론과 많은 국민, 심지어 여당 안에서도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고 그는 짐작하고 있다.

국회가 교육부로부터 비공식적으로 보고받고 있지는 않나요.

“전혀 그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비공식적으로도 답변이 없어요. 청와대의 막강한 힘이 작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청와대가 직접 관여한다는 건가요.

“추측입니다. (교육부에) 아무리 물어도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일절 대답을 안 하니까요.”

교과서 집필 기간이 굉장히 짧네요.

“지금까지 (검인정 체제에선) 교과서를 만드는 데 평균 2년이 걸렸어요. 2년도 부족해서 교학사 교과서에선 1300여 개의 오류가 나왔죠. 그런데 국정교과서는 (편찬 기간) 1년 중에서도 6개월 남짓한 시간 안에 집필을 끝낸 거죠. 학문적 쟁점 사안에 대해선 전혀 토론이 이뤄지지 못했어요.”

야당과 학계는 이준식 장관의 발언을 토대로 1~7월 집필이 이뤄졌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지난 4월 원고본(집필진이 쓴 초안)이 완성됐다”는 보도가 일부에서 나왔다. 교육부는 ‘중등 역사 교과서 확정고시(2015년 11월)→집필진·편찬심의회 구성(11월)→편찬 기준 마련·집필 시작(2016년 1월)→교육 관련 단체에 교과서를 제공하는 ‘현장검토본’ 공개(11월 예정)→인쇄·공급(2017년 1~2월)→학교에서 적용(3월)’ 단계를 숨가쁘게 밟고 있다. 1년3개월 안에 국정화 작업에 ‘대못’을 박겠다는 뜻이다.

집필진과 편찬 기준, 교과서 내용이 처음 공개되는 11월이 중요하겠네요.

“그때는 (교육부가)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으니까요. 분명하게 드러나는 쟁점이 있을 겁니다. ‘건국절’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용어가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이미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하도록 바뀌었기 때문에 (국정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될 게 분명합니다.”

‘1948년 건국절’은 뉴라이트 계열을 주축으로 한 보수세력의 핵심 주장이다. 검인정교과서에는 헌법에 따라 1919년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48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기술해왔는데 보수세력은 집요하게 ‘1948년 건국론’을 제기해왔다. 항일 독립 투쟁으로 이룬 독립국가를 폄하하고 친일 세력이 주도한 남한의 반공국가·자본주의국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돼왔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에서 ‘건국절’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설명하지만 역사학계는 ‘대한민국 수립’이 ‘건국’의 의미라고 주장한다.

“국정 역사 교과서 금지법, 당론 1순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등이 7월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헌재의 헌법소원 결정 전까지 국정 역사 교과서의 편찬·발간·배포를 막아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금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교육계는 토론 수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1948년이 건국일이 맞는지를 토론 수업으로 진행하기 위해 자료집, 책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도 바로 검토에 들어갈 겁니다. 쟁점 등 내용적 오류 외에 문장, 사실관계, 맞춤법 오류도 많이 나올 거예요. 11월부터 내년까지는 뜨거운 해가 될 겁니다.”

오류와 왜곡된 사실을 곧바로 바로잡을 수 있나요.

“아니요. 바깥에서 수정을 요구하더라도 정부가 듣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제1야당인 더민주가 너무 조용합니다.

“우리 당은 8월 중 당론으로 추진할 법안을 고르고 있어요. 국정 역사 교과서 금지법이 1순위가 될 겁니다.”(8월11일 더민주는 의원총회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 금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8월 중 당론으로 추진할 법안을 고르고 있어요. 국정 역사 교과서 금지법이 1순위가 될 겁니다.”

여소야대 상황이니 야 3당이 그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장 교문위에서 어려울 겁니다. 교문위는 전체적으로 야당이 다수지만 (법안 심사 첫 단계인)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여야가 5 대 5로 구성돼 있어요. 합의가 안 되면 힘들어요. 만약 교문위에서 의결이 안 되면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주축으로 법적 대응도 하고 있는데요.

“헌법소원을 냈죠. 헌법 정신에 정면에 배치되니까요. 또 헌재 선고 전까지 ‘교과서의 편찬·발간·배포를 막아달라’는 가처분신청도 냈습니다.

원래 2015 개정 교육과정은 (3년 뒤인) 2018년부터 적용돼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중등 역사와 고등 한국사 교과서는 강제로 1년 앞당겨 내년 3월에 적용하도록 했어요. 박정희의 탄생 100주년에 국정교과서가 쓰이도록 (일정을) 당긴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헌재와 법원이 제대로 판결할까 생각하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면 국정교과서를 되돌릴 방법은 없네요.

“당장은요. 내년 대선 국면에서 야당은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는 안 된다’고 호소할 겁니다. 이를 국민이 선택해주시면 국정교과서는 ‘1년짜리 교과서’가 됩니다. 교과서 문제는 교육부 차관의 전결 사항이기 때문에 (정권 교체 뒤) 수정고시를 하면 완전히 문제가 해결됩니다.”

다만 그는 내년 3월 국정교과서로 역사·한국사를 배울 학생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건국절, 위안부, 5·18 민주화운동, 유신독재 등의 쟁점이 부각되면 고민과 혼란에 빠진 교사들이 한국사 교과 채택을 고등학교 1학년이 아니라 2학년, 3학년에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은 1년간 필수적으로 한국사를 배워야 하지만 그 시기를 결정하는 건 학교의 자율이다.

교육 현장에서 느낀 국정교과서 문제

왜 역사 교과서 싸움의 전면에 나서게 된 건가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전 교사협의회 시절인 1980년대 초부터 우리는 국어, 역사, 세계사 교과서를 분석해왔습니다. 국정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겐 노하우가 있어요.”

우연이 아니었네요.

“처음 국회에 와서 고민이 많았어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이 갑갑한 곳에 와서 무얼 해야 할까. (웃음) 그런데 (2013년) 교학사 사태가 터지고 국정화로 가는 걸 보면서 ‘이래서 내가 불려왔구나’ 했죠.”

다른 교육 현안도 많습니다. ‘국민은 개, 돼지’라는 일부 교육부 고위 관료들의 인식이 교육정책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이주호 전 장관과 함께 교육정책을 수년간 끌고 오면서, 잘못된 신분제가 공고화되는 걸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이게 현실’이라고 발언하는 게 문제예요. 이명박 정부에서 국제고, 국제중, 자율형사립고, 사립초, 사립유치원까지 연계됐어요. 이제 서울 강남·송파·서초 3개 지역 출신이 서울대 입학정원의 30%가 넘습니다.”

오랫동안 학교에 있었잖아요. 그런 교육부 관료들 보면 어떠세요.

“국회에 들어오니 참으로 화나는 일이 많았어요. 세상을 다스리는 것보다 어려운 게 노여움을 다스리는 일이잖아요. 힘들고 어렵습니다. 어떻게 이들을 용서해야 하나. (웃음)”

국어교사이던 그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교육운동단체를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비인간적인 입시 교육으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잔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때문에 해직됐고 감옥에 갇혔다. 그는 해직 10년 만인 1998년 복직됐고 2007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다.

독자와의  대화

전교조  합법화,  세월호  해결  방안은?

박건민 독자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정권 교체를 해야 풀릴 거라고 봅니다. 저도 10년간의 해직 기간 동안 전교조 합법화를 위해 싸운 적이 있어요. 전교조는 다시 법적 정당성을 되찾을 겁니다. 국회도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윤용희 독자  세월호 문제는 몇몇 의원의 단식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야권에 투쟁 계획은 있나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조위 연장이 안 되면 추경예산안 심사를 안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특조위가 재가동되고 3~5년에 걸쳐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질 때까지 야 3당이 공조를 위해 노력할 겁니다. 단식해서 풀 수 있는 문제라면 저라도 한 달 단식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태엽 독자  정권 교체가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할 건가요.

지난 대선에선 충청권에서 표를 많이 못 얻어 우리가 졌다고 생각합니다. 당 충북도당위원장으로서 도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도 대안을 만들어내겠습니다.

누리과정 국비 편성, 사립대 공영화 고민

야당은 “누리과정(3~5살 무상보육) 예산 문제가 해결돼야 정상적인 추경예산안 심사를 하겠다”고 하고 있어요(8월11일 기준). 이번엔 해결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리과정 예산을 국비로 편성하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교육부는 여전히 기획재정부 핑계를 대고, 기재부는 대통령이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그런데 지난해와 다른 점도 있어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우리 당 김현미 의원이, 야당 간사로 교문위 간사를 지낸 김태년 의원이 버티고 있어요.”

정부·여당은 이른바 ‘한선교 안’을 밀고 있어요.

“한선교 안은 지방교육재정에 누리과정, 초등돌봄교실 등을 명문화하자는 내용입니다. 지금이랑 다를 게 없어요. 교육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연말까지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겁니다. (웃음)”

“대학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대학 평가 문제도 국회에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경우에 따라선 사립대 공영화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사태’는 어떻게 보나요.

“이것도 졸속 행정입니다. 교육부 대학정책실도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어보면, 청와대 지시라고 답합니다. (사업 선정) 평가를 할 때 반드시 구성원의 의견을 들었는지 묻는 항목이 있는데, 교육부가 제대로 안 본 거예요. (이화여대도) 당장 30억원의 예산을 따는 맛으로 이렇게 단과대학 만들면 안 됩니다. 학생, 학부모, 졸업생이 반발하는 게 당연합니다.”

대학구조개혁을 안 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어요.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10년 내로 (대학 입학정원보다) 16만 명이 부족해진다는 건 현실입니다. 지방에 대학 기능을 못하는 대학도 있고요. 지금 교육부 방식은 평가를 통해 정원을 줄이는 거예요.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대학은 별짓을 다하죠. 그래서 대학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대학 평가 문제도 국회에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경우에 따라선 사립대 공영화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제안을 받았던 걸로 아는데 2012년에야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요.

“당시 비례대표 제안을 받았어요. (여야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에) 체육계, 여성계, 다문화, 탈북자 대표는 다 있는데 문화예술계는 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내가 왜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받아들였죠.”

비례대표 당선됐을 때 근조 화환을 받았다고요.

“문단에서 ‘너는 끝났다’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냐’ 그런 거였죠. 사람들이 그랬어요. ‘(정치권이) 진흙탕이고 아비규환인데 무슨 시를 쓰냐’고요. 그런데 우리가 시골 연못에 있는 수련에게 ‘너는 왜 진흙탕 속에 있냐’고 묻지 않잖아요. 그냥 이 시기에는 그 진흙탕을 내가 감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음엔 다른 사람이 해줘야 하는 거죠.”

도 의원의 책상 오른쪽엔 ‘근조’라고 쓰인 까만 리본이 달린 작은 난 화분이 있었다. 여러 화분 중에서도 근조 난에는 특별히 영양제도 꽂혀 있었다. 5년째 난을 보며 ‘정말 나는 끝났는가’라고 물어왔다고 했다. 그는 19대 국회에서 문화예술계를 대표해 문화 인프라의 지역 균형을 맞추게 하는 ‘지역문화진흥법’, 국가가 문학을 기초예술로 지원하게 하는 ‘문학진흥법’을 대표발의해 통과시켰다.

시도, 정치도 참여하는 일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시를 썼나요.

“지난 4년간 쓴 시 250편을 모아서 9월, 10월엔 시집을 낼 예정이에요. 현실적 문제들이 이번 시에 더 많이 반영됐죠. 산속에서 썼던 글과는 달라요.”

의정활동이 엄청 바쁘잖아요. 짬짬이 쓴 건가요.

“슬픈 일이 많았습니다. 세월호를 겪고 어떻게 시를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거기에 대선 패배와 그 뒤에 벌어진 일들까지. 나도 위로해야 하지만 좌절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시를 써야 하잖아요. 그런 위로와 치유가 시인이 하는 역할이니까요.”

시를 쓰는 마음과 정치를 하는 마음은 다른가요.

“다르죠. 여기(정치)는 법을 만들어야 하니까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해요. 그런데 문학은 정서적 사고가 요구돼죠. 하지만 ‘참여해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시와 정치에서 같은 점이에요.”

다시 주어진 4년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되돌리는 일, 대학구조개혁과 관련해 좋은 방안을 마련하는 일을 할 거예요. 문화 부문에선 제가 발의한 문학진흥법에 따라 제대로 된 5개년 계획이 세워지도록 할 겁니다.”

인터뷰가 끝나기 전 “뜨거운 여름에 지쳐 있을 독자들을 위해, 마음이 시원해지는 시 한 편을 낭송해달라”고 갑자기 부탁했다. 망설임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일들을 보면 거대한 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벽에서 시작하는 담쟁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국민과 함께 연대해 이 벽을 넘자는 마음으로 낭송하겠습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담쟁이’)

도종환은  누구?

화가가  되고  싶었던  시인이자  정치인

2003년 쉰을 바라보던 그는 무너졌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자율신경실조증. 신경의 균형이 깨지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병이었다.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 산속 황톳집에서 홀로 괴로웠다.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병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몇 년씩 사유하고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가난, 외로움, 좌절, 절망, 시련, 질병이 다 고마운 것이었구나.”

삶이 축복이라 느끼기에, 도종환 의원의 평화로운 시절은 너무 짧았다. 그는 1954년 충북 청주시 변두리인 운천동 산직말의 오막살이에서 1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도 가족이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군납하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가 11살 때였다. 부모님 곁에 있으려 강원도 원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외가에서 외롭게 지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가난함과 외로움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림을 그리며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도시 빈민으로 떠돌던 부모님을 생각해 미대를 포기하고 등록금이 들지 않는 국립 충북대 국어교육학과에 입학했다. 화가가 되지 못해 방황하던 그는 선배들 손에 이끌려 문학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렇게 그는 “길을 잘못 들어서” 시인이 됐다.

26살에 늦깎이로 군에 입대한 그는 전남 여천(여수시로 통합)에서 1980년 5월을 맞았다. 광주 시민을 사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5월의 밤을 지새웠다. ‘광주 이후’ 그는 달라졌다. 가난과 시련에 대한 비관으로 술과 허무주의에 빠져 지내던 그는, 제대 뒤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문학청년, 교사들과 모임을 만들고 동인지 <분단시대>(1984)를 냈다.

동인지 창간호에 실린 ‘고두미 마을에서’ 등 5편의 시가 작품 활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서정과 현실, 둘 다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마음으로 쓴 시집 10권을 출간했다. 그중 3살, 갓난쟁이 남매를 두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 첫 아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담은 <접시꽃 당신>(1986)은 10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시인인 동시에 교사였다. 24살 옥천군 청산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몸이 아파 퇴직할 때까지 27년을 국어교사로 살았다.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이동희망내신서를 써보지 못한 채 떠돌고 쫓겨났”던 험한 세월이었다. 1989년 전교조 결성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뒤에는 10년간 전교조 합법화 운동, 친일파 동상 철거운동, 노동자·농민 권익운동 등을 하며 거리에서 버텼다. 1998년 복직되면서 “앞으로 좋은 일만 있겠구나” 하고 희망에 부풀었지만 2003년 병을 얻고 이듬해 교단을 떠나야 했다.

이후 충북 보은군 산속 ‘구구산방’(느리게 삶을 회복하자는 뜻)에서 5년간 시와 산문을 쓰며 다람쥐, 산토끼와 지냈다. 2008년부터는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등을 맡아 문학계에서 활동하며 시와 산문을 많이 썼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 “국회에 문화예술계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살면서 ‘너는 끝났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전교조 활동으로 감옥에 갔을 때도, 복직 뒤 쓰러졌을 때도 그랬다. 5년 전 정치를 시작할 때도 들었다. “그때마다 난 ‘끝난 게 아닐지도 몰라’ 하면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했어요. 저는 정치를 하면서도 다시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계속 시를 쓸 거예요.”

*참고 문헌: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도종환, 한겨레출판, 2011)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정리 최창근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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