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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혁 능력으로 승부하겠다”

‘배신의 정치’ 낙인 뒤 공천 배제, 탈당, 복당 등 폭풍의 시기 보내고 ‘보수 혁명’ 적극 주장 나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록 2016-10-11 12:08 수정 2020-05-02 19:28



연속기획_ 20대를  부탁해


① 부산·경남 지역주의-김영춘 (더민주)
② 세월호 진실 규명-박주민(더불어민주당)
③ DJ의 정치 의식 계승-최경환(국민의당)
④ 사드와 국가안보-김종대(정의당)
⑤ 국정 역사 교과서와 교육-도종환(더불어민주당)
⑥ 보수 혁명 - 유승민(새누리당)
*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없던 일들이 박근혜 정권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검찰총장의 보고를 받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상 처음으로 현직에 앉아 자신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우 수석의 비리를 폭로한 죄로, 대표적 보수신문 는 주필을 잃는 망신을 당했다. 청와대와 정면 대결을 벌일 때 의 계열사 TV조선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866억원 모금 과정에 안종범 청와대 수석이 연루돼 있다’며 또다시 정권 실세를 건드렸다가 슬그머니 후속 보도를 접었다. 그러나 의 취재를 통해 ‘박근혜 오장육부’라 불리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이 두 재단 설립을 비롯해 여기저기 권력을 휘두른 사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이런 정권의 치부를 덮으려 했는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빌미로 여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단식을 한 뒤 일주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러나 밥을 먹지 않는 일이 “많이 힘들다”는 이 대표도, 그런 그가 “많이 걱정된다”는 박 대통령도,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백남기 농민과 가족에겐 한마디 위로조차 건네지 않고 있다. 갈수록 부패하고 몰염치해지는 보수정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은 지난 5년간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의 개혁을 주장해온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에게서 현 보수정권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보수정권을 ‘혁명’시킬 구체적인 정책 구상과 함께, 직접 ‘혁명’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도 물었다. 인터뷰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독자들이 보내온 궁금증도 대신 전달했다. 뒤이은 기사에선 역대 대권 주자들이 어떻게 보수 개혁을 약속하고 어겨왔는지, 유 의원의 보수 개혁은 어떤 길을 갈지 살폈다.
취재 서보미 기자, 편집 김효실 기자, 디자인 장광석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유승민  의원  약력


대구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
한림대 한림과학원 연구교수
제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국회 국방위원장
새누리당 원내대표
제20대 국회의원 당선(4선)


그는 편안해 보였다. 얼굴엔 생기가 돌았고 말에선 자신감이 넘쳤다. 달관한 듯하면서도 초조해 보였던, 거침없는 듯하면서도 말을 아꼈던 얼마 전까지와는 달랐다.

유승민(58)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7월 초에야 제자리를 찾았다. 폭풍 같은 시간을 1년 넘게 견뎠다. 시작은 지난해 6월 “배신의 정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였다.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난 유 의원은 “진실한 사람만을 선택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4월 총선에선 공천마저 받지 못해 탈당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실패한 단기부양책”이라며 박근혜 정부를 비판한 죄였다.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지 석 달 만에 복당이 허용됐다.

‘은둔형’ 정치인의 변신

악착같이 20대 국회에서 살아남은 유 의원은 변해 있었다. 한때 ‘은둔형’으로 불렸던 그는 국회와 지역구인 대구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언론을 만나고 대중을 찾고 있었다. 지난 17년 동안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던 “나는 정치를 왜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이제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유 의원은 “나의 소명은 보수 혁명”이라며 “한국 보수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바뀐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그 바탕이 되는 철학과 사상은 ‘공화’와 ‘정의’로 설명했다.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재벌 개혁, 비정규직 축소, 법인세·소득세 누진성 강화,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진보적 어젠다들을 꺼내놓았다. 서민과 중산층이 붕괴되는 참담한 외환위기(1997년)를 겪으며 자유시장경제 신봉자에서 중도개혁론자로 ‘전향’한 그가 오래전부터 하나둘 고민해온 구상들이다.

유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은 개혁 의지를 가지고 (국정 운영을) 하진 않았다”며 “진짜 개혁을 해낼 수 있는 능력, 의지, 정신으로 승부를 걸고 싶다”고 밝혔다. 또 “만약 대선에 출마하면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도 강조했다.

유 의원과의 인터뷰가 잡혀 있던 10월4일은 새누리당의 ‘국정감사 보이콧’으로 멈춰 있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감이 열리는 날이었다. 오전 10시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시작되는 국감에 앞서 인터뷰는 오전 7시30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중간에 샌드위치로 함께 아침도 먹었다.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전화 통화로 하자”며 국감장으로 떠난 그는 이틀 뒤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김재수 관련 강경투쟁 “집권여당다운 전략 아냐”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일주일 만에 단식을 끝냈어요. 국감도 정상화됐고요.

만시지탄이지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을 많이 끈 듯하지만 어쨌든 뒤늦게라도 복귀했으니 잘된 거죠.

일사불란한 새누리당이 이번엔 전략도 없이 우왕좌왕했어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 초반에 제기된 의혹이 상당 부분 맞지 않거나 과장돼 있다는 게 드러났어요. 그런데 굳이 의장과 야당이 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건 분명히 잘못했어요. 그래서 대통령도 처음으로 거부를 했고요. 그러나 (정세균 국회의장에) 항의하고 잘못된 일을 국민에게 알리는 대신 우리 당이 단식투쟁, 피켓시위 등 여러 강경투쟁을 한 건 집권여당다운 전략은 아니었어요.

지난 10월2일 이정현 대표는 일주일 만에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소속 의원들도 국감 복귀를 결정했다.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정세균 의장의 사퇴는 물론 사과도 받아내지 못한 ‘빈손 회군’이었다. 일부에선 박근혜 대통령 측근인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비선 실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이 연루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으로 향하는 여론의 시선을 돌리는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어떻게 보나요.

“지금 당권을 잡은 주류는 청와대나 정부와 잘 통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국회에서 소수라는 걸 잊어버리고 대통령, 정부, 당의 주류가 똘똘 뭉치면 뭐든지 원하는 대로 돌파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번에 봐도 그게 안 되고 있잖아요.”

그것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요. 대기업으로부터 모금 과정에서 권력 남용이 있었는지는 나도 국민과 똑같이 짐작만 하고 있어요. 결국 진실은 하나니까. 요즘엔 잘못된 권력 남용이 있으면 아무리 덮으려 해도 언젠가 드러나더라고요. 지금 여론이 악화되는 건 분명해요. 그러나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을 하려면) 공권력의 특별한 행사에 국회가 동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의혹의) 근거가 부족해요.

우병우 민정수석은 왜 안 물러날까요.

나도 본인이 물러나든지 대통령께서 빨리 정리하든지 하라고 여러 차례 말을 했어요. 그런데 뭐 그리 안 하니.

박 대통령은 ‘비상시국’ 운운하며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어요. 여소야대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닐까요.

총선 이후 벌써 6개월 가까이 지났는데 우리 당이 소수당이 됐다는 걸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다고 할까,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상당히 느껴져요.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공통적으로 그래요. (19대 국회에선) “다수결로 하자”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선거 결과로 소수당이 됐으면 야당을 더욱 설득하고 협치를 해야죠.

강경 친박 지도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여요.

지금 당권을 잡은 주류는 청와대나 정부와 잘 통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국회에서 소수라는 걸 잊어버리고 대통령, 정부, 당의 주류가 똘똘 뭉치면 뭐든지 원하는 대로 돌파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번에 봐도 그게 안 되고 있잖아요.

백남기 농민의 부검과 사망진단서 논란을 두고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어요.

음….

거침없이 이야기하던 그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 부분은 내 워딩 그대로만 써줘요.” 신신당부를 한 그는 천천히, 신중하게 한 단어씩 말을 이어갔다. 애초 인터뷰가 예정됐던 9월26일 당일 “백남기 농민 사건을 취재해야 한다”는 말에, 선뜻 “괜찮다”며 인터뷰를 일주일 연기해준 그였다.

불법·폭력 시위는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합니다. 그렇지만 공권력의 과잉 대응도 허용돼선 안 됩니다. 지난해에 일어난 사건은 공권력의 과잉 진압으로 한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선 국가가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런 사건이야말로 진영 논리를 떠나서 우리 헌법 제10조가 이야기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가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게 맞아요. 거꾸로 만약 불법폭력 시위대에 의해 우리 전경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일이 있으면 그것 또한 엄하게 다스려야 하고요. 지금 우리 사회가 고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완전히 갈라져서 각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는 상황인데 굉장히 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난 5년간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된 보수 개혁에 대해서도 충분히 물었다. 무상급식 논란이 한창이던 2011년 전당대회에 출마한 유 의원은 “당대표가 돼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며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슬로건을 처음 꺼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와 박근혜 대표의 ‘참모 유승민’에서 개혁적 보수주의자 ‘정치인 유승민’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홍준표 대표에 이은 2등으로 최고위원직을 얻었지만, 그마저도 5개월 뒤 서울시장 보궐선거 ‘디도스 공격 사건’의 여파로 내던지면서 보수 개혁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15년 4월 원내대표가 된 그는 “새로운 보수의 지평을 열겠다”고 또다시 선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찍혀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며 두 번째 보수 개혁의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요즘엔 ‘보수 혁명’이란 말까지 쓰던데요.

“공권력의 과잉 진압으로 한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선 국가가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게 필요합니다. 진영 논리를 떠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관한 문제니까요.”

‘보수가 무슨 혁명을 하냐’고 하는데 물리적 혁명이 아니라 보수의 정책, 이념, 노선, 의식, 자세를 혁명적으로 바꾸자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년 대선에서 승패를 장담할 수 없고 대한민국에서 보수가 완전히 소멸, 도태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이념도, 노선도, 정책도 아닌 한 사람의 성을 가지고 친이니 친박이니, 친박이니 비박이니 따진 게 벌써 10년이에요. 정말 후진적이죠.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좋을 수 없어요.

보수가 혁명하면 진보와 다를 게 없지 않나요.

헌법에는 성장, 자유, 평등, 복지, 기본권 모든 게 나와 있는데 보수와 진보는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봐요. 낡은 보수, 낡은 진보가 바뀌어서 중간지대가 넓어지는 것이 바람직해요. 그래도 보수와 진보는 사드, 국가안보, 한-미 동맹, 성장 문제에 대해 (생각이) 너무나 다르죠. 또 보수와 진보가 같아지면 어때요. (웃음)

과거 선거 때마다 보수는 개혁을 외쳤지만 딱히 성공 사례가 떠오르지 않아요.

1987년 개헌 이후 보수는 6개 정권 중 4개 정권을 배출했어요. 노태우 정부에서 재벌 개혁을 조금 했고, 김영삼 정부에서 금융실명제, 하나회 해체를 했죠. 이명박 정부 때는 생각나는 개혁이 뭐가 있어요? 박근혜 정부에선 공무원연금 개혁과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있고요. 그건 내가 진짜 중요한 개혁이라고 생각해서 원내대표 시절에 밀어붙여 해냈고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보수가 무슨 개혁을 했냐고 하면 생각나는 게 그리 많지 않아요.

주변 참모들이 대통령 판단 왜곡
보수정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단식농성 중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9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잠들어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보수정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단식농성 중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9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잠들어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이야기했어요. 다만 의지가 없던 걸까요.

그때는 내가 가까이서 도와드리지 않아 정확히는 몰라요. 그런데 그분의 성격상 그런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몰라도, 분명히 의지는 있으셨을 겁니다.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주변의 장관이나 참모들이 “이 문제는 이 정도면 됐다”는 식으로 덮어버린 것이, 대통령이 판단을 잘못하도록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방향으로 ‘공화’와 ‘정의’를 말하고 있죠.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 불평등, 부정부패, 불공정, 저성장, 저출산 등의 문제를 관통하면서 나라를 개혁하는 데 제일 중요한 개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나보고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해요. “어렵다” “무겁다” “표 안 된다” 하면서. (웃음)

공화·정의의 기본은 법치잖아요. 거부감을 느끼는 시민들도 있을 텐데요.

젊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인격적으로 짓밟히는 게 다 인간에 의한 지배 때문이에요.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공화에서 제일 중요한 게 ‘비지배의 자유’예요. 이거, 또 어려운 이야기네요. (웃음) 노예가 예속·굴종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끼리 모여서 공공선을 담보할 수 있는 좋은 법을 국회의원을 통해 잘 만드는 거예요. 얼마나 좋은 거예요? (웃음)

공화주의는 덕을 갖춘 시민들이 공공선에 헌신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 이데올로기다. 다소 낯선 개념에 대해 유 의원은 “공화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누구에게 굴종하지 않는 자유”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는 그가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말과도 비슷하다. 법조인 출신 고 유수호 전 의원은 “의협심을 가지라” “절대 비굴하지 말라”고 그를 이끌었다. 경제정의의 핵심으로 ‘재벌 개혁’을 꼽았어요. 박 대통령이 이미 실패한 공약 아닌가요.

대통령은 재벌 개혁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내가 17대, 18대 국회 때 대통령을 도와드렸는데 이분이 재벌 개혁에 대해 얼마나 의지가 있고 뭘 얼마나 제대로 알고 계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정치권에 오기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13년간 있으면서 거의 매일 하던 일이 재벌정책(연구)이었어요.

물론 재벌 해체론자는 절대 아니에요. 그러나 지금 재벌들은 시장 장악력을 가지고 하고픈 대로 하면서 세계시장에서 1등 기업이 되는 노력은 안 해요. 대신 골목시장까지 와서 손자, 손자며느리까지 시장을 없애고 있어요. 이걸 제대로 개혁해서 시장을 좀 넓혀주고, 기울어진 운동장 밑에서 힘겹게 경쟁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좀 북돋아주자는 거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제민주화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나요.

‘징벌적 손해배상’은 동의합니다. 따로 (발의를) 준비하고 있고요. ‘다중대표소송’은 자회사의 잘못에 대해 모회사 주주가 간섭하는 건데, 조금 우려되는 측면이 있지만 긍정적으로 봅니다. 제일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은 ‘노동이사제’예요. 청년실업, 비정규직 등 자기 이익과 상충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는 대기업 노조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건 한국 현실에 맞지 않아요.

야 3당이 법인세 인상을 전면에 들고나올 텐데요.

평소 법인세를 인상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이명박 정부에서 내리기 이전 수준까지 돌아가도 기업투자를 위축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크지 않을 걸로 봐요. 소득세도 구간을 새로 만들든지, 최고 세율을 올리든지 해서 누진 구조를 더 강화해야죠.

중부담-중복지 주장
지난해 2월 시민단체들이 서울 종로에서 법인세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지난해 2월 시민단체들이 서울 종로에서 법인세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모든 국민에게 일정 소득을 무조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어떻게 보나요.

기본소득은 일단 장기적으로 도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는 건 좋은데, 기존 복지제도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기본소득을 추가로 도입한다는 건 당장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기존 복지제도도 인구 고령화 때문에 앞으로 복지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나는 중부담-중복지를 주장해요.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 등 일부는 보편적 복지로 하더라도 (재원 때문에) 무상주택, 무상의료까지는 하지 못해요.

(유홍준·최미라 독자의 SNS 질문을 대신 물어봄)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는 새누리당과 달리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폐지를 이야기하네요.

일반고 교장, 교사들을 만나서 이야기했는데 진짜 폐지를 해야겠더라고요. 중학교에서 우수한 10~15%의 학생을 다 뽑아가버리니까 일반고 교육이 너무 황폐화됐어요. 기회의 사다리가 없어지는 구조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이미 고착화되는 거잖아요.

11월에 국정교과서 내용과 집필진이 공개되면 또다시 논란이 일 텐데요.

일단 봐야죠. 국정교과서 하나로만 (공부)하라는 정책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어요.

박 대통령이 국군의 날 행사(10월1일)에서 처음 탈북을 권유했어요. 북한 급변 사태도 언급했고요.

음, 급변 사태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통일부·국방부·외교부 등 외교·안보 관련 부처에서 철저한 대응책을 갖고 있어야 해요. 우리 정부가 그런 대비를 하고 있는지, 그런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실행할 능력이 있는지 좀 의문스러워요.

(대통령이)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는 건 결국 ‘레짐 체인지’(Regim Change·정권 교체)거든요. 그런 부분을 자꾸 (이야기)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김종식 독자의 SNS 질문을 대신 물어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에 찬성해왔는데, 국익보다는 맹목적인 한-미 동맹에 줄서기 아닌가요.

사드는 정말로 그렇게 반대하는 분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겁니다. 김종식 독자님께 꼭 전해주세요. (웃음)

사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유 의원은 2014년 북한이 쏜 스커드미사일과 노동미사일의 궤적이 그려진 패널을 보여주면서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한-미 동맹을 국가안보의 근간으로 생각하는 정통 보수의 안보관을 지닌 유 의원은 국회에서 대표적인 사드 찬성론자다.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아쉬운 점은 없나요.

(국회 국방위원장 시절인) 2013년부터 사드를 주한미군의 무기로 도입하지 말고 우리 예산으로 2~3개 포대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어요. 정부는 이후 3년간 “요청도 없고 협의도 없고 결정도 없었다”는 ‘3노(No)’ 입장으로 일관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주한미군 무기로 도입 결정을 해버려서 사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어요. 엑스밴드 레이더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한 이야기도 (국민에게) 못 드렸고요. 그래도 정부가 경북 성주 롯데골프장이라는 제3의 후보지로 바꾼 건 잘했어요. 기존 성산포대를 계속 고집했다면, 아마 정부와 주민 사이에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으로 임기가 끝나고 결국 사드 배치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인가요.

재임 기간 중의 지지와 비판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봐요.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재임 기간과 그 이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요.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 뭘 해야 할까요.

1년 몇 개월 남았는데 이제는 국민의 마음을 잘 읽어가면서 다음 정권이 이어받지 않을 수 없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평가가 호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터뷰 마지막, 그에게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온 유 의원이 미래 권력에 도전할 의지와 계획이 있는지였다. (윤용희 독자의 SNS 질문을 대신 물어봄) 대선에 나갈 건가요.

대선 출마 여부는 굉장히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뭘 고민하나요.

대권이라는 게 권력의지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거든요. 권력의지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꾸 대통령이 돼가지고…. 일단 올해는 충분히 알리고 결심은 올해 말, 내년 초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출마하면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어요. 지지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백윤호 독자의 SNS 질문을 대신 물어봄) 새누리당에 머물 건가요, 제3지대로 나갈 건가요.

새누리당에 있을 겁니다. 내 발로 선택해서 이 당에 40대 초반에 들어와 젊음을 다 바쳤어요. 당이 잘돼야 한다는 애정이 굉장히 강해요. 이 당은 어느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강한 보수를 대변하는 유일한 정당이라고 믿어요. 여기서 승부를 볼 겁니다.

“개혁할 수 있는 능력으로 승부 내고파” 시대정신을 놓고 겨뤄보고 싶은 야권 대선 후보가 있나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그쪽에서도 낡은 진보 버리고 새로운 진보로 가겠다는 분들이 나오시면 좋죠. 특정한 분을 거론하긴 그렇지만 안철수 의원(국민의당)은 새로운 진보를 하려는 차원에서는 평가할 만한 분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더불어민주당)도 요즘에 성장, 안보를 말씀하시는 걸 봤고요.

(이종열 독자의 SNS 질문을 대신 물어봄) 유승민이 꿈꾸는 나라는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어떻게 다른가요.

한마디로 누가 “너를 왜 찍어줘야 하는데”라고 물으면 나는 개혁이라고 생각해요. 뭐랄까, 진정성 있는 개혁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라면 (대권에) 도전할 생각이 없을지도 몰라요. 진짜 개혁이 필요하고 그 개혁을 해낼 수 있는 능력, 의지, 정신 이런 걸로 승부를 내고 싶어요. 국민한테도 신뢰를 주고 싶고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개혁 의지를 가지고 (국정 운영을) 하시진 않았죠.

유승민은  누구?


이회창이  발굴한  ‘경제통’


“나의 하늘인 아버지와 포근하게 나를 감싸주는 태양 어머니, 오랜 고목의 그늘이 돼주는 나의 형님.”
꼭 10년 전인 2007년 단란한 가족사진과 함께 SNS에 올린 글처럼, 유승민 의원은 1958년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따뜻한 가족 울타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유수호 판사는 늘 “의협심을 가져라” “절대 비굴하지 말라”고 자식들을 가르쳤다. 농민의 아들이던 아버지 역시 1971년 박정희 공화당 후보의 울산 지역 개표 결과를 조작한 울산시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강단 있는’ 판사였다. 3년 뒤 정권에 밉보여 재임용에서 탈락한 아버지는 대구에서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는 학창 시절 친구들로부터 모범생인 동시에 의협심 많고 소탈한 친구로 통했다. 3살 터울인 형 유승정(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을 따라 ‘경북고-서울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1981년 군대를 제대한 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미국 박사 출신 연구원들에게 자극받은 그는 1987년 미 위스콘신대학에서 산업조직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곧바로 KDI에 복귀한 뒤엔 재벌정책, 공기업 민영화, 규제 개혁, 산업정책 연구에 빠져 지냈고 그 결과 최상위 평가를 받았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 속에 탄생한 김대중 정부는 기업 간 경쟁 유도 정책 대신 기업 간 빅딜정책(사업교환)을 선택했다.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자인 그는 빅딜정책을 “백지화하라”며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본봉이 깎이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동시에 외환위기의 충격은 시장경제 만능주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늘 저를 괴롭히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쪽방촌에 사시면서 폐지 수집하는 할머니들, 밤늦게 지하철에 탄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들. 그래서 저 스스로도 전향했다는 말을 솔직하게 할 정도로 전향했습니다. 늘 경제성장만 생각하다 복지를 생각하게 됐고, 늘 자유시장경제만 생각하다가 국가·사회 역할도 생각하게 됐습니다.”(2015년 10월16일 대구 계산성당 강연)
때마침 1998년 가을, 두 번째 대선을 준비하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인연이 닿았다. 2000년 초,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에 발탁된 그는 이회창 캠프의 두터운 신뢰 속에 대선캠프의 정책, 메시지 등을 총괄했다. 대선에서 진 뒤 대학에서 강연하다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미 차기 대통령으로 박근혜 의원을 마음에 두고 있던 유 의원은 2005년 초 박 대표의 ‘비서실장직’ 제의를 받고선 거절했다. 세 번 만에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비서실장을 해도 할 말은 다 해도 되겠느냐”는 조건을 달았다. 그 순간부터 2007년 이명박과의 치열한 경선까지 “치아가 여러 개 빠질 정도”로 사력을 다해 박 대표를 도왔다.
대선 경선 패배 뒤 박 전 대표는 꼿꼿한 성품과 직설적 화법의 유 의원을 서서히 멀리했다. 유 의원 역시 2011년 전당대회에서 ‘용감한 개혁’의 깃발을 내걸며 ‘유승민의 정치’를 시작했다. 그 뒤 박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찍혀 원내대표직 사퇴, 사실상 공천 배제, 탈당, 무소속 당선, 복당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정리 류우영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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