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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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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삼성 미전실 “무노조 위해 박근혜를 설득하라”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의 인사·노사 관련 문건,
‘복수노조’ 입법안·사내하도급 공시 방해 등 그들만의 이득 위한 전방위적 로비 정황 드러나
등록 2020-06-27 05:21 수정 2020-06-30 09:04
2008년 8월1일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이 작성한 ‘복수노조 단계별 대응전략’ 문건. 이 전략은 단계별로 모두 이행됐다(왼쪽). 2011년 6월2일 삼성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복수노조 전략 TF 회의내용 요약’ 문건. 삼성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통해 복수노조 시행 유예를 이끌어내려 했다.

2008년 8월1일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이 작성한 ‘복수노조 단계별 대응전략’ 문건. 이 전략은 단계별로 모두 이행됐다(왼쪽). 2011년 6월2일 삼성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복수노조 전략 TF 회의내용 요약’ 문건. 삼성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통해 복수노조 시행 유예를 이끌어내려 했다.

<한겨레21>은 삼성 노조 와해 재판기록 3만3천여 쪽을 추가로 입수했다. 여기엔 삼성 미래전략실 문건과 삼성 관계자들의 진술이 담겨 있다. 문건이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힘 있는 삼성, 그 위의 미전실은 삼성을 위해 입법을 추진하고 불법을 저질렀다. 다시 구속 위기에 몰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월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노동삼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며 ‘사과’와 ‘반성’을 말했다. 잘못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밝혀야, 사과의 진정성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21>이 10년 전 삼성의 행적을 다시 기록하는 까닭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법 위의 삼성 미전실 - 국가 경영의 꿈’이다._편집자 주

“삼성 미래전략실에 관해 많은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창업자이신 (이병철) 선대 회장이 만드신 거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께서 유지해오신 거라 조심스럽지만 의원님과 국민의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면 (미래전략실 폐지) 약속을 지키겠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해체에 관한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이렇게 답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삼성은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가 이 부회장과 최지성 당시 미전실장(부회장), 장충기 미전실 차장(사장)을 기소한 이듬해 2월28일 미전실 해체를 공식 발표한다.

삼성의 컨트롤타워는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전실로 이름을 바꿔갔지만 총수 일가를 포함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킨다는 존재 이유는 유지됐다. <한겨레21>이 확보한 미전실 문건과 이와 관련한 삼성 관계자의 진술을 종합하면, 미전실은 “공식적인 회사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결재를 할 이유가 없었던”(최지성 미전실장 피의자 신문조서) 조직이었지만, 삼성그룹의 대부분 의사결정은 미전실을 통해 이뤄졌다. 미전실은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나라’를 위해 다양한 계획을 세웠고 정·관계 인사를 통해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 과정에서 삼성이 정부·정치권·학계 등을 아울러 주요 인사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자사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단독] 삼성 미전실 인사팀 선물리스트 보니 참조) 또한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론 법을 어기고 때론 법을 만들며 국가를 경영하려 했던 삼성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① 무노조 지키려 복수노조 시행 유예 ‘성공’

이병철 창업주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는 유지를 남겼다. 이를 지키기 위해 삼성은 노동자를 회유하거나 협박해 노조 설립을 막아왔다. 수시로 ‘페이퍼노조’(유령노조)를 만들어 진성노조 설립을 봉쇄했다. 그러나 1997년 복수노조 허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동조합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두 차례 유예 끝에 2010년 시행을 앞뒀다. 복수노조가 법률로 허용되면 ‘무노조 경영’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자 미전실이 분주해진다.

2007년 삼성은 “복수노조 (시행) 3년 유예”를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다. 이에 “3개년 마스터플랜(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전략기획실·사장단·각사 주요 임원들이 유기적으로 협조해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국내 노동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지만 “시장친화적인 법제도 개선을 위해 (삼성이) 연구용역, 산학 협력 활동을 전개”해 영향을 미치려 했다. 또 “복수노조가 시행되더라도 노조 전임자 임금이나 교섭 창구 단일화 등에서 경영계에 유리하게 시행되도록” “경총·타그룹과 연계해” 대응하기로 했다.(2007년 그룹 노사전략)

그러나 한 해 뒤인 2008년 8월에는 애초 복수노조 시행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노사전략을 짜왔던 것을 뒤엎기로 한다. “2010년 도입 예정인 복수노조 시행의 유예 또는 폐지를 위한 특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한 것이다.(복수노조 단계별 대응전략, 2008년 8월1일) 당시는 경영권 불법 승계와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이 특검 수사로 드러나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이 해체(2008년 4월)된 직후였던 탓에 삼성전자 경영전략팀이 계획을 짰다.

복수노조 시행 유예 또는 폐지는 입법자인 국회의 몫이다. 하지만 삼성은 ‘유관기관’에 로비해 이를 관철하려 전략을 세웠고 “그룹 내 대외 네트워크가 있고, 섭외 능력이 있는 인사담당 임원”이 투입됐다. 전략은 3단계로 구성됐다. 1단계(2008년 8~12월)에는 “복수노조 논의를 내년으로 순연”하는 것을 목표로 “경총을 통해 노동부 및 국회 내 분위기(를) 조성”하기로 한다. 2단계(2009년 1~8월)는 더 과감했다. “복수노조 폐해에 대한 공감대 확산”을 위해 “유관기관별 대책”을 전방위적으로 계획했다. 구체적으로 이렇다.

“-노동부: 핵심 의사결정권자 공감 유도

-경총: 복수노조에 강경 대응토록 사전 공감대 형성

-노사정위: 경총을 통해 분위기 환기

-국정원(국가정보원) 노동팀: 복수노조 폐해 논리 제공. BH(청와대)에 전달

-노동 관련 학회: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연구비 지원

-국회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 경총, BH 노동비서관실은 개인별 전담 마크맨을 지정, 공감대 형성”

삼성은 국회 환노위와 고용부는 물론 정보기관인 국정원과 청와대에까지 로비하기로 했다. 입법 과정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전문가그룹인 노동 관련 학회에 연구비를 지원해 삼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방법도 모색했다.

1·2단계를 거쳐 3단계(2009년 9~12월)에는 “복수노조 유예 및 폐지 확정”을 하는 게 목표였다. 이 단계별 전략은 실현됐다. 2009년 12월4일, 한국노총·경총·노동부는 복수노조 시행을 2011년 7월로 유예하기로 합의하고 이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2010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6년 12월6일 열린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에서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6년 12월6일 열린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에서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② 박근혜 활용해 재유예 시도

복수노조 시행 유예에 성공한 삼성은 2011년에는 “경총을 통해 노조 설립 및 교섭 요건 강화를 골자로 하는 노조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다. “노사관계 전문가의 언론기사 게재를 통해 노조 설립 요건 강화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노동부·청와대·국회의 핵심 공무원 및 국회의원 대상 집중 설득”도 계획한다.(2011년 그룹 노사전략)

동시에 다시 한번 복수노조 시행 유예를 추진한다. 삼성의 로비 대상은 노조법 재개정을 주장했던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청와대 정무 라인, 당시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삼성은 당시 정치 상황을 이용해, 자사에 유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청와대와 여당을 접촉하며 의원입법까지 추진했다.

“복수노조 시행은 국정 혼란과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으며, 현 정부의 탁월한 치적이 이로 인해 흠집 날 가능성이 높고, 특히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논리를 (청와대) 정무 라인에 제공” “복수노조 시행보다는 국가경제 활성화를 중시하는 박근혜 의원이 복수노조 유예 또는 법 개정시 적극 지지할 수 있도록 주변 친박 인사 등에게 논리 제공” “복수노조 유예 또는 설립 요건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을 주도할 국회의원을 경총과 협조하여 선정 후 적극 지원(2009년 말 1년 반 연기 때 한나라당 강○○ 의원이 적극 활동함)”(2011년 상반기 복수노조 관련 추진전략)

2011년 6월 복수노조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삼성은 더욱 절박해져 따로 접촉했던 박근혜 당시 의원과 한국노총을 한데 묶는 방안을 모색했다.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 정책 연대를 파기하는 등 대립각을 세우던 때였다. 박근혜 의원에게 노동 분야 자문을 했던 이○○ 교수가 “박 전 대표는 노사 합의만 된다면 법 개정이나 복수노조 유예에 특별히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견해”를 제시했음을 확인하고, 삼성은 “박근혜 쪽에 노동법 개정 문제가 선거 승리의 핵심임을 설득. 현재대로 가면 총선·대선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므로 법 개정을 통해 한국노총과 연대를 복원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기로 한다. 총선이 이듬해 예정됐기에 “1년 유예하면 국회 개원 문제 등으로 또다시 1년 더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내놨다.(복수노조 전략TF 회의 내용 요약)

그러나 복수노조 시행이 추가로 미뤄지진 않았다.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졌고 실제 삼성에버랜드에서 노조가 설립되자 노조 와해 전략에 나섰다. 이 또한 삼성의 큰 그림에 포함돼 있었다.

삼성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2011년 상반기 복수노조 관련 추진전략’

삼성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2011년 상반기 복수노조 관련 추진전략’

③ 고용형태 공시 막으려 “법제처장 설득”

삼성은 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의 법령 개정 추진을 저지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도 했다.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대통합·약자보호 등 명분(을 내세워) 노동정책 급증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에 “정년 연장(55→60살)은 노동부·전문가 등을 활용해 최대한 지연”시키고, “산업재해 입증책임 전환은 국회 논의를 최대한 지연시켜 반기업 입법을 저지”하겠다고 계획했다. 삼성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 때부터 그룹 의견을 적극 반영하려 노력”했다.(2013년 노사안정화 대책)

실제 2014년 3월부터 300명 이상 대기업에 대해 사내하도급·파견·용역, 직접고용 비정규직 사용 현황을 공개하도록 한 ‘고용형태공시제’ 시행을 막기 위해 법제처장과 접촉했다. 고용형태공시제란 대기업이 직접·간접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 현황을 밝혀 자발적으로 정규직·직접고용을 유도할 목적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삼성은 고용형태공시제가 “노동계 및 시민단체들이 그룹의 하도급 근로자 활용 규모와 차별적 요소를 부각시키며 반삼성 분위기 조성에 악용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봤다. 또 “노동계는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이므로 직접고용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직화를 선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당시 삼성그룹 전체에서 비정규직은 9만1천 명이었는데, 이 중 75%인 6만8천 명이 사내하도급이었다. 관련 법령이 법제처 심사를 받자 삼성은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고용형태 공시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유도”하려고, “법제처장과 법제관을 개별 설득”했다.(운영위원회 보고자료,2013년 5월29일)

반면 2013년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추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에는 적극 협조했다. 시간선택제는, 노동시간은 일반 정규직과 비교해 적지만 복리후생을 비롯한 처우는 기존 정규직과 동일하게 부여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일자리 쪼개기’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삼성은 이를 고용유연화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다. 최지성 미전실장은 “(삼성)그룹도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9월6일). “제목을 근무조건선택제 말고 정부 의견대로 시간선택제로 통일하라”고도 했다(9월13일). 정부는 애초 5천 명 채용을 요청했으나, 최 실장의 지시로 채용 규모를 6700명으로 결정했다. 정금용 당시 미전실 인사지원팀장은 “2년 뒤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부분은 강조할 필요가 없어 보이고, 노동부 계획안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미전실 임원회의 주요 내용 종합) 삼성은 시간선택제 6천 명을 2년 계약직으로 채용했지만 무기계약직 전환은 이행하지 않았다.

삼성 미래전략실 운영위원회 보고자료(2013년 5월29일) 가운데 고용형태 공시제 관련 내용

삼성 미래전략실 운영위원회 보고자료(2013년 5월29일) 가운데 고용형태 공시제 관련 내용

④ 직업훈련비 환수당할 처지에 놓이자, 시행규칙 바꿔

삼성은 직업훈련비 수백억원을 환수당할 위기에 놓이자, 관련 법 시행규칙을 바꿔버리기도 했다. 기업들은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 직업훈련을 하면 고용보험에서 직업훈련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당시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 시행규칙’은 훈련비용을 지급받은 기업에 부정수급이 한 건만 발견돼도 정상 지급된 훈련비 전액을 환수하도록 했다. 또 이후 1년간 직업훈련비 지원 신청을 못하도록 막았다.

2010~2011년 고용부가 직업훈련개발비 부정수급을 점검한 결과, 삼성그룹은 680억원을 환수당할 처지에 놓였다. 환수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삼성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지원받은 금액은 환수되지 않도록 소급 입법을 추진했으나 고용부 실무진의 강력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지급제한기간 최소화를 유도”하고 “2011년 3월까지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했다. 삼성은 “2010년 12월~2011년 3월 (고용)노동부 장관 및 실무진을 면담해 법령의 부당함과 기업 입장을 감안한 법 개정을 촉구”했다.(노동부 직업능력개발훈련비 환수 관련 대책)

고용부는 삼성중공업이 환수 처분을 받은 2010년 12월17일 이후 3개월 만에, 신설된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경영계 관계자는 “당시 삼성이 주도적으로 경총에서 회의를 소집하는 등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 추후 해당 조항이 위헌 결정이 났다. 문제가 있었던 조항이고 삼성이 적극 대응해 개정이 빠르게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뒤 삼성은 2010년 미전실을 출범하며 “계열사를 지원하고 계열사의 시너지를 높이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정권 비선 실세에게 뇌물을 공여하는 불법행위를 기획·실행했을 뿐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를 진두지휘하는 데 활용했다. 이런 불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은 것은 ‘삼성이 국가를 경영한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미전실 해체로 응수했다. 그렇다고 조직적인 불법행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전실 기능이 상당 부분 이관된 삼성전자 사업지원TF의 임직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자 2018년 5월부터 내부 문건을 은폐·조작하도록 지시하고, 직접 실행했다.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이름을 바꾸었을 뿐, 삼성이 총수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적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DNA는 여전한 셈이다.

2011년 4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 삼성 사초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4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 삼성 사초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적 목적” “자긍심에 상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는 이 부회장은 재판부의 요구에 따라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했다.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5월6일에는 대국민 사과도 했다. 이 부회장의 사과는 삼성 특검 이후인 2008년 4월 진행된 이건희 회장의 퇴진 선언에 견줄 만한 ‘중대한’ 일이다. 과연 진정성 있을까. 이를 가늠할 만한 내부 문건이 있다. 이 회장의 퇴진 직전인 2008년 3월 전략기획실에서 작성한 ‘2008년 노사전략’을 보면, “최근 일련의 사태로 인해 조직 내 일체감 및 신뢰도 급격히 하락.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특검이 장기화(~2008년 4월 하순)됨으로써 삼성인의 자긍심에 상처”라는 대목이 나온다. 오늘도 삼성은 겉으론 ‘사과’와 ‘반성’을 말하면서도 속으론 비판을 “정치적 목적”이라 믿으며, 이 부회장의 구속을 막기 위해 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법 위의 삼성 미전실’ 연속 보도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8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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