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형, 우리 죽어요?” “형아가 너 살릴게”

세월호 생존 학생들, 유가족이 된 형제·자매 등 26명의 육성 기록 <다시 봄이 올 거예요>
등록 2016-04-14 09:33 수정 2020-05-02 19:28
그날 이후, 두 번째 봄이다. 지난 2년간 세월호 참사는 어떤 이들의 삶을 기막힘과 미안함으로 흔들었다. (창비 펴냄)는 생존한 단원고 학생 11명과 어린 나이에 유가족이 된 15명이 보내온 2년의 시간을, 인권활동가와 르포작가 등으로 구성된 11명의 작가기록단이 구술로 채집해 엮어낸 담담한 기록이다. 은 앞으로 3차례에 걸쳐 에 실린 구술 증언들을 발췌해 싣는다. _편집자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그때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요. 길을 가다 어린아이를 보면 그 남자애가 보여요. 뉴스를 보면 여동생이 혼자서 오빠 찾고 있고 내가 그 오빠를 알고 있고 그 오빠의 마지막을 알고 있고…. 오빠 소식을 모르니까 그 여동생한테 알려주고 싶더라고요. 편지를 썼는데 보낼 수는 없었어요. 너무 미안해서…. 제가 살인자 같은 거예요. 살인자의 편지를 받는 거니까 많이 힘들겠다, 그냥 가지고 있는 게 낫겠다.

수고했다, 살아와서 고맙다, 네 잘못이 아니다. 그런 말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데도 자꾸만 저를 원망하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산다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인데, 그러면 안 되는데…. 이제 스무 살이 되니까 조금은 옅어져요. 언젠가는 잊혀지겠구나. 그래도 ‘죄책감’이라는 세 글자, 그건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마지막 순간에 그, 머리 미신 화물기사분. 소방호스 던져서 사람들 구하신 분. 성함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아, 네, 맞아요, 김동수 아저씨.

제가 그때 옆에 계속 같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제 기사가 나온 걸 봤어요. 친구들을 구했다고. 그 기사 지워달라고 했어요. 제 마음이 많이 힘들어서…. ‘힘을 내라’ 그런 댓글 달아주신 건 고마웠는데….

9시1분인가 2분인가. 방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배가 기우뚱 기우뚱하는 거예요. 그때 다 같이 나갔으면 아마 다 살았을 거예요.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 소리를 듣는데 제 상식으로는 너무 안 맞는 거예요. 반 아이들한테 ‘일단 배가 뒤집힌 상황이면 나가야지 가만히 있으라는 게 말이 되냐, 한번 확인해보겠다’ 하고 나갔어요.

끝까지 살린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친구들 두세 명하고 같이 문을 열었어요. 안 열렸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었어요. 문을 열고 보니, 복도 소파 쪽에 자판기가 있었어요. 그쪽에 여학생 4명이랑 어린아이들이 있었어요. 남자애(이 남자아이는 미수습자 9명 가운데 하나인 권혁규 어린이로 당시 나이 6살이었다. 권혁규 어린이는 이날 여동생, 부모님과 함께 세월호에 탑승했다. 제주도의 새 보금자리로 이사 가던 길이었다. 어머니 한윤지씨는 주검으로 돌아왔고, 혁규 어린이는 아버지 권재근씨와 함께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네 가족 가운데 5살 여동생만 홀로 구조됐다)가 보이더라고요. 그 6살 오빠. 5살 여동생은 소파 뒤쪽에 좀 멀리 있고. 그 남자애가 울고 있는 걸 보고 제가 올라가서 보살폈어요. 그 어린애가 “형, 우리 죽어요?”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형아가 너 살릴게.”


슬픔과 고통이 뭉치면 더 강해지지 않을까, 고통을 이겨낸 만큼 더 남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 싶어요. 그럴 거예요.

한 여자분이 “구명복 입으십시오”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구명복을 알아서 배분했어요. “여기 구명복 없어요.” “여기도 없어요.” 받아서 그 애를 먼저 입혔어요. 마지막 하나 남은 게 있어서 제가 입게 되었어요.

김동수 아저씨가 위에서 소방호스를 던졌어요. “그걸 잡고 올라와라.” 경사가 심해서 올라갈 수 있는 힘이…. 힘이 달리는 순간 그냥 내려가요. 그럼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요. 제가 군인이 되려고 준비했기 때문에 팔 힘이 어른 못지않게 셌거든요. 그 아이까지 같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었는데 어른들이 말렸어요. “안 된다. 너 혼자 올라가라.”

어른 말을 믿고 올라가서, 소방호스를 기둥에다 묶었어요. 그럼 사람들이 올라올 때 덜 위험할 것 같아서…. 그걸 타고 올라오는 사람은 어른들이었어요. 여학생들도 힘겹게 올라오고, 사람들이 올라올 때마다 손으로 잡아 끌어올렸어요.

물이 급속도로 차오르더라고요. 그때 사람들이 어디 있었는지 다 기억나요, 하나하나. 그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흐읍. 학생들이 물 안쪽으로 빨려들어가다시피 했거든요. 선생님들도 거의…. 남윤철 선생님도 봤고 다른 선생님들 얼굴도 봤고.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그 여자애 손을 제가 간신히 잡았어요. 잡고 표정을 봤거든요. 다행히 그 애는 끌어올렸어요.

근데 그 남자애는 자판기 뒤쪽에 있고 저를 계속 보고 있고…. ‘여기가 지옥일까. 이게 할 짓인가 이게….’ 끝까지 살린다, 살리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어른들 몫까지…. 구명조끼 입고 얼굴만 간신히 동동 떠갖고 있는데 물속도 어느 정도는 보였어요. 그 남자애가 보이더라고요. 근데 손이 안 닿아요. 손이….

그러다 한 여학생을 봤어요. 구명조끼 잠그는 데가 고장이 나 있더라고요. 그 순간에, ‘나보다는 저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 여학생을 뒤에서 안고 올라왔어요. 다행히 그 여학생도 살았고 저도 마지막으로 나왔어요.

잘못했으니 사형이 마땅하다?
지난 4월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과 희생자 형제·자매들의 구술을 채집한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난 4월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과 희생자 형제·자매들의 구술을 채집한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나오다가 여기저기 부딪히잖아요. 근데 몸이 다치는 거는 상관이 없더라고요. 사람이 더 중요하니까. 사람을 끌어올리다보면 힘이 달리고 아파요. 근데 몰랐어요. 팔뚝에 빨간 줄이 다 생겼더라고요, 너무 힘을 써서. 저도 당황스러웠어요. ‘핏줄이 터지는구나…, 다쳤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죽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 엄청 많이 했어요. ‘버스가 전복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고를 당하면 사람들을 구하고 나오겠다.’ 극단적인 생각이죠. 그 세월호 경험이 책임감, 사명감 이런 걸 불어넣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제 탓인 것 같고. 이제 내가 해야 되겠다, 내가 더 강해져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잊을 순 없어요. 친구들 기억을 간직하고 그 친구들 몫까지. 그 순간에 해경처럼 겉만 번드레하게 그렇게 하진 않겠다.

항구에 도착하고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의식을 잃었어요. 깨어나보니까 진도의 어느 병원. 기자들도 엄청 와 있고 정신은 하나도 없고. 안산고대병원으로 왔을 때, 제가 마지막에 데리고 나온 여학생이 저를 보더니 울더라고요. 좀 얼떨떨했죠. ‘얘가 왜 이러나.’ 그 친구가 병원에 와서 저를 찾았나봐요. 찾아도 제가 안 보이니까 아직 배에 있는 줄 알고 울었나봐요.

병원에서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친구들한테 얘기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친구들도 없고. 왜 움직이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할까. 친구들 장례식장에 가기도 두려웠지만 못 움직이게 하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어른들이 잘못됐다, 이런 얘기 많잖아요.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저는 원망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선장님이 사형선고를 받아야 한다는 종이에 이름을 쓰라고 할 때도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손이 벌벌 떨려서 종이를 뚫어져라 봤어요. ‘잘못을 했으니까 죽어야 마땅하다?’ 그 사람이 아무리 죽을 짓을 했더라도 내가 이 사람을 죽여야 되겠다고 사인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 내 친구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인데 화가 안 났다면 거짓말이죠. 근데 ‘내가 화를 낸 뒤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을 때, 아직은 아니다…, 화를 내봤자 또 다른 불의가 생기니까. 그걸 방지해야 할 사람들이 좀더 열심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잘못을 뉘우치도록 도와주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지금 나도 어른이 됐는데 이왕 어른이 된 거, 나 자신은 미워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모든 어른을 미워하진 말자. 어른이 되면 어떻게 행동할까. 책임감을 가져야지. 어른들이 못했던 걸 내가 해야지. 죄를 뉘우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야죠. 보여주고 싶어요. 책임지는 모습.

스무 살이 됐으니까 이제 뼈대는 만든 것 같아요. 거기다가 시멘트를 딱 바르고. 지금은 공사 중이에요. 안 좋은 생각은 장롱 아니면 금고 속에 넣어두고. 냉장고 안에는 여러 가지 마음 보관해두고. 아직은 멀었어요. 근데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해보고 싶어요. 실패해도 그걸 발판 삼아 하나씩 하나씩….

‘슬플수록 남을 존중한다’

넘어지는 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제 일어서는 법을 알아야죠. 그런 말 있잖아요. 신은 인간에게 살아가면서 견딜 수 있는 만큼의 무게를 공평하게 주신다는 그런 얘기. 사람마다 물론 견딜 수 있는 무게가 다르겠죠. 근데 저한테 너무 많은 고통을 주셔갖고…. 오, 이게 참 분간이 안 가요.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이런 큰일을 겪었는데 무엇을 해야만 하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많이 생각했어요. 사람이 태어난 이유, 목적이 다 있는 거니까. 희망을 주는 사람? 나는 희망을 주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지금은 확신이 없지만 나중에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거나 해결해주거나, 아님 같이하고 싶다.’ 그냥 사소한 거예요. 그런 꿈을 갖고 있는 거예요.

‘행복할수록 눈물이 나고, 슬플수록 남을 존중한다.’

요즘 제가 되새기는 말이에요. 사고를 겪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행복을 느끼는 매 순간에도 늘 슬픔이 동행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슬픔과 고통이 뭉치면 더 강해지지 않을까, 고통을 이겨낸 만큼 더 남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 싶어요. 그럴 거예요.

구술 조태준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기록 배경내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발췌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세월호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들의 육성기록집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구매처 ▶ 바로가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