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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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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진실 맞추며 잔인한 봄을 마주한 그들이 있기에

<세월호, 그날의 기록> 펴낸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박수빈·박다영씨…영화 1000편 이상 분량, A4용지 15만 쪽 자료에 10개월간 파묻혀 꼼꼼하게 ‘그날’ 복기
등록 2016-04-13 05:59 수정 2020-05-02 19:28

계절은 잔인하게 찾아왔다. 초록이 무심하게 찬란할 때 이들은 처음 만났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2015년 봄이었다.
아이를 잃고 밤마다 몸을 뒤척이던 아버지가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갈대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월호 기록을 모으고 있었다. 아들의 책상 위에 기록이 산더미처럼 쌓여갔지만 평범한 개인이, 익숙하지 않은 자료를 바탕으로 흩어진 진실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종이 꾸러미를 들고 헤매는 그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순례길을 함께 걸었던 정은주 기자였다.
정은주 기자는 박종대씨의 기록을 들고 재단법인 ‘진실의 힘’을 만났다. 진실의 힘은 1970~90년대 간첩으로 조작돼 고문당한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진실 규명을 위해 꾸려진 단체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막막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체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당시까지 세월호 기록을 모두 정리해 진실의 조각을 맞춘 곳은 없었다. 진실의 힘은 그 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2015년 5월, ‘세월호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가운데 박수빈 변호사, 박다영 작가를 만났다. 4월6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의 초청으로 열린 ‘세월호, 진실과 기억’ 세미나를 마친 직후였다. 기록팀의 여정을 두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다.
뜻있는 변호사·기자·활동가 뭉치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에 참여한 박수빈 변호사(왼쪽)와 박다영 작가는 단어를 한참 골라 말했다. 길고 고단한 작업을 마침내 털어낸 해방감보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의 첫 단추를 꿴 사람으로서의 신중함과 책무가 더 크다고 말했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에 참여한 박수빈 변호사(왼쪽)와 박다영 작가는 단어를 한참 골라 말했다. 길고 고단한 작업을 마침내 털어낸 해방감보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의 첫 단추를 꿴 사람으로서의 신중함과 책무가 더 크다고 말했다.

“영화 같은 일이었다.” 박수빈 변호사는 지난해 5월부터 올 3월까지, 10개월의 여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프로젝트의 발단이 된 자료를 확보한 정은주 기자, 로스쿨을 갓 졸업한 박수빈 변호사,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박다영 작가, 학업 중이던 박현진씨 등 의 저자 모두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하며 다 함께 일궈낸 결과라는 뜻이다.

이들은 각각 자기 앞에 닥친 일을 모두 접고 심해로 들어가는 막막한 탐사에 뛰어들었다. 진실의 힘의 조용환 변호사와 송소연 이사, 이사랑 간사는 이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맡았다. 진실의 힘 이사인 조용환 변호사는 조작 간첩 재심 사건에서 첫 무죄를 이끄는 등 실력과 명망을 두루 갖춘 법률가다. 세월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도록 뜻있는 변호사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모은 것도 조 변호사였다. 이 마중물이 없었다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처음에는 기록물을 정리해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정리해두면 누군가 진실의 조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록을 읽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에 바탕을 둔 단행본 출판을 기획하게 됐다.

긴 호흡의 책을 써본 경험이 없었던 저자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기록을 읽는 것도 고된 일이었지만, 그 기록을 대중이 읽을 만한 문장으로 만드는 일은 번역과 다름없었다. 세월호 현장의 처음과 끝, 구조 세력의 무능함, 무책임한 정부, 무지하고 부실한 선박회사 등 책임자들을 입체적으로 엮기 위해 저자들은 여러 날을 뒤척였다.

글이 한 조각, 한 조각 태어날 때마다 조용환 변호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꼼꼼하게 데스킹을 봤다. 초교, 2교, 3교, 수없이 반복되는 글쓰기 작업에 지칠 때면 송소연 이사가 다독이며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책이 드디어 제 꼴을 갖추는 동안에도 새 단서와 자료가 나오면 고쳐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라도 더 진실의 조각을 더하겠다는 집념이었다.

그렇게 을 펴냈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살펴본 자료는 15만 쪽의 재판 수사 기록과 3테라바이트(TB)의 음성·동영상 파일 등이다. 각각 분담한 분야가 있었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모든 기록을 다 봤다고 할 수 있다. 부족한 조각들을 서로 이어붙이고 엮어야만 했다. 저자들은 매일 자신이 읽은 자료를 바탕으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교차 확인했다.

‘놓친 게 없을까?’ 밤낮을 뒤척여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15만 쪽의 재판·수사 기록과 3테라바이트의 음성·동영상 파일 등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세월호 ‘그날’을 복기하고,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규명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15만 쪽의 재판·수사 기록과 3테라바이트의 음성·동영상 파일 등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세월호 ‘그날’을 복기하고,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규명했다.

이들이 읽어야 했던 15만 쪽의 기록이란 과연 얼마만큼일까. A4용지 500장이 든 상자 300개 분량이다. 눈에 그린 듯이 4월16일 사고가 있었던 날을 복원하고 해경과 선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해야 했을 청와대의 실수와 착오를 찾아내기까지 300상자의 자료를 보고 또 봐야만 했다.

음성·영상 파일 3테라바이트는 3072기가바이트다. 컴퓨터에 저장하는 영화 한 편의 용량이 2~3기가바이트라고 하면, 2시간짜리 영화 1000편 이상 분량이다.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 폐회로텔레비전(CCTV), 음성 녹취 파일은 화질이나 음질이 떨어지므로 이들이 보고 들은 영상과 음성은 영화 1000편 분량을 훨씬 넘어선다.

확인해야 할 자료가 눈덩이처럼 몸을 불려갈 때도 포기하거나 도망가려는 생각은 없었다. 변호사 시험을 갓 통과한 박 변호사에겐 이 일은 사회생활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빨리 이걸 다 보고 다시 한번 더 봐야겠다며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어떤 사실이 있고 없는지 확인하고, 없는 자료를 찾아내 확보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굴할 수 있을지 검토하기 위해 다시 기존 자료를 훑는 과정이 이어졌다.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명의 사람이 힘을 합쳐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였던 프로젝트인데, 너무 만만하게 도전했던 거다.”

박다영 작가는 처음에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뒤로 갈수록 불안함이 자신을 추동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로선 비교적 눈에 익숙한 법정 기록이었겠지만 나는 이런 기록물의 형태 자체를 처음 접했다. 두려운 마음이 컸다. 제대로 잘 읽어내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배 모형이 뒤집히는 순간, 구토감 들었다”

자료가 눈에 익자, 이번에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새로운 자료가 추가로 발굴됐을 때, 찾았다는 기쁨보다는 우리가 놓친 게 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게 계속 보였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새로운 팩트라기보다는 여러 자료를 입체적으로 조합했을 때 찾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박다영 작가를 비롯해 세월호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저자들이 밤낮을 잊고 자료 읽기에 몰입했던 이유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 기록팀 사람들은 기록의 무게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창덕궁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진실의 힘 사무실에서 이들은 사계절을 모두 보냈다. 눈을 사로잡는 풍경이 시시때때로 창밖으로 펼쳐졌지만 그런 걸 붙들고 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누군가 먼저 퇴근해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돌아오면, 다른 이들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기록을 밤새 읽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어떤 일과를 보냈느냐는 질문에 저자들은 ‘오늘은 반드시 일찍 퇴근하겠다’는 일념으로 오전 9시에 출근해 자료를 보기 시작하면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하나만 더 확인하고 그만 덮어야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새로 확인해야 할 진실의 조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네 사람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다시피 하며 몰두했다. 동상처럼 한자리에 앉아 자료를 봤다. 누군가 먼저 퇴근해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돌아오면, 다른 이들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기록을 밤새 읽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왜 그렇게까지 몰입하나, 주변의 의아한 시선도 있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는 ‘내가 놓친 자료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면서 계속 ‘하나라도 더 봐야겠다’는 압박감이 생겼다.” 박다영 작가의 말이다.

구조 당국의 무능한 맨얼굴이 처절하게 드러날 때마다 분통을 터트릴 일이 많을 법도 했지만 이들은 최대한 감정을 이입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밝혔다. 그러지 않으면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때때로, 가슴 치고 싶은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 진짜…’. 이런 말을 절로 내뱉던 적이 몇 번 있었다”고 박수빈 변호사가 말했다. 처음 학생들의 진술을 읽을 때는 평면적으로 이해했는데, 책을 써가는 과정에서 전후 사정과 맥락이 잡히기 시작하니까 견디기 힘들었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 이미 물에 잠긴 창문이 보이는 동영상, 창문이 깨져 물이 들어오는 순간, 이런 것들이 진술과 겹치면서 자꾸만 그림을 그려보게 되는 거다. 배 모형을 만들어 기울기를 확인하면서 동료들과 토론했는데, 전복 과정을 복기하면서 배가 완전히 뒤집혔을 때, 구토감이 들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인데, 모든 작업 과정 중에 그날이 제일 힘들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첫 단추’

세월호 기록팀이 일궈낸 결과물이 모든 진실을 다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곳곳에서 자료의 구멍을 확인하고, 의문점을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지만 진실 규명을 위한 중요하고 묵직한 첫 단추인 것은 분명하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는 온 국민을 지배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진실과 기억’ 세미나에서 여전히 심리 치유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 얘기를 했다. 가족의 주검을 수습해서 따뜻한 흙 한 줌 덮어주지도 못했는데, 감히 어떻게 내 마음 편하자고 상담하고 치유하냐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진상 규명이 가장 첫 번째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부모, 형제들이 이 책을 읽기는 너무 힘들 것이다. 대신 시민들이 읽어야 한다. 우리는 같이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잊혀서는 안 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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