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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OTL

멈춰선 무빙워크


히치하이커의 친구들은 히치하이커, 그들이 올라타는 차는 언제나 비슷한 차…
별의 행로는 일찍 정해져버리네

제791호
등록 : 2009-12-23 16:44 수정 : 2009-12-2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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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이야기

지난 11월, 서울 강북의 한 대형마트에서 젊은 마트 노동자들과 일했다. 그들은 이 점포에서 저 점포로 옮겨다닌다.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돼지고기를 손질하는 영철은 아내·딸과 함께 월세 12만2500원의 임대아파트에 산다. 30대 초반의 그는 한 달에 115만원을 번다. 중학교를 중퇴한 영철의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는 리어카 행상을 했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주방일을 했다.

생선 매대에서 일하는 경수의 아버지는 지방 도시에서 닭을 팔았다. 경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닭공장에서 막칼 쓰는 일을 배웠다. 이제 그 막칼로 생선 대가리를 친다. 그의 꿈은 생선가게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동네 가게는 대형마트 때문에 모두 망했다. 경수가 가게를 열어 돈을 벌려면 대형마트가 망해야 한다. 마트가 망하면 경수는 가게 차릴 돈을 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가난은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노동OTL
글 싣는 순서

제1부 안산 난로공장
작업 라인의 노예
4천원의 삶과 행복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언제나 젖은 앞치마
몰락 가장의 부인과 올드미스
사장님, 손님, 남편님


제3부 마석 가구공장
톱밥 더미에 갇힌 꿈
빠빠, 마마 그리고 겐드라노나
13살 노동자의 귀환, 그리고…

제4부 서울 A대형마트
① 히치하이커의 슬픔
빈곤 가족의 탄생
③ 친구들의 엇갈린 행로


A마트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양념 불고기 있어요.” 일주일이 지나자 수식어를 동원할 수 있게 됐다. “맛있는 양념 불고기, 대박 세이~일.” 열흘 뒤에는 박자를 넣었다. “어서 오세요. 이리로 오세요. 싱싱한 한우 양념 불고기~이.” 그래도 손님들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5년째 일한 철수(가명)는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다. 물론 그는 페로몬이란 단어를 모른다. 아르바이트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은 개념을 몰라도 실체를 안다. 그들은 몸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페로몬도 그중 하나다. 페로몬은 벌이 벌에게, 개미가 개미에게 보내는 호르몬 신호다. 물건을 팔려는 서민은 물건을 사러온 서민의 페로몬을 감지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철수는 목청 높여 소리 지르지 않는다. 매대 앞 통로에 버티고 선다. 그러다 막아선다. ‘돼지불고기를 사고 싶은데, 어디 가면 되지?’라는 페로몬을 풍기는 손님이다. “어머님, 이쪽입니다.” 목동의 손에 코뚜레를 맡긴 송아지처럼, 엄마 손을 잡고 강당에 들어서는 초등학교 신입생처럼, 손님은 철수가 담는 대로 순순히 고기를 산다. 서로 나누는 말도 없다. “어떻게 냄새를 맡지?” 호객을 못해 애간장이 탄 내 물음에 철수는 그저 웃었다. 그도 설명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멈춰선 무빙워크. 일러스트레이션 최호철

1. 마트의 존재 회로

페로몬을 잘 맡는 철수도 애간장이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사가 안 됐다. ‘신종 플루’ 때문이라는 게 A마트 점원들의 ‘다수설’이었다. ‘여사님’으로 불리는 옆 매대 아주머니는 ‘3개월 할부설’을 내놓았다. “지난 추석 때, 사람들이 카드 3개월 할부로 돈을 썼잖아. 그거 다 갚으려면 1월은 돼야지. 그때까지 쓸 돈이 없는 거야.” 체험에 바탕한 여사님의 분석은 ‘소수설’일지언정 치밀했다.

노동자의 이익은 공익 아닌가

철수는 어느 방송사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을 지목했다. 그 프로그램이 양념 불고기의 위생 상태를 고발했단다. 그 뒤로 손님이 뚝 끊겼다. “매스컴이 무섭더라고요.” 철수가 말했다. 하루 9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하는 철수는 그 방송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뿐이다. 나는 그의 편이 되어 ‘무서운 매스컴’을 생각했다. A마트 점원들이 알고 있는 매스컴은 제 삶에 귀찮게 간섭하는 권력기관이었다. 30일이 지나도록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들이 나를 무섭고 귀찮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기자는 공익을 추구한다. 식품위생 관리는 공익이다. 기자는 그걸 감시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A마트에서 나는 새로운 질문에 봉착했다. 마트 노동자의 이익은 공익이 아닌가? 어느 날,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여성이 매대를 찾아왔다. 그는 맑은 눈을 갖고 있었다. 하얀 손으로 양념 돼지불고기를 시험관에 넣었다. 그는 본사에서 위생감독을 맡고 있다. 이제 그는 맑은 실험실에 돌아가 돼지의 단백질에 시료를 섞을 것이다. 현미경 위에 올려놓고 대장균 따위를 헤집어볼 것이다.

“걸리면 보통 일은 아니죠.” 철수가 말했다. 식약청, 구청, 본사가 수시로 점포의 위생 상태를 검사한다. 맞은편 돼지고기 매대의 어느 점포는 식약청 검사에 걸려 1개월 영업정지를 맞았다. 마트는 빈자리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다른 점포가 들어왔다. 1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점포는 영원히 A마트에 되돌아오지 못했다. 그 점포에서 일했던 20대 점원도 함께 그만뒀다.

식약청 단속반의 현미경에 잡힌 그 미생물은 돼지를 기른 사람, 도축한 사람, 포장한 사람, 보관한 사람, 그리고 진열한 사람을 거치며 증식했을 것이다. 포장지에 찍힌 유통기한에 따라, 정해진 보관온도 아래, 밀봉된 돼지고기를 목이 쉬도록 구워가며 팔았을 뿐인 마트 노동자에게 그 일은 불가항력이다.

식약청이 제 할 일을 하고, 업주가 제 사업의 활로를 찾는 동안, 마트 노동자는 제 하던 일을 통째로 잃어버린다. 영업정지 처분은 먹이사슬을 따라 마트 노동자의 실직으로 가중처벌된다. 식약청 단속으로 문을 닫게 된 대형마트는 지금껏 없었다. 그런데 오늘 집어간 돼지고기에서 대장균과 타르와 아질산염이 검출되면, 내 이익은 누가 지켜줄까?

계란을 파는 영호(가명)에게 내가 불평했다. “우리도 앉아서 일하면 좋을 텐데.” 넓고 넓은 A마트에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별처럼 흩어져 일한다. 누구도 앉을 수 없는데, 예외가 있다. 계산대 점원이다. “저것도 매스컴 때문이에요.” 멀리 계산대를 보며 영호가 말했다. 서서 일하는 마트 계산대 점원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한겨레21> 기사도 그 중 하나였다). 이후 그들에겐 의자가 지급됐다. 다만 그들에게만 지급됐다. 나머지 대다수 마트 노동자는 여전히 서서 일한다. “쇼핑 다 하고 계산대 가서야 사람을 보거든요. 거기만 사람 있는 줄 알지, 우리는 안 보이는 거죠.” 투명인간이 되어 마트에서 일한 뒤에야 나는 의자가 절실한 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몸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다릴 것인가, 일하게 할 것인가

중년 사내는 이해하지 못했다. 줄을 서서 5분째 기다렸다고 화를 냈다. “지점장, 나오라 그래.” 그는 조금 전, 고추장 돼지불고기 1kg을 사갔다. “이렇게 손님이 많으면 계산대 직원을 더 써야지. 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거야?” 지점장을 나오게 할 능력이 나에겐 없었다. 그는 계산을 마치지 못한 불고기를 씩씩거리며 반품했다. 화내는 손님이 더 없었으므로 나는 혼자 상상을 해봤다. 계산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려면 더 많은 계산대 점원을 채용해야 한다. 그들을 고용해 파견하는 용역회사는 마트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할 것이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마트는 점포의 매출 경쟁을 더 부추길 것이다. 어쩌면 20%의 수수료율을 더 높일 수도 있다. 더 빨리 더 많은 점포가 망할 것이다. 더 많은 노동자가 더 빨리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손님을 기다리게 할 것인가, 노동자를 일하게 할 것인가.

일이 그렇게 풀려나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길이 없지는 않다. 마트의 수익을 줄이면 된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매겨 임금을 주고, 점포가 내야 하는 수수료도 인하하고, 대형마트가 좀 덜 벌면 된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에 간단히 압도당한다. “그래도 우리 마트가 잘되는 게 좋죠.” 영호가 말했다. 피로가 덮개를 이루듯 쌓여도 마트 노동자들은 마트 탓을 하지 않았다. 마트가 망하는 게 가장 큰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2.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영철(가명)은 8년째, 철수는 5년째, 경수(가명)는 2년째 A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115만~140만원 정도를 번다. 왜 다른 직업을 찾지 않을까? “공장보다 마트가 훨씬 나아요.” 영철은 봉제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마트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마트의 비교 대상은 ‘공장’밖에 없었다.

새 직업이 어렵다면 새 마트라도 찾아 옮기는 건 어떨까? “길들여진 거죠. 어차피 평생 일할 것도 아니고.” 철수가 흐흐 웃으며 말했다. 마트에서 만난 누구도 제 처지를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가게를 열 때까지, 장사를 시작할 때까지,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때까지 잠시만 머물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예상은 그러했다. 그래서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미지의 규칙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그들에겐 있었다. 용기가 부족한 것이 그들의 탓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느 면에서 그들은 마트를 좋아했다. 공장보다 깨끗하고, 공장보다 자유로운 마트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잊었다.

고용주에 대한 불만도 까맣게 잊었다. 책상물림인 나에게 그것은 수수께끼였다. “지금 사장이 마음에 든단 말이에요.” 판촉 이벤트 회사에 고용된 영희(가명)가 말했다. 돼지고기 작업장에서 일하는 영철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사장하고는 말이 통하거든요.” 비정규직으로 자신을 고용한 용역업체 사장을 ‘인간적’으로 믿는다고 그들은 종종 말했다. 근로계약서를 썼는지,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사장의 ‘말’을 기억했다. 그들은 제도를 신뢰하지 않았다.

투표소를 가지 않는 사람들. 일러스트레이션 최호철

투표소를 가지 않는 사람들

“군대 있을 때 빼면 한 번도 없어요.” 영호는 지금껏 딱 한 차례 선거에 참여했다. 제대 뒤에는 다시 투표소를 찾지 않았다. “내 앞길이 캄캄한데, 무슨 정치 이야기를 하겠어요.” 2년제 대학을 중퇴한 그는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서로 우스개를 늘어놓는다. “저마다 더 우스운 이야기 하려고 기를 쓰죠.” 영호가 말했다. “그런데 1년 전부터.” 영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어요. 술 취하면 ‘이제 우리 뭐하냐’, 그런 이야기가 꼭 나와요.”

놀이공원에 취업한 대학 선배는 일이 힘들다고 그만뒀다. 학교 평판 나빠지겠다는 걱정이 나온다. 자기 생각만 하고 후배 앞길 틀어막은 놈이라고 욕하는 이가 있다. 그래봤자 150만원인데 취업해서 뭐하느냐는 말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함께 졸업한 친구는 대학 연구실에 취업해 130만원을 번다. 실험용 동물을 기르는 계약직인데,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단다. 술 잘 마시던 또 다른 선배는 요즘 ‘서든’하고 있단다. PC방에 죽치고 앉아 ‘서든’ 게임만 한다는 이야기다. 100% 취업률 보장한다더니 왜 대학 나와서 이렇게 사느냐고 누군가 자조한다. 100%? 웃기지 말라고 해라. 마트 아르바이트 소개해주는 것도 취업인가…. 그쯤에서 술자리는 파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정치 이야기는 한 번도 안 했네요.” 영호가 말했다.

영희는 지난여름, 촛불집회 때 광화문을 가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역시 기표소의 도장을 만져본 적이 없지만, 촛불집회는 어쩐지 재미있어 보였다. “그런데 광화문에 나가면 경찰들이 성희롱한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건 딱 싫단 말이에요.” 영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준 것은 어느 법률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실업고 동창이었다. 법률사무소에는 공부를 많이 한 변호사들이 많다. 그들 가운데 누가 공포를 심어줬을까, 나는 생각했다.

정치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언제 무슨 선거가 있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일하느라 투표도 못한단 말이에요.” 내년 지방선거 이야기를 꺼냈더니 영희가 잘라 말했다. 정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통로라고 나는 말해주지 못했다. 어렵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다 좋은데 민주노총은 꺼림칙하다고 다들 말하던데요.” 영철이 말했다. 당장의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그들은 더 강하게 끌렸다. 정부, 정당, 언론, 노조가 힘이 되어준 기억이 그들에겐 없었다. 차라리 장차 뒤를 봐줄지도 모를 대학원 졸업생과 친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3. 이너서클

“형님한테 세상 이야기 좀 들어야겠어요.” 대학원까지 나왔다고 내가 말했을 때, 철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찬바람 부는 마트 뒤편 벤치로 나를 끌고 갔다. 우리는 담배를 피웠다. 술도 한잔 걸치지 않았는데, 그는 제 고민을 털어놓았다. 가족, 친구, 동료를 통틀어 철수 옆자리에서 대학원 나온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감정’이 그에겐 없었다. 그것은 철수가 잘 모르는 세상이다. “형님, 좋은 데 가시면 꼭 저를 불러주셔야 해요.” 그를 고용해 월급 200만원씩 주는 사업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잠깐이지만 진지하게 고민했다.

철수에겐 친구가 필요했다. 그는 친구의 말이라면 믿었다. 철수가 제대했을 때, 그에겐 하는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이 A마트 양념육 매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철수는 친구 따라 강남 가지는 못하고 마트에 들어왔다. 생선 매대에서 일하는 경수도 친구한테 소개를 받았다. 신문보급소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가 마트로 끌어들였다. 작업반에서 일하는 영철 역시 8년 전 친구 소개로 마트에 처음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새로운 친구가 됐다.

잠시 일할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왔어도 100여만원의 월급은 이들을 불안하게 한다. 가난은 상처 입은 피부다. 대단치 않은 자극과 접촉에도 쉽게 곪는다. 마트의 젊은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보호막을 찾는다. 친구다. 마트에 새 일자리가 생기면 그들은 친구에게 전화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고용보험이다.

친구가 고용보험

‘이너서클’이 있다는 사실을 광수(가명)는 몰랐다. 1년 전 그는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한참 뒤졌다. 숙식 해결 주유소, 일당 주는 전단회사, 급구 패스트푸드 점원은 있는데 대형마트의 구직 알림만 없었다. “대형마트에 자리가 생긴다면 좋겠어요.” 광수가 말했다. 먼먼 은하계 저편에서 마트 은하계 진입을 꿈꾸는 광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코 흘리는 아이 둘을 안고 나왔다. 아이는 어른을 한없이 약하게 만든다. 아빠 광수는 억지로 졸음을 참고 있었다. “잠이 부족해요. 잠을 잤으면 좋겠어요.” 3살, 2살짜리 아이들은 햄버거 가게의 으깬 감자튀김을 말없이 먹었다.

광수에게도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제지회사 차장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름시름하더니 회사가 망했다. 아버지는 53평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를 내놓았다.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퇴직금으로 술집을 차렸지만 미성년자를 출입시켰다가 영업정지 15일 처분을 받은 뒤, 그냥 접었다. 그 돈을 사업하는 작은아버지에게 대줬다가 모두 날렸다. 1997년 겨울 이후, 한국인의 삶은 예고 없이 붕괴하곤 했다. 광수네 식구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은행빚만 1억원이래요.” 광수가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광수는 정확히 모른다. 아버지는 “구청에서 내주는 일”을 한다. 구청 공무원은 확실히 아니므로, 희망근로 사업일 것이다. 어머니는 “스리 잡”을 한다. 여러 물건을 팔러다닌다. 부모 사정에 밝지 못한 것은 제 앞가림이 급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작고 귀여웠고 낯을 가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동갑내기다. “만난 지 1700일 됐다”고 광수는 말했다. 여자는 두 번째 아이를 낳고 9일째 되던 날, 도넛 매장에 일하러 나갔다. 아내는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일하러 간다. 광수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보낸다. 오전 11시에 도넛 매장에 나가 아내와 함께 일한다. 오후 3시, 아내가 퇴근해 아이들을 데려온다. 광수는 밤 11시까지 일한다.

그래도 지금은 옷장도 있고 서랍장도 있고 컴퓨터도 있는 단칸방에서 산다. 첫째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부는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부부는 찜질방에서 잤다. “원래 안 되는데 특별히 부탁해서”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재웠다. 2주 동안 그렇게 지내다 힘들게 지금 방을 구했다. “점장님이 인간적으로 잘해주시기 때문에” 당장 옮길 생각은 없지만, 대형마트는 광수에게 좀더 나은 미래일 수 있다. 그래도 마트는 좀체 구직 광고를 내지 않는다. ‘이너서클’이 있다는 것을 광수는 몰랐다. 그도 마트에 가면 좀체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4. 마트 밖으로

하루 종일 고기를 구워 쇳소리로 말하던 영희의 성대가 그때만큼은 촉촉히 젖었다. “제 꿈은요.” 집이 있고, 차가 있고, 통장에 1천만원이 들어 있고, 빵집을 하면서 한 달에 200만원을 버는 것이다. “월 200이면 행복하겠어요.” 그들의 행복은 상류 계층과는 상관이 없었다. 나라가 돌아가는 사정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의 상상 속에서 행복은 직선이었다. 돈을 모아 가게를 내어 또 돈을 버는 것이다. 월 200만원이면 행복한 그들이 증오와 분노를 품지 않아 참 다행인 사람들이 한국에는 많다.

언젠가 철수는 치킨집을 차릴 생각이다. 경수는 생선가게를 꿈꾼다.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싶은 영철은 그때까지는 조용히 마트에서 일할 생각이다. 가수를 꿈꾸는 영호는 얼마 전, A마트를 그만뒀다. 새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판촉회사에 고용된 영희는 요즘 다른 마트에서 일한다. 그곳에서도 고기를 팔고 있다. 광수는 아내와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돈 문제, 아이 문제로 짜증내다가 언성을 높이게 된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우주는 반짝이는 별로 가득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들에겐 선택할 것이 많지 않았다. 별의 운행 궤도가 결정돼버렸다. 다르게 태어나 엇갈려 자랐지만, 지금 그들은 서로 닮아 있다.

마지막 날, 일을 마치고 마트 입구에서 철수와 담배를 피웠다. 무빙워크를 타고 마트 밖 세상으로 나왔다. “여기 일 그만두게 되면 꼭 연락해.” “예, 형님.” 그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한참 동안 서 있는 철수를 나는 돌아보았다. 그의 뒤편에서 무빙워크가 멈춰선 것을 나는 보고 말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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