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마을 주민 안병수(69·사진)씨는 밀양 탈핵·탈송전탑 투쟁의 ‘브레인’ 역할을 했던 주민 중 하나다. 그는 2006년 상동면대책위원장, 2007년 밀양시대책위원회 대외협력국장을 지냈으며, 국민권익위원회의 현장조정으로 2010년 1~6월 활동한 ‘밀양 송전탑 갈등조정위원회’에 참여했다. 안씨는 핵발전소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이라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실체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9월13일 밀양에서 만난 그에게 송전탑 건설이 끝나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송전탑 건설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를 물었다.
피해 최소화 노선 왜 택하지 않았을까송전탑 건설은 이미 끝났다. 아직 남은 의혹이 있나.송전선로 노선 변경 문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애초 마을에서 떨어진 산 정상을 지나는 노선이 왜 마을 인근을 지나는 노선으로 변경됐는지 여전히 미궁이다. 송전선로 노선이 밀양시청과 협의 과정에서 한 차례 수정됐다. 원래 마을과 떨어져 지역사회 유력자의 친척 땅을 지나는 노선이었다. 이게 마을을 지나는 노선으로 변경됐다는 의혹이 있었다. 주민들은 유력자가 노선 변경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의심했다. 2010년 갈등조정위원회를 하며 한국전력(한전)에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허가 난 사항은 폐기했다며 보여주지 않았다. 밀양시청 역시 허가 관련 서류는 다 있는데 도면만 없다며 내놓지 않았다.
2010년 갈등조정위원회에서 안씨와 함께 주민 대표로 활동한 강인영(66)씨가 당시 작성해 발표했던 자료를 보면, 97번~100번 송전탑 사이 4기는 2002년 곡선 노선으로 단장면 사연마을을 우회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2007년 최종 확정된 노선은 사연마을을 관통하는 안이었다. 밀양을 통과하는 송전탑 가운데 마지막 11기(140번~150번 송전탑)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의혹이 있다. 주거 지역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주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청도군 경유 직선 노선을 택하지 않고, 밀양의 주거 지역 인근을 지나는 곡선 노선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한전 쪽 대표는 ‘오류’임을 인정했다. “한전은 오류라고 했고, 주민들은 거짓말이라 했고 전체적으로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청도군으로 철탑이 넘어갔더라면 이렇게까지 어려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상황을 놓고 보면 납득이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10년 전 담당자를 나무라는 것도 부적절하며 내부적으로 반성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선우·이강원 편저)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갈등해소센터 이사장으로 갈등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는 자신의 논문(‘밀양송전탑 건설 사례로 조명한 갈등조정의 전개과정과 반추’)에서 “주민대표들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송전선 관련 갈등이 밀양을 끝으로 종식되기를 희망할 정도로 이타적이었으며 국가기간산업의 안정적 운영에 대한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며 “주민대표들이 전문성 확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데 반해, 사업자인 한전의 논리적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실측 결과 전자파가 너무 높게 나왔다”한전이 전자파 관련 정보를 정확히 줬나.주민들 안심시키려고 강원도·충청남도 송전탑이 들어선 지역을 관광버스 두세 대 대절해서 주민들과 함께 실측을 나갔다. 전자파가 물을 따라 10km 간다는 등 주민 불안이 심했는데, 불안을 해소하는 것도 우리 의무라고 생각했다. 주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해야지, 내가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를 해서 선동하면 오히려 역풍이 불 거라고 봤다. 전력을 100 보낸다 하고 20 보내면 정확한 실측이 안 되니까 일부는 전력거래소에 가서 전력을 제대로 보내나 확인했다.
그런데 한전 이야기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주민들 안심시키려 갔는데 불신만 얻고 왔다. 상상외로 전자파가 너무 높게 나왔다. 철탑에서 멀어지면 전자파가 낮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전이 답을 못했다.
충격을 받았던 것은 거기 사는 주민들 이야기였다. 그곳 주민들이 우리는 아직 철탑이 들어서기 전이라고 하니 ‘죽기 살기로 막으라’고 했다. 어르신들이 밭에서, 논에서 일하다 들어오시는 분들 얘기를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밀양 송전탑 갈등조정위원회 이전에 한전이 고수한 전자파 노출 기준은 833mG(밀리가우스)였다. 이 수치는 갈등조정위원회에서 4mG로 대폭 낮아졌다. 주민대표 쪽 전문가와 한전 쪽 전문가, 갈등조정위원회 위원, 주민들이 1박2일 전자계 워크숍에서 합의한 결과였다. 안씨는 당시 워크숍에 대해 “우리 쪽 전문가가 833mG를 고집하는 한전 쪽 전문가한테, 그럼 똑같은 수치에 노출시켜도 되겠느냐고 논박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송전탑 전자파 안전과 관련해 △송전선로와 가옥 간 이격거리를 최소 100m 이상 △전자파는 4mG 이하라는 두 가지 조건이 구체적으로 생겼다. 그러나 한전은 입장을 바꿨다. 애초 “밀양 지역에 한해서 100m 이격거리와 4mG를 맞춘다”고 합의서에 명시하는 것에 동의했던 한전은 “100m 이상 이격되어 있어 4mG 이하가 된다는 예측 결과를 지키도록 노력한다”는 문구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갈등조정위원회 최종 합의서에는 전자파 관련 내용이 빠졌다.
한전의 회유 시도가 있었나.내가 돈 받았다는 소문이 나서 상동면대책위원장을 그만뒀다. 돈 받았다는 음해는 본인이 가장 늦게 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 했는데 수녀님이 마음에 상처 남는다고 말려서 참았다. 상동면대책위원장을 그만두고 밀양시대책위에서 대외협력국장을 했다. 그때 나한테 사적으로 제안이 왔다. 마을발전기금 47억원 받고 한전과 합의하라고. 대책위원회를 해산하면 대책위에 3억원을 준다고 했다. 그때 각 마을 대책위원장이 7명 정도였는데 한 사람이 4천만원씩 나눠 가지라는 얘기였다. 또 대책위 명의로 장학회를 설립해준다고도 했다. 내가 반대했다.
안씨는 신고리 핵발전소나 밀양 초고압 송전탑이 ‘실험용’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2013년 5월 변준연 한전 부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을 ‘양심선언’이라고 말했다. 변 부사장은 당시 “신고리 원전 3호기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의 레퍼런스 플랜트로 2015년까지 가동을 안 하면 페널티를 물도록 계약돼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통해 밀양 송전탑 강행이 전력 수급 문제가 아니라 원전 수출 때문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변 부사장은 다음날 사표를 제출했다.
“하루에 28억원 손해 본다 거짓말했다” 한전에 대한 주민들의 상처와 불신이 큰 것 같다.갈등조정위원회 할 때 우리가 밀양 철탑 필요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때 전력 계통 담당하는 한전 간부가 사석에서 “자기가 대통령이고 한전 사장이면 밀양 철탑 필요 없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철탑이 안 들어서면 신고리 핵발전소 생산 전기를 송전을 못해서 하루에 28억원씩 손해 본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때 우리 도와주던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손해배상 청구당할까봐 엄청 떨었다. 밀양 철탑의 실체는 변준연 부사장의 양심선언으로 다 알려졌다. 정부도 한전에 속은 거였다.
밀양(경남)=글·사진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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