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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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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못 먹고 병원 가는 내 딸

심장기형으로 5년째 고통받고 있는 채송화 닮은 딸, 일하고 싶어도 아이와 떨어질 수 없어 더 절박한 경희씨 이야기
등록 2015-06-10 21:42 수정 2020-05-03 04:28
지난 6월3일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만난 경희(가명)씨. 장발장은행 대출금을 갚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딸아이가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

지난 6월3일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만난 경희(가명)씨. 장발장은행 대출금을 갚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딸아이가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

바람이 불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경희(40·가명)씨는 악플 얘기를 꺼냈다.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죄를 지었으니 벌금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도 했다. 선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지만 바람에 떨리는 옷자락은 감출 수 없었다. 날렵한 아가씨의 하얀 스커트에 묻어버린 김칫국물처럼, 경희씨의 고운 목소리에는 쓸쓸함과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아이들 한 명 없는 놀이터에 바람이 불었다.




기획 연재 - 우리 시대 ‘장발장’들


전기와 물이 끊긴 집, 지인에게 빌린 돈

경기도의 한 중소 도시. 6월3일 만난 경희씨는 다섯 살 된 딸아이를 둔 엄마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아이를 임신했고 결혼을 앞두고 있던 경희씨에게 삶은 기회를 더는 주지 않았다. 임신중독증으로 몸은 갈수록 무너졌고 체중은 거꾸로 늘어만 갔다. 병원 의사는 아이를 낳는 것이 위험하다고 했지만 경희씨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버티고 싶었다.

버틸 수 없었다. 시부모에게도 불행은 이어졌다. 시아버지가 심장질환으로 쓰러졌고 며칠 뒤에는 시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았다. 남편 될 사람의 여동생은 장애가 있었다. 성한 사람 찾기가 어려운 집이었다. 시어머니는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빚까지 떠안았다. 경희씨가 고된 몸을 의탁하려던 가정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논바닥 같았다. 혼인신고도 못하고 남자와 헤어졌다.

겨우 아이를 낳았다. 자주 아팠다. 아이는 잠을 잘 못 잤다. 엄마도 아이도 자주 울었다. 경희씨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렸다. 아이가 생후 8개월이 됐을 때에야 심장기형이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돈이 필요했다. 남편 이름의 아파트는 이름만 그의 것일 뿐 은행에 이미 넘어간 상태였다. 경매에 부쳐진 아파트는 모래성만도 못했다.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불안을 먹으며 하루하루 지냈다. 아이는 언어 발달장애까지 있어 경희씨와 단 1초도 떨어질 수 없었다. 아이를 지키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물이 다 끊겼다. 그런 집에서 1년 넘게 지냈다. 초인종이 울리면 숨을 죽여야만 했다. 결국 아파트는 2013년 경매로 처분됐다. 딸아이를 안고 거리로 던져진 경희씨의 주머니에는 10만원이 전부였다.

지인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총액이 550만원. 밥을 못 먹어도 병원에는 가야 했다. 아이는 계속 아팠다. 빌린 돈으로 생명줄을 움켜쥘 수 있었지만 갚을 길은 없었다. 참다못한 지인은 경희씨를 고소했다. 애초에 갚을 의사가 없었으면서도 돈을 빌렸다는 것. 형법은 이를 사기로 규정한다. 지난해 4월 벌금 300만원이 확정됐다. 24절기 돌아오듯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 경희씨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그에게 정부가 다달이 주는 85만원가량의 지원금이 수입의 전부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을 기준으로, 한 달에 209시간을 일하면 116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경희씨는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경희씨의 삶은 한여름에도 영하다.

벌금을 갚고 창문을 활짝 열고 불도 켜고

아이는 돈을 염려하며 아프지 않는다. 지난해 11월에는 나흘간 입원까지 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여서 건강보험 헤택을 많이 볼 것 같지만 현실은 차갑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비급여 항목이 늘 따라붙는다. 나흘 동안의 병원비 74만200원 가운데 경희씨가 내야 할 돈은 40만8천원이었다. 병원비의 절반이 넘고, 경희씨 한 달 수입의 절반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암·심장병·뇌혈관질환·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 국가가 진료비 100%를 부담해준다고 공약했다. 경희씨도 이를 믿었다. 그러나 100%라는 숫자에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은 애초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경희씨의 진료비 영수증에서 비급여 항목 진료비가 여전히 절반이 넘는 이유다.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 석 달 정도를 아이에게 밥을 못 해줬어요.” 월세 17만원에 전기·수도 요금까지 돈 들어갈 곳은 기막히게 돌아온다. 식빵이나 국수 몇천원어치를 사서 끼니를 잇는 날이 이어졌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주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궁박한 경희씨 앞에 날아든 벌금 납부 독촉 고지서는 경희씨를 날마다 겁박했다. 일주일마다 지명수배, 가압류 따위 무서운 낱말이 쓰인 문자메시지가 왔다. “쳐다보기조차 무서웠어요.” 창문도 열지 못했다. 밤에도 불을 켜지 못했다. 채탄장 같은 어둠에 엎드려 오로지 아이만 부둥켜안고 지내야 했다. 사람이 찾아오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루치 노역이 5만원으로 계산돼, 자칫하면 두 달 동안 구치소에 갇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돈이 있으면야 당장이라도 갚고 싶지만 경희씨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11년 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외동딸인 경희씨가 기댈 일가붙이는 없다.

경희씨는 의 연재 기사를 인터넷으로 보고 장발장은행을 알게 됐다. 지난 4월 말 신청서를 보냈고 5월에 대출금을 받아 벌금을 갚았다. 벌금을 상환한 날 경희씨는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었다. 불도 켜고 지낸다. “엄마, 왜 불 끄고 있어야 돼?”라고 아이가 물어도 제대로 대답을 못해주던 날이 1년보다 길었다. “나를 한 번 보지도 않았는데 벌금을 빌려주시니 정말 고마운 곳이에요.” 경희씨는 장발장은행에 이달부터 20만원씩 상환할 참이다. 기초생활수급비 85만원 가운데 20만원을 무조건 떼어내 갚겠다고 했다. 그래야만 다른 분들이 또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경희씨는 잘 안다. “아이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에요. 사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갚을 거예요.”

곧 해야 할 2차 수술, 여전한 가난

경희씨는 울었다. 아이는 다시 아프다. 나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2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돈이 없다. 동화 의 마지막 대목, 소녀가 하늘나라로 올라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을 아이와 함께 보며 가슴을 찢었다. ‘나도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아이가 말할 땐 눈물이 함박눈이 됐다. 어느 날엔가는 정말 아이와 함께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는 무서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경희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사진 속 아이는 채송화를 닮았다. 경희씨가 ‘오늘 하루라도 더 버텨보자’고 다짐하게끔 하는 아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경희씨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세월 앞에 경희씨와 아이가 서 있다. 바람이 불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가난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모아 지난 2월 문을 연 장발장은행이 6월4일 100일을 맞았습니다. 무이자·무담보로 벌금을 대출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은 장발장은행의 도움을 받은 우리 시대 ‘장발장’들의 사연을 연재합니다. 기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뉴스펀딩에도 매주 월요일 오후 공개됩니다. 뉴스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 대부분은 장발장은행에 전해집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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