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우리 시대 ‘장발장’들
“총각입니다.” 철수(46·가명)씨는 잘생겼다. 맨발에 슬리퍼, 허름한 셔츠를 입은 그는 어린이날 병원에 갔다. 이틀에 한 번꼴로 간다. 만성신부전증. 그의 젊음이 끝내 해독하지 못한 질병이자, 그의 청춘을 모조리 감염시킨 질환. 서른셋 콩처럼 단단한 나이에 그의 콩팥은 기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여인도 그때 잃었다. 약혼을 했었다. 참한 아가씨를 참 사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머리가 이상했다. 불길한 자각 증상을 느끼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뇌경색. 중환자실에서 스무 날 넘게 누워 지내야 했다. 여인은 그래도 결혼하자고 했다. 그래야 했을까. 그러지 못했다. “가라.” 그는 여인을 위해 결혼을 포기했다. “남의 딸자식 데려다가 고생시킬 순 없잖아요.” 송아지를 닮은 그의 두 눈이 아련해졌다. 싸구려 잡지에 딸린 허섭스레기 같은 부록처럼, 그때 신부전증 진단까지 받았다. 그의 여름이 이울고 있었다.
어린이날 만난 그는 투석 치료 중이었다. 아침 7시 병원에 오면 정오가 되어서야 끝난다. 이틀에 한 번씩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죽는다. 물을 평소보다 조금만 많이 마셔도 그의 입에서는 암모니아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위험신호다. 그의 콩팥은 이틀마다 ‘데드라인’을 명령한다. “한번 보실래요?” 그가 소매를 걷어 내보인 손목은, 마치 거기에 작은 심장이 또 하나 달린 것처럼, 아니 송사리를 손에 쥐었을 때 펄떡이는 것처럼, 아니 13년 전 그 아가씨와 이별하고 돌아서던 날 그의 심장처럼, 거센 박동을 하고 있었다. 원활한 투석 치료를 위해서는 동맥과 정맥을 연결해 혈류를 더 빠르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만성신부전증 5기다. 암으로 치면 말기, 그의 콩팥에 남은 기능은 6%다. 10년 넘게 약물치료로 버텼지만, 한계에 부닥쳐 지난해 10월부터 투석 치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철수씨는 강원도 태백 사람이다. 태백에 가면, 어느 집이든 산이 마당에 발을 담그고 있다. 당장 마당에 쏟아질 듯 바투 다가선 산들 굽이마다 집들이 도란도란 이어져 있는 동네. 거기서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햇볕 짱짱한 이날도 어머니는 앞산에서 채취한 두릅을 손질하고 있었다. 값이 쏠쏠해 반찬값을 할 만하다. 그의 다섯 동생들은 모두 타지에 산다. 장남인 그가 집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는 40년가량 광부로 일했다. 12년 전, 진폐증으로 돌아가셨다. 지금 태백에선 더는 석탄 분진이 날리지 않는다. 청정 고장이 된 태백에선 제 몸의 허파에 쌓인 석탄 분진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이 쿨럭쿨럭 세월을 견디고 있다.
아가씨를 잃고 건강을 잃기 전까지 그는 10년 넘게 서울에서 벽지회사 영업사원으로 뛰었다. 양복 바짓단 가운데가 해질 정도로 그는 뛰었다. 남한테 악한 말 한마디 못하는 그는 성실하게 살았다. 성실한 과로가 결국 병을 불렀다. 2004년 그는 태백으로 올라왔다. 남들은 서울로 올라가고 고향으로 내려온다고 말하지만, 그는 서울에 내려갔다 태백으로 올라왔다. 태백의 평균 해발고도는 600m를 훌쩍 넘는다. “저처럼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이 요양하기에 좋은 곳이에요.” 해바라기처럼 그가 웃었다. 막내 여동생이 신장 하나를 떼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단박에 거절했다. 행여 동생 건강을 해칠까 두려워 그는 스스로 감당하고 있다.
철수씨는 고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사달이 난 2013년. 직장 급여는 형편없었다. 당시 시간당 최저임금 4860원에서 1원도 더 받지 못했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규직 사원들은 철수씨 같은 비정규직을 등 떠밀었다. 노사 갈등이 불거졌고 연일 비정규직 사원들의 집회·시위가 이어졌다. 정규직 노조위원장은 두릅 한 잎만큼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철수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30여 명은 그의 집으로도 몰려갔다. ‘노동자 잡아먹는 비정한 노조위원장…’ ‘살인자’ 같은 험악한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들고 안내문을 주민들에게 돌려 호소했다. 무더기 해고를 피하려다 피소됐다. 명예훼손과 모욕. 법원은 고소인의 손을 들어줬고 철수씨와 동료들은 재판에서 자신들의 절박과 궁박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항소 기한을 실수로 넘기는 바람에 벌금형이 그냥 확정되고 말았다. 비정규직 노조 간부였던 철수씨에게 300만원, 동료 둘은 200만원씩 벌금을 내라는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그는 이전까지 죄를 짓지 않았고 당연히 전과가 없었다.
등 떠밀던 정규직 동료들
노조 조합원들이 벌금 모금에 나서주었다. 그러나 최저임금으로 옹색하게 지내는 동료들은 모두 가난했다. 2명의 벌금을 가까스로 모았지만 철수씨 몫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직장을 잃고 복직 투쟁에 나선 철수씨에게는 빚이 1천만원 가까이 쌓여 있기까지 했다. 지난해 6월부터 1년 가까이 그는 벌금을 내지 못해 불안을 먹고 살았다. 입술이 한여름 고추처럼 타들어갔지만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그였다. 기능 대부분을 잃은 그의 콩팥은 좀처럼 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불심검문에라도 걸리면 그는 꼼짝없이 하루 10만원씩 쳐서 한 달 동안 구치소에 갇혀 지내야 한다. 문맹인 홀어머니는 이런 사정을 모른다. 그러다 장발장은행을 만났다.
“되지 않을 거 같았어요. 신청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었죠.” 지난 4월 장발장은행 6차 대출자로 선정된 그는 벌금 300만원을 깨끗이 납부했다. 그가 내보인 서류철 첫머리에는 ‘상환 계획서’가 적혀 있었다. 다음달부터 10개월간 다달이 30만원씩 갚을 참이다. 철수씨는 지금 2개월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곳에서 일한다.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이틀마다 빨간불이 켜지는 콩팥을 안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은 많지 않다. 그가 하는 일의 세목은 밝힐 수 없다. 태백은 좁아, 밝히면 그가 누군지 금세 안다. 벌금형 받았던 사실을 홀어머니가 알까 그는 두렵다. 그는 내년 3월까지 대출금을 다 갚고 나면 장발장은행에 조금씩이라도 후원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는 노동운동 하면서 더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나무라셔요. 하지만 후회 안 해요. 눈이 뜨인 거니까요. 비정규직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으니까.” 그의 작은 방 책꽂이,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펴냄). 지난해 그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도 3차례 다녀왔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돕고 싶었다고 한다. 세월호 소식지가 책상머리에 가지런히 붙어 있다.
태백에 가면, 아가씨 생각난다. 예전 그 아가씨 생각이 가끔 난다는 철수씨가 생각난다.
태백=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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