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제주4·3이 70주년을 맞습니다. 70년. 생각해보면, 참 아득한 세월입니다.
4·3을 주제로 한 통권 특집호로 이번호를 준비하며, 한반도 최남단 제주에서 이같은 참극이 벌어진 이유는 뭘까 골똘히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그동안 나온 연구는 많습니다. 2003년 12월 정부가 내놓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볼까요. 보고서는 4·3에 대해 ‘해방 이후에도 온존한 친일 세력에 대한 제주 사회 내 불만이 쌓여 있는 가운데 △외지 출신 도지사의 편향적 행정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검거 선풍 △이후 발생한 여러 테러·고문치사 사건 등의 실정이 이어졌고, 여기에 1948년 5·10 단독선거를 막고 분단을 저지하려는 남조선노동당의 무장봉기가 결합돼 발생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민중항쟁이 최소 3만 명 이상이 숨지는 한국사 최대의 비극으로 발전한 1차 책임은, 1948년 10월부터 6개월 동안 제주 중산간 마을 초토화 등 강경 작전을 폈던 9연대장(송요찬)과 2연대장(함병선)이 져야 하고, 최종 책임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고서는 적시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또 군의 강경 작전을 지휘·격려한 미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의 책임도 잊지 않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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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 눈길을 잡아끈 것은 군의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살해된 박진경(1920~48·11연대장. 당시 9연대와 11연대는 합쳐진 상태였음)이란 20대 청년이었습니다. 그를 살해한 것은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 등 그의 수하에 있던 군인들이었습니다. 군법회의에서 손선호가 남긴 발언을 들어봅시다.
“박 대령의 30만 도민에 대한 무자비한 작전공격은 전 연대장 김익렬 중령의 선무(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작전과 비교해볼 때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화북이란 부락을 갔을 때 15살가량 되는 아이가 아버지의 주검을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살해했다. (중략) 사격 연습을 한다며 부락의 소 등 가축을 난살했으며 폭도가 있는 곳을 안다고 안내한 양민을 안내처에 폭도가 없으면 총살했다. 또 매일 한 사람이 한 사람의 폭도를 체포해야 한다는 등 부하에 대한 애정도 전연 없었다.”
박진경에 대한 정부 인사 기록을 뒤져보면, 그는 경남 남해 출신으로 진주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오사카외국어대학 영어과에 진학했습니다. 이후 학병으로 징집돼 일본육군공병학교를 졸업한 뒤 제주에서 일본군으로 복무했다는 기록과 증언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부하들의 혹평과 달리 미군 쪽의 평가는 매우 좋았다는 것입니다. 박진경은 11연대장으로 부임하기 직전 통위부(현 국방부) 인사국장(인사국장은 어느 조직에서나 요직입니다)을 지냈고, 진급도 이례적으로 빨랐습니다. 노영기 조선대 교수(사학)의 박사학위 논문 ‘1945~50년 한국군의 형성과 성격’을 보면, 박진경은 “국방경비대에서 누구보다 능력을 인정받았던 최고 지휘관 중 한 명”으로, 1948년 6월1일 대령 진급이 이뤄질 때 군(당시 국방경비대)내 대령은 옛 일본육사 출신 까마득한 선배들을 포함해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합니다. 당시는 영어 능력이 중요하던 시대였으니, 오사카외대 영어과 출신인 그의 어학 능력이 출세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 때 대학 교육을 받고, 영어에 능통하며, 조직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28살 젊은이가 저 피비린내 나는 비극의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그가 살해된 당일 한국을 좌지우지하던 윌리엄 딘 군정장관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내려와 수사를 지휘했다 합니다. 비극을 몰고 오는 것은 ‘악인’이 아니라, 사회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할 줄 모르는 평범하고 유능한 ‘보통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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