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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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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평화와 만나야 한다

4·3의 사회 통합적 극복을 목표로 한 특별법 개정안…

국가에 정의는 물론 인도적 책임까지 물어
등록 2018-03-21 08:53 수정 2020-05-02 19:28
지난 3월12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맨 오른쪽)가 제주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원희룡 제주지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12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맨 오른쪽)가 제주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원희룡 제주지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제정은 4·3 진상규명 운동의 큰 결실이었다. 제주4·3위원회는 허약한 조사 권한에도 2003년 12월 를 발간했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이후 2007년 4·3특별법을 개정해 수형인(受刑人·감옥에 갇힌 사람)을 희생자 범위에 포함하고, 평화재단을 만들어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추가 조처를 시행했다. 이는 희생자, 유족, 제주도민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별법 개정안 국제 기준에 맞게 수정

그사이 한국 사회는 과거 청산과 관련해 크고 작은 성과를 만들어냈고, 이는 정의와 권리에 대한 4·3 관련자들의 감정을 일깨우고 강화했다. 피해자와 유족은 진상규명과 상징적인 명예회복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과거 청산 작업의 성과를 참조하며 4·3의 정명을 시도하고 국가 책임의 이행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요구를 받아안아 4·3 70주년을 앞둔 2017년,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의 법개정특별위원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 법률지원단이 만들어져 법 개정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팀은 국내 과거 청산의 성과와 국제 기준(유엔총회가 2005년 채택한 ‘피해자 권리장전’)을 함축적으로 반영하며 4·3의 해결 방향을 제시했다. 이 법안을 제주 출신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이어받아 보완을 거친 뒤 2017년 12월19일 개정안을 발의했고, 대정부 질의를 통해 4·3에 대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원칙적인 태도 표명을 이끌어냈다.

시민사회는 이렇게 만든 4·3특별법 전부개정안(개정안의 명칭은 ‘제주4·3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바뀌었다)을 ‘제주4·3법의 2.0 버전’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청산은 하나의 조처나 법률로 완결되지 않지만,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일곱 가지로 요약해 소개해본다.

보수 정권에서 유명무실했던 4·3위원회

첫째, 법안에 피해자와 유족의 권리, 제주도민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조항을 뒀다. 그동안 과거 청산 과정에서 희생자와 유족은 정부 시책 대상으로 위축돼왔다. 그렇기에 작업팀은 4·3뿐 아니라 피해 회복 과정에서도 이들을 권리 주체로 상정했다. 특히 4·3은 제주도민의 항거와 결부된 집단적 사건이기에 제주도민의 자주적 의사를 주목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이들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고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제주4·3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특히 추가적인 피해 신고와 진상 조사를 하도록 했다. 보수 정권 아래서 제주4·3위원회는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 그래서 개정안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법이나 세월호법을 참조해 애초 4·3특별법에는 없던 조사 권한을 추가했다. 이를 통해 한층 보강된 각론 보고서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셋째, 제주4·3 군사재판을 무효화하는 조처를 규정했다. 제주에서는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에 걸쳐 법적으로 매우 의문스러운 군사재판이 열렸다. 군사법원은 관련자 2500여 명에게 장·단기 징역형에서 사형까지 중형을 선고했다. 이 재판은 약식 또는 자의적 처형이라 할 정도로 부적절한 군사 조처였다. 더구나 재판서(판결문)도 없이 이 조처를 집행했다. 이런 군사적 처분에 재심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재심 재판을 하려면 판결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없는 판결문을 법원에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결문이 난리 중에 소실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이 이미 증명됐다. 그렇기에 사법적 재심 절차 대신 외국의 유사 법제를 참조해 판결을 입법적으로 무효화하려 했다. 법물신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의 사법 문화를 생각할 때 입법으로 재판을 무효화하는 것은 충격적 해법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제주4·3 군사재판이 그만큼 법 파괴적이고 야만적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넷째, 피해자와 유족의 보상 규정을 도입했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보상받는다’는 것은 과거 청산의 법리상 이제 하나의 상식이 됐다. 그러나 4·3에서는 이런 기본적 정의가 미뤄지거나 배제됐다. 비판가들은 가해자에게 형사처벌이 없는 피해보상을 도덕적으로 힐난하지만, 가해자 처벌은 지금은 돌파하기 어려운 장벽이라 보고, 응보 대신 보상을 추구했다. 이 경우 희생자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좌우를 막론하고 평등하고 실질적인 보상을 하는 게 중요하다.

다섯째,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명문화했다. 어린 시절 비극을 당한 사람들이 친척이나 이웃의 호적부(가족관계등록부)에 입적해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개정안은 가족관계등록부가 사실과 다를 때, 제주4·3위원회에 신청해 먼저 유족으로 인정받은 뒤 법원에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여섯째, 제주4·3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하고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했다. 4·3은 불과 2~3년 사이에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고, 중산간 마을은 무장대 진압을 명분으로 군경이 완전히 파괴했다. 개정안에는 유족들이 심리적 고통과 정신적 질환을 치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트라우마센터 설치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다양한 처방을 시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곱째, 제주평화공원은 지난 몇 년 동안 우익들이 ‘폭도공원’으로 매도했다. 70년 전 군정의 일방적 정책과 유엔헌장에 반하는 분단국가 탄생에 항거한 제주도민을 폭도로 규정한 것은 부당한 2차 가해다. 그래서 4·3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부인, 역사 왜곡 행위에 준해 규제할 수 있게 했다.

4·3의 사회 통합적 극복에 나서야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정리하고 과거의 불법을 사회 통합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70년의 세월을 보낸 지금 우리는 명예로운 휴전을 추구해야 한다. 4·3을 타자의 역사로 더 이상 억압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역사로 수긍해야 한다. 더구나 분단 극복과 평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4·3의 정리 작업은 평화를 형성하는 연습 공간이다. 4·3 70주년은 피해 생존자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마지막 10년이다. 그래서 개정안은 국가에 정의의 책임을 촉구할 뿐만 아니라, 피해 생존자의 고통에 대한 인도적 책임까지 더하려는 채찍이고자 한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정책기획위원장·제주4·3희생자유족회 법률지원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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