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군사재판 희생자 명예회복 시급”

4·3 전국 분향소와 광화문문화제 준비하는 범국민위 박찬식 운영위원장…

“판결문 없어 재심 청구 불가, 특별법 개정으로 해결해야”
등록 2018-03-21 17:50 수정 2020-05-03 04:28
4·3과 내일
제주4·3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유족의 한은 현재진행형이다. 부모를 잃고 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멸시를 견뎌온 세월 앞에서 국가는 오늘도 말이 없다. 유족들이 4·3특별법 개정으로 4·3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요구하는 이유다. 당시 진압작전을 지휘했던 미국에 책임을 묻는 일도 더는 미룰 수 없다. 4·3 70주년을 맞아 이제는 풀어야 할 남은 과제들을 짚었다.
[%%IMAGE1%%]

‘4·3의 전국화’.

70주년을 맞는 제주4·3의 올해 화두다. 4·3의 아픔과 평화의 가치를 한국 사회와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다. 광주만의 5·18이 아닌 것처럼 제주만의 4·3이 돼선 안 된다는 고민도 담겼다.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이하 4·3범국민위)가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 4·3범국민위는 제주4·3 70주년을 맞아 4·3사건의 완전 해결과 역사적 재평가를 위해 지난해 4월 전국의 226개 시민사회단체와 각계 원로들이 모여 출범한 연대체다. 4·3사건 70주년의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터. 3월 말부터 시작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회를 비롯해 전국 분향소 설치와 기념행사(4월1~7일), 광화문국민문화제(4월7일)까지 70주년 기념사업도 역대급 규모다.

행사 실무와 추진을 맡은 4·3범국민위 박찬식 운영위원장(사진)은 3월5일, 과 만난 자리에서 “미군정기에 발생한 4·3사건에서 강경 진압 작전을 주도하고 승인한 것은 미군정”이라며 “그런데도 미국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70주년을 맞아 4·3특별법 개정으로 정의로운 청산과 치유를 마무리하려면 미국의 학살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거리 서명과 SNS 등을 통해 3월 말까지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미국 정부에 직접 제출하겠다”고 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4·3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맨 앞에서 고생을 자처해온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걸까. 4·3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보여주듯, 4·3범국민위 사무실에서 이뤄진 2시간가량의 인터뷰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군사재판 희생자들 가장 억울”4·3사건이 70주년을 맞은 올해 범국민위 주도로 4·3특별법 개정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개정안의 핵심 골자는 무엇인가.

먼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이다. 1999년 법안을 제정할 때 이미 우리 쪽 초안에는 배상까지 포함돼 있었다. 당시 진상 규명이 안 돼 진상 규명 이후로 미루자고 해서 빠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4·3특별법은 진상규명법에 해당된다. 특별법에 따라 진상이 규명됐고 국가를 대표하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도 있었다. 이제 그 후속 조처로 최소한의 배상과 보상을 미룰 수 없다. 진상 규명 뒤 상황 변화도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이 일부 보상을 받았다. 형평성 차원에서나 피해 유족의 연령을 봐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막 기회다.

군사재판 관련 희생자의 명예회복도 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두 차례 열린 군사재판은 법적 근거나 정당성도 없이 불법적으로 일어났다. 판결문도 없이 재판이 벌어졌다. 재심을 청구하려 해도 기록이 없어 불가능하다. 어찌 보면 이분들이 가장 억울할지 모른다. 유족이 억울하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는데, 중산간 부락에 있다가 토벌대에 학살당한 분들은 ‘무슨 죄가 있으니 감옥에 간 거 아니냐’는 낙인이 찍혔다. 수형인명부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후손이 가장 심한 연좌제 피해를 봤다. 사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특별법을 통해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1차 진상 조사 때 미진한 부분은 없었나.

2003년에 나온 보고서는 배경과 결과가 담긴 총론적인 내용이었다. 사건별 조사라든가 마을별 조사라든가, 누구는 어떻게 살았고 이후 연좌제 피해는 어떠했는지 등은 조사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각론적 조사가 남았는데 진전되지 않고 있다. 현재 법에는 진상 조사 기간이 끝나 있기 때문이다. 법을 개정해 추가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 여기에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시행과 제주4·3트라우마 치유센터 설치, 호적관계 정정 등 지원 사업도 포함돼 있다.

국회 분위기는 어떤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2월 임시국회에서 토론을 못했다. 다음 임시국회는 4월로 시간차가 있다. 법안소위원장인 권은희 의원과도 면담을 했고, 얼마 전에는 바른미래당 주최로 토론회가 열려 기존에 우리가 제출한 법안과 다른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 내용은 둘째치고라도 3월 중에 법안소위를 열어 개정안이 빨리 논의될 수 있기를 바란다. 쟁점이 생기면 행안위 전체 공청회라도 열어야 한다. 가능하면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중점 입법 과제에 4·3특별법이 포함돼 있다. 물론 한국당이 반대할 경우 방법이 마땅치 않은 점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바른미래당을 설득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정치력을 기대한다.

“문 대통령, 과거사 가장 많이 알아”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설에 문재인 대통령이 의 작가 현기영 선생에게 전화를 건 일이 화제가 됐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4·3사건 해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70주년을 맞아서도 남다른 행보를 하실 것으로 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청와대에 과거사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다. 농담으로 청와대에서 과거사 문제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말도 나온다. (웃음) 과거사 문제를 다뤄본 비서관과 수석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데 구심점이 없다. 다행히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정해구 위원장이 과거사 태스크포스(TF)를 만든다고 하는 상황이다.

7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다양한 4·3사건 행사(표 참조)가 열린다.

올해 4·3평화인권주간(3월21일~4월10일)인 4월7일 오후 6시30분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4·3에서 촛불로, 촛불에서 4·3으로’(가제)를 주제로 광화문국민문화제가 열린다. 4·3사건 추모 행사와 관련해 서울에서 문화제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문화제는 촛불혁명의 상징인 광화문광장에서 4·3사건의 의미를 촛불에 담아내고, 4·3사건 체험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청소년과 청년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열린다. 3월29일부터 6월10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는 4·3특별전도 주요 행사 가운데 하나다. 4월1일부터 7일까지 전국 주요 지역에 설치되는 분향소와 더불어 공연, 전시, 강연 등 4·3사건을 알리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기념과 함께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라는 의미도 큰 것 같다.

70주년을 맞아 4·3특별법 개정으로 정의로운 청산과 치유를 마무리하려면 미국의 학살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사실 4·3사건은 미군정기에 발생했다. 강경 진압 작전을 주도하고 승인한 것도 미군정이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도 미 군사고문단이 한국군을 통제했다. 그런데도 미국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엔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이유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미군정과 미 군사고문단의 책임 등 미국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와 공개 사과를 요구한다. 거리 서명과 SNS 등을 통해 3월 말까지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미국 정부에 직접 제출하겠다.

“4·3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다”4·3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는 어떻게 보나.

지금은 4·3이 학살과 희생의 역사로만 알려져 있다. 공권력이 저지른 국가폭력의 역사로 이해되는데 그런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나치의) 아우슈비츠처럼 일방적인 제노사이드(대학살)라고 볼 수 없다. 1947년 3월1일 집회에서 비롯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조국을 염원했던 제주 민중의 저항이 4·3의 시작이다. 항쟁과 통일운동의 하나였다. 올가을 있을 세계학술대회에서 4·3의 올바른 이름(정명)이 논의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