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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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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 사랑한 작가 김금희② ‘깊이와 기울기’

등록 2020-08-14 07:46 수정 2020-08-16 05:08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21이 사랑한 작가 김금희① “받지 않는 전화를 오래도록 겁니다”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094.html)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분투

적개심으로 시작했다가 이해로 끝맺는 김금희의 소설 쓰기는 그야말로 늘 인간을 이해하려는 분투에 가까우리라고 상상합니다. 이 분투는 그의 작가생활 11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저는 퇴고할 때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의심하고 뒤엎거든요. 초고에는 인간 김금희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화가 나 있어요. 소설을 따뜻하게 써야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계속 그 인물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열려요.”

애초에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분명한 입장이 있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되묻는 ‘질문 투쟁’이 시작됐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인터뷰에서 우리는 죽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투병 중이던 작가의 할머니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집으로 돌아오는 밤’(2013)에선 할머니가 가출을 택한 것처럼 그렸다가 나중에 다른 소설 ‘문상’(2016)에서야 구체적으로 다룰 만큼 커다란 마음의 짐으로 안고 있었습니다. 안락사를 허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작가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지금 안락사는 돈 있는 사람들이 하잖아요. 안락사가 보편화된다면 자본이 나이 들고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어떤 판단을 내릴지, 저는 전혀 신뢰하지 않아요. 아닐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자본이 노동력에 근거해 생명의 가치를 판별할 것이라는 의심이 있어요.” 작가는 거듭 “절대 믿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생명을 끝내야 할 상황에 대한 의심과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의 분투 끝에 소설 ‘문상’ 말미에서 아버지를 잃은 희극배우가 군밤 파는 할머니한테 오래 사셔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작가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무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라면 할머니한테 오래 사셔야 한다고 그런 극진함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실컷 울고 난 얼굴로

작가는 자기 영혼을 털어서 글로 뽑아내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마음의 비밀에 대해서도 좀더 물어야 합니다.

소설가 김중혁은 김금희를 어떤 행사 자리에서 처음 보았을 때 사회자인가 생각했을 정도로 말을 잘하는 작가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김금희는 말끝마다 활발하게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집에 가스검침원이라도 오면 남편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방에 숨어 있는” 폐쇄적인 그가 있습니다. 김금희 작가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의 여주인공 양희에게서 20~30대 때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열의 없이 살아가는 것, 소설을 쓰는 것 이외의 욕망은 없고 무기력하다는 점이 비슷해요.”

그래도 그 무기력은 어디서 온 것이냐고 묻자 자신을 털어서 답해주는 ‘사회적 김금희’가 있습니다. “짧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부모가 대체로 바빴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부모는 출근하고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 동안 분노와 무기력이 끓는 거죠. 세상에 대한 분노, 혼자 있을 때의 무기력. 책의 세계가 준 굉장한 위안이 있었지만 아이에겐 상처가 이미 남은 거겠죠. 그래서 세상을 살 때 완전히 안정된 기분은 아닌 것 같아요. 전 지금도 그래요. 불안의 문제가 계속 있고, 밖에선 아무렇지 않게 일하다가도 집에 딱 들어가면 다 놓아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죠.”

작가라는 직업에 늘 따라붙는 불안의 문제도 있습니다. “등단한 뒤 몇 년 동안 책을 못 냈어요. 청탁이 없었고, 투고했는데 계속 거절당했어요. 또 제가 소설을 내면 평단이든 독자에게서든 바로바로 어떤 평가가 내려집니다. 그런 스트레스가 계속 남아 있어서 심리상담을 오래 받았어요. 많이 건강해졌는데도 제가 가진 분열증 같은 것은 여전하고 글을 쓰면서 멘털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요.”

2014~2015년 동안 쓰인 소설을 묶은 <너무 한낮의 연애> 곳곳엔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징후들과 불안이 들끓었습니다. 2015~2018년 소설들인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엔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려는 노력이 가득했습니다. 2018년 짧은 소설들이 엮인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그의 에그머핀 2분의 1’)처럼 눈물 뒤끝의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이 흐름이 어느 정도는 작가 마음의 궤적을 그리고 있지 않았나 상상해봅니다.

광장 이후 가능한 변화들

“늘 내가 놓인 세대적 위치에서 정치적 맥락을 살펴보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는 김금희의 소설 세계는 그가 지금 어떤 시대를 경과하는지에 따라 계속 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소설집으로 묶이지 않은, 최근 1년 동안 그가 쓴 소설들을 보면 변화의 조짐은 뚜렷합니다.

김승옥문학상을 받은 ‘마지막 이기성’(2019년 9월)을 보면 두 주인공은 대학에서 차별 철폐 팻말을 드는 대신 텃밭을 가꿉니다. 작가가 촛불과 광장 이후의 세계를 고심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창작과 비평> 2020 여름호)는 한 진보적 청년운동가가 보수정당에 입당하는 이야기를 통해 진영논리와 “기성세대의 편협한 계급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묻지요.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문학동네> 100호, 2019 가을호)이야말로 “김금희는 연애와 연대가 교차되는 지점에 가장 속 깊게 서 있는 작가”라는 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아테네올림픽이 열리던 2004년 여름부터 황우석 사태로 떠들썩하던 2006년까지를 되돌아보며 그 시기를 건너오지 못했던 친구에 대해 생각합니다. 왜 하필 이 시기를 택했을까요? 작가는 인터뷰가 끝나고 보낸 전자우편에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참여정부는 분명 우리 세대가 이룬 하나의 성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적이고 폭력적인 한국 사회의 면면은 정권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점에서는 발견조차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사람들은 그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지요. 그런 개인들의 최선의 가능성, 그런 개인들이 이루어야 했을 매 순간의 삶의 갱신에 대해 응원하는 마음으로 쓴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관조적이고 가라앉아 있다”는 평을 들었던 여성 인물들의 변화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에 대해 “황우석 사건에서 제가 주목한 부분도 그것이 여성 연구원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실험이라는 점”이었다며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감정적 신체적 착취”에 주목한다고 했습니다. 8월3일부터 오디오북으로 연재를 시작한 김금희의 두 번째 장편 <복자에게>는 두 여자가 주인공이며 판사로 일하는 이영초롱과 간호사인 복자 외에 의사, 해녀, 제주로 내려온 젊은 여성 등 일하는 여자들이 이야기를 이끕니다. 작가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으로 공개한 인터뷰에서 “내게 제주는 섬사람들이 자기 생을 짊어지기 위해서 분투하는 장소였다”며 “일하는 사람의 세상인 제주의 모습”을 그리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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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아마 제가 작가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표현은 ‘분투’일 것입니다. 작가는 무관심하거나 무뎌지거나 반대로 너무 날카로워서 몰이해하게 되는 마음의 지점들에 맞서 분투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라진 것들을 쉽게 잊을까봐 분투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이기성’에서 유키코는 이렇게 속삭이기도 합니다. “날아온다, 아무것도 심지 않아도 저 숲에서 자라는 것들이 날아와 여기에 자리잡는다.” 저는 작가가 점점 더 편안하게 앞으로 나아가리라고 생각합니다.

김금희 제공

김금희 제공


남은주 자유기고가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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