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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 사랑한 작가 김금희① “받지 않는 전화를 오래도록 겁니다”

등록 2020-08-14 07:20 수정 2020-08-16 05:08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7월13일 ‘경애하는 마음’으로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김금희 작가를 만났습니다. 김금희(41) 작가가 지정한 이곳에서 나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인 비밀스러운 작업공간을 들여다보리라고 기대했지만, 도착해보니 이전에 다른 작가들의 인터뷰로도 여러 번 왔던 곳이었습니다. ‘나는 이 인터뷰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왔지만 막상 김금희 작가에겐 누군가가 예전에 이미 물었던 내용이어서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렇게 작가의 소설 제목들을 엮어 허튼소리나 적고 있지만 별로 부끄럽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김금희 작가는 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와 산문 ‘그러니까 여전히 알 수 없는’에서 “세상에는 어떤 책을 내든 읽어줄 삼천 명의 독자가 있다고 믿고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어왔다”고 고백했는데, 김 작가의 인터뷰 페이지를 찾아 펼치는 당신은 그 삼천 명의 독자 중 한 사람일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삼천 명의 독자란 말은 맞지 않습니다.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창비, 2018)은 지금까지 6만 부가 팔렸고, 4월에 나온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문학동네)은 5쇄를 찍었습니다. 아마 지금 젊은 여성들이 많이 읽는 작가 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짐작합니다.

그러나 나는 매주 수십 권이 새로 쌓이는 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김금희식 소설 제목들을 금세 알아보고 발을 멈추는 삼천 명의 독자 중 하나인 당신만을 향해 김금희를 만나고 온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오랫동안 김금희를 지켜보다 언제부턴가 그가 달라진 것을 알아차린 당신, 우직하지만 불안하고, 다정하지만 늘 거리를 두는 김금희와 김금희 소설의 이중성에 대해 듣기 좋아할 사람을 당신 말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도와 경도

이날 인터뷰 시간에 맞춰 김금희 작가가 흰색 천가방을 메고 카페로 들어왔습니다. 가방은 교정지와 노트북으로 불룩했습니다. “전 뭐라도 없으면 안 되는 인간이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은 모두 지고 다녀요. 특히 이어폰을 안 갖고 나왔다면 그냥 사요. 음악이 없으면 작업을 못하거든요.”

작가는 늘 오전 10시쯤이면 일거리를 가지고 카페에 자리를 잡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50장을 쓰고, 어떤 날은 전날 쓴 것을 모두 지워버리는 공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는 새 작가의 귀엔 언제나 ‘노동요’가 울립니다. 요즘엔 종일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배경음악 <사랑의 비밀>(Mystery of love)을 들으며 두 번째 장편소설 <복자에게>를 끝냈다고 합니다.

김금희 작가는 6년 동안 출판편집자로 일하다가 서른 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창작을 시작해,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로 등단했습니다. 매일 7시간씩 쓰는 습관은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늘 아침마다 어딘가로 출근해서 성실하게 써내려가던 그 시절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김금희 소설 속 인물들도 대개가 그처럼 성실하게 일합니다. 소설 ‘아이들’에 나오는 아버지는 다단계에 빠진 딸 앞에서 아버지의 오랜 노동의 날들을 이야기합니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의 주인공은 팔리지 않는 책을 성실하게 만들고, ‘모리와 무라’의 숙부는 30년 동안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단정하고 냉담하게 모욕을 견뎌왔죠. 김금희 작가는 “먹고사는 일이 지긋지긋하지만서도 살겠다라고 하는 일관된 당위”(<경애의 마음>)를 가진 사람들을 무작정 편들어줍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주로 교정교열자 조중균(‘조중균의 세계’)이나 미싱기술자 조 선생(<경애의 마음>)처럼 사라져가는 옛날 노동의 영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조중균은 예전 시위 현장에서 작자미상으로 떠돌아다니는 시들을 창작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다니는 회사에서 고문관 취급을 받으면서도 사실 기록에 대한 신념을 고수합니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노라면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그악스럽고 구차하게 느끼지만 작가는 그것을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로 부릅니다. 인천 가구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아이들’)와 건물 청소 노동자로 이태를 일한 또 다른 가족(‘노동의 자세’)은 그가 노동에 대한 남다른 윤리 감각을 지니게 된 출발점이었을 것 같습니다. 작가 자신도 스스로를 줄곧 글쓰기 노동자로 여겨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좀더 주목받죠, 신문에도 실어주고. 하지만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제 생활을 돌아보면 글쓰기 숙련공일 뿐이에요.” 이렇게 본다면 2020년 1월 김금희 작가가 저작권을 양도하라는 요구에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것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데 예민한 작가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겠구나 싶습니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철저하게 나쁜 놈들이 없는 세계

김금희 작가는 첫 번째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에서 그가 자란 도시, 인천을 중심으로 가족 문제를 썼습니다. 가출한 아버지와 죽은 친구(‘너의 도큐먼트’), 집을 나간 치매에 걸린 할머니(‘집으로 돌아오는 밤’), 자취를 감춘 애인과 죽은 오빠(‘차이니스 위스퍼’)처럼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작가는 이 책 끝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아주 오랫동안 밀고 나가야 할 생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받지 않는 전화를 오래도록 거는 것과 비슷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두 번째 소설집부터 작가는 사회 곳곳의 잊히고 밀려난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한 뒤 겪고 봤던 일들을 바탕으로 쓴 두 번째 작품집 <너무 한낮의 연애>부터 글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만약 여기에 후일담 문학 같은 느낌이 있다면 제가 일하던 출판사에서 만난 ‘386 출신’(1960~69년생)들의 영향일 거예요. 저는 어린 편집자였고, 일을 같이했다는 것은 다양한 감정과 질문을 남기잖아요.”

386이든 누구든 김금희가 ‘지나간 시절에 속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엔 결코 냉소가 없으며 소설 속 자아는 마치 자신을 들여다보듯이 강박과 불안에 갇힌 사람들의 상처를 천천히 깊이 들여다봅니다. 타인들을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이해하고 연민하는 태도에서 김금희만의 독특한 작가적 자아가 있습니다. 작가는 정리해고 위기 앞에 연대보다는 고양이처럼 혼자 견디기를 택하는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의 모 과장과 동료들에게 자신이 나태하지 않다는 확인을 요구하는 조중균 사이에서 어떤 행동의 가치를 두고 저울질하지 않습니다. 또 가끔은 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살아온 오빠(‘보통의 시절’)나 입만 열면 사회정의를 말하지만 실상은 권력과 사회적 위치에 중독된 공효상 의원(<경애의 마음>) 같은 폭력적인 인물들의 마음조차 찬찬히 들여다보는 바람에 독자는 누구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정말이지 ‘김금희 세계’에는 구제불능인 사람들은 있을지 몰라도 철저하게 나쁜 놈들은 거의 나오질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선 자신을 “평상시 냉소를 모자처럼 쓰고 다니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인터뷰에선 김금희 소설 속 자아와 실제 김금희에 대해 꽤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소엔 소설에서처럼 세상을 그렇게 보지 않아요. 제 소설들은 냉소와 싸운 결과물인 거죠. 개인적으로는 사실 수시로 냉소와 무기력이 침범해 들어오는데 어쩌지 못하고 속수무책 망하는 사람인데, 글을 쓸 때만은 문학의 힘을 빌려서 저를 처지게 하고 날카롭게 하는 마음을 누르는 것에 가깝습니다”는 것이 김금희 작가의 자기 분석입니다. “저 자신을 굉장히 차갑게 돌아보는 편이고 세상에 대해서도 약간의 적의와 대체로 화나 있는 게 맞고. 작가들은 다 그럴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왜 쓰려고 하겠어요.” 작가는 항상 화가 나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발랄하게 웃었습니다.

*21이 사랑한 작가 김금희②김금희의 ‘깊이와 기울기’ 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095.html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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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의 제목

김금희 소설은 우선 눈에 띄는 제목으로 존재감을 키운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규카쓰를 먹을래, 우리가 헤이,라고 부를 때…. 한국어에 낯설게 조합된 말들, 감성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단어들은 김금희 소설의 전매특허다. 김금희는 지금까지 모두 7권의 책을 냈는데 그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만 편집자가 제안한 제목이고 나머지는 모두 작가가 붙인 제목이다.

김금희의 제목들이 낯선 질감을 갖는 이유는 그가 어떤 풍경이나 이미지에서 이야깃거리를 떠올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은 작가가 좋아하는 화가 조장은의 세 번째 개인전 이름에서 빌려왔고,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지미 헨드릭스에 대한 평론(<더 기타리스트>)에 나오는 말이다.

작가는 제목에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기를 즐긴다. ‘너무 한낮의 연애’라는 제목은 일상적이거나 세속적인 시간인 한낮에 낭만적인 연애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가난과 진로 문제로 젊은 시절의 사랑은 쉽게 끝날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예고하기도 한다. 올해 펴낸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작가는 “우리가 향하고 관계 맺는 모든 것의 기저에 사랑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연애소설을 잘 쓰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이 책엔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와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남은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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