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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에 아로새긴 ‘약자 보호’의 꿈

노회찬 의정활동 7년 동안 1029건, 대표발의 127건 내놔…

1호 대표발의 법안은 ‘호주제 폐지’
등록 2018-07-31 16:38 수정 2020-05-15 20:27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7년 3월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2년 전 통과됐지만, 새로운 신분증명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관련 법안의 처리를 촉구했다. 한겨레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7년 3월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2년 전 통과됐지만, 새로운 신분증명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관련 법안의 처리를 촉구했다. 한겨레

“저는 법도 인간의 체온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법을 왜 만듭니까? (중략) 그리고 이 피해자들의 현재의 절박한 처지까지 우리가 감안한다면 이것을 갖다가 언제 통과되어도 완벽하게 만들어서 통과시키자는 식으로 해서 마냥 늘여서 심사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에….”

2017년 1월20일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 법안을 논의하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 “조문들을 놓고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법안 소위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태도를 보이자 이에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10년간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신음하던 이들이 간절하게 통과를 바라던 법안이었다. 결국 법안은 이날 본회의에서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 공론화

정치인에게 인터뷰 자리나 사석에서 “왜 정치를 시작했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이 대동소이하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입법이 필요하더라고요.” “입법으로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려고….” 법안은 국회의원이 초심을 얼마나 잊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가늠자다. 법안은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이 꿈꾸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이 7년간 의정활동을 하며 발의한 1029건(대표발의 127건)의 의안은 때때로 약자와 소수자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법 조항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으려 한 시도였다. 그가 발의안 법안에는 민주노동당으로 시작한 진보정당의 역사와 진보정치인 노회찬이 꿈꾼 세상이 담겨 있기도 하다.

노 의원의 의정활동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공론화한 입법이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한 그가 처음 대표발의한 법안은 ‘호주제 폐지’를 담은 ‘민법일부개정법률안’(2004년 9월 발의)이다. 김용갑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남성 의원들을 향해 “속으로는 반대하면서 줏대도 없고 소신도 없이 일부 여성들의 주장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 차라리 불편한 것은 떼어버려라”고 호주제 폐지 반대를 공공연히 주장하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남성 의원으로서 호주제 폐지의 깃발을 든 것이다. 2004년 12월1일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그는 “왜 남성으로서 그런 주장을 하시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지요”라는 한 의원의 질의에 “부와 모에 의해서 자식들이 태어나는데 그 자식들이 부모 중 어느 일방의 성을 법률적 강제에 의해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취득하게 되는 그 현실은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 가장 불합리한 제도 중의 하나가 아닌가 늘 이렇게 생각을 해왔습니다”라고 답했다.

‘을’들을 위한 입법 매달려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2005년 9월20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국회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대표발의했다. 2000년 이후 장애인들이 이동권(교통접근권) 투쟁을 시작으로 장애를 시혜와 동정이 아닌 인권 문제로 다뤄달라고 꾸준히 입법의 필요성을 외쳐왔는데, 노 의원이 이에 응답한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교육·고용·참정권 등 모든 사회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 행위로 인한 피해 보상과 구제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법안은 한국 사회의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디딤돌이 됐다고 평가받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7월23일 “노회찬 의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하고 장애인의 권리 쟁취,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함께 저항하고 싸웠던 의원이다”라는 논평을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노 의원과 함께 당시 민주노동당은 저상버스 도입 등을 뼈대로 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현애자 의원) 등을 발의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통과는 안 됐지만 노 의원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는 병역법 개정안(2004년 11월), 성소수자를 위한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2006년 10월) 등의 법안도 ‘시대를 앞서’ 발의했다.

그는 사회적 소수자를 넘어 ‘을’들에 대한 입법에도 꾸준히 매달렸다. 2005년 9월 발의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파산 절차나 개인회생 절차 중에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취업의 제한이나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법으로, 2006년 3월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그는 2005년 11월 법사위 회의에서 “IMF 이후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파산자가 사회적 냉대와 차별 속에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고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최근에도 논란이 계속되는 신용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자는 취지로 2007년 4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 애썼다. 당시 골프장과 대형 유통업체보다 영세자영업자가 두 배 가까운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것에 노 의원은 “영세자영업자를 차별해 높은 가맹점 수수료율을 부과하는 것은 신용카드사들의 부당한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가맹점 수수료는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고, 정부가 나서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을 내놓게 됐다.

20대 국회 ‘노회찬 법안’ 40건 계류 중

2013년 2월 ‘삼성 엑스(X)파일’의 ‘떡값 검사’를 공개해 의원직을 상실한 그는 20대 총선에 당선되며 선거구제 개혁이나 교섭단체 구성요건(20명→5명)을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진보정당의 활로를 모색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을’들을 위한 입법도 이어갔다. 30년간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을 일궈온 그는 마지막까지 ‘을’들을 위한 세상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 그가 발의한 법안은 40건이 계류 중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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