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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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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값 검사’ 공개로 ‘검찰의 적’ 됐다

삼성 ‘X파일’ 폭로 이후 검찰 주류의 공적이 된 정치인…

검찰 출신이 장악한 ‘드루킹 특검’에 발목
등록 2018-07-31 05:45 수정 2020-05-02 19:28
2005년 8월18일 노회찬(왼쪽)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김상희(오른쪽) 법무부 차관에게 ‘삼성 떡값’을 받았는지 따져묻고 있다. 가운데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 한겨레

2005년 8월18일 노회찬(왼쪽)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김상희(오른쪽) 법무부 차관에게 ‘삼성 떡값’을 받았는지 따져묻고 있다. 가운데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 한겨레

“엑스(X)파일에는 김상희 차관도 삼성그룹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중략) 이것을 받았는지 여기에서 한번 밝혀주시죠.” 2005년 8월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의 이 질문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녹취록인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 검사’ 명단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녹취록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삼성 부회장의 대화를 불법도청한 것이다. 앞서 녹취록 내용이 MBC 단독 보도로 공개되자 세상은 발칵 뒤집어졌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삼성의 로비 행태가 ‘당사자’의 ‘밀담’으로 확인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노회찬 폭로 뒤 언론도 일제히 보도

하지만 노 의원의 질문이 있기 전까지 삼성 돈을 정기적으로 받은 인사들의 실명은 언론에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불법도청인 줄 알면서도 그 내용을 상세히 보도할 경우 언론사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떡값 검사’는 이니셜로 보도하는 것조차 꺼렸다. 상대가 송사에 능한 법조인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떡값 검사’가 누군지 알면서도 보도 못하는 기자들의 답답함은 한여름 무더위만큼이나 짜증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 의원의 이날 질의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노 의원은 김상희 법무차관을 앞에 두고 홍석현 회장과 이학수씨의 밀담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X파일에 보면 말이지요, 홍석현… 이분이 뭐라고 얘기했는가 하면 ‘아, 그리고 추석에는 뭣 좀 인사들 하세요?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K1(경기고)들도. 검사 안 하시는 데는 합니까?’ (중략) ‘이번 목요일 김두희(전 법무장관)하고 김상희 있잖아요.’ 홍 회장이 둘을 만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학수가 리스트에 들어 있다고 확인을 해줍니다. 그러자 홍 회장이 하는 얘기가 ‘김상희 들어 있어요? 그럼 김상희는 조금만 따로 성의로서 하겠다’….” 노 의원이 녹취록 내용을 설명하는 동안 김 차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이날 노 의원이 공개한 ‘떡값 검사’들은 모두 7명으로 당대 내로라하는 검찰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었다. 기자들은 노 의원의 인터넷 누리집에 올라온 ‘떡값 검사’ 명단을 일제히 보도했다. 국회의원의 상임위 질의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노 의원의 명단 공개는 당시 삼성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다그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고교(경기고) 동창인 황교안 전 총리(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가 이끌던 검찰 수사는 삼성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국정원의 불법도청 부분 수사에만 열을 올렸다. 검찰은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는 구속까지 하는 강수를 두면서 ‘핵심 피의자’인 홍석현 회장은 소환 조사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삼성에 면죄부 준 엉터리 검찰 수사

홍 회장은 당시 주미대사에서 막 물러나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마침 이건희 삼성 회장도 미국에 체류했기 때문에 ‘처남-매부’ 사이에 말 맞추기를 할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은 홍 회장의 소환 연기 요청을 2차례나 받아주는 등 더할 나위 없이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황 전 총리는 당시 홍 회장이 소환 거부를 할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소환을 어겼다고) 그렇게 말한 적 없다. 우리가 양해하고 있는 게 있다”며 마치 홍 회장의 변호인인 양 답했다.

하지만 노 의원의 ‘거사’에도 검찰 수사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검찰은 2005년 12월14일 삼성 로비 의혹에 무혐의 결정을 내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황 전 총리는 브리핑에서 “당사자인 홍석현과 이학수가 녹취록 내용을 전면 부인해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녹취록 내용이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떡값 검사’들은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 수사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는 곧 드러났다. 수사팀은 녹취록에 등장하는 이들의 해명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특히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의 동생 회성씨가 1997년 이른바 ‘세풍’ 사건 수사 때 한 진술을 뒤집은 것을 그대로 인정한 대목이 압권이었다.

세풍 사건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삼성, 현대, SK 등 23개 대기업에서 166억여원을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불법 모금한 사건이다. 검찰은 당시 삼성 쪽이 이회성씨한테 60억원을 모금해줬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삼성 X파일 수사팀은 녹취록에 등장하는 이회성씨를 소환 조사하면서 그가 세풍 수사 때 진술한 60억원을 30억원으로 번복한 것을 그대로 인정했다. 수사팀은 “그때(97년)는 이씨가 피곤한 상태에서 진술했고, 법정에서도 공소 사실과 관계가 없어 그냥 인정했다고 한다”며 이씨의 진술 번복 이유를 친절하게 대신 설명해줬다.

이런 수사팀의 행태는 이건희 회장을 봐주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이회성씨가 받은 돈이 60억원으로 인정되면 이건희 회장의 공소시효가 10년(50억원 이상 뇌물을 제공할 경우)으로 늘어나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회성씨의 진술 번복으로 이 회장은 아무 탈 없이 미국에서 귀국할 수 있었다.

2년 뒤인 2007년에는 삼성 X파일의 내용이 상당한 신빙성이 있음을 입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용철 전 삼성 법무실장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이건희 회장이 정·관계 로비를 구체적으로 지시한 삼성 내부 문건이 공개된 것이다. 더욱이 같은 해 11월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삼성전자 법무팀 이아무개 상무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사실을 공개했다. 앞서 삼성 X파일 수사팀이 홍석현 회장과 이학수씨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대로 수사했다면 수사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검찰 주류들의 치졸한 보복

검찰의 엉터리 수사 결과를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수사팀을 지휘한 황교안 전 총리는 당시 브리핑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한술 더 떠 2년 뒤인 2007년 5월22일 노 의원을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떡값 검사’로 지목된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이 고소한 사건을 핑계 삼아 치졸한 보복을 한 것이다.

노 의원이 공개한 ‘떡값 검사’들은 당시 검찰의 주류로 분류되는 이들이었다. 또한 노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삼성이 ‘주니어급’ 검사들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 “석조(홍석조 고검장, 홍석현 회장 동생)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이건희) 회장께서 지시하신 거니까,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라는 홍석현 회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로 노 의원은 당시 검찰 주류들 사이에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엘리트 검사들을 삼성 떡값이나 받아먹는 비리 집단으로 전락시킨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황교안 전 총리는 당시 언론 브리핑 때 ‘경기고 동문들이 (녹취록 내용을 폭로한) 노회찬 욕을 많이 한다’는 말을 불쑥 꺼내기도 했다. 안강민, 홍석조 등 녹취록에 등장하는 검사들 중 상당수가 경기고 동문이었다. 당시 경기고 출신은 경북고와 함께 검찰 주류 중의 주류로 분류됐다.

삼성과 검찰에 맞선 노 의원은 이후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무려 6년 동안 형사재판에 시달렸다. 2009년 2월 1심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그해 12월 열린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홍석현, 이학수 등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노 의원을 기소한 것을 비판했다. 하지만 2011년 5월 대법원은 2심을 뒤집었다. 노 의원의 명예훼손 혐의를 무죄로 확정하면서도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는 일부 유죄를 인정해 파기 환송했다. 주심인 양창수 대법관은 “녹취록의 대화 시점은 노 의원이 내용을 공개한 시점으로부터 8년 전의 일”이라며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과거사이기 때문에 ‘비상한 공적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는 괴상한 논리를 갖다 댄 것이다. 노 의원은 2011년 10월 파기환송심 유죄를 거쳐 2013년 2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돼 의원직을 잃었다.

값비싼 대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 의원은 2년 뒤인 2015년에야 국회의원 출마 자격을 회복했다. 그는 20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16년 3월 드루킹 쪽에서 4천여만원을 받았다. 현역 의원이 아니어서 선거자금 모금이 쉽지 않은 때였다. 만약 그가 대법 판결로 의원직을 잃지 않았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드루킹 특검은 왜 그를 겨냥했나
2018년 7월23일 허익범 특별검사가 노회찬 의원의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18년 7월23일 허익범 특별검사가 노회찬 의원의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노 의원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은 ‘드루킹 사건’의 본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허익범 특검팀이 노 의원을 첫 타깃으로 겨냥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허익범 특검과 3명의 특검보 중 김대호, 최득신 특검보, 그리고 방봉혁 수사팀장은 모두 노 의원을 껄끄러워했던 검찰 출신이다. 특검 수사 참여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드루킹 특검이 국민적 의혹 해소보다는 실적을 올리려는 욕심이 너무 앞선 게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삼성과 검찰에 맞서면서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검찰이 자신을 기소하자 “검찰의 기소를 환영한다. 이건희 회장을 법정에 세워 진실을 밝혀내고야 말 것이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이어진 첫 재판에서 그는 재판장이 진술 기회를 주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똑같은 상황이 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피해를 받고 응분의 책임을 지더라도 알려야 할 것을 알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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