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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 위기 특조위, 보이지 않는 길

9월30일 이후 특조위 사무실 강제 폐쇄 예상…
세월호 인양 방식과 선체 정리 계획 해수부 뜻대로 결정될 가능성 높아져
등록 2016-09-27 12:29 수정 2020-05-02 19:28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오른쪽)이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 보장을 요구하며 8월17일부터 20일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오른쪽)이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 보장을 요구하며 8월17일부터 20일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졌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9월21일 전체회의를 열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상정하려 했다. 하지만 농해수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 9명이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요구했다. 안건조정위는 여야 동수로 구성돼 쟁점 법안을 논의하는 기구다. 상임위원회 재적인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구성할 수 있다. 법률안이 안건조정위로 넘어가면 최장 90일까지 해당 안건을 추가로 논의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버티기에 나선 것이다. 게다가 9월26일부터는 국회 국정감사가 열리기 때문에 본회의를 열어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활동 기간인 9월30일 이전에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진상 규명 의지 없음 표명한 셈

9월30일 이후 특조위는 강제 해산될 운명이다. 정부는 10월부터 서울 저동의 특조위 사무실을 강제 폐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 정부 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 17명도 모두 복귀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낼 물리적 기반이 없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 차원의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는 완전히 멈춘다. 당장 세월호 인양 뒤 선체를 조사할 주체도 없다. 세월호 인양 계획은 계속 미뤄져왔다. 해양수산부는 10월 말~11월 초 인양을 예상하고 있지만 내년까지 미뤄질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특조위 활동 때도 정부가 비협조로 일관했다. 민간에서 조사한다고 하면 정부가 더욱 철저히 무시할 것이다.

해수부가 주도하는 세월호 인양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세월호에 100여 개의 구멍을 뚫는 등 선체 훼손이 계속돼왔기 때문이다. 급기야 해수부는 세월호를 인양한 뒤 육상에서 선체를 절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9월 초에 밝혔다. 특조위는 이같은 해수부의 인양 과정을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하지만 10월부터는 세월호 인양 과정을 점검하고 문제점을 지적할 기관도 사라진다. 인양 방식과 이후 선체 정리 계획 등은 해수부의 뜻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월호는 깊은 바다에서 건져올려지자마자 조각날 운명에 놓였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9월22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간은 끝났다”고 못박았다. “검찰 조사와 또 해양심판원의 조사, 그리고 대법원까지의 판결을 통해서 세월호 사고 원인은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진상 규명이 더 이뤄질 필요가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황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후 인양될 세월호 선체) 조사 과정에서 특조위 구성원이나 유가족이 같이 참여해서 살펴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같은 말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지금까지 특조위나 세월호 유가족 등 피해자들에게 선체 조사와 관련한 계획을 명확히 밝힌 바 없다.

특조위 재구성안 새누리당 반발할 것

특조위 역시 강제 해산 이후 대응 방안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법에 정해진 활동 기간이 내년 2월까지이며 진상 조사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것이 특조위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9월30일 이후 특조위라는 조직 형태를 유지하며 조사 활동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은 모두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내부 논의가 진행 중이다.

조사 내용 정리 및 공개 방안, 조사자료 이관 계획, 강제 해산 이후 대책 등이 이른 시일 안에 주요하게 결정돼야 할 사안이다. 특조위는 9월 마지막주에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당장 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조위 조사관들이 그대로 남아 조사를 진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조사관들은 6월30일 이후 3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 중단된 상황에서 조사관 10여 명이 특조위를 떠났다. 남아 있는 조사관은 40여 명 남짓이다. 대부분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계속 진상 조사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조사관들도 있지만, 특조위가 사라진 뒤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조위 해산 이후 대안으로는 야당이 특조위를 재구성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과 민간 차원의 진상 조사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처럼 새누리당의 반발로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또 민간 조사 기구를 만든다 해도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특조위 조사관은 “내부적으로 여러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특조위가 해산되면 조사관들이 따로 모여서라도 민간 차원의 진상 조사를 하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 자격으로 제대로 조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조위 활동 때도 정부가 비협조로 일관했다. 민간에서 조사한다고 하면 정부가 더욱 철저히 무시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서 공개하는 방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민간 기구 구성, 정부 비협조 예상

또 다른 특조위 관계자는 “너무 막막한 상황이라 특조위의 미래에 대해 지금 단계에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9월30일 이후 정부가 어떤 조처를 취하느냐에 따라 여러 대응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대응이든 희망적으로 끝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한숨을 쉬었다. 특조위 이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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