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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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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감난’ 스타일

한국 ‘면장’에 해당하는 타이 토호 관료
반한 마피아식 보스 정치로 정계 쥐락펴락
등록 2014-03-26 06:19 수정 2020-05-02 19:27
‘감난’은 한국의 면장에 해당하는 타이의 토호 지방관료를 일컫는다. 지난 1월 방콕 셧다운 직전 수랏타니 등 남부 지방 ‘감난’들이 반정부 시위 무대에 올라 수텝과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감난’은 한국의 면장에 해당하는 타이의 토호 지방관료를 일컫는다. 지난 1월 방콕 셧다운 직전 수랏타니 등 남부 지방 ‘감난’들이 반정부 시위 무대에 올라 수텝과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싸이의 은 다양한 패러디 영상을 낳았다. 그중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패러디의 진수를 가장 잘 보여준 건 ‘타이 스타일’로 패러디된 ‘감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격렬하게 흔들어대는 싸이를 대신한 건 밤이면 밤마다 격정적인 연설로 반정부 불씨를 살려내는 반정부 지도자 수텝이고, 샛노란 양복에 뺀질한 신사 유재석은 그 이미지가 제법 들어맞는 재벌정치인 탁신으로 대체됐다. 마담이든 마드모아젤이든 매끈한 ‘언니들’ 사이를 황홀하게 가로지르는 싸이의 모습은 여성인구가 압도적인 중산층 시위대에 환호받는 수텝의 실제와도 잘 부합된다. 게다가 수텝은 ‘감난’ 출신 아닌가.

감난은 ‘반’(마을)과 ‘암포’(구)의 중간 행정단위인 탐본(Tambon)의 수장으로, 한국의 ‘면장’쯤 되는 지역 관료다. 26살에 감난으로, 30살에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이래 지역구를 놓쳐본 적 없는 수텝을 그의 고향 수랏타니 주민들은 ‘감난 수텝’이라 부른다. 언론이 애용해온 호칭 ‘수랏타니의 아들’도 감난의 지역적 영향력을 암시한다. 실상 가부장제 논리와 마피아식 보스 정치로 점철돼온 게 바로 감난 정치의 맨얼굴이다. 타이 사회에 묘하게 공존하는 ‘근대적 표피’와 ‘봉건적 속내’는 ‘강남 스타일’을 패러디한 ‘감난 스타일’에 아주 잘 녹아 있다.

한때 감난계 대부(代父)로 유명세를 떨친 이 중에는 ‘촌부리의 아들’ 솜차이 쿤펌이라는 인물이 있다. 일명 ‘감난 포’로 불린 그가 버스차장, 어부, 밀수업자 등을 전전하다 ‘언터처블’ 권좌에 오르게 된 것도 바로 감난이라는 동네 무대를 통해서다. 감난 파워를 이용해 사업도 확장하고 정치권력도 키워간 그가 하락세를 피할 수 없었던 것 또한 마피아식 감난 정치 탓이다. 감난 포는 2003년 촌부리의 또 다른 감난, ‘감난 윤’을 청부살해한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았다. 10년간의 수배 끝에 지난해 붙잡힌 그는 이후 건강을 이유로 감옥에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감난 대부 아버지 덕에 순탄한 정치 인생을 걷다 현재 문화부 장관인 아들 손따야 쿤펌 덕분이다.

거의 무한대나 다름없던 감난 권력에 제동이 걸린 건 타이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라 평가받는 1997년 헌법이 도입되면서부터다. 1997년 헌법은 감난과 ‘푸야이 반’(마을 이장) 등 60살까지 종신직이 가능했던 ‘동네 보스들’을 탐본행정기구(TAOs) 아래 묶어 4년 임기 선출직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2006년 쿠데타 세력이 기안한 2007년 신헌법은 이 선출 임기제를 종신제로 되돌려놓았다. 그리고 2012년, 여야가 드물게 한목소리를 낸 바 있으니 바로 감난 등 지역 관료의 선출제를 부활하고 그 임기를 5년으로 제안하자는 법안이었다. 여야의 한목소리에 감난들도 한목소리로 맞섰다. 그해 10월 전국의 감난과 푸야이 반들이 국회 앞에 모여 종신제를 선출임기제로 바꾸려는 당은 선거에서 쓴맛을 보리라 경고한 것. 감난 파워는 그대로다.

감난 수텝도 부활했다. 수텝의 텃밭 수랏타니 감난들은 방콕 시위 현장에 조직적으로 ‘출현’해왔고, 이따금 수텝에게 기부금도 바쳤다. 간헐적으로 총격전의 주인공이 된 ‘사수대’ 일부는 수랏타니 등 남부 ‘조직망’에 얽힌 이들로 알려졌다. 그러고 보니 방콕 여자가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팝콘 총잡이’가 최근 수랏타니에서 잡혔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한때 부총리까지 지낸 수텝은 반정부 시위대의 수장이 된 이래 왕년의 감난 권력을 새삼 과시하는 중이다. 그리고 지난 3월15일, 집으로 M79 수류탄이 날아들었다며 수텝의 아내 시사쿨 프롬판이 감난 수텝을 응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그들이 아무리 목숨을 위협해도, 우리 감난(수텝)은 목숨 바쳐 싸운다.”

이유경 방콕 통신원·방콕에서 ‘방콕하기’ 11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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