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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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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주5일제, 경제도 살렸다

한국 주5일제 도입에 미친 노동생산성 연구, 주4일제 도입은 ‘노동생산성’ 유지 여부에 달려
등록 2021-04-25 07:33 수정 2021-04-28 02:16
주5일근무제가 논의되던 2002년 많은 우려가 있었다. 노동생산성이 낮아져서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엄밀한 검증을 한 결과 기우였다. 5개 경제단체 연합회의 관련 신문광고.

주5일근무제가 논의되던 2002년 많은 우려가 있었다. 노동생산성이 낮아져서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엄밀한 검증을 한 결과 기우였다. 5개 경제단체 연합회의 관련 신문광고.

‘국내 최초 주 4일 근무 화장품 기업’.
충북 충주시에 있는 화장품 제조회사 에네스티의 마케팅1팀 부장 용민기씨의 명함에 적힌 문구다. 그만큼 ‘주 4일 근무’는 회사의 최고 복지이자 자부심이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은 채용을 위한 지하철 광고를 하며 ‘주4일제’를 내걸었다. 입사 지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주4일제, 주4.5일제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4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적용했던 ‘놀금’(노는 금요일)을 격주로 확대했다. 월간 단위로 따지면 사실상 주4.5일제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5년부터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주 4.5일 근무를 운영한다. 에스케이(SK)그룹도 2019년 월 2회 주 4일 근무를 도입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조정훈(시대전환), 박영선(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주4일제 혹은 주4.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정치적 의제로도 떠올랐다. 2021년 일본 정부는 선택적 주4일제 도입을 검토하고, 스페인 역시 정부가 주4일제 희망 기업을 향후 3년 동안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주5일제는 산업화 시대 포디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1926년 미국 포드자동차를 창업한 헨리 포드가 주말에 공장 기계를 강제로 끄면서 주5일제가 본격 논의된 것이 100년 전이기 때문이다.
<쇼터: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시대가 온다>의 저자 알렉스 수정 김 방은 “일 잘하는 사람은 일만큼 휴식시간도 소중하게 관리한다. 그들의 비결은 ‘의도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쉴 때도 전략을 짠다”고 했다. 장시간 노동을 일 잘하는 것으로 인식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주4일제가 보편화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주4일제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앞서 온 미래를 엿봤다. _편집자주

주5일근무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2004년, 저는 어느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사회 초년생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더는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아 들떠 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 사회는 주4일근무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노동시간이 줄면 노동자 삶의 질이 올라갈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만일 노동시간이 줄어도 노동생산성이 늘고, 월급과 고용안정성이 유지되며, 회사도 매출과 수익이 줄지 않고,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에 골고루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도 노동시간 감축을 반대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 줄어드는 노동시간에 대해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주4일근무제는 해볼 만한 일일까요? 지난 수십 년간 노동시간은 지속해서 줄었기에 그 연구는 제법 축적됐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겠습니다.

노동시간 줄었지만 생산성은 증가해

2004년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법정 노동시간을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했습니다. 40시간 이후 시간당 임금을 가산(통상임금의 50% 이상)해 사용자의 노동 수요를 줄이고 노동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 유도했습니다. 법 적용은 회사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공공기관과 큰 사업체(직원 1천 명 이상)가 먼저 시작하고 점차 규모가 작은 사업체까지 적용됐지요.

정책의 순차적 적용은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중차분법(Difference-in-Differences)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중차분법은 정책이 실현된 곳과 실현되지 않은 곳의 효과 차이를 측정하는 기법입니다. 주5일제 효과에 대해서는 2006년 초를 기준으로 보면 300명 이상 사업체는 법정 노동시간이 40시간인 데 비해, 그 이하 규모의 사업체는 아직 44시간이므로 이들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우람 박사와 숙명여자대학교 박윤수 교수는 이런 방법으로 주5일제 도입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습니다(Park and Park, Journal of Policy Analisys and Management, 2019). 그림1은 주5일제 도입 이후 월평균 노동시간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노동시간은 정책 도입 이후 월평균 약 6시간(주당 약 1.5시간, 전체의 3%) 줄었습니다.

중요한 쟁점은 노동시간 감소가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노동생산성은 ①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시간당 생산성) ②몇 시간 일하는가(노동시간)로 결정됩니다. 노동자의 시간당 생산성이 5만원인데 노동자가 200시간을 일한다면, 노동생산성은 1천만원(5만원×200시간)입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림2에서 보듯, 노동시간이 줄었는데도 전체 노동생산성이 증가했습니다. 노동시간은 3% 줄었는데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5% 정도 상승해 전체 생산량이 오히려 늘어난 것입니다. 일하는 시간에 집중도가 올라간 결과입니다.

주5일제 도입 뒤, 신규 고용이 줄어든 이유는?

비슷한 방식으로 서울대 이정민 교수의 연구는 주5일제 도입으로 시간당 임금이 6.6% 올랐음을 밝혔습니다(Kim and Lee, Korean Journal of Labour Economics, 2012). 임금은 일반적으로 노동생산성에 비례해 결정됩니다. 그렇기에 이전 논문에서 보여준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 5%와 거의 비슷한 추정치입니다.

독일의 경험도 비슷합니다. 독일은 법정 노동시간을 1984년 40시간에서 1994년 36시간까지 점차 줄였습니다. 미국 노동부의 수석경제학자를 한 제니퍼 헌트 교수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증가해 노동시간이 줄었음에도 전체 생산성이 줄어들지 않았음을 밝혔습니다(Hunt,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999).

노동시간 감소의 유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강대 안태현 교수는 운동시간이 늘고 흡연이 줄었음을 보였습니다(Ahn, Health Economics, 2016). 서울대 이정민 교수와 이용관 박사는 산업재해가 노동시간 단축으로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Lee and Lee, Labour Economics, 2016). 주당 노동시간 1시간 감소로 산업재해가 8% 정도 줄어든 겁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일자리의 추가 창출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규 고용이 2.3% 정도 줄었습니다(Kim and Lee, Korean Journal of Labour Economics, 2012). 국외 사례도 비슷합니다. 프랑스는 고용창출을 기대하며 1982년 노동시간을 40시간에서 39시간으로 줄였으나, 고용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Crépon and Kramarz,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2002). 일본도 1987년부터 10년에 걸쳐 법정 노동시간을 주당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했지만 신규 고용 비율이 줄었습니다(Kawaguchi, Daiji, et al. 2008). 이 결과는 노동생산성 증가로 임금이 늘어나고 추가 고용에 대한 필요가 줄어서일 것입니다.

주52시간제 규제가 답이었을까

주5일제 도입으로 법정 노동시간은 40시간으로 정했지만,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로 최대 주당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7월 주52시간근무제가 도입돼, 최대 노동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됐습니다.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52시간 이상 일하더라도 해당 사업체는 처벌 대상이 될 만큼 법은 강력합니다. 이 법도 300명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이 먼저 시행했습니다. 2021년 1월부터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2021년 7월부터 50명 미만 사업장도 주52시간제를 도입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주52시간제는 주당 노동시간을 평균 1시간 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Park and Ko, 2020). 평균 노동시간이 1시간 줄었지만, 이에 잡히지 않는 퇴근 뒤 이어지는 회식과 술자리가 크게 줄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제도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실증연구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주5일제는 연장근로 비용을 상승시켜 회사가 노동자에게 초과근무 요구를 어렵게 하는 조처이고, 주52시간제는 노동시간 총량을 원천적으로 틀어막는 제도입니다. 사실 이렇게 노동시간을 일률적으로 규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닙니다. 지식 기반 경제 구조에서 고용형태는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 52시간보다 더 일하고 싶은 노동자에게 일하지 말라고 국가가 강요하는 게 정당한지 의문이 있습니다. 정책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지, 회사와 국민의 일상을 지나치게 규제하고 조정하는 구실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 제도는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일부 후보는 주4.5일제 혹은 주4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이를 도입하는 기업에 다양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주5일제처럼 주4일제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4일제를 도입한 뒤 노동생산성이 유지돼야 합니다. 만일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충분히 올라간다면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걸 상쇄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4일제는 우리 사회에 곧 안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시간이 20% 줄어드는데 노동생산성을 유지하려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20% 넘게 증가해야 합니다. 사무직의 경우 노동시간에 더욱 집중하고 불필요하게 허비하는 시간을 줄이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조업이나 건설업과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선 노동일수 감소가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 직종에선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20% 이상 늘기는 어렵습니다. 줄어든 노동시간을 보상할 만큼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늘지 않는다면 생산성과 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고임금·주40시간이냐 저임금·주32시간이냐

현재 논의되는 주4일제 도입은 원하는 회사가 자발적으로 도입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생산성이 줄어든다면 기업은 주4일제 도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고, 주5일제 같은 수준의 급여를 담보하기도 어렵습니다. 주 5일 일하고 월급이 더 높은 직장과 주 4일 일하고 월급이 낮은 직장이 동시에 존재하겠지요. 생산성 높은 노동자를 뽑아야 하는 기업 처지에선 노동자가 ‘고임금/주40시간’과 ‘저임금/주32시간’ 가운데 무엇을 선호할지 중요합니다. 만일 좋은 노동자가 후자보다 전자를 선호한다면 기업은 주4일제를 포기할 것입니다.

저와 미국 코넬대학 김현섭 교수는 노동자가 노동시간 선호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사회 실험을 통해 연구했습니다(Kim and Kim, 2019). 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해 에티오피아에 각종 데이터를 입력하는 회사를 세우고, 고졸 이상 여성을 자료 입력 요원으로 고용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콜센터와 데이터 입력 회사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선진국의 수요를 충족해줍니다. 인기 있는 직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연구팀은 한 도시의 2만여 가구를 방문했습니다. 71개 마을 주민들에게 주 40시간 직장과 주 20시간 직장에 근무할 기회를 줬습니다. 시간당 임금은 동일하게 설정했습니다. 이렇게 선발된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을 매일 측정했습니다. 이 회사의 생산성은 ‘노동시간당 입력한 데이터의 양’으로 비교적 쉽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주 40시간과 주 20시간 직장에 지원한 사람 수는 비슷했지만, 능력은 주 40시간 직장 지원자들이 월등히 뛰어났습니다. 일을 시작한 뒤에도 시간당 생산성의 차이가 상당했습니다. 그림3의 파란색 실선은 주 40시간 직장 노동자, 붉은색 점선은 주 20시간 직장 노동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추이를 보여줍니다. 그 차이가 0.45 표준편차로 추정됐는데, 이는 시간당 생산성 50% 이상의 큰 차이였습니다. 또 근무 첫날부터 나타난 시간당 생산성의 차이는 거의 한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는 생산성 높은 사람들이 고임금/주5일 직장으로 몰리고, 생산성 낮은 사람들이 저임금/주4일 직장으로 분포되는 현상을 예측하게 합니다. 생산성 낮은 사람이 몰리는 저임금/주4일 회사는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더 낮아지고 생존이 어렵게 될 것입니다.

실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인 의사, 변호사, 금융업 종사자(펀드매니저) 등은 대개 고임금이고 업무 강도가 매우 높습니다.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장기간 연마해야 한다는 특징도 있지요. 장시간 높은 노동강도는 성취욕을 키우고 능력 있는 사람이 지원하게 하는 일종의 선별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높은 임금을 줍니다. 이런 회사가 자발적으로 주4일제를 도입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결론적으로 주4일제가 성공하려면, 평균적인 회사들이 주4일제 전환 이후 노동생산성이 유지되는 업종과 회사 규모를 적절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시범사업 통해 경제에 유리한 장기 계획을

노동시간 감소는 기술 발달로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4일제 혹은 주4.5일제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정하는 건 정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직관만으로 무엇이 최선의 정책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노동시간 감축을 위한 다양한 재정지원 시범사업이 필요합니다. 가령 회사를 무작위로 선발해 절반은 주4일제, 또 다른 절반은 주4.5일제 도입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해보는 겁니다. 강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들 회사를 주5일제 회사와 비교해 여러 제도의 성과를 살펴봅니다. 노동생산성, 삶의 질, 산업재해율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거지요.

몇 년 걸리더라도 과학적 증거를 쌓는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얻고 이해당사자가 수긍하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논란도 해소할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우리 경제에 유리한 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 공헌할 것입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미국 코넬대학 정책학과 교수


*5월3일 밤 9시 ‘클럽하우스’ 앱에서 김현철 교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이원재 LAB2050 대표와 함께 ‘주4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표지이야기 - 주4일제, 해보니 어때?

월급은? 생산성은? 주4일제 기업에 물어보니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52.html

조정훈 의원 “주4일제를 대선 의제로”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53.html

하루 6시간 일했더니 기다리는 줄이 짧아졌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54.html

2004년 주5일제, 경제도 살렸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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