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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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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6시간 일했더니 기다리는 줄이 짧아졌다?

스웨덴 정비센터 노동시간 줄이고 14% 실적 향상
스페인과 일본, 정부 차원에서 주4일제 논의
등록 2021-04-25 07:23 수정 2021-04-28 02:15
2003년부터 주30시간근무제를 실시하는 스웨덴 예테보리의 정비소 도요타센터. 근무시간을 줄인 뒤 실적이 올랐다. 예테보리 도요타센터 페이스북 갈무리

2003년부터 주30시간근무제를 실시하는 스웨덴 예테보리의 정비소 도요타센터. 근무시간을 줄인 뒤 실적이 올랐다. 예테보리 도요타센터 페이스북 갈무리

‘국내 최초 주 4일 근무 화장품 기업’.
충북 충주시에 있는 화장품 제조회사 에네스티의 마케팅1팀 부장 용민기씨의 명함에 적힌 문구다. 그만큼 ‘주 4일 근무’는 회사의 최고 복지이자 자부심이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은 채용을 위한 지하철 광고를 하며 ‘주4일제’를 내걸었다. 입사 지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주4일제, 주4.5일제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4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적용했던 ‘놀금’(노는 금요일)을 격주로 확대했다. 월간 단위로 따지면 사실상 주4.5일제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5년부터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주 4.5일 근무를 운영한다. 에스케이(SK)그룹도 2019년 월 2회 주 4일 근무를 도입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조정훈(시대전환), 박영선(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주4일제 혹은 주4.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정치적 의제로도 떠올랐다. 2021년 일본 정부는 선택적 주4일제 도입을 검토하고, 스페인 역시 정부가 주4일제 희망 기업을 향후 3년 동안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주5일제는 산업화 시대 포디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1926년 미국 포드자동차를 창업한 헨리 포드가 주말에 공장 기계를 강제로 끄면서 주5일제가 본격 논의된 것이 100년 전이기 때문이다.
<쇼터: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시대가 온다>의 저자 알렉스 수정 김 방은 “일 잘하는 사람은 일만큼 휴식시간도 소중하게 관리한다. 그들의 비결은 ‘의도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쉴 때도 전략을 짠다”고 했다. 장시간 노동을 일 잘하는 것으로 인식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주4일제가 보편화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주4일제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앞서 온 미래를 엿봤다. _편집자주

스웨덴 예테보리에 있는 자동차 정비센터인 도요타센터는 주30시간근무제를 가장 오래 실험한 기업 중 하나다. 이곳 정비사들은 애초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8시간(휴식 1시간)을 근무해왔다. 하지만 정비를 받기 위한 대기 시간이 길어 고객 불만이 커지고, 장시간 근무로 정비사들이 실수하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잦아졌다. 변화가 필요했다.

마르틴 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센터를 확장하는 대신, 정비사들의 근무시간을 검토했고 작업 6시간이 지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도요타센터는 결국 정비사의 근무시간을 아침 6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또는 오전 11시55분부터 오후 6시까지 2교대로 근무하는 형태로 바꿨다. 2003년의 일이다. 자연스레 센터의 운영 시간이 연장됐고, 정비사들은 가장 생산적인 시간에 작업할 수 있게 됐다. 실적은 14% 향상됐다.

일본, 기업 8.3%·노동자 9.8%가 주4일제

예테보리 도요타센터처럼 주4일제 근무를 실험하는 기업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 등 정보기술(IT) 업계부터 레스토랑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특히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의 영향으로 재택근무·유연근무 등이 늘어나면서 일에 대한 관념이 바뀐 것도 영향을 끼쳤다. 세계적으로 주4일제를 시행하는 기업 113곳을 연구한 <쇼터>의 저자 알렉스 수정 김 방은 “팬데믹을 계기로 관련 논의가 가속화됐다”며 “직장인의 극심한 피로, 삶과 일의 균형, 생산성 향상 과제, 공중보건을 둘러싼 고질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데 주4일근무제가 유용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주4일제를 논의하는 나라는 스페인과 일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스페인은 2021년 3월 주4일근무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군소 진보정당인 ‘마스 파이스’의 제안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마스 파이스의 제안은 주4일제를 희망하는 기업이 3년 동안 이를 시행하고 노동시간 감축에 따른 비용을 정부가 보전하는 방식이다. 첫해엔 전액을, 둘째 해엔 50%, 마지막 해엔 33%를 보상하는 형태로, 5천만유로(약 672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구체적인 참여 업체 수나 일정 등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근무시간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재계의 반대도 있다.

일본은 집권당인 자민당을 중심으로 선택적 ‘주3일휴일제’(주4일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희망자에 한해 주 3일을 쉴 수 있게 하고 급여는 10∼20% 삭감하는 내용이 뼈대로, 2021년 1월 자민당 내 ‘1억 총활약 추진본부’가 제안한 뒤 공청회 등을 거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원격근무가 활성화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나 간병 등 돌봄이 수월해지고 직장인에게도 교육 기회 등이 늘어나는 것이 장점으로 꼽혔다. 해당 제도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하고, 민간에서 우선 도입한 뒤 공무원 등 공공영역에 확대 적용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기업의 8.3%, 전체 노동자의 9.8%가 주4일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2시간 연장근로 범위에 ‘경영상 이유’도 포함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은 아직 주52시간제조차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2004년 처음 도입된 주5일제가 5명 이상 사업장에도 적용된 해는 2011년으로 불과 10년 전이다. 하루 8시간씩 5일 동안 주 40시간 일하는 것이 주5일제의 핵심이나, 사실상 한국에선 ‘주 68시간 근무’로 해석됐다. 고용노동부가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별개로 봐야 한다고 해석하면서 평일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8시간×2일)을 포함해 최대 주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노동정책 중 하나다. 2018년 2월, 연장근로 12시간만 포함해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같은 해 7월부터 300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시행됐다. 이후 중소기업(50∼299명 상시 근로 사업장)은 2020년 1월, 5∼49명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주52시간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의 반발 등을 이유로 정부는 중소기업에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에서 주52시간제가 본격 시행된 건 2021년 1월이다. 같은 해 7월 시행 예정인 30명 미만 사업장은 노사 합의로 1년6개월간(2022년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허용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선 ‘노동시간 단축’이란 정부 기조 자체가 이미 흔들렸다고 본다. 정부가 2019년 12월 ‘주52시간제 보완대책’을 발표하면서 주52시간제 적용을 받지 않는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범위를 ‘자연재해·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를 수습하는 경우’뿐 아니라 업무량 급증, 연구개발 등 ‘경영상 이유’도 포함하는 지침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1년에 최대 90일까지 주 52시간을 초과한 근무가 허용된다. 게다가 업무량 급증 같은 경영상 이유는 자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해 사실상 노동시간을 늘리는 길을 터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용부는 2020년 7월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상반기(1월31일∼6월30일)에 사용한 특별연장근로를 사실상 ‘리셋’하고 하반기에 다시 최대 90일까지 해당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특별연장근로제 적용을 받아 상반기 동안 최대 90일을 추가로 근무한 노동자라도 다시 90일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해져 결국 180일까지 초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셈이다. 실제로 2020년 1~10월 노동부의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3648건으로, 2019년 같은 기간(793건)보다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주52시간제가 사실상 허울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다.

더 적게가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주4일제를 시행하는 기업들은 이 제도가 단순히 더 적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몰입해서 일하느냐’가 관건이다. 주5일제는 1926년 미국 포드자동차를 창업한 헨리 포드가 주말에 공장의 기계를 강제로 꺼버리면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제도다. 약 100년이 지났다. ‘과로사’란 단어가 낯설지 않은 지금, 우리는 얼마나 집중해서 일하고 있을까.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표지이야기 - 주4일제, 해보니 어때?

월급은? 생산성은? 주4일제 기업에 물어보니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52.html

조정훈 의원 “주4일제를 대선 의제로”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53.html

하루 6시간 일했더니 기다리는 줄이 짧아졌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54.html

2004년 주5일제, 경제도 살렸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55.html

*참고문헌
<쇼터: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시대가 온다>, 알렉스 수정 김 방 지음, 더퀘스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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