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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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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동물]방문을 똑똑 두드리던 개

나를 가장 많이 웃고 울게 한 강아지 행욱이
등록 2020-05-09 06:00 수정 2020-05-10 01:0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제1310호에서 계속) 머리가 띵하면서 눈앞이 캄캄한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있다 정신이 나서 보니 강아지 한 마리만 벌렁벌렁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나는 으으으으… 이이이잉… 계속 울면서 살아 있는 강아지부터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행숙이와 강아지 밥에 약을 놓은 건 돼지를 키우는 집일 거라고 집작만 할 뿐입니다.

강아지를 털모자에 담아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놓고 따뜻한 물을 손끝에 찍어 먹였습니다. 밥물을 많이 붓고 끓이다 윗물을 떠서 설탕 조금 타서 젖병을 사다 담아서 주어봤습니다. 눈도 못 뜬 강아지는 젖병을 빨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마다 손가락으로 찍어 먹였습니다. 한 이틀 지나니 숟갈로 떠먹이게 되었습니다.

아기보다 힘든 강아지 젖 마련

아기가 있는 방 한쪽에 포대기를 깔고 같이 키웁니다. 처음 며칠은 먹는 대로 자고 좀 조용했는데 일주일이 넘어 눈이 떨어지자 온 방 안을 돌아다닙니다. 아무 데나 똥도 싸고 오줌도 쌉니다. 자꾸 아기 품으로 파고들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친정집에서 닭둥주리를 갖다가 가두었습니다. 아기를 업고 나갈 때는 강아지를 방 안에 풀어주었습니다. 가족이 방에 있을 때도 강아지와 함께 있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열두 시가 넘어서 강아지 죽을 끓입니다. 찹쌀, 쌀, 싸라기, 좁쌀을 조금 미리 불려놓았다가 고기 한 조각 넣고 곰국처럼 쌀이 형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끓입니다. 나중에 콩가루, 감자가루, 멸치가루를 넣고 큰 냄비로 하나 끓여놓습니다. 정확히 두 시간마다 먹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깽깽깽… 깨깽깨깽… 누가 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울고 난리를 피웁니다. 자다가도 일어나 먹여야 합니다. 한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아기는 일하다 젖을 먹이면 됐는데 강아지는 먹이를 마련하는 일이나 먹이는 일이 아기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들었습니다. 강아지는 이제 좀 컸다고 잘난 체하고 죽도 혼자 먹다가 죽그릇에 빠지기도 하고 일부러 들어가기도 합니다. 아기와 같이 매일 목욕도 시켜야 합니다. 두 살 터울인 아이 셋과 강아지는 철없기는 하나같습니다.

방은 가게에 딸려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난방에 뜨거운 물 나오는 욕실이 없던 때라, 아기를 씻기려고 따뜻한 물을 담은 대야를 놓고 갈아입힐 옷은 아랫목에 묻어놓습니다. 가겟방에 있을 때 계세요~ 해서 물건을 팔고 들어오면 다섯 살, 세 살 된 큰 애들이 아랫목에 묻어놓은 옷을 빨래한다고 다 물이 담긴 대야에 집어넣었습니다. 어떤 때는 큰 애들이 다 대야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매일 씻기면 좋지만 바쁘니 아기만 매일 씻기고 큰 애들은 하루 걸러 씻기도 하는데 할 수 없이 셋을 매일 씻겨야 합니다.

맑고 선하고 착한 감감스름한(아렴풋한) 눈이 행숙이를 생각나게 합니다. 강아지는 행숙이를 닮은 수캉아지라서 행욱이라 불렀습니다. 윗목에서 아랫목까지 귀를 나풀거리며 뛰어다닙니다. 아이고 얄궂어라~ 뭔 강아지를 아와 같이 방에서 키우나~. 사람들은 남의 사정도 모르고 그저 참견하기를 좋아들 합니다. 행숙이가 있었으면 마음껏 젖을 빨며 형제들과 같이 뒹굴며 세상 사는 법을 배웠을 텐데, 걱정이 됩니다. 덩치도 크지 않은 행숙이가 새끼를 지극정성 사랑으로 키우던 모습이 자주 떠올라 아기 강아지가 더 안되어 보입니다.

발정기 시루목고개를 넘어간 행욱이

계속 방에 둘 수 없어 두어 달 만에 마당에 집을 새로이 마련해 행욱이를 내놓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맨 끝방에 강아지를 좋아하는 경상도에서 온 가족이 살았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아저씨가 목청껏 행욱아~! 부르며 허허허 하면 아주머니는 행욱이 발음이 잘 안 돼서 힝욱아 하며 하하하 웃습니다. 어린 아들딸들도 잠이 없습니다. 새벽부터 행욱이를 안고 뽀뽀하고 난리를 피웁니다.

행욱이는 모양은 행숙이를 닮았지만 커갈수록 검은 갈색이 납니다. 어미 없이 큰 것 같지 않게 탄탄하고 덩치도 큼직합니다. 행욱이는 사람만 보면 좋아서 배를 보이며 뒹굴고 엄청 재롱을 부립니다. 행욱이는 항상 방에 같이 살고 싶어 마당으로 난 방문을 사람처럼 똑똑 두드렸습니다. 문만 열면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와 가족이 서로 안아주고 한참을 놀아주다가 억지로 달래서 내보냅니다. 장날이면 친정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점심을 먹고 갔습니다. 행욱이가 문을 똑똑 두드리면 행욱이라고 말해줄 사이도 없이 손님이 사람인 줄 알고 “누구시유?” 하며 문을 열어봅니다. 갑자기 큰 개가 냉큼 뛰어 들어오면 어머나 하며 기절하도록 놀랐습니다.

행욱이는 발정기가 오면 자꾸만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그때는 동물병원도 없어 중성화수술 같은 게 있는 줄도 몰랐던 시절입니다. 누가 대문을 연 틈을 타 비호같이 나가 시루목고개(우리 집에서 후평리, 다수리, 주진으로 가는 완만한 고갯길)를 넘어갔습니다. 누가 오라고 하는지 행욱아 행욱아 부르며 따라가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갑니다. 코로 냄새를 맡으며 썰썰 기는 듯이 계속 갑니다.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잡지 못할 속도로 가다가 후평버덩(후평으로 가는 강가 넓은 들) 풀밭을 보자 말처럼 달려갑니다.

거기에는 웬 개들이 서너 마리 모여 놀고 있었습니다. 행욱이는 겁 없이 달려들었습니다. 갑자기 아아앙~ 앙앙앙~ 와가가각! 개개개객! 앙그르르~ 이빨을 엉크렇게 보이며 서로 죽일 것같이 싸웁니다. 행욱이가 많이 다칠 것 같습니다. 한참 소란스럽더니 걱정했던 것과 달리 다들 어디로 가고 행욱이만 남았습니다. 풀숲에 숨어 있던 암캐를 만나 서로 뽀뽀하며 놉니다. 언제부턴가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아기를 두고 갔기에 할 수 없이 혼자 돌아왔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도 행욱이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개는 바람이 나면 밥을 잘 안 먹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도 밥을 잘 안 먹기 시작하면 비실비실하다가 병들 수도 있습니다. 개가 아프면 북어대가리가 약입니다. 예방 차원에서 북어 한 마리 사다가 통째로 푹 삶아 죽을 한 솥 끓여놓고 기다립니다. 다섯 시간쯤 지나 아기를 업고 막 찾아 나서려는데 행욱이가 패잔병처럼 꼬리를 늘어뜨리고 오는 것이 보입니다.

꼬리 늘어뜨리고 돌아와 길길이 뛰더니

나를 보자 껑충 뛰어 매달리며 길길이 뜁니다. 기운이 얼마나 센지 아기를 업고 넘어져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개를 쳐들고 우우우~ 하고 웁니다. 엄청 헐떡거리며 꼬리를 많이 흔들면서 덤벼들었다 벌러덩 누워서 뒹굴기도 합니다. “알았다, 길 안 잃어버리고 잘 찾아와서 잘했다~ 다음에는 집 나가지 마라~” 토닥거리며 달랬습

니다. 한 30분은 족히 난리를 친 뒤에야 겨우 진정됐습니다. 배고픈데 어서 밥 먹으라고 했더니 허겁지겁 엄청 많이 먹더니 그 자리에 푹 쓰러졌습니다. 깜짝 놀라서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습니다. 많이 고단했던 모양입니다. 옆집 아저씨가 안아다 집에 눕혔습니다.

행욱이는 이후로도 후평버덩으로 놀러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해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평생 개를 많이 키워봤지만 행욱이는 나를 가장 많이 웃고 울게 한 개였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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