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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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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오골계의 ‘꼬끼오’

친정아버지가 “가져가 키워 잡아먹거라”며 준 닭,
도시에서 꺽꺽거리는 목청으로 울어댔는데
등록 2020-03-31 12:30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1990년대 서울 천호동 주택가에 살 때의 일입니다. 친정아버지 생신이 여름이어서 친정에 식구들이 모이면 늘 삼계탕을 해서 먹었습니다. 한 해는 건강에 더 좋다는 오골계를 키웠답니다. 여러 약재를 넣고 한 가마솥 끓여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고기도 까맣고 뼈도 새까만 고기를 엄청 좋아들 합니다. 누구 하나 징그럽다는 사람 없이 잘도 먹습니다. 발모가지 하나도 남김없이 뜯어먹습니다. 국물에 밤, 대추, 찹쌀, 마늘 듬뿍 넣고 죽을 끓여 한 그릇씩 먹고 행복해합니다. 나는 아무리 건강에 좋다 해도 낯선 오골계 고기가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오동통한 오동이

“우리 이제 갈게유” 하니, 아버지는 “오골계를 가져가 키워 잡아먹거라” 하시며 오골계 중병아리를 여러 마리 준다고 하십니다. 주지 말라 해도 몸에 좋다고 자꾸만 주고 싶어 하십니다. 다 내려놓고 억지로 한 마리만 가져왔습니다.

마당에 풀어놓고 하루 이틀 키우다보니 정이 들었습니다. 사람만 얼씬하면 졸졸 따라다닙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마당으로 나가 오골계를 먼저 보고 하루 일을 시작합니다. 현관 앞 베란다에서 오골계가 자고 쉴 적에는 나도 계단 난간에서 쉬었습니다.

오골계는 눈이 아주 밝습니다. 베란다 턱에서 마당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기어가는 벌레도 내리뛰어가 잡아먹습니다. “귀엽다 귀엽다” 하니 무법자가 됐습니다. 마당 한쪽에 애지중지 가꾸는 채소밭도 파 뒤집어놓았고 작물도 뜯어먹었습니다. 예쁜 꽃밭도 마음대로 짓찧고 놉니다.

초복, 중복이 지나고 말복도 지나갔습니다. 주는 대로 잘 먹어서 통통하게 살이 올랐습니다. 하도 오동통해서 오골계 오씨를 붙여 ‘오동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수놈이라 덩치가 크고 까만색 깃에 붉은 볏이 잘 어우러져 아주 멋스럽습니다. 까만 깃털에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것이 애교도 잘 부립니다. 가족이 얼씬하면 뛰거나 걸으며 풀풀 날아와 ‘고고’ 하며 품에 안깁니다. ‘고고고’ 하며 다리를 감싸고 돌면서 비비고 졸졸 따라다닙니다.

어느 날부터 오동이는 베란다 턱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목을 길게 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꼬끼오’ 하는 청명한 소리가 날 줄 알았습니다. 오동이는 폼만 잡았지 ‘꼬… 끼거걱걱’ 하며 목에 걸려서 잘 안 나오는 아주 탁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습니다. 처음이라 아직 목소리가 트이지 않아서 그렇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이 흘러도 그 목소리 그대로입니다.

오동이는 한번 울기 시작하더니, 그 꺽꺽거리는 목소리로 밤중에도 울고 새벽에도 울고 낮에도 울었습니다. “목소리도 좋지 않은데 뭘 시도 때도 없이 우냐.” 그만 좀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동이에게 너는 요즘 왜 시도 때도 없이 우냐고 물었답니다. 닭이 ‘요즘은 개도 소도 다 시계를 찼으니 자기 좋을 때 노래한다’고 했다는 우스개가 생각났습니다.

식구들은 어떤 소리를 내든 상관없이 오동이가 그저 귀엽기만 합니다. 그래도 새벽에는 좀 괴롭습니다. 작은딸이 새벽에 오동이 소리에 자다 깨서는 대체 몇 번이나 우는지 세어봤답니다. 스무 번을 넘기면 저놈의 달구새끼 목을 비틀어야지 했는데 열아홉 번 만에 그치더랍니다.

성대수술 해라, 이사 가라…

하루는 내가 외출하고 없는 사이, 시어머니와 큰딸과 작은딸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우리 집 옆 아파트에 사는 사람 대여섯 명이 몰려왔습니다. 새벽마다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어디서 나나 보았더니 이 집에서 나더랍니다. 아기가 무섭다고 자다가도 깨서 운답니다. 한 남자는 자기 아내가 밤에 일하다가 새벽에 자는데 꼭 잠이 들려고 하면 이상한 소리로 울어서 노이로제에 걸리겠다고 하더랍니다.

작은딸이 어른이 안 계시니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했답니다. 큰일입니다. 어디 보낼 데도 없고 잡아먹을 수도 없습니다. 며칠 있다 쉬는 날 친정집에 도로 갖다줄 생각을 했습니다. 사흘이 지나자 아파트에서 열 명 넘는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도시에서 어떻게 짐승을 키우느냐고, 짐승을 키우고 싶으면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 키우고 싶으면 성대수술을 해서 키우라고 합니다. 이사를 가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은 어떤 기상천외한 짐승을 키우기에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소리를 내냐고 지하실 쪽을 기웃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무슨 이상한 짐승이 아니고 오골계 한 마리 키운다고 하니, 오골계가 상상을 초월한 소리를 낸다며 잡아먹든지 아니면 자기네에게 팔면 잡아먹겠고도 합니다. 여럿이 입을 열기 시작하니 듣기 거북한 말이 마구 쏟아집니다. 사흘 말미를 주겠으니 그 이상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상 지나면 고발하든가, 자기네 맘대로 잡아가든가 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옆 동네에 새벽기도를 가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기침을 아주 많이 하셨습니다. 새벽기도 갈 때 오동이를 그 교회에 산 채로 갖다 맡겼습니다. 오골계에 오가피와 인삼, 밤, 대추를 넣고 푹 고아 먹으면 기침에 특효약이라고 말하며 오동이를 떠넘겼습니다.

그때 고등학생이던 딸내미 둘은 어두운 베란다에서 손을 마주 잡고 울었습니다. 하루 이틀 울다가 그만두겠지 했습니다. 일주일간 저녁도 안 먹고 껌껌한 베란다에서 울었습니다. “그만 좀 잊어버려라. 그놈의 오골계를 가지고 청승 좀 그만 떨어라. 이다음 엄마 아빠 떨어져서 시집은 가겠나”라고 했더니, “시집가도 엄마 아빠는 볼 수 있잖아. 오동이는 잡아먹혔겠지” 하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꼬끼 꺼거거걱 꼬끼 꺼거거걱

오동이를 잡아먹으라고 보낸 죄책감에 한동안 새벽기도를 가지 못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 새벽기도를 갔습니다. 기도하려고 불을 끈 순간 꼬끼~ 꺼거거걱~ 꼬끼~ 꺼거거걱~ 목에 걸리는 탁한 오동이 소리가 들립니다. 오동이다! 목사님도 차마 잡아먹지 못한 모양입니다. 우습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족 사람들은 오동이가 살아 있어 기적이라고 좋아했습니다. 다음해 이사 가면서 동네를 떠날 때까지 오동이는 꼬끼 꺼거거걱 꼬끼 꺼거거걱 노래하며 살았습니다.


전순예 45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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