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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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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이가 죽으면 장사 지내주려네

안 된다는 것은 절대 하지 않고 사람처럼 말을 알아듣는 소 만복이
등록 2020-02-15 16:16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지난 연재에서 계속) 한여름 고군분투한 결과 만복이는 많이 커서 마구간에서 먹고 자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추운 겨울이면 밤중에 일어나 소죽을 끓여 먹이고 덕석(소 등에 얹어주는 멍석)도 덧입혀주셨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온 식구가 짐승을 무척 애지중지 키워냈습니다. 다음해가 되자 만복이는 코뚜레를 하고 아버지가 제일 가볍다는 버드나무로 만든 멍에를 지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만복이는 암소인데도 덩치가 황소 못지않게 탄탄하고 컸습니다. 이랴! 이랴 어더더더~~ 어디어디 똑바로 가자~ 위로 올라서고~ 초성 좋은 아버지는 항상 구성지게 소리를 하며 밭일이나 논일을 하셨습니다.

일 못하는 소를 보면 히이이~

만복이는 사람처럼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만복이는 안 된다는 것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한번 가본 논이나 밭을 기억합니다. 작은오빠는 연장을 어깨에 메고 만복이 뿔에다 고삐를 감아 앞장세우고 갑니다. 가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만복이에게 “오늘 학교 앞 논으로 가니까 먼저 그 논에 가서 기다려” 합니다.

만복이는 서두르는 법 없이 뚜벅뚜벅 걸어서 학교 앞 논에 가서 기다립니다. 만복이는 논을 삶는 일(모내기 전 논바닥을 부드럽고 고르게 펴주는 것)이나 써레질도 아주 탁월하게 잘합니다. 논을 삶는 것은 흙탕물 속에서 하는 일이기에 물 밑이 안 보여서 하기 어렵습니다. 써레질은 써레로 모를 심을 수 있도록 흙탕물 속에서 논바닥을 고르게 하는 작업입니다.

자칫하면 사람도 어디만큼 일했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만약 써레질을 건너뛰면 생땅이어서 나중에 모를 심을 때 괭이로 파든가 해서 심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깁니다. 만복이는 한 번도 실수 없이 정확히 논을 잘 다듬었습니다.

일이 끝나면 다시 뿔에 고삐를 감아 집으로 보냅니다. 만복이는 서두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오다가 다른 소가 논에서 일하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천방지축 삐뚤삐뚤 일을 못하는 소를 보면 히이이~ 비웃습니다.

의여라 방아여~ 우우우~ 사람들은 방아타령을 하며 모를 심습니다. 만복이는 선창할 때는 듣기만 하다가 우우우~ 소리가 나오면 고개를 끄떡거리며 겅중겅중 뛰며 놀다가 집으로 옵니다. 작은오빠는 은근히 으쓱거립니다. 일부러 연장을 메고 만복이를 따라오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놀며 옵니다.

건강한 만복이는 예쁘고 잘생긴 송아지를 해마다 낳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끼 밴 소는 잘 먹어야 한다고 자다가도 일어나 먹이를 줍니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어미 소는 잘 먹어야 한다고 따로 죽을 끓이느라고 쉴 틈이 없습니다.

송아지는 나자마자 털도 마르기 전에 벌떡 일어섭니다. 유난히도 눈이 크고 뽀얀 털을 가진 송아지는 어청한 다리로 앞다리에 힘을 주고 뒷다리로 땅을 차며 껑충껑충 뛰기를 잘합니다. 송아지는 신이 나면 아무 때고 논이나 밭에 들어가 뛰어서 말릴 수가 없습니다.

온 동네 소가 길길이 뛰어다닌 이유

만복이가 일하러 다닐 적에는 어미 뒤를 따라가는 송아지를 뒤에서 워리가 따라가며 이탈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었습니다.

송아지 난 지 두 달쯤 되면 어머니는 송아지에게 따로 죽을 끓여놓고 수시로 먹입니다. 송아지가 너무 오래 젖을 먹어 어미 소가 상할까봐 미리미리 젖 뗄 준비를 해서 쉽게 젖을 뗍니다.

동생도 초보 농부로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입니다. 아버지처럼 소리를 하며 밭갈이를 하고 싶은데 멋쩍어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연세가 많고 작은오빠도 장가가서 살림을 나갔습니다. 만복이는 동생의 암소가 되었습니다.

그즈음 온 동네를 소가 길길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만복이가 부러워서 동네 사람들이 자기네 소도 뿔에 고삐를 감아 앞장세워봅니다. 소들은 온 동네를 질주합니다. 갑자기 소가 나타나서 길 가던 사람들이 논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온 동네가 소동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식구가 나서서 소를 잡아오느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뭔 소를 언나처럼 키우느냐고 제일 흉을 많이 보던 진수네 형제도 자기네 소를 뿔에 고삐를 감아 앞장세웠습니다. 소가 냅다 뛰어서 하일 다리를 건너갑니다. 하일 사시는 친척집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려고 손주를 데리고 다리에 막 올라서는데 소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급한 마음에 손주를 안고 껑충 뛰어내려서 다리 밑에 숨었습니다. 소는 다리를 건너 버들방천(버드나무가 많은 하일 쪽 넓은 강가를 부르는 이름)으로 들어가 멀쩡히 풀을 뜯어 먹습니다.

그래도 하일 동네로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진수네 형제가 왔을 때는 다리 밑에서 할머니가 다리를 삐어서 절름거리며 손주를 안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할머니와 손주가 큰 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35년을 장수한 만복이

우리 집은 논이고 밭이고 만복이의 발끝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만복이는 해마다 암송아지보다 황송아지를 많이 낳았습니다. 황송아지는 성장이 빨라서 해마다 팔아 우리 집이 부자가 되는 데 보탬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평생에 어두니골에서 키웠던 삐루갱이(벼룩) 다 파먹었던 암송아지와 만복이와 워리는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나 진배없다고 늘 얘기하십니다. 자들(쟤들)이 우리 집을 밥술이나 먹고 살게 하였다고 하십니다. 손톱 발톱이 다 닳도록 키워낸 어머니가 늘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어머니와 저녁밥 안 먹기 운동에 동참하고 만복이와 같이 살다가 시집을 갔습니다. 아버지는 사위를 보고 여보게, 만복이가 살다가 죽으면 장사 지내주려네, 하셨습니다. 우리 아들딸들도 친정에 가면 만복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만복이는 내 자식들도 무척 반가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복이는 보기 드물게 장수해 35년을 살았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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