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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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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쟁이 고양이

고양이털이나 붙이고 다니던 막내딸의 결혼, 고양이 코르사가 맺어준 인연
등록 2020-03-18 13:39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막내딸은 서른아홉이 됐는데도 시집갈 생각을 안 하고 애를 태웠습니다. 고양이만 좋아해서 어디서 예쁜 길고양이를 잘도 주워다 키웁니다. 언제는 길 가다가 허리가 부러진 고양이를 머플러로 감싸 안아다 병원에 입원시켰답니다. 수술비가 많이 들었는데도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눈물을 흘립니다. 안됐다고 회사 친구들이 돈을 걷어 보태주었답니다. 추운 가을날 어미가 버리고 간 다 죽어가는 길고양이 새끼를 주워옵니다. 할퀴고 침대 밑에 들어가 물똥도 싸고 하는데도 한사코 키워 분양합니다.

자존심 강한 생강, 밴댕이 소가지 스티브

아주 특이한 고양이들을 키웁니다. 친화력이 좋은 아비시니안이라는 종의, 정말로 예쁜 암고양이를 누가 주워다 주었답니다. 고양이를 많이 키워보았지만 그렇게 짙은 송아지 빛이 나는 고양이는 처음 봅니다. 체격도 날씬한데 발이 아주 작고 정교해 무용수 같습니다. 눈이 동그랗고 예쁩니다. 눈꺼풀이 홑겹이면서 아주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그 예쁜 고양이의 이름이 생강입니다. 엄청 예쁜데 왜 이름이 생강인지 물어본다는 게 아직도 못 물어봤습니다. 생강이는 몇 달 있다 만나도 낯설어하지 않고 반가워 쫓아와 안겨옵니다. 미꾸라지 수염처럼 길지 않고 까칠한 수염을 비비면서 얼굴을 들이대고 눈을 맞추고 아는 체를 해 언제나 귀염을 독차지합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몇 사람이 있으면 길게 엎드려 여러 사람에게 걸치고 앉습니다.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자기가 안기고 싶을 때 스스로 안겨서 얼굴을 삐죽 들이대고 저만 보고 아는 체를 하라고 합니다.

회색빛이 나는 스티브라는 고양이는 정말로 멋지게 생겼습니다. 스티브는 머리통이 큼직하고 덩치도 크고 코끝은 빨간 것이 매력이 뚝뚝 흐릅니다. 사람으로 치면 장동건처럼 잘생긴 수고양이입니다. 그렇지만 스티브는 무늬만 장동건입니다. 이불에다 오줌 싸고 소파에도 오줌 싸고 돌아다닙니다. 밴댕이 소가지여서 작은 고양이가 들어오면 띠꺼워서 양발로 팍팍 때려주고 저만 안아달라고 합니다.

그놈의 고양이 좀 그만 주워들이고 시집갈 생각이나 좀 하그라. 아가씨가 항상 고양이털이나 붙이고 다니니 언놈이 좋아하겠나 핀잔을 주었습니다. 서른아홉도 막바지에 이른 12월 어느 날 큰딸과 셋이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막내딸이 하는 소리가 후배가 아는 이 중에 경기도 어디에서 카센터를 하는 청년이 있는데, 이 청년이 눈을 다쳐 피를 흘리며 들어온 고양이를 치료해주었답니다. 결국 한쪽 눈을 잃어 외박이라고 부르며 밥을 주었더니 어느 날 가게로 들어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답니다. 치료비에 사료 값에 돈도 꽤 들었다고 합니다. 막내딸이 “그 사람이나 한번 만나볼까” 하니, 큰딸이 “됐어” 하고 잘라 말했습니다. 나는 그저 해보는 소리거니 했습니다.

신부는 춤추고 신랑은 기타 연주하고

그런데 그해가 가기 전에 그 청년을 후배 소개로 만나보았다고 합니다. 딸이 어느 날인가 링거를 맞고 있는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외박이 새끼 다섯 마리 중 네 마리는 입양 보내고, 한 마리 남겨 키웠는데 그 고양이가 아파서 입원 중이라고 합니다. 몇 주째 고양이는 꼼짝도 안 하고 링거를 맞았습니다. 주중에는 병원에서 맞고 주말에는 집에서도 맞았습니다. 웬만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절대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살려냈답니다. 주둥이와 배만 하얗고 고등어처럼 얼룩얼룩 회색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입니다. 이름은 코르사인데, 이탈리아어로 ‘질주’라는 뜻이랍니다. 차를 좋아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봅니다.

딸이 마흔이 된 어느 가을날, 그 청년이 우리 집에 오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큰길 쪽에서 올 테니 엄마가 좀 나가보라고 합니다. 한 번 본 적도 없는데 마중을 나갔습니다. 큰길 쪽에서 언놈이 걸어오는데 느닷없이 아, 가족이구나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쫓아가서 물으니 정말로 사윗감이 맞았습니다. 그렇게 코르사는 질기도록 시집을 안 가던 막내딸의 중매쟁이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꽃이 활짝 핀 봄날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산꼭대기 어느 가든 뜰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에 주례는 없이 시어머니도 한 말씀 하시는 순서가 있고 친정엄마도 한 말씀 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다리 수술을 해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 중이었습니다. 말 잘하는 너희 아버지나 시키라고 했습니다. 딸은 시어머니는 삼일을 밤새워 한 말씀 원고를 쓰고 있다고 전합니다. 할 수 없이 나도 목발을 짚고 나가 한 말씀 했습니다.

뭔 결혼식을 이런 산꼭대기에서 하면 누가 찾아오겠나 했는데 그래도 올 사람은 다 찾아왔습니다. 신부가 꽃다발을 흔들면서 나 오늘 시집가요~ 하며 춤도 춥니다. 젊은 날 어느 밴드에서 일했다는 신랑의 신나는 기타 연주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대통령감

색시는 생강이, 스티브 두 마리 고양이를, 신랑은 중매쟁이 코르사를 데리고 살림을 차렸습니다. 둘이 다 은근히 차 밑을 흘끔거리며 얼어 죽기 직전의 고양이 새끼를 주워들여 분양합니다.

코르사는 덩치도 크고 성격이 느긋하여 새끼 고양이가 들어올 때마다 잘 다독여줍니다. 코르사는 사람으로 치면 대통령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름은 질주라는 거창한 뜻인데, 퉁퉁하니 살집이 좋아 누워 있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코르사는 즈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면 에~앵 소리를 내며 애교를 떨며 쫓아가 안깁니다. 사위는 코르사를 안고 비비고 한참 난리를 떱니다. 고양이기에 망정이지 자식을 데리고 결혼했다면 서로 내 자식, 네 자식 하면서 큰일 나겠다 싶습니다.

사위는 누나 셋에 막내아들입니다. 사위 얘기로는 외할머니가 코르사 엄마로 환생해 자기를 도우러 오신 것 같다고 합니다. 고양이를 싫어했는데, 코르사 엄마를 어쩌다 거두었더니 좋은 일이 생겼답니다. 어린 날 어머니가 직장을 다니셔서 외할머니가 자기를 키우셨답니다. 외할머니는 맛있는 것 좋은 것은 다 외손주만 주었답니다. 오직 세상에서 자기 외손주가 최고라고 애지중지 키워주셨답니다. 사위는 지금도 외할머니를 잊지 못하고 가끔 이야기합니다.


전순예 1945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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