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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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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건네는 응원

㉒수영강사의 슈트: 인천시 남동국민체육센터 수영강사 송진효씨
등록 2016-07-13 06:47 수정 2020-05-02 22:17

“다리를 쭉 뻗어주시고 힘을 빼고 발목을 펴세요. 무릎 굽히지 마시고. 하나 둘 하나 둘.” 철썩철썩. 물이 튀어오른다. 그녀가 회원들의 발목을 하나씩 잡고 발차기를 돕는다. “제일 중요한 건 허벅지예요. 발목에는 힘을 빼야 돼요.” 이번에는 엎드려 연습이다. 철퍼덕철퍼덕. 거친 발차기, 물보라가 흩어진다.

난생처음 수영을 배우는 회원들은 초보 레인, 배워본 사람들은 중급 레인에 선다. 수영모를 쓴 그녀가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음파’를 설명한다. “물속에서 공기를 내뿜는 걸 ‘음’이라고 해요. 숨을 멈추면 물이 들어가요. 올라올 때도 음~ 하면서 올라와야 해요.” 잔뜩 겁먹은 여성, 그녀가 손을 잡아준다.

“괜찮아요, 못해도 돼요”

“이번에는 물 위에 떠볼 거예요. 몸이 일직선이 되면 떠요.” 킥판을 든 팔을 뻗고 엉덩이를 쭉 빼고, 뒤꿈치를 밀어 몸이 뜨는 걸 보여준다. “뜨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일어설 때 머리를 먼저 들면 안 돼요. 무릎을 잡아당겨 발이 땅에 닿으면 그때 머리를 들어야 물을 안 먹어요.” 한 회원이 고개를 담그자마자 일어선다. 눈가에 두려움이 서렸다. 뒷사람에게 추월당한다. “괜찮아요. 못해도 돼요.” 세상에서 처음 물을 마주하는 시간, 수영강사의 슈트 양팔이 무서움을 감싸 안는다. 장맛비가 퍼붓는 7월의 첫 강습날 새벽 6시 인천 남동국민체육센터 수영장. 송진효(27) 수영강사의 일터다.

옆 레인. 진효씨가 킥판을 양손에 들고 두 발을 좌우로 차면서 앞으로 간다. “양손과 머리가 일직선이 돼야 해요.” 촐싹거리며 발을 차고, 물속에서 바둥대고, 물과 싸우느라 난리다. 그녀의 높은 목청과 빠른 손놀림이 뒤틀린 자세를 낚아챈다. 어느새 50분이 지났다. 회원들이 손을 잡고 ‘파이팅’을 외친다. 온탕에서 잠시 몸을 덥힌 진효씨가 다시 레인에 선다.

이번엔 상급반과 고급반. 고급반에 ‘접배평자’를 주문한다. 접영→배영→평영→자유형 순으로 한 번에 두 바퀴를 돌고 쉬는 훈련이다. 이어 사이드킥(옆으로 누워 차기)과 웨이브평형을 연습한다. 달이 바뀌어 새로 만나는 사람들, 진효씨가 회원들의 수영 실력을 기억해놓는다.

고급반. 허우적거리는 아주머니, 진효씨가 오른발로 배를 받치고, 양손으로 두 발을 잡아준다. 5분 남짓 개인강습이 이어진다. 교통사고로 십자인대가 나간 청년이 접영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자식들 키우느라 치료도 받지 못한 허리, 늦게나마 수영을 배우려는데 잘 안 되는 어머니.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들에게 손길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연이은 강습이 끝났다. 씻고 나온 진효씨가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스웨터를 입는다. 집에서 타온 미숫가루로 허기를 달래고 출석부를 뽑아 수강생들을 살펴본다.

세 번째 강습, 다시 초보다. 여성 전용 강습, 보통 할머니들만 모여 있는 시간인데 방학이라 여학생이 많다. 발차기→호흡→물에 뜨기→킥판 잡고 수영하기를 차례로 가르친다. “머리를 어설프게 숙이면 안 떠요.” 설명을 들으면 금세 이해되지만 현실에선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 몸이 뜨려는 순간 고개를 쳐든다. 겁먹지 않고 물에 몸을 맡기는 일은 누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쉽고, 누구에게는 제일 어려운 일이다.

무릎을 구부리거나 발을 벌려 차거나 발목을 접은 채 물장구치는 사람들. 진효씨의 슈트가 날렵하게 수영장 물살을 가르고, 그녀의 목소리가 빠르게 물길을 헤엄친다. 물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호통치지 않고 속삭인다. 수영하는 것이 공포가 되지 않도록, 나무라지 않고 다독인다.

수영 유망주는 왜 수영장에서 도망갔나

진효씨는 수영 유망주 특기생으로 대학에 간 언니를 따라다니며 수영을 배웠다. 중학교까지 7년 동안 선수를 했다. 인천시 대표로 전국대회에도 나갔다. 단체전 매달을 땄지만, 개인전 입상은 쉽지 않았다. 수영이 좋은데 대회만 나가면 만년 4등인 초등학생이 엄마의 닦달에 새 코치를 만나 체벌에 시달리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처럼 진효씨도 늘 매 맞으며 운동했다. 수영복 입은 채 원산폭격 상태로 오리발, 하키 채, 대걸레 등 걸리는 대로 맞았다. “운동도 좋았지만 공부도 하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7교시 공부하면 저는 두 시간만 하고 종일 운동만 하게 했어요. 맞는 게 너무 싫고 바보가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망갔죠.”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학 때 수영강사 ‘알바’를 하던 일이 떠올랐다. 몸은 힘들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그를 다시 수영장으로 불러냈다. 2010년 계약직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물 공포증이 심한 회원을 만났다. 자동차 타고 다리를 건너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물이 닿자마자 부들부들 떨었다. 얼굴도 담그지 못했다. 그이 때문에 진도를 나가지 못해 짜증이 나면서도 안타까웠다. 병을 이겨내기 위한 고통스런 훈련 과정, 4개월 만에 그는 킥판 없이 자유형을 하게 됐다. 진효씨는 수영 기술보다 용기가 소중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3년 전이었다. 수술로 왼팔을 못 쓰는 40대 남자 회원이 있었다. 남동국민체육센터 수영장에서 두 발과 한 손을 잃은 장애인이 한 팔로 수영하는 방송을 촬영한 게 떠올랐다. 남자 회원도 의지가 강했다. 한 팔 영법을 배우고 또 익혔다. 지금 그는 연수반에서 한 팔로 모든 수영을 능숙하게 한다. 수영강사 8년 동안 가장 큰 보람이었다.

1년 만에 마스터스까지 도달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5년을 다녀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유연성이 떨어지거나 체력이 부족한 탓도 있고, ‘물잡기’(물을 당겨서 몸이 앞으로 쭉 나간다는 느낌이 드는 일)를 못하거나 잘못된 영법 때문인 경우도 있다. 자신은 잘하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회원에게 진효씨는 동영상을 찍어 보여준다. 자신의 얼치기 영법을 확인하면 확실히 달라진다. “많이 늘었는데 본인만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수영 실력은 천천히 늘거든요. 끈기 있게 하면 어느 순간 고비를 넘게 돼요.”

수영슈트는 폴리프로필렌이라는 소재로 만든다. 물이 잘 안 빠져나가 체온으로 따뜻해진 물이 체온 유지를 돕는다. 20만원이 넘는 슈트, 바다에서 잠수할 때도 쓸 수 있다. 남자 강사들은 짧은 슈트를, 여자 강사들은 긴 슈트를 선호한다. 진효씨는 강습하다 살이 닿는 게 불편해 긴팔 긴바지를 입는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자주 갈아입으니까 슈트의 다리나 가랑이가 잘 터진다. 염소 성분 수영장 물 때문에 잘 해진다. 강사들은 단체로 슈트 공장에서 맞춰 입는다.

물과 떨어질 수 없는 생활. 그녀는 맨손으로 설거지하면 따가워서 꼭 고무장갑을 낀다. 습진에 걸려 손에서 피가 나는 강사들도 있다. 늘 얼굴이 건조하고 피부병을 달고 산다. 여자 강사들이 생리 때 물에 안 들어가면 회원들이 짜증 섞인 눈빛을 보낸다. 슈트 지퍼 사이로 물이 들어온다. 생리 중에 물속에서 서너 시간씩 있어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 피부과나 산부인과는 강사들이 많이 찾는 병원이다.

회원들 응원 받으며 57일 파업

“동창을 만났는데 왜 남자 목소리가 됐느냐고 묻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성대결절이었다. 수술을 받으면 최소 2주는 말을 못한다. 다른 강사들이 대신해야 한다. 진효씨는 수술을 포기했다. 그런데 남동구는 인건비를 아낀다며 시간강사 3명을 줄였다. 6개 반을 4개로 합쳤다. 두 레인을 동시에 강습해야 하기 때문에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 목이 성할 날이 없다.

진효씨가 노동조합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2011년이었다. 공단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계약직 수영강사를 해고하고 용역을 쓰려 했다. 안전관리 시간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환경미화와 주차관리를 하는 나이 많은 언니들, 체육센터에서 수영이나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젊은 강사들이 노조(공공운수노조 인천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로 뭉쳤다. 2012년 2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수영강사가 슈트를 벗으니, 회원들은 자유수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려와 달리 회원들은 강사들을 응원했다. 57일간의 파업 끝에 그해 7월1일 진효씨를 포함해 비정규직 132명은 정규직이 됐다.

노조를 통해 목소리를 모아내자 지금껏 개인 돈으로 사야 했던 슈트도 회사에서 비용을 냈고, 고장 난다고 주지 않던 개인 마이크도 올 2월부터 지급돼 강사들의 목 상태가 조금은 나아졌다. 앞으로 45살인 수영강사 정년을 늘리고 부족한 월급도 조금 높였으면 좋겠다.

“수영강사가 정규직인 곳이 인천에 저희밖에 없을걸요. 얼마 전 결혼하느라 대출받는데 정규직이라서 완전 차이가 나더라고요. 좀더 자부심을 갖게 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진효씨는 지도직(강사) 대표로 노사협의회 노측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특기생으로 대학 가고 실업팀에 들어간 선수들일지라도 삶은 불투명하다. 진효씨는 메달리스트 출신으로 어릴 때 우러러본 선배를 수영장에서 만났다. 그는 계약직 강사를 하고 있었다. 공공기관에 속한 수영강사는 그나마 낫다. 최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사설 수영장은 더욱 열악하다. 선수 출신 선배는 공설보다 강습을 훨씬 많이 해야 해서 발이 퉁퉁 붓고, 발바닥이 벗겨져 걸어다니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돈벌이에 지쳐 탈진한 강사들

퇴직금을 안 주기 위해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수영장이 아직도 많다. 잘나가던 선수 출신들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계약직으로 일하다 벌이가 안 되니까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난다. 수영장에 대한 설문조사는 많지만 수영강사 처우 실태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부는 메달 색깔에만 관심 있을 뿐, 운동선수들의 삶과 미래에는 무심하다.

지난 6월13일 경기도 일산에서, 사흘 뒤인 16일에는 인천에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수영하다 목숨을 잃었다. 언론은 안전요원이 자리에 없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근무 조건을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를 수영 실력 탓으로 돌리는 정부와 강습생을 돈으로 여기는 검은 수영장에서, 돈벌이에 지쳐 탈진한 강사들에게 슈퍼맨을 요구하는 사회는 결코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다. 세월호가 그랬던 것처럼. 구의역이 그랬던 것처럼.

진효씨가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안전근무를 위해 감시탑에 오른다.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레인을 내려다본다. 황혼을 앞둔 노인과 조잘대는 초등학생, 젊은 연인들이 제각각의 맵시로 물길을 헤친다. 인생 앞에 놓인 역경을 가르고 세상을 향한 두려움을 넘는다. 숨이 차오르고 지쳐갈 무렵 건네는 진효씨의 손길처럼, 세상살이 힘겨운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을 내미는 나라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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