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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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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을 자르는 칼날

㉑ 미용사의 가위: 따스한 가위질로 머리 매만지는 미용사 태기봉씨
등록 2016-06-24 06:36 수정 2020-05-02 22:17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정성스레 빗질을 한다. 머리 모양을 유심히 살핀다. 삭 삭 삭~. 엄지와 약지로 움켜쥔 미용가위가 머리카락을 자른다.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 빗이 모아온 모발을 단가위(짧은 가위)가 쳐낸다. 빗질과 가위질이 되풀이된다. 한쪽 날이 지그재그로 된 숱가위(틴닝가위, 머리숱을 조절하는 가위)가 머리를 훑고 지나간다. 덥수룩하던 두발이 말끔해진다. 사각 사각 사각. 곧게 편 왼손 엄지에 날 끝을 세운 장가위(긴 가위)가 옆머리 각을 잡은 후 뒤통수까지 한 바퀴를 돌아나간다. 삐죽삐죽 보이던 잔머리가 사라졌다.

세 개의 가위와 빗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사이, 커트가 끝났다. 샴푸 시간. 열 손가락이 뒷목부터 정수리까지 두피를 마사지한다. 머리를 말리고 가지런히 빗는다. 나이 지긋한 노신사의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배어나온다. 검은색 남방에 통 넓은 바지, 핀을 꽂아 묶은 긴 머리의 미용사 태기봉(46)씨의 하루가 시작됐다.

투블록과 모히칸 헤어스타일

젊은 친구 둘이 들어온다. 바빠서 3개월 만에 미장원에 왔다는 청년의 지저분한 머리, 곱슬머리의 애환이다. “투블록으로 잘라볼래요? 어울릴 것 같은데.” 아랫머리는 짧게 자르고, 윗머리는 길게 남겨 내려 덮는 헤어스타일이다. 왼손에 빗, 오른손에 바리캉을 든다.

바리캉은 프랑스의 이발기계 제조회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윙~. 바리캉이 더부룩한 옆머리를 사정없이 쳐나간다. 삭삭삭삭. 빗질한 긴 모발을 검지와 약지에 끼고 빠져나가지 않게 중지로 붙잡은 뒤 잘라나간다. 사사사삭. 숱가위로 뒷머리를 다듬고 단가위로 앞머리카락을 손질한다.

샴푸가 끝나고 드라이한 머리, 롤브러시로 모발을 말아 올린다. 손끝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스타일을 잡아준다. 깔끔한 옆머리, 곱슬머리 모발이 얼굴로 떨어져 눈썹에 살짝 걸치면서 상큼한 느낌을 준다. “이 친구는 머리 손질을 안 하는 게 좋겠어요. 곱슬머리가 안쪽으로 돌아 댄디한 느낌을 주거든요.” 청년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같이 온 친구는 짧은 머리다. “조금 더 짧게 깎아주세요. 원장님 스타일이 멋진 것 같아요.” 그가 바리캉을 들어 옆머리와 뒷머리를 깎는다. 의자를 내려 바리캉으로 윗머리까지 깎는다. 숱을 솎아낸 후 뒤통수를 동그랗게 다듬는다. 윗머리 가운데로 머리카락이 모이게 하는 모히칸 헤어스타일이다.

“원장님도 무라카미 소설 좋아하세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토너면서 소설을 쓰잖아요. 인생을 쉽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데, 워낙 다작을 해서 그런지 재미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스피커에서 밥 말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밥 말리 팬이신가봐요?” “자메이카에서 내전이 일어났을 때 밥 말리 콘서트에 정부군과 반군 대표가 참석했다고 해요.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을 거예요. 예술을 통해 혁명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람이라서 좋아해요.” “레게 음악 좋죠?” “문자가 없던 시절, 아프리카에서 역사를 외우게 한 게 레게의 시초라고 하더라고요.” 가위 세 개와 빗, 바리캉이 머리 위를 수놓는 사이, 기봉씨는 손님들과 쉴 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부스스한 머리, 둥글넓적한 얼굴의 젊은이가 들어온다. 염색과 파마를 한 머리가 많이 자랐다. 다듬어달라고 한다. 두상을 골똘히 살피던 그가 자연스러운 투블록 머리를 하면 어떨지 제안한다.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집게로 머리를 집어올린 뒤 바리캉으로 옆머리부터 깎아나간다.

“내가 잘라준 머리가 아닌 것 같은데?” “네, 다른 곳에서 깎았어요.” “우리가 손님 얼굴은 기억 못할 때가 있는데, 자른 머리는 기억해요.” 예민한 차이인데 신기하다. “앞으로 막 쏟아지는 머리잖아요. 옆으로 머리를 흘리면 훨씬 괜찮을 것 같아요.” 머리 위를 활주하는 세 개의 가위가 엉킨 머리칼을 솎아 개성을 엮어낸다. 평이함을 깎아 특별함을 입히고, 진부함을 잘라 세련미를 앉힌다.

가장 깎기 힘든 ‘깍두기 머리’

기봉씨가 주로 쓰는 가위는 단가위, 장가위, 숱가위 3종이다. 10년이 넘은 가위들이다. 하나에 20만원이 넘는다. 독일제 재규어 미용가위는 60만원을 호가한다. 가위 양날이 빗처럼 갈라져 있고, 갈라진 날에 홈이 4개씩 파여 있는 가위, 섀기커트(깃털처럼 가볍다는 말로 머리카락 끝을 뾰족하게 깎는 커트)를 할 때 칼과 함께 쓴다.

머리카락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서 비싼 가위도 2~3년 쓰면 무뎌진다. 땀구멍을 파고드는 모발도 있다. “습기를 머금었던 머리카락이 건조한 계절에는 습기가 날아가면서 단단해져 가위 날도 더 많이 닳아요. 머리를 깎다보면 가위 칼날이 밀린다는 느낌을 받죠.” 대부분의 미용사들은 수리를 맡기지만, 그는 연마용 숫돌로 갈고, 코팅용 숫돌로 다듬어 사용한다.

커트, 파마, 염색 중에서 미용의 핵심은 커트다. 커트 실력이 디자이너의 수준을 결정한다. 일명 ‘깍두기 머리’나 보브커트(턱선에서 어깨 닿는 길이 정도의 단발머리)가 쉬운 것 같아도 제일 어렵다. 긴 머리는 잘못 깎아도 웨이브에 감춰지는데 단발은 눈에 확 띈다. 두상과 머리카락이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손님 머리에 물을 뿌리고 빗질을 하는 순간, 뒤통수 모양부터 머리카락 굵기까지 파악한다. 두상의 형태, 굴곡진 모양, 짱구, 가늘고 상한 머리카락을 한눈에 분석해 가위질을 해나간다.

기봉씨는 늦깎이 미용사다. 20대를 항해사와 회사원으로 보낸 그는 서른 즈음 미용의 길로 들어섰다. 영등포 미용학원, 노진태 커팅스쿨에서 미용을 배웠다. 나이가 많아 실습생으로 취직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당시 경기도 시흥에서 미용실을 하던 이훈헤어칼라 원장이 같이 해보자고 했다. 그에게 미용을 배워 서울 화곡동에 제법 큰 미용실을 냈다가 쫄딱 망했다.

2008년부터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1인 미용실을 하고 있다. “초창기 때는 손님이 무섭고 두려웠어요. 한번은 손님 귀를 약간 베어서 피가 막 났는데, 괜찮다며 저를 안심시키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죠.” 그 시절, 미용을 배우겠다고 하면 3개월은 바닥만 쓸고, 1년 동안 샴푸만 하게 했다. 그의 친구는 밥값도 못 받아 도시락을 싸들고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 강남까지 미용을 배우러 다녔다.

미용업계는 ‘열정페이’의 대명사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서 미용실(5%)은 편의점(6%) 다음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업계였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미용, 패션, 제과제빵 등 인턴을 다수 고용한 사업장 151개를 대상으로 수시감독을 실시한 결과 68%인 103개 업체가 근로계약서 없이 일을 시키거나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등 불법을 저지르다 적발됐다.

실습생 교육을 법으로 규정해 보호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실습생을 실제 노동자로 부려먹으면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유럽에서는 미용노조가 활발히 활동하는데, ‘찍히면’ 살아남기 힘든 업계 문화 탓에 한국의 미용노조는 얼굴도 드러내지 못한 채 페이스북에서만 활동한다.

미용실, 자영업자의 무덤 될 판

기봉씨 가게 주변 100m 안에 미용실이 7개나 된다. 지난 4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미용실은 전국에 12만 개, 그중 20%인 2만2433개가 서울에 몰려 있다. 2011년에 비해 20% 가까이 급증했다. 97% 이상이 근로기준법도 적용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이다. 두발 관련 미용 종사자 수는 14만 명, 피부미용업 종사자를 더하면 20만 명이다. 인구당 미용사 비율이 세계 최고로 3년 내 폐업하는 비율이 33%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는 대기업의 미용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미용실과 안경점 등 11개 분야에 법인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고, 현 정부는 제20대 국회에서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동네 빵집이 실력이 없어서 망하는 게 아니잖아요. 옛날에 주먹 센 놈이 이기듯이, 돈 많은 놈이 이기는 무법천지 세상 아닌가요? 정부나 법이 규제를 해야죠.” 기봉씨가 분통을 터뜨린다. 동네 빵집은 식료품 회사 씨제이가 집어삼키고, 동네 미용실은 화장품 회사 엘지가 잡아먹는 시대. 박근혜 후보는 “골목상권이 대자본에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보호 대책을 세워서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미용실은 통닭집과 함께 자영업자의 무덤이 될 판이다.

영동대 김명우 교수가 2013년 대한피부미용학회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파마약이나 염색약을 사용할 때 제품에 표시된 내용을 확인하는 미용실 직원은 55.9%에 그쳤다. 헤어 제품을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직원도 43.5%나 됐다. 염색약 등은 심혈관이나 호흡기 질환 증세를 악화시킨다. “초보 미용사 때 날카로운 가위에 손을 열 번은 넘게 베였던 것 같아요.” 미용가위는 미용사의 손에 브이(V)자를 선명하게 남긴다. 미용사들은 상처 난 손으로 어느 필부의 ‘이유 있는 변신’을 연출한다.

기봉씨의 단골손님 중에는 아픈 이가 많다. 7년을 만난 어느 회계사의 아들은 거듭된 뇌수술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미용실로 들어온다. 침을 쏟아내듯 흘려 커트보가 흠뻑 젖어버리지만, 그의 따스한 가위가 아들의 머리를 매만진다.

약하고 아픈 사람 보듬는 동네 사랑방

오랜 단골로 술친구였던 또래는 일하다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를 타고 이발하러 온다. 가위 칼날에 술 한잔의 위로를 더한다. 건설노동을 하는 중국동포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미안한 얼굴로 들어온다. 흙먼지 때문에 ‘사각사각’하던 가위가 ‘버걱버걱’하지만, ‘타국살이’ 수심 가득한 머리 매무새를 정성껏 위문한다. 머리가 맘에 안 든다고 ‘꼬라지’ 부리고 진상 떠는 손님도 더러 있지만, 미용실의 온기는 동네 사랑방처럼 포근하다.

“형, 나 모히칸 머리 해줄 수 있어, 어?” 젊은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다. “넌 머리숱이 없어서 안 돼.” “하고 싶어, 어?”

근처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단골이다. 술 냄새가 풍긴다.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생활을 할 때도 술을 끊지 못한 안쓰러운 청년, 그가 기꺼이 머리를 해주겠다고 한다. 기봉씨의 가위가 돈도, 힘도 없는 나약한 청춘을 위로한다. 그의 가위질이 꼬인 생각갈래를 자르고 엉킨 마음자락을 편다. 근심을 잘라내고 응어리를 솎아낸다. 미용실을 나서는 녀석의 웅크린 가슴과 주눅 든 어깨가 펴졌으면 좋겠다.

긴 하루를 마치고 기봉씨가 미용실을 나선다. 없는 사람들 괴롭히는 못된 대기업의 욕심을 미용사의 가위가 싹둑 끊었으면 좋겠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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