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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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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버릴지 모를 성수동의 장인들

⑬ 제화공의 칼판: 가죽과 쇠를 손으로 두드려 한땀 한땀… 40년 구두장이 홍노영·이종훈씨
등록 2016-02-16 10:49 수정 2020-05-02 22:17

서울 성수동 제화의 거리 뒷골목, 낡은 작업대에 네 명의 구두장이가 앉아 있다. 제화공 앞에 하나씩 놓인 칼판, 고무보다는 강하고 아크릴보다는 연한 구두 제작 판이다. 망치, 가위, 칼이 칼판에서 순서를 기다린다. 강력 접착제를 바른 쇠 지퍼와 구두 겉감으로 쓰일 소가죽이 쌓여 있다.

제화공 이종훈(52)씨가 가죽에 접착제를 입힌다. 패턴(구두 본)을 붙인 후 빨간 펜으로 새긴다. 가죽을 손끝으로 밀어 패턴에 정확히 맞춘 후 망치를 든다. 따닥따닥. 작은 망치가 지퍼 주변을 어루만지듯 두드린다. 딱딱딱다닥닥. 칼판 위에서 춤을 추듯 구두 망치가 현란하게 움직인다. 대장간에서 만들어온 주물 망치, 15년 동안 종훈씨 곁을 지킨 녀석이다. 이번에는 가위와 칼을 번갈아 들어 가죽 모서리를 매만진다.

하나로 연결된 가죽 겉감을 홍노영(54) 제화공에게 건넨다. 노영씨가 접착제로 붙인 부분을 구두용 재봉틀로 박음질한다. 두두둑두두둑. ‘구두 미싱’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두툼한 가죽을 한땀 한땀 꿰맨다. 쪽가위로 세심하게 실 끝을 다듬는다. 230밀리(mm) 여성용 앵클부츠(발목까지 가려지는 목구두) 겉감이 만들어졌다.

열 손가락 지문이 닳을 때까지

노영씨가 안감용 지퍼를 가져온다. 구두 바깥쪽은 멋을 내는 쇠 지퍼, 안쪽은 신발을 신고 벗기 편하게 플라스틱 지퍼를 단다. 접착제통 아래쪽 모서리에 붙여놓은 테이프를 뗀다. 톱으로 가늘게 잘라놓은 곳에 지퍼를 넣어 좌우로 움직이자 접착제가 지퍼 옆 천에 가지런히 칠해진다. 손으로 하던 일을 좀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칼판 위에서 망치질과 가위질이 한바탕 벌어지자 돼지가죽 조각들이 구두 내피로 변했다.

앉아서 작업하던 마의영(54)씨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손끝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외피 가죽에 내피 지퍼를 붙인다. 송곳으로 지퍼 끝을 여미고 손톱으로 동그랗게 말아 접은 후 망치로 두드려준다. 내피와 외피를 합체하는 최종 박음질이 끝나자 앵클부츠의 몸통이 완성됐다. 구두의 윗부분을 제작하는 ‘갑피(제갑)공정’에서 완성된 구두 반쪽은 신발창과 굽을 만드는 ‘저부공정’으로 보내져 나머지 반쪽과 결합한다. 구두장이의 손끝에서 태어난 멋쟁이 구두가 유명 상표를 달고 세상에 나가 어느 여인의 발을 뽐내며 거리를 누빈다.

설 명절 연휴를 앞두고 다시 찾은 성수동 구두 공장. 이번엔 단화 작업이 한창이다. 얼마 전 200족(켤레)을 납품했고, 설 연휴 전에 100족을 더 만든다. 겉감은 천연 가죽을 가공해 반짝거리게 만든 ‘펄쉽’. 네 명의 제화공이 패턴에 따라 접착제를 붙이고 가죽을 연결하고 망치를 두드리고 박음질을 한다. 목구두에 비해 손놀림이 더 예민하다. 손끝으로 가죽의 여유를 어느 정도 잡아주느냐, 재봉을 어떻게 박느냐에 따라 신발의 모양이 예쁘게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가 달라진다.

“손재주는 물론 예술성이나 창의성도 있어야 하는 작업이에요. 이태리 구두장이들은 하루에 다섯 족 정도 만든다고 해요. 신발 한 켤레가 500불 이상이니까 소량 생산해서 제값 받고 파는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나이부터 37년 동안 구두를 만든 홍노영씨는 구두 만드는 일이 자랑스럽다. 제화공의 손끝에서 구두의 맵시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종훈씨가 열 손가락을 펴서 보여준다. 첫째 마디에 지문이 보이지 않는다. “주민등록증 만들 때 지문이 안 나와서 몇 번씩이나 찍었어요. 얼마 전 여권 만들 때도 컴퓨터가 지문을 인식하지 못해 엄청 애를 먹었죠.” 멋진 수제구두는 구두장이의 지문으로 만들어진다.

“제가 구두를 처음 배우던 1970년대 말 구두 한 켤레가 1만2천원이었고 마진율이 70%를 넘었어요. 그 시절 명동의 멋쟁이들은 모두 구두장이였어요.” 노영씨가 지나간 시절을 떠올린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손기술 좋은 구두장이들은 먹고살 만했다. 금강제화 공장이 성수동에 있던 시절, 금강 본사에서 일하는 제화공의 한 달 봉급은 15만원, 금강에서 하청받아 일하는 제화공은 30만원을 벌었다. 회사에 매여 일하기 싫어하는 구두장이들은 성수동 작은 구둣방에서 구두를 만들었고, 구두 기술자들은 그만한 대우를 받았다. 금강과 함께 3대 구두 업체인 엘칸토, 에스콰이어와 백화점 고급 구두 소다, 텐디, 리소페도 모두 그의 칼판을 거쳐갔다.

27만원짜리 구두 한 켤레 공임비는 1만2천원

일반 구두는 합성피혁을 소재로 기계를 이용해 대량 생산한다. 반면 수제구두는 겉감과 안감 모두 천연 가죽을 이용해 만든다. 재단→갑피→저부→완제품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공정이 구두장이의 손과 구두 재봉으로 만들어진다. 중창이라고 부르는 신발 바닥도 발바닥의 곡선을 살리기 위해 얇은 쇠를 두드려 만들기 때문에 기성화에 비해 가볍고 튼튼하다.

고객의 주문에 맞춰 만드는 맞춤형 수제화는 서울 염창동과 성수동, 대구의 수제화 골목에서 만들고, 유명 구두회사의 수제화는 성수동에서 만들어진다. “제 손으로 만든 구두가 도심을 누비는 걸 보면 가슴이 뿌듯하죠.” 설 명절에도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멋들어진 구두들이 유명 상표를 달고 상점에 진열되어 멋을 아는 주인을 기다린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람이 구두업계를 휩쓸었다. 사업주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과 동남아로 빠져나갔다. 구두 대기업들은 공장에서 구두를 만들던 정규직 노동자를 ‘소사장’으로 대체했다. 성수동 제화공들이 만드는 구두의 납품 가격도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7월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은 광복 이후 70년간 서울의 변화상을 정리했다. 1948년 서울에서는 목수와 제화공의 임금이 현재 화폐 기준으로 각각 월 12.1원, 10.7원으로 회사원(9.3원), 공무원(4.4원)보다 많았다. 70년 후인 2014년 사무종사자(회사원, 공무원)의 평균 월급은 301만원인 데 비해 제화공(섬유 및 가죽 관련 기능 종사자)의 월급은 183만원에 그쳤다.

설 명절 노영씨와 동료들이 만든 수제구두는 매장과 홈쇼핑에서 27만원 안팎으로 팔린다. 그런데 신발 한 족을 만드는 인건비는 얼마일까? 구두회사는 광고비와 재고 부담을 이유로 구두 한 족당 공임비로 갑피와 저부공장에 각각 5500~6000원을 준다. 판매가의 4.4%가 40년 경력 구두 기술자의 몫이다.

수제구두는 디자인이 까다로워 신발 한 족 만드는 데 1시간 넘게 걸린다. 설을 앞두고 네 명의 제화공이 하루 15시간씩 이틀을 꼬박 만들어 단화 100족을 납품해 55만원을 받았다. 1인당 하루 일당이 7만원, 시급 4700원인 셈이다. “우리 아들이 극장 알바하는데 야간까지 하면 8500원 넘게 주더만. 30년 넘게 일했는데 알바보다 못하다니까. 아침 7시에 나와서 밤 10시까지 일하는데 하루 10만원을 못 벌어요.” 종훈씨가 긴 탄식을 내뱉는다.

구두장이의 신세가 이렇다보니 일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다. 쉰 살이 넘은 종훈씨가 이 동네 막내다. 서울시가 ‘제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수제구두 공동판매장을 만드는 등 여러 지원을 하고 있지만, 하루 15시간 ‘본드 냄새’를 마시며 커피전문점 알바보다 못한 대우를 견디겠다는 청년이 있을 리 없다. “구두 대기업들이 공정한 거래만 해준다면 후배들도 장래를 걸고 일을 배워볼 수 있을 텐데,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요. 결국 이 좋은 구두 기술이 사장되는 거죠.”

‘수제화 장인’ 팔아먹고 돈 안 주는 기업들

노영씨가 구두창을 만드는 저부공장으로 안내한다. 매장에 납품할 유명 상표 구두가 쌓여 있다. 그런데 제화공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이틀 밤을 꼬박 새워서 납품을 맞춰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구두를 팔아서 돈을 주겠다는 심보인가본데, 이런 갑질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구두를 만들어 납품하는 YB콜렉션 제화공 최영순씨가 분통을 터뜨린다. 그의 아내도 눈물을 글썽인다.

지난 연말 앵클부츠 3500족을 주문받아 족당 2만3천원 받고 납품했는데 연말까지 주기로 한 돈 7천만원을 아직까지 못 받고 있단다. 제화공 7명을 포함해 15명의 월급 3개월치가 밀려 있다. 수제화 전문 브랜드를 판매하는 회사인 A사는 성수동에서 납품한 앵클부츠를 26만9천원에 B홈쇼핑을 통해 팔았고, 지금도 할인해서 19만원에 팔고 있다. 이미 절반 이상을 팔았는데도, 나머지를 다 팔아서 인건비를 주겠다는 것이다.

영순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그의 목소리가 격양됐다. “나 유서 써놓고 자살해버릴 거예요. 오죽하면 자살까지 생각했겠어요? 내일은 분명히 얼굴 보는 겁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이 회사는 영순씨를 만나지 않았고, 제화공들은 돈 한푼 받지 못하고 설 명절을 보내야 했다. “성수동 수제화 공장에 A사가 갚지 않은 돈이 3억원에 달한다고 해요.” 홍노영씨가 영순씨에게 동료들과 같이 매장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하란다. 언론에도 알리고, 노동청이나 서울시를 찾아가서 하소연이라도 하란다. 평생을 구두장이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한민국 법을 지키고 살아온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요.” 영순씨가 한숨을 길게 내쉰다.

한때 노영씨와 종훈씨는 낙성대에 있는 유명 구두회사 텐디 공장에 다녔다. 80여 명의 제화공이 0.5평 자리에 앉아 쉴 새 없이 명품 구두를 만들었다. 백화점에 납품하는 텐디의 인기가 치솟았다. 한 해에 건물 하나씩 올라가고 사장의 재산이 1조니 2조니 하는 말이 떠돌았다. 낙성대 전철역에 내려서 텐디까지 가려면 텐디 사장 땅을 밟지 않으면 못 간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런데 회사는 만날 적자라고 했다.

어느 날 회사는 ‘소사장제’를 도입했다. 같은 자리에 같은 칼판 놓고 같은 연장으로 구두를 만드는데 신발 한 족당 금액을 계산해 임금을 지급했다. 4대 보험과 퇴직금은 사라졌고,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3.3% 세금까지 내야 했다. “내가 기계를 사고 재료 대서 물건을 만드는 게 개인사업자잖아요. 텐디는 자기네가 모든 걸 다 지급해놓고 개인사업자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노영씨를 비롯해 9명의 동료들이 제화노조의 도움을 받아 텐디를 상대로 퇴직금 3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하고 있다. 제화노조는 구두장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퇴직금을 지급해달라는 탄원서를 1천 명 넘게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유명 구두회사 공장에서 칼판 놓고 망치를 두드려 구두를 만드는 제화공들이 ‘사장님’인지 노동자인지 확인하는 재판. 성수동 구두장이들이 판결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구두 만드는 기술 물려줄 수 있을까

해가 뉘엿거린다. 노영씨와 동료들이 일손을 멈추고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서울 염천교와 명동을 거쳐 구두장이들이 모여든 성수동, 지금도 350여 개의 구두공장과 100여 개의 자재업체가 모여 있는 구두 1번지다. 그런데 도로가 한산하다 못해 적막하다. 성수동 구두장이들이 애용하는 ‘함바집’, 식탁은 20개가 놓여 있는데 세 곳에서만 밥을 먹는다. 제대하고 복학할 때까지 부모를 돕고 있는 청년 한 명을 빼면 모두 50~60대다. 김치찌개를 말아 5분 만에 밥을 ‘들이켠’ 제화공들이 야간근무를 위해 공장으로 향한다.

손재주가 세계 최고라는 대한민국, 40년 경력 최고의 구두장이들이 ‘알바’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구두의 거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그친 농촌처럼 젊은이들의 활기가 사라진 성수동 구두공장의 밤을 늙은 제화공들이 외롭게 보내고 있다. 구두 대기업들이 제화공들을 직접 고용해 정당한 대우를 해준다면, 유명 구두회사들이 구두장이의 기술에 합당한 납품단가를 책정해준다면, 젊은이들도 기술을 배우러 성수동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노영씨는 편안하고 맵시 나는 구두를 만드는 기술, 손끝에서 창조되는 아름다운 노동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본문에 등장하는 A사 쪽은 2월12일 에 “(YB콜렉션 쪽이) 약속 수량의 58%만 납품했고 생산과정에서 자재를 2천여만원 낭비했으며 소비자의 항의에 시달릴 정도의 제품 하자도 다수 발생해, 오히려 우리 회사의 매출에 손해가 발생하고 신용도도 떨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양사가 원만히 협의해 미지급금을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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