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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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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짐 싣고 지구 일곱 바퀴를 돌다

⑰ 화물기사의 운전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일을 향해 달리는 황연호씨
등록 2016-04-21 09:26 수정 2020-05-02 22:17

웅장한 풍채의 트럭이 거만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트랙터(트럭의 앞부분, 견인차)에 가슴 높이의 대형 타이어 10개가 달려 있다. 트랙터에 연결된 길이 20미터 트레일러를 6개의 광폭타이어가 떠받친다. 마찰력이 커 제동 거리가 짧아지는 타이어다.

폭 3.7미터, 길이 15.5미터의 대형 후판(후강판) 6장이 트레일러에 실려 쇠밧줄에 묶여 있다. 철판의 무게는 24톤. 4개의 실린더가 목을 길게 빼 후판을 비스듬하게 받친다. 화물의 폭이 3.4미터가 넘으면 도로를 달릴 수 없기 때문에 철판을 세웠다. 후판 네 귀퉁이에 매달린 경광등이 불을 반짝인다. ‘부딪히지 말라’는 표시다. 트레일러를 한 바퀴 돌고 쇠밧줄을 점검한 화물기사 황연호(49)씨가 건물 2층 높이의 트럭에 오른다.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는다. 양탄자가 깔린 깔끔한 바닥, 옷걸이에 수건과 조끼가 걸려 있고, 운전석 뒤편 2단 침대엔 이불이 가지런히 개켜 있다. 연호씨가 운전석에 앉자 ‘치~익’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에어쿠션 시트다.

운전대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고 시동을 건다. 핸들 왼쪽에 화물의 하중과 엔진오일 상태를 알려주는 계기판이 달려 있다. 철판이 편중되게 실렸는지 살핀다. 짐이 한쪽으로 쏠리면 ‘축중과적’으로 단속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차의 성능과 마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밀하게 살핀다. ‘짐 짜는 일’(화물을 트레일러에 싣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좌우 백미러를 번갈아 본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고속도로에 차량이 가득하다. 1차선으로 승용차와 작은 트럭들이 ‘쌩쌩’ 달린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폼 잡을 법도 한데, 두 손을 핸들에서 떼지 않는다. 반복되는 에스(S)자 회전 구간, 운전대가 방향을 살포시 비튼다. 양 바퀴가 차선에 달라붙은 듯 육중한 트럭이 흔들림 없이 질주한다. 오르막길, 액셀을 살짝 밟는다.

43톤 트럭은 ‘기름 먹는 하마’

트럭과 ‘몸차’ 무게를 합쳐 43톤의 거물은 ‘기름 먹는 하마’다. 과속·과적은 기름을 도로에 쏟아버리는 일. 운행시간이 길어져 피곤하지만 80킬로미터를 유지한다. ‘기름 짜는 기술’이라고 부른다. 내리막길, 액셀에 발을 떼자 ‘에코’ 표시등이 들어온다. 기어가 자동으로 중립 상태가 되면서 기름을 절약한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샛길, 트럭이 좌우로 흔들린다. 오른손이 기어를 잡고 몸의 중심을 유지한다. “차 길이만 20미터가 넘어서 방향을 급하게 바꾸면 ‘휘청’ 해요. 난폭 운전이 되죠. 짐이 무거우면 순간적으로 쏠려서 전복될 수도 있어요. 차가 큰 만큼 여유를 가지고 운전해야 합니다.”

연호씨는 화물차 운전을 ‘혼자 사는 세상’이라고 부른다. 트럭 안에서는 무엇이든 연호씨 마음대로다. 좋아하는 음악과 라디오 방송을 원 없이 듣고, 도로 위 최고층에서 펼쳐지는 풍광을 맘껏 즐긴다. 심심하거나 졸리면 주파수공용통신(TRS) 장치를 통해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졸음도 쫓고 교통사고도 공유한다.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소개받기도 하지만, 터무니없이 싼 곳은 안 간다. 뭔가를 섞어 평소보다 기름이 빨리 닳는다.

운전대 오른편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지만 미덥잖다. ‘내비’만 믿고 따라갔다가 좁은 골목길을 안내해 대형트럭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곳으로 떠날 때는 출발하기 전 동료들에게 전화해보고, 높이 실은 짐이 전선에 걸리지 않는지 위성사진을 확인한다.

운전석 오른편 조그마한 차량용 냉장고에 과일과 음료가 들어 있다. 머리 위 캐비닛 세 개의 칸마다 서류, 옷가지, 음식이 담겨 있다. 비상용 컵라면도 실려 있다.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에서 꼼짝도 못하던 날이었다. 그는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다른 기사들은 차 안에 사흘 동안 갇혀 지내야 했다. 동료 선배는 조수석 의자를 들어내고 소형 냉장고와 작은 전자레인지를 달았다. ‘햇반’과 아내가 만들어준 반찬으로 맛있고 영양 있는 끼니를 챙긴다. 교도소 독방 크기지만, 캠핑카보다 아늑한 공간이다.

“저는 하늘이 내린 ‘도라꾸’예요”

새벽 3시 소금을 실은 트럭이 울산을 출발해 충남 논산에 내려주고, 충남 당진 동국제강에서 후판을 싣고 출발해 다음날 새벽 2시 경북 포항에 도착했다. 23시간, 900킬로미터를 달렸다. 1991년 윗사람의 참견을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운짱’의 길로 들어섰다. 11톤 트럭을 구입해 부산에서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로 컨테이너를 나르기 시작한 기사 인생 25년. 타이탄, 풀카고 트레일러 등 대형화물차 7대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

한 달 평균 달린 거리는 1만킬로미터. 25년 동안 지구를 일곱 바퀴 돌았다. “남들 터치 안 받는 게 좋더라고요. 집에서는 역마살이 낀 ‘도라꾸’(트럭의 일본말)라고 했는데, 저는 ‘하늘이 내린 도라꾸’라고 대꾸했어요.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재밌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고, 군대도 수송병으로 나온 그는 기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화물기사의 인생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동기들 다 ‘모가지’ 잘렸어요. 저는 즐겁게 일하고 있잖아요. 잘 선택한 것 같아요. 후회하지 않아요.”

돈은 많이 벌지 못했지만 세 아이를 키워준 땀내음 밴 운전대가 고맙다. 가정에 필요한 소금부터 유조선을 만들 철판까지 ‘등짐’ 지고 달려 필요한 이에게 전하는 보부상. 화물이 쏟아져 무고한 삶을 덮치지 않게 짐을 짜고, 트럭이 넘어져 평온한 생을 해치지 않게 길을 달린다.

날이 밝았다. 트럭 침대에서 잠을 깬 연호씨의 아침은 편의점 도시락. 공장의 철판 야적장에 저마다의 짐을 실은 화물차 스무 대가 ‘하차’를 기다리고 있다. 연호씨처럼 끼니를 때우고 부스스한 얼굴로 트럭 밖으로 나와 맨손체조를 한다.

이곳에서 때 빼고 광낸 철판들은 인근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소로 보내진다. 조선소 경기가 좋을 때는 50대가 넘는 차량들이 밤새 줄을 서서 하차를 기다렸다. 기다리기 싫어 당진에서 ‘논스톱’으로 포항이나 통영까지 달려 앞줄에 선다. ‘순번 따먹기’라고 부른다. 도착하는 즉시 짐을 내려주는 곳도 있지만, 기사들을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하며 ‘갑질’을 하는 곳도 많다. 짐을 싣는 ‘상차’ 때는 더하다.

전날 연호씨는 오전 11시 당진에 도착해 기다렸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주차장에 대기하라는 문자가 왔고, 저녁 6시 무렵 ‘정지 위치로 입동’하라는 연락이 왔다. 짐을 싣고 공장을 나온 시간은 밤 9시였다. 운전대는 그에게 부여잡고 끝없이 달려야 하는 연장인 동시에 두 손을 얹은 채 넋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연장이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시간, 기사들은 ‘동가리(동강) 잠’을 잔다. 밤샘운전에 졸지 않기 위해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달리다

‘도라꾸 인생 25년’ 가운데 아픈 기억이 있다. 1998년, 충남 삼성종합화학 대산공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중앙선을 넘어온 승용차가 그의 트럭을 덮쳤다. 폭발 사고를 막기 위해 차에서 내려 사고 차량의 배터리부터 분리했다. 뒤집힌 차량으로 뛰어가 조수석에 있던 사람을 구하려고 했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환영이 떠올라 그날부터 소주 두세 병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보험회사는 ‘경찰 추정’ 120킬로미터로 과속을 했다며 20%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시속 80킬로미터를 넘지 않았던 그는 억울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홀로 5년 동안 소송에 매달려 과실이 없다는 것을 인정받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생채기가 남았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노동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위험은 도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가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한 화물차 기사가 상차를 위해 수신호를 하고 있었다. 대형 크레인이 마그네트(대형 자석)로 후판을 떠 트럭에 싣다가 후판이 떨어져 운전기사를 덮쳤다. 기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 교통사고 사망자 4762명 중 화물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073명이었다. 2013년까지 5년 동안의 통계도 비슷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넷 중 한 명이 화물차 사고였다. 하루 평균 3명이 죽는다.

화물기사들의 밤샘운전은 졸음운전을 부른다. 2015년 고속도로 졸음운전 사고 660건 가운데 화물차 사고는 175건, 37명이 죽었다. 기사들이 만든 노동조합 화물연대는 화물차를 ‘도로 위의 세월호’라고 부른다. 화물기사는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민간부문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특수고용노동자는 229만6775명이었다.

연호씨가 지난해 구입한 만(MAN)트럭은 트랙터와 특수섀시(트레일러)를 합쳐 2억5천만원이나 된다. 아파트 한 채를 몰고 다니는 ‘싸장님’처럼 보이지만, 전액 할부다. 환경 규제로 유로6 장착 차량을 구입해 차 가격이 1천만원 이상 더 들었다. 매달 할부금만 432만원을 낸다. 타이어, 오일, 도로비, 지입료, 보험료까지 비용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화주와 운송업체들은 기름값 하락을 이유로 운송료를 삭감하고 있다.

화물기사들에게 더 끔찍한 상황은 스마트폰이 만들고 있다. 화물기사 6만 명이 가입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화물주의 주문을 받아 화물기사를 연결한다. 평균 50만원 운송료를 40만원에 올려놓는다. 입질이 없으면 돈을 1만원씩 올리며 떡밥을 놓는다. 마침 그 지역에 있던 화물기사가 덥석 문다.

화물차 사고, 하루 3명 사망

운송료만 깎이는 게 아니다. 최대 적재 중량을 훌쩍 넘겨 과적하기 일쑤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인 과적이 공공연하게 ‘중개’된다. ‘죽음의 레이스’, 화물차와 그 곁을 우연히 지나는 차량까지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몰아넣는다. 그가 노조(화물연대 울산지부 한주분회)에 가입해 표준요율제(원가를 반영한 화물운송 노동자의 최저 운임)를 요구하며 싸우는 까닭이다.

공장에 들어온 지 8시간 만에 하차가 시작됐다. 크레인에 매달린 마그네트가 후판을 떠 야적장에 쌓는다. 공장을 빠져나와 울산으로 달린다. 트럭에 소금을 실어놓고 집으로 향한다. 36시간 만에 돌아온 집, 다음날 새벽 다시 먼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연호씨처럼 고정 짐이 없는 ‘떴다방’ 기사들은 일주일치 옷가지를 싸들고 집을 나온다. 트럭에 내비와 스마트폰 ‘어플’ 하나 들고 부랑자처럼 산천을 떠돈다. 조선시대 봇짐장사 신세 그대로다.

자본은 기사들을 내리막길 나락으로 내밀고, 최신 기술은 밑바닥 경쟁을 부추긴다. 정부는 고개를 돌려 모른 척한다. 그사이 ‘도로 위의 세월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내달린다. 자동차와 운전이 좋아 선택한 직업, ‘혼자 사는 세상’에서 페달을 밟지만 함께 맞서지 않으면 한 평 공간마저 빼앗긴다는 걸, 다른 기사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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