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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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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먹튀’ 배 아파할 필요 없다

금융대란의 모면책,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외국자본에 대한 시선과 금산분리 원칙을 되돌아보게 해
등록 2011-07-15 16:08 수정 2020-05-03 04:26

외환은행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행태를 두고 ‘먹튀’ 논란이 다시 뜨겁다. 외환은행은 7월1일 이사회에서 9700여억원의 2분기 중간배당을 결정했다. 지분 51%를 가진 론스타는 이 중 5천억원 가까운 거액을 챙겼다. 금융 당국은 이를 끝까지 만류했으나 헛수고였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5월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판단을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법원판결 이후로 미룰 때부터 예정됐던 일이라며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금융 당국의 계속된 보신주의가 외환은행을 껍데기만 남도록 만들고, 론스타의 먹튀를 방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고법 판결 뒤 대주주 적격성 판단해야

일부에선 지금이라도 즉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주식을 비싸게 팔지 못하도록 강제매각 명령을 내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은 유죄판결이 확실시되는 만큼 판결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지난 3월 관련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시간을 끄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하루라도 빨리 론스타가 지분을 팔고 나가도록 하나은행으로의 매각을 승인하라고 엇갈린 주문을 하고 있다.

지난 3월15일 오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투기자본감시센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등의 참가자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박탈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지난 3월15일 오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투기자본감시센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등의 참가자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박탈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배당 결정은 주주 권한이다. 또 주주가 회사 이익을 배당으로 챙기는 것을 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배당은 회사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하는 것이 정도다. 론스타의 과도한 배당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이후 8차례에 걸친 배당과 일부 지분 매각으로 총 2조9천억원을 회수했다. 이미 최초 투자비 2조1500여억원을 빼고도 7천억원 이상을 남겼다. 향후 수익은 더욱 늘어난다. 우선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주식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약속한 주식 매각 금액 4조6900억원이 중간배당으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다소 줄겠지만, 9천원 초반대인 현 주가만 유지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빼고도 3조원 이상을 확보한다. 또 현재 진행 중인 하이닉스 매각이 성사되면 추가로 이익이 발생하고, 은행의 기존 이익잉여금도 4조원(지난 3월 말 기준)을 넘어, 추가 배당 가능성이 상존한다. 반면 그동안 외환은행의 기업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한 예로 가장 큰 경쟁력이던 외화대출 시장점유율은 2003년 21.2%에서 지난해 말 17.6%로 급락했다.

일부의 주장대로 지금 당장 론스타에 대해 외환은행 주식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리거나, 반대로 하나은행으로의 매각 승인을 내리는 것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고법의 파기환송심이 끝나기 전에는 쉽지 않다. 일부에선 금융관료들이 향후 책임질 일은 피하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 탓으로 돌리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금융사 대표는 “과거 HSBC와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할 때도 불확실성 때문에 승인을 못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불확실성이 더 큰 것 아니냐”며 “모든 재판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재판 중에 론스타가 새로운 증거를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현 상태라면 재판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원칙은 원칙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론스타 사태는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는 론스타나 금융 당국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첫째,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외국자본인 론스타가 수조원의 막대한 이익을 챙겨나가는 것에 대해 국민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상황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 금융사 대표는 “당시 은행 경영자들은 엄청난 부실을 안고 있는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론스타를 보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 전직 금융관료는 “신용카드 사태가 심각한 상황에서 외환카드 부실 폭발을 시작으로 외환은행의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 카드채에 투자한 펀드들의 대량 환매 사태, 펀드들의 무차별적인 자산 매각, 증시 폭락을 거쳐 결국 금융대란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 부실 규모를 최소 30조원으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팔지 않고서도 이런 사태를 모면했다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론스타 외에는 그 누구도 외환은행을 살리겠다고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만 끌다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 수 있다. 론스타가 챙기는 수조원의 이익은 수십조원의 공적 자금(국민 혈세)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 비용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미 발생한 부실을 공짜로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6월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파기환송심의 첫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6월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파기환송심의 첫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둘째, 외국자본에 대한 이중 잣대 문제다. 2003년 8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2년여 동안 여론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하지만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외환은행이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현대건설과 하이닉스가 살아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론스타 인수 당시 3천원대에 불과하던 외환은행 주가가 2006년 초 1만5천원대로 회복되자 헐값 인수 논란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감사원·국세청·금융감독원·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고발이 이어지고, 검찰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및 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대검 중수부는 100여 명의 매머드 수사진을 투입했다. 검찰이 9개월의 수사 기간 중 조사한 전·현직 고위 경제관료, 금융기관 관계자 등은 600명을 넘는다. 하지만 2006년 12월 발표된 검찰의 수사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검찰은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이강원 외환은행장 등이 론스타와 결탁해 고의로 은행 자산을 저평가하고 부실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헐값 매각을 주도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론스타의 직접적인 불법행위는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정책 결정 라인에 있던 전직 경제부총리와 금감위원장 등 고위층의 혐의점도 못 찾았다. 몸통은 놓치고 깃털만 잡은 격이다.

4년여 동안 열린 론스타 관련 재판은 모두 200여 차례에 달한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수사 결과 이상으로 허망했다. 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은 물론 핵심 피의자들의 개인 비리 혐의도 대부분 무죄판결이 났다. 유죄판결이 난 것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거의 유일하다. 불법 혐의가 있는데도 외국자본이라고 봐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당시 외환은행 매각이 불가피한 정책적 선택이었더라도 처리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역으로 외국자본이라고 무리한 수사를 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재판 결과로 보면, 검찰이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이라는 국민의 비판 여론을 무마하려고 무리하게 정치적 수사를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론스타의 마이웨이와 한국의 이중 잣대

일부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처음부터 검찰 수사를 국부 유출 수사로 못박았다. ‘갈수록 쌓여가는 매각 의혹’ ‘베일 벗는 매각 과정의 검은 거래’ 등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하며 론스타의 불법행위를 기정사실화했다. 검찰의 부실한 수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외환은행 매각이 불법이었다고 단정지었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외국자본에 대한 이중잣대론을 확대재생산한 일부 언론은 론스타와 금융 당국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들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은 처음부터 인수자가 외국자본이라는 사실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만약 론스타가 아니라 국내 기업이 외환은행을 같은 가격에 인수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가정은 성립하지 않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수출 규모 세계 7위이고,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갈수록 활발해지는 현실에서 외국자본에 대한 차별은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자승자박이 될 위험성이 있다.

론스타도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사모펀드의 속성상 도덕성·투명성을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론스타는 처음부터 한국민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외국 언론의 반외국자본 정서를 우려하는 보도에 편승해 음모론을 제기하고, 검찰 소환을 거부하고, ‘외국자본 철수설’ 등 협박성 발언을 하고, 심지어 미 정부를 통해 감사원 감사 중단 압력을 넣었다. 론스타의 이런 태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 정서나 금융 당국을 무시한 고배당 결정이 대표적이다. 한 금융사 대표는 “론스타가 한국 사회의 정서를 이해하고, 금융 당국을 잘 설득하고, 하나은행과도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보다는 마이웨이식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셋째, 론스타 사태는 역설적으로 금융산업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서는 은행 대주주 자격 심사,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와 같은 기본 원칙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만약 국제적으로 평판이 높은 금융자본이 외환은행을 인수했다면, 론스타 같은 행태는 없었을 것이다. 론스타는 처음부터 은행을 인수할 수 없는 산업자본이라는 의심을 받았고, 이후에도 대주주 자격을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이런 의혹을 속 시원히 풀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론스타 사태는 이명박 정부가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한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론스타의 고배당 강행도 원칙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금융 당국의 영이 서지 않았다고 분해할 일이 아니다. 법적 근거가 없는 금융 당국의 구두 개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탈관치 시대가 머지않았다.

유죄 확정되면 강제 매각 명령 내려야

론스타 사태의 해법은 무엇일까? 고법의 외환카드 재판이 끝나는 대로 금융 당국이 신속하게 외환은행 주식의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면, 론스타는 2006년 가을 이후로는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없었던 셈이어서, 법상 4%가 넘는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이미 이뤄진 배당도 모두 무효화하라고 주장하지만, 법적 안정성을 고려할 때 무리라는 의견도 많다. 대신 금융 당국은 론스타의 주식 매각에 대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하지 않고, 시가대로 팔라고 명령해야 한다. 최소 4년 이상 불법적으로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며 고배당을 받고도,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챙기도록 허용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들 론스타가 외환은행 투자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은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얘기도 많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팔면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얻지 못하고 향후 추가 배당도 없다고 가정하면, 지난 8년간 총수익은 6조원 정도가 된다. 론스타의 매각 시점을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본다면, 연평균 수익률은 12~13%가 된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펀드는 연수익률 20~25%를 목표로 하고, 15% 정도면 무난하다고 본다”며 “론스타 투자를 실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잘한 투자도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론스타에 대해 우리 국민이 너무 배 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더구나 우리는 귀중한 교훈도 얻지 않았는가?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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