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 명가문의 조건1 - 로스차일드]
창업자 마이어 암셀로부터 8대째 내려오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어떻게 부와 명성을 쌓았나
▣ 오귀환/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보상이다.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 같으니,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구약성서 시편 127편)
‘워털루전투 사건’으로 유명해지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기초를 세운 사람은 마이어 암셀(1744~1812년)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게토(유대인 집단거주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교 랍비양성학교에 다니다가 11살 때 부모가 천연두로 죽자 학교를 그만두고 소년가장으로 경제생활에 들어갔다. 유대인 사설금융업자의 도제로서 경험을 쌓은 그는 통일 이전 독일의 제후 귀족 부호들을 상대로 옛날 화폐와 골동품 등을 팔아 돈을 번다. 이와 함께 의도적으로 독일의 권세가들에게 접근해 결국 헤센카젤공국의 지배자인 하나우공 빌헬름의 신임을 얻어 궁정 어용상인이 된다.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붉은색(rot)과 방패(schild)의 합성어로, 마이어 암셀의 집에 붙은 붉은 방패에서 비롯됐다.
그 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유럽의 군주국가들과 전면적인 전쟁에 들어가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하자 마이어 암셀은 빌헬름의 빼돌린 재산을 대신 관리하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다. 이때 이미 영국에 진출해 있던 야심적이고 모험적인 셋째 아들 네이선(1777~1836년)은 이 비밀자금을 정식으로 투자하기 전에 여러 나라의 국채를 사고 되팔아 엄청난 단기차익을 챙기고 사업적 명망까지 얻는 데 성공한다. 네이선은 이 자금으로 채권, 금, 주식, 밀무역 등에 투자한다. 그 뒤 마이어 암셀의 다른 네 아들도 각각 프랑크푸르트(첫째 아들 암셀), 빈(둘째 살로몬), 나폴리(넷째 칼), 파리(다섯째 제임스)로 진출해 혁명과 전쟁의 대변혁기에 가장 이른 시간 안에 주요 정보를 공유한 채 유럽 전역을 커버하는 선진금융 기법으로 막대한 부를 쌓는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워털루전투 사건’일 것이다. 당시 유럽 전역을 무대로 가장 빠른 정보입수-전달 체계를 구축하던 로스차일드상회는 워털루전투의 결과를 자체 능력으로 런던상회에서 24시간 정도 일찍 알 수 있었다. 이 정보력을 바탕으로 영국 정부의 국채를 몇 시간 일찍 무더기로 사들이는 등의 방법으로 무려 1억3500만프랑의 이익을 얻었다고 알려진다. 한편 다섯 아들은 모두 유럽의 중심국가 오스트리아제국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는다. 작위를 받으며 5발의 화살을 쥔 손이 그려진 문장을 사용한 것을 계기로 그 뒤 형제에게는 ‘5발의 화살’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나폴레옹 전쟁 뒤 로스차일드 가문은 사실상 ‘유럽의 숨은 지배자’가 된다. 전쟁 중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의 전비를 조달하기 위한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는가 하면, 이베리아반도에 진출한 영국군의 자금 조달에도 크게 기여했다. 나아가 네이선은 영국을 겨냥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뚫고 영국 상품의 비밀교역을 주도했다. 결국 세계 최강대국 영국의 재정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네이선이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됐고, 막내 제임스도 프랑스에서 국왕 루이 필립과의 친교를 바탕으로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과시하는 지위에 올랐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로스차일드의 지원이 없으면 유럽의 어느 왕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고대 유대인은 한 왕에게 복종했다는데, 지금은 여러 왕들이 한 유대인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철저히 유대적인 성공요인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후 막대한 자금력과 정보력 그리고 각국 정치권력과의 밀접한 유대관계 등을 활용해 유럽을 휩쓴 산업혁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 부를 더욱 늘렸다. 프랑스의 경우 프러시아전쟁에서 패배한 뒤 1871, 1872년 두 차례에 걸쳐 배상금을 조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영국에서는 몇 시간 만에 400만파운드를 영국 정부에 조달해 수에즈운하의 주식을 영국이 전격적으로 인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엄청난 부와 이런 뛰어난 공로를 바탕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자 유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재벌가문으로 부상한다. 한편 19세기 후반부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새로 건국하는 민족적 프로젝트에도 깊숙이 관여해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다.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업을 기본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레저산업, 백화점 등의 분야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런던의 로스차일드은행은 잉글랜드은행의 대리점으로서 국제 금가격을 결정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프랑스의 최고급 포도주 가운데 하나인 보르도의 샤토 무통, 샤토 라피트 등을 생산하는 포도원도 이 가문의 소유이다. 현재 표면적으로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10명이 약 15억달러 자산을 소유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 자산은 그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가문의 국제적 명성과 신용은 여전히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성공을 거둔 요인으로는 이런 것들을 꼽을 수 있다.
1. 단결: 가문의 형제들이 하나의 화살묶음처럼 뭉쳤다.
2. 네트워크 경영: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의 효율을 최대로 높이고, 위험을 분산시켰다.
3. 신용경영: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해 신용을 쌓고 다음 단계에 더 큰 거래를 장악했다.
4. 정보경영: 가장 정확한 정보로 가장 빠르게 사업기회를 잡아나가는 선진 경영기법을 동원했다.
5. 정경유착: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권력자와의 인맥을 형성해 사업기회를 잡는 데 능숙했다.
6. 2세 체제 준비: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경제교육(상황에 따라선 실무교육까지)을 시켰다.
이런 요인들은 다른 한편으로 대단히 유대적인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형제들이 뭉치는 것은 유대인들의 가족경영 방식과 일치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만든 회사 이름을 보면 ‘로스차일드 부자상회’ ‘로스차일드 형제상회’로 돼 있다. 실제로 월가에서 활동하는 레만 브라더스 은행도 이름 그대로다. 유대인들은 혈육이 같이 사업을 벌여 성공하거나 먼저 성공한 사람이 다른 형제를, 사촌을 차례로 끌어들이는 식으로 사업을 발전시키곤 한다.
어려서부터 실전형 경제교육을 받다
네트워크 경영은 당시 유대인이 처한 시대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유럽 각국에서 박해받는 소수였던 유대인들은 국가간 이동을 자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동과 이주에 따라 도시마다 유대인 거주지역과 유대교 회당(시나고그)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었다. 바로 이 시나고그 등 유대인 공동체가 시대 변화에 따라 중요한 경영 거점이 된다. 자연발생적인 유대인의 상공회의소, 정보시장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시대 변화에 따라 유대인의 존재 방식이 실제로 새로운 경영에 대단히 유용하리라는 것을 일찍 깨닫고 대응한 것이다.
정보경영은 역사를 통해 유대인들이 지적 자산을 축적하거나 계승하고 공유해온 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은 한편으로는 유대인의 게토로부터의 해방, 산업분야로의 본격 진출, 정치적 권리의 확대 등을 가능하게 했다. 유대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닥쳐온 이런 기회들에 과감하게 대응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지적 역량을 최대로 결합해 승부한 것이다. 그들은 전체의 대세를 정확히 읽고 거기서 벌어지는 개개 사안의 주요 정보를 일찍 파악해 유럽의 전통적인 은행이나 자본보다 훨씬 과감하고 빠르게 투기에 나서 성공한 것이다.
2세들에 대한 경제교육은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로스차일드의 경우 제2대 격인 ‘5발의 화살’ 형제들이 모두 어려서부터 실전형 경제교육을 충분히 마친 상태였다.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 암셀의 사업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돼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유대인의 경제교육은 거의 원초적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이 성경으로 삼는 모세 5경 가운데 하나인 ‘민수기’를 보면 금방 이해할 만하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에게 난 자를… 20살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를 다 계수하니 4만6500명이었다. …시므온의 아들들에게 난 자를… 계수하니 5만9300명이었다. …갓의 아들들에게 난 자를… 계수하니 4만5650명이었다. …”
이런 성경 구절을 어려서부터 읽고 암송해온 유대인에게 숫자는 인생의 기초이자 곧 돈벌이의 기초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왜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나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은 창업자 격인 마이어 암셀로부터 대략 8대째에 이르고 있다. 가문이 초기의 활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선 2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1800년대 후반 정세 판단을 잘못해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진출에 대해선 ‘5발의 화살’ 형제 가운데 3남인 네이선 못지않게 사업을 잘한 것으로 평가받는 5남 제임스가 자신의 장남이 낸 미국 진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지나친 유럽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셈이다. 둘째로, 세대가 내려갈수록 선조들만큼 뛰어난 경영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해선 조심스럽게 가문 내부의 근친결혼 관련설을 거론하는 의견도 나온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파리상회의 창업자 격인 제임스가 조카딸과 결혼하고 그 딸이 다시 사촌과 결혼하는 등 근친결혼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토록 구대륙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문에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역시 신은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는 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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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 이외에도 많은 경제인들이 세계 경제에서 강력한 힘을 과시해왔다. 특히 20세기 초반 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감에 따라 미국에서 유대인 부호도 많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로렌스 부시는 1998년 기준으로 유대인이 소유하거나 직접 경영하는 기업이 미국 국민총생산(GNP)의 8~10%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개인 소유 재산으로 본 ‘미국 자산가 상위 400명의 부호 서열’(경제잡지 2000년 10월 간행)을 분석하면 이 가운데 적어도 64명, 16%가 유대인인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미국 전체 인구 중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2%를 조금 넘는 점을 감안하면 부호 집적도가 가장 높은 민족그룹에 들어간다.
미국의 우량 헤드헌팅 회사인 토머스 네프가 1999년 발표한 ‘미국기업 리더 베스트 50인’ 가운데 유대인은 적어도 8명, 즉 16%였다. 이 조사에서 유대인인 사람은 다음과 같다.
# 델컴퓨터: 마이클 델(기업명: 경영자)
# 월트디즈니: 마이클 아이스너
# GAP(의류 소매): 도널드 피셔
# 베어 스턴스(투자은행): 앨런 그린버그
# AIG(보험): 모리스 그린버그
# 인텔(반도체): 앤디 그로브
#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 시티그룹(금융 증권): 샌포드 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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