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아동권리협약 비준국인 한국에서 ‘아동권리협약대로 하라’고 싸워야 하는 현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①]
국적이 없으면 권리도 없다. 국민 국가로 나뉘어진 엄혹한 현실이다. 한국에는 국적이 없어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태어나면서 무국적이 된다. 18살 이하에 한국에 들어온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도 사실상 무국적인 상태로 어떠한 정부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이 한국에선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은 아니다.
영국은 영국에서 태어나 10살까지 거주한 아동에 대해 부모의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국적을 부여한다. 독일도 1990년 이후 독일인이 아닌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아동에게 독일 국적을 부여한다. 프랑스는 11살 이후 5년간 거주하면 국적을 부여한다. 성인 이주민에 견줘 아동에 대해선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려의 바탕에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있다.
교육권·거주권·노동 금지 규정했는데…
유엔 아동권리협약 2조는 ‘아동은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어지는 3조는 ‘어른은 아동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아동이란 18살 미만으로 정의된다. 그러니까 18살 이하의 아동·청소년은 협약에 명시된 권리를 가진다. 당연히 아동의 노동도 금지된다. 아동권리협약 32조는 아동의 ‘노동으로부터의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아동권리협약 등 국제인권규약에 따라 상당수 국가가 이주아동의 ‘특별한’ 권리를 보장한다.
하지만 1990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서명하고 1991년에 비준한 한국은 이주아동의 교육권과 거주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헌법 6조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유엔 아동권리협약 비준국인 한국은 협약의 내용을 따라야 하지만, 선언일 뿐 현실은 다르다.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이주아동의 교육권조차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은 이주아동의 권리를 침해해 유엔의 권고를 받는 수모도 당했다. 2003년 1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그제야 미등록 이주아동의 초등학교 입학이 허용됐다. 하지만 이주아동이 중등교육을 받을 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도 이주아동의 권리보장을 위한 청원운동이 있었다. 181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이주아동 합법체류보장촉구연대’는 2006년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을 만들어 입법운동을 벌였다. 2006년 4월에는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기도 했지만 이주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해 입법에 이르진 못했다. 법안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바탕해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 출생한 이주아동에 대해 부모의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국적을 부여하고, 이주아동이 국내에 입국해 계속해서 3년 이상 체류한 경우 영주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이 18살이 되면 국적을 선택할 권리를 주고, 아동권리협약에 바탕해 이주아동지원센터를 두는 내용도 있다. ‘이주아동이 학교 교육을 받는 경우 강제퇴거를 하지 않는다’는 교육권 규정, ‘이주아동은 본인의 의사와 반하여 부모와 분리시키지 않는다’는 가족결합권 규정, ‘18살 미만의 미성년 이주아동에 대하여 단속·구금 조처를 하지 않는다’ 등 거주권 규정도 담고 있다. 아동권리보장법은 혈통에 따라 국적을 부여하는 전통적인 속인주의 국적 정책에서,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라난 아이들에게도 국적을 주는 속지주의 정책으로의 전환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렇게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은 단일민족 사회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2006년 당시에 초등학교 1학년 이주아동을 등교시키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연행돼 추방의 위기에 몰리면서 이주아동의 교육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주아동권리보장법 운동이 시작됐다. 비록 법안이 통과되진 못했지만 미동록이었던 15살 이하의 이주아동 100여 명과 그들의 부모가 운동의 결과로 체류연장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체류연장 시한인 2008년 2월28일이 지나면서 다시 강제출국의 위기에 놓였다. 그래서 이주아동 합법체류보장촉구연대는 2008년 2월 토론회를 여는 등 다시 이주아동권리보장법 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이주아동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느리지만 확산되고 있다. 이주아동 합법체류보장촉구연대의 아동권리보장법 입법운동에 이어서 아시아인권센터가 이주아동의 인권을 위한 청소년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181개 단체 연대하고 청소년들도 서명운동
하지만 여전히 ‘혈통’에 매이고 ‘국민’의 틀에 갇힌 한국 사회에서 이주아동의 권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인권 선진국을 내걸었던 지난 정부에서도 한국은 유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이주민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38개국이 이미 비준한 이 협약에는 이주민의 권리가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이주노동자가 노동할 권리, 자유롭게 귀국할 권리, 가족을 동반할 권리 등이 핵심 내용이다. 2007년 12월18일 세계이주민의 날에 즈음해 한국에서 유엔 이주민협약 비준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넘어서 이주민 가족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국에도 서서히 퍼지고 있다.
[기획연재- 인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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