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4월03일 제503호
‘미지의 인물’들이 몰려온다

4 · 15 총선 공천자 분석해보니… 기존 엘리트들만의 잔치 끝나고 신진 인사 약진

총선에서 ‘미지의 인물’들이 떠오른다.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했던 기존 엘리트 대신, 젊은 신진 인사들이 약진했다. 곧 진검 승부를 벌일 각당의 ‘새 얼굴’들을 분석해본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 컴퓨터그래픽/ 장광석

열린우리당은 대구 달서병 지역에 29살의 여성 변호사 박선아씨를 공천했다. 박씨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2003년 2월 대구에서 개업한 변호사 경력 1년차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이강철씨한테서 지난 3월 초 영입 제의를 받고 닷새간의 고민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박씨는 정치 지도자인 국회의원이 되기에 나이와 경력이 일천한 건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기성의 보수적 정치문화에서 소외됐던 젊은이와 여성을 공적 관심의 영역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젊은 정치인이 해야 할 몫이 있다”고 포부를 당차게 밝혔다. 그는 또 “정치 영역에 젊은 리더의 진출이 늘어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도 주장했다.


△ 29살의 열린우리당 박선아 후보.

박씨의 사례는 우리 정치권의 엘리트 충원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됐음을 웅변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법조인이라 해도 신문에 칼럼을 쓰거나 방송 프로그램 진행 경력 따위를 쌓은 중견 법조인이 영입됐다. 공직자라고 하면 으레 장·차관 등 고위직 출신이 심사 대상이 됐으며, 민주화 또는 시민운동 분야에서 지도적 경력을 쌓아야만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젊은 피 수혈’ 사례가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고시 3관왕 따위로 괄목할 만한 상품성을 갖춘 소수에 그쳤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공천에서는 민주화운동 출신자라 하더라도 1970년대 반유신 투쟁에 참여한 시니어 그룹보다는 1987년 6월항쟁에 몸을 던졌던 30대 후반~40대 초반 세대가 약진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장·차관이나 검찰 총장, 대재벌 임원 따위를 거쳐 공천 과정에서 배려받는, 즉 체제 유지 차원에서의 인력관리 시스템이 사실상 완전히 붕괴했다. 대신에 보수 성향 인사라 해도 과거 수구적 인상이 아닌 ‘신보수’를 지향하는 중견 엘리트 그룹이 공천부대의 주력을 형성했다.

이런 변화는 기성 정치가 워낙 불신받는 가운데 일단 바꾸고 보자는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정치 주역의 교체를 통해 정치의 성격이 바뀔 가능성을 예고하기도 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를 “정치를 독점해온 소수 엘리트 중심의 카르텔에 균열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볼 대목도 분명히 있다. 미지의 인물군이 대거 등장하는 것은 정치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도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공천 과정에선 정치 노선, 즉 정당의 정체성보다는 눈앞의 당선 가능성이 상당한 기준으로 작용했으며, 그 결과 온갖 정당을 기웃거리는 철새 행태도 여전히 나타났다. 과거엔 “감이 되지 않던” 경력자도 대거 출전하게 됐는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을 이유는 없지만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의 진출에 대한 불안감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