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31일 제503호
박세일 한나라당 선대위원장 “한나라당 대북정책 바꾸자”

보수세력과 북한의 대화를 제안한 선대위원장 박세일 교수… '거대여당 견제론'을 역설하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최근 한나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박세일 서울대 교수(법경제학)는, “정치권이 국민생활과는 무관한 정쟁이 아니라 정책경쟁을 벌이는 방향으로 한국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해져야 하고, 정부·여당과의 관계에서 야당이 정상적인 견제와 협조를 하려면 최소한 개헌 저지선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4·15 총선을 친노와 반노,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를 떠나 정책 대결의 장으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겨레21> 인터뷰는 한나라당이 17대 국회에서 어떤 과제에 주력할지에 초점을 맞추려 했으나, 박 위원장의 열정은 우선 ‘탄핵 후폭풍’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총선 구도로 바꾸는 것에 쏠려 있는 듯했다. 그는 “반드시 한나라당 후보만 찍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4년 동안 국정을 맡길 만한 정책 전문성을 갖춘 신뢰할 만한 후보에게 표를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고, 답변 시간의 상당 부분을 ‘거대여당 견제론’에 할애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역임했던 박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비례대표 공천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3월29일 ‘업코리아’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야당 붕괴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여야 양쪽에서 영입 제의를 받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탄핵 정국 이후 극단적인 쏠림 현상으로 야당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고, 전문가들은 열린우리당의 의석 수를 250석까지 내다보기도 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열린우리당의 좋은 분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개인 인품 문제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이라는 조화가 깨지면 불가피하게 권력이 집중된다. 야당,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전환기라 사회적·정치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흐름을 바꿀 만한 능력은 없겠지만, 방향을 트는 데 벽돌 한장이라도 쌓아야겠다는 심정이었다.

-국회가 국민 다수의 뜻에 반하는 탄핵을 추진한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닌가.

=국민들이 뽑은 대표들이 다수 의견을 무시하고 추진한 정치적 행위가 대의성 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지적이 있고, 국민들의 반발과 저항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을 반복적으로 조직화하고 확대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참여민주주의는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이성적 참여와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중성과 전문성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탄핵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는 헌법 절차를 기다리는 것이 민주적 태도이다. 그런 점에서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면서 고건 대행 체제의 안정을 위해 협조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한나라당 내에서 탄핵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강금실 법무장관의 경우 17대 국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강 장관이 얘기할 만한 성격이 아니라고 본다. 17대 국회에서 나의 역할을 최종 결심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비례대표 공천 심사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었다.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해야 정치가 바뀔 수 있다. 국회를 정책경쟁형으로 바꾸려면 정당이 그런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국가의 정책을 이론적·분석적으로 다뤄봤거나 간접적으로 정책 성립과정과 집행의 경험을 갖춘 후보들을 우대했다. 학계·관계·정부출연연구소에서 정책을 심층적으로 다뤄본 인사들이 많이 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변화와 개혁 시대에 맞는 개혁성과 참신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현직 의원을 빼고 신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공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전문성

-공천심사위원장으로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텐데.

=한나라당 안팎에는 그동안 희생과 기여를 해온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을 고려하다보면 미래를 위한 정책 전문 인사들의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를 배려할 것이냐, 미래를 중시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설 때 곤혹스러웠다.

-한나라당이 17대 국회에서 어떤 과제에 주력할지 궁금하다.

=우선 한나라당이 철저한 반성 속에서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동안 기득권 유지와 부패 구조에 너무 안주했다. 경제·안보 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정책을 개발해 제시해야 한다. 야당의 역할은 협조와 견제다. 민생 문제는 여당과 협조해서 풀고, 권력은 오만해지는 속성이 있는 만큼 국민들의 권익을 무시할 움직임을 보이면 견제에 나서야 한다. 협조와 견제를 위해서는 적정한 의석 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나라당이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협조도 견제도 불가능해지지 않겠나.

-한나라당의 목표는 몇석인가.

=글쎄…. 적정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변화를 역설했는데 그 과정에서 박 위원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공천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정책개발 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 박근혜 대표가 한나라당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쇄신 노력을 기울이고, 나는 미래에 대한 정책 제시로 자연스럽게 분업이 이뤄지리라고 본다. 야당의 체질 개선은 여당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고, 한국 정치가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 쓰러져가는 야당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권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쪽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보고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한나라당이 변화를 꾀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우선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들은 대북지원이나 남북경협 등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건 보수와 진보를 떠난 문제이며 따라서 불필요한 보·혁 갈등이다. 이는 국가의 안보 문제와 대북정책의 혼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북한과 대화하고 화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동시 추진이 가능한 문제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런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 경제활성화 등 민생 문제와 함께 신빈곤층 문제, 즉 사회복지에 관해서도 효율적인 정책을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통합 위해 노력하라

-국가안보와 대북정책의 분리를 추진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병립 가능한 문제가 혼돈스러워진 원인을 지난 정부에서 찾을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통일부 장관이나 외교수석은 몰라도 국가정보원장을 대동한 것이 문제였다. 남북관계 진전이 국가안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나라당 내 강경 보수세력이 이런 정책 전환에 동의할지 의문이다. 새로 공천받은 후보들 중에도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를 좌파로 규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 않을 텐데…. 이번에 김문수 위원장의 노력으로 대폭 물갈이되지 않았나. 과거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문제지만, 노 대통령이 반성할 대목도 적지 않다. 그런 비판의 여지를 던졌고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책적 측면에서 현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짧게 얘기하는 게 쉽지 않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그때 하자.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이미지나 제스처보다는 실제 피부에 와닿고 내용이 견실한 국정운영으로 개혁을 해달라는 바람으로 답변을 갈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