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공천자를 살펴본다… 정치 신인의 경우 고위직 별로 없고 지자체 출신 많아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나라당의 지역구 후보 공천 작업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3월 중순, 공천 과정에 관여했던 한 재선 의원은 “야당 생활 7년 만에 씨가 말라 인물난을 겪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자신이 신한국당에 입당해 1996년 총선을 치를 때만 해도, “쟁쟁한” 인물들이 넘쳐났는데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두번의 대선 패배가 이처럼 치명적일지는 몰랐다고 덧붙였다.

△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전국적 지명도를 갖춘 후보들이 대폭 줄었다.(사진/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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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생활 7년 만에 인물난 실감”
탄핵 정국이 인물과 정책 대결 구도를 삼켜버려 역대 총선보다 조명을 덜 받은 탓도 있지만, 한나라당 정치 신인 가운데 전국적 지명도를 갖춘 후보는 방송인 출신인 한선교(44·경기 용인을)·이계진(57·강원 원주) 후보 등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장·차관급 고위관료나 법조계 고위인사, 재계의 전문경영인, 언론계·학계인사 등 각계 유력 인사들이 앞다퉈 옛 여권의 문을 두드리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번 4·15 총선 한나라당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정치 신인의 경우 전 분야에서 ‘직급 다운그레이드’ 현상이 나타났다(물론 직급이 정치적 역량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관료·법조계는 두드러진다. 현역 의원 공천자 중에는 5·6공에서 장·차관을 지낸 이들이 다수지만, 신인 중 고위직 출신 인사는 문화체육부 차관 출신의 김도현 후보(61·서울 강서갑),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이종구 후보(53·서울 강남갑) 정도에 불과했다. 법조계도 과거엔 검찰 총장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주를 이뤘던 반면, 이번엔 대구고검 부장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끝낸 주성영 후보(45·대구 동구갑), 대구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주호영 후보(43·대구 수성을) 정도가 눈에 띈다. 판·검사와 변호사 출신의 법조인 그룹이 22명으로 기성 정치인을 제외하곤 출신 직업별 최대 규모지만, 당내에서조차 “양에 비해 질이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최병렬 전 대표는 조선일보 편집국장, 고흥길 의원은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이다. 15대에는 박성범 전 의원, 이윤성 의원, 맹형규 의원 등 방송사 메인앵커 출신의 ‘거물급’들이 많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신영섭 후보(47·마포갑)와 최경환 후보(49·경북 경산·청도)가 한국경제신문의 논설위원 출신이다. 홍희곤 후보(41·서울 광진갑·한국일보)·조희천 후보(34·경기 고양 덕양갑·조선일보)·최구식 후보(43·경남 진주갑·조선일보) 등 15년 안팎의 기자 출신들이 과거의 거물급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미래연대 회원들 대거 공천
반면, 1998년과 2002년 두 차례의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선전했던 지방자치단체는 새로운 후보 배양지로 떠올랐다. 정두언 후보(47·서울 서대문을·서울시 정무부시장), 이철규 후보(56·경기 시흥을·인천 정무부시장), 한현규 후보(49·경기 수원 영통·경기도 정무부지사), 정승우(59·경기 의정부을·경기도 행정2부지사), 심재엽 후보(58·강원 강릉·강원도 정무부지사), 남상우 후보(59·충북 청주 흥덕을·충북 정무부지사) 등 광역단체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이들이 국회 입성을 노리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역 의원 물갈이폭이 컸던 영남의 경우, 그 빈자리를 광역·기초 의원 출신의 후보자가 채운 경우가 많았다.

△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후보들. 지자체는 새로운 후보 배양지로 떠올랐다.(왼쪽부터 한현규, 심재엽, 권경석, 정두언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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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후보들이 ‘출신 성분’에 따라 정치적 성향 구분이 뚜렷한 반면, 한나라당 후보들은 그 정도가 덜하다. 열린우리당 내 관료·기업계 출신 인사들의 보수 성향이 전대협이나 개혁당 출신 그룹의 진보성과 대비되어 도드라져 보이는 반면, 한나라당 내 쇄신그룹은 탄핵 정국 등 중요한 정치적 굴곡점에서 당 주류세력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는 남경필·원희룡 의원 등을 중심으로 초·재선 그룹을 형성했던 미래연대 회원들이 대거 공천됐다. 정태근(39·서울 성북갑)·권영진(41·〃 노원을)·고진화(41·〃 영등포갑)·김성식(45·〃 관악갑)·박종운(42·경기 부천 오정)·김용수(43·〃 고양 덕양을) 후보 등 이회창 전 총재가 공천권을 행사했던 2000년 총선 당시 참신성을 생명으로 영입된 한나라당판 ‘386’ 인사들이 다시 본선에 나섰다. 현역 의원까지 포함할 경우 미래연대 출신이 25명가량이다. 2002년 대선 이후 분화하기 시작해 지난 2월 최병렬 대표 퇴진을 끝으로 불꽃을 태우고 해산한 미래연대는, 한나라당의 낡고 부패한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장식물에 불과했다는 혹평도 있긴 하나,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적 보수”를 주창해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정치적 부활 여부가 주목된다. 이들은 탄핵 정국 이후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천막농성을 하면서 탄핵 추진의 사전·사후 과정의 잘못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고 탄핵철회론을 제기했다.

△ 지난 2월 최병렬 대표 퇴진을 끝으로 해산한 미래연대. 이들의 정치적 부활 여부가 주목된다.(왼쪽부터 정태근, 김성식, 고진화, 김용수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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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정태근 후보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니들이 탄핵할 자격이 있냐’고 묻고 있다”며 “한나라당은 철저한 반성 속에 합리적·실용적 국민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탄핵소추 강행은 영남 지역주의에 근거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민심과 괴리된 지역주의 정치가 얼마나 무력한지 잘 보여줬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일정 부분 근거를 마련한다면 과거와 같은 영남 중심의 한나라당은 존재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 야당 만들자” 한목소리
부산 동아대 교수인 박형준 후보(44·부산 수영), 민변 출신으로 부산외국어대 겸임교수를 지낸 박승환 후보(46·〃 금정), 한국사이버대학총장을 지낸 김정기 후보(43·서울 노원 병) 등 학계 출신 후보들도 수도권 소장파 후보들과 맥을 같이한다. 박형준 후보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를 이루면서 현대사의 주도세력을 대변하던 보수주의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 부패와 기득권 집착 등 부정적 얼룩은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특히 한나라당이 전향적인 대북정책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동안 보수세력에는 북한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전략적 상호주의같은 소극적 태도와 ‘북진통일론’이 혼재돼 있었다. 북한 정권의 정상화와 보편적 인권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과 별개로 공동투자·공단개발·민생문제 지원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남북경협은 한국 경제의 선진화, 한반도 경제블록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김용갑·정형근 의원 등 당내 강경 보수세력들의 지론보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더 근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 학계 출신 후보들도 수도권 소장파들처럼 당의 개혁을 외치고 있다.(왼쪽부터 박형준, 김정기, 박승환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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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공천자 228명(지지기반이 약한 호남과 충청 지역의 15곳은 후보를 내지 못했다)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는 아니었지만, 인터뷰에 응한 상당수의 후보들이 “낡고 늙고 부패한” 한나라당이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동감을 표시했다. 지난 3월23일 임시 전당대회에서 부패·지역주의와의 절연을 선언한 박근혜 대표 체제가 출범했고 정책으로 승부하는 새 야당상을 구축해야 한다는 박세일 선대위원장이 주도하는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선전해 상당한 세를 형성한다면, 과거와는 다른 한나라당의 모습을 기대해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들과 정치적 대척점을 형성할 것으로 보이는 신인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사가 공안검사 출신의 주성영 후보(45·대구 동구갑)다. 주성영 후보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권에 더 이상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명으로 출마를 결심했으며, 실험적인 국정 운영으로 경제를 망친 무능한 노 대통령의 탄핵은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특히 주 후보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추락한 TK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는 데 앞장서겠다” “영남인의 자존심을 지킬 정당을 지켜줘야 한다”며,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겠다는 새 지도부의 선언과 배치되는 듯한 포부를 밝혔다. 대구 수성을에 출마한 판사 출신의 주호영 후보가 “법을 적용하다보니 현실과 괴리된 법의 문제점을 몸소 깨달아 법조인의 전문성을 살려 제대로 된 국회를 만들고 싶다”고 출마 배경을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주호영 후보는 탄핵과 관련해서도 “탄핵소추의 여건이 된다면 당연한 것인데 ‘사과하면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보면 명분이 약한 면도 없지 않다”며 “하지만 국가적으로 어려운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었고 원인을 제공한 쪽이 노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책임은 대통령에 있다”고 말했다.

△ 법조계도 과거엔 수뇌부들이 주를 이뤘던 반면, 이번엔 한두명의 부장 판 · 검사가 있을 뿐이다.(왼쪽부터 주호영, 주성영, 김동성, 강민구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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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보수 신인도 적지 않아
나이가 젊다고 사고까지 젊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이들도 있다. 검사 출신의 강민구(38·서울 금천)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생산보다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다”며 “운동권 출신과 공안사범들이 열린우리당의 주요 구성원이고 사실상 당수가 노 대통령 아니냐”고 주장했다. 강 후보는 “한나라당에서 5·6공 잔재를 청산하고 관료주의·지역주의에 편승했던 사람들은 과감히 제거하고 개혁 공천을 통해 더 젊어져야 한다”고도 했다. 한나라당 간판으로 이번 총선에 나선 거의 대부분의 후보들이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 면에서는 스펙트럼 차이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