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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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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저탄소’ 넘어 ‘탄소중립’으로

네덜란드·아일랜드 법원 “온실가스 감축 이행계획 내놓으라” 판결,
그린피스 노르웨이에서 시추선 상대로 소송 중
등록 2020-08-30 08:23 수정 2020-09-01 02:01
2019년 6월 그린란드 대륙의 남서쪽 연안 누나타르수크 지역에서 지표면을 덮고 있던 두꺼운 얼음과 만년설이 녹아내려 군데군데 거대한 구멍처럼 호수가 생긴 모습을 찍은 항공사진. AP 연합뉴스

2019년 6월 그린란드 대륙의 남서쪽 연안 누나타르수크 지역에서 지표면을 덮고 있던 두꺼운 얼음과 만년설이 녹아내려 군데군데 거대한 구멍처럼 호수가 생긴 모습을 찍은 항공사진. AP 연합뉴스

지구촌 기후위기가 불러올 재앙은 가까운 미래도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온실가스 과다 배출과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위기는 며칠 또는 몇 주 단위의 기상(날씨)과는 다른 중장기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변화다.

2019년 여름은 북극 그린란드 대륙 빙하가 관측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녹아내린 것으로 기록됐다. 8월20일 독일 알프레트 베게너 연구소가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은 논문을 보면, 2019년 그린란드 대륙에서 녹은 얼음은 5860억t에 이른다. 이는 2003~2016년 연평균 2590억t을 갑절 이상 웃도는 규모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림의 파괴도 심각하다. 2019년 8월∼2020년 7월 1년 새 아마존에선 9205㎢(축구장 120만 개 면적)의 삼림이 사라졌다. 전년보다 34.5%나 늘었다. 2019년 11월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공식 탈퇴를 강행했다.

위르헨다 소송, 시민사회 기후변화 소송 촉발

그러나 지구 다른 편에선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속도를 내고 있다. 주로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이 맨 앞에 있다. 2019년 12월 네덜란드 대법원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위르헨다 소송’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 앞서 2013년 네덜란드 환경단체 위르헨다는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대응을 소홀히 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강화하고 구체적 이행 계획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냈다. 1심(2015년)과 2심(2018년) 법원은 모두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까지 1990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 이상을 감축하라”며 환경단체 손을 들어줬다. 이어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위르헨다 소송은 세계 각국에서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기후변화 소송을 촉발했다.

최근 아일랜드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왔다. 7월31일 아일랜드 대법원은 ‘2050년까지 지속가능한 저탄소 경제로 전환’한다는 정부의 기후행동 계획에 구체성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2017년 ‘아일랜드 환경의 친구들’이란 시민단체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정부는 구체적 이행 계획을 담은 새 계획안을 내놔야 한다. 프랭크 클라크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정부 계획은 최소한 현실적 수준의 세부 사항을 제공해야 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법적 의무가 있다”며 “정부 계획이 법령에 요구되는 구체성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흔쾌히 수용한 것도 흥미롭다. 에이먼 라이언 환경장관은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성명을 내어 “우리는 (기후변화 대응의) 포부를 키우고, 행동을 강화하며, 우리가 공유한 미래가 모두의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하도록 하는 데 이번 판결을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르웨이에선 그린피스가 연방정부를 상대로 환경소송을 진행 중이다. 노르웨이의 북극해 해양 석유 시추가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는 노르웨이의 헌법을 위반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월 노르웨이 항소법원은 헌법 규정의 의미를 재확인하면서도, 정부가 허가한 석유 시추 10건은 환경적 허용 범위를 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앞서 2018년 1심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하며 소송비용 부담까지 지운 것과 달리, 항소법원은 원고 쪽 ‘환경권’ 주장을 인정하며 소송비용은 면제했다. 그린피스 쪽은 항소심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법원이 석유 시추 허가를 취소하는 문턱까지는 넘지 않았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건강한 지구’를 지지한다

유럽연합(EU)은 ‘저탄소’를 넘어 ‘탄소중립’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내놓았다. 2019년 12월 유럽연합은 유럽의 신성장동력으로 ‘그린딜’(Green Deal) 전략을 채택했다.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중립 지역으로 만든다는 게 핵심이다. 탄소중립이란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탄소 배출을 신재생에너지 전환 등 다른 방식으로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 총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유럽연합은 당장 2030년까지 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까지 감축한다는 단기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향후 10년 동안 최대 1조유로(약 1405조원)를 투자할 방침이다.

8월25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기존 ‘신재생에너지 지침’과 ‘에너지효율 지침’의 재검토에 착수했다고 온라인 매체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애초 목표치인 최소 32%보다 상향 조정할지, 또 같은 기간에 에너지효율 목표인 최소 32.5%를 이루기 위한 시행 규칙이 적정한지 등을 평가한다. 앞서 독일 싱크탱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에너지 전환)와 외코환경연구소는 “2030년까지 역내 온실가스를 55% 줄이겠다는 유럽연합의 계획은 기술적, 경제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평가한 보고서를 냈다.

‘건강한 지구’에 대한 유럽 시민사회와 유권자의 정치적 지지도 뚜렷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럽 주요국들에선 ‘녹색당 바람’이 거세다. 2020년 6월 프랑스 지방선거에선 녹색당 후보들이 리옹, 보르도, 스트라스부르 등 주요 대도시에서 승리했다. 같은 달, 아일랜드에선 녹색당이 중도우파 양대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앞서 1월에는 오스트리아의 중도우파 국민당이 녹색당과 연립정부를 꾸렸다. 2020년 창당 40주년을 맞은 독일 녹색당도 2019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20.5%를 기록하며 집권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28.9%)에 이어 2위에 올라서는 저력을 과시했다. 독일 녹색당은 이미 1998년과 2002년 총선에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의 연립정부에 연거푸 참여해 집권당 경험을 쌓았다.

브라질의 협약 준수를 FTA 조건으로

유럽연합은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공동 대응을 위해 외교통상 정책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한다.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베네수엘라 남미 5개국 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MERCOSUR)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이다. 2019년 6월 유럽연합은 메르코수르와 FTA 체결에 합의하면서, 브라질이 파리기후변화 협약을 준수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협약은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불법 벌채를 2030년까지 완전히 종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표지이야기_2020 청소년 기후위기 리포트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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