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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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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땀샘 없는 닭, 33도 되면 다 죽는다

남원 양계장, 땀샘 없는 닭은 33도에 죽는데 현대화한 계사에서도 낮출 수 있는 건 최대 5도
등록 2020-08-29 02:21 수정 2020-09-01 02:01

폭우, 산사태, 폭염, 냉해, 고수온…. 정신없이 몰아쳤던 ‘2020년의 기후위기’를 차분히 기록하려 <한겨레21>이 전국의 피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10대 활동가들이 동행했습니다. 기후재난이 삶을 관통할 당사자이자,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입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이수아 활동가) 기후위기에 관심 갖게 됐다는 이들은 산과 바다, 마을과 농장에서 기후위기의 위력을 목격하고는 “미래를 살아갈 두려움”(박선영 활동가)이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관찰에 기자들의 취재가 더해진 ‘2020 기후위기 목격’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와 우리 모두가 읽어봐야 할 기후위기에 관한 최소의 기록입니다_편집자주

닭을 만나려면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전염병에 덜 민감한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혹시라도 나에게 묻은 도시의 바이러스나 오염물질이 닭에게 옮겨질까봐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썼습니다.

양계장을 찾아간 8월20일 전북 남원의 기온은 37.4도. 곧 온몸에 열이 팍팍 오르고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모든 땀구멍에서 땀이 나왔지만 방역복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고 밑으로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당장이라도 방역복을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자연스레 나는 깃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지만 땀샘이 없어 더위에 약한 닭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몸집이 커질수록 고온에 타격 커

드디어 들어간 계사의 온도는 30.1도. 500평(약 1653㎡)의 현대화된 계사에선 ‘에어쿨링 시설’(음압 시스템으로 안의 바람을 뽑아낸 뒤 밖에서 새로운 바람과 함께 지하수를 넣어주며 온도를 낮춰주는 원리)이 작동되고 대형 선풍기 14대가 돌아가 외부보다 기온이 4도가량 낮았습니다. 상상했던 불쾌한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아 쾌적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그건 사람의 시점이었습니다.

통풍이 전혀 안 되는 방역복을 입어 체감온도가 40도로 느껴졌습니다. 15~20분 머물렀는데 기운이 쭉쭉 빠지고, 좀더 있다가는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21~22도 상태를 가장 좋아하는 닭도 그래 보였습니다. 사람이 계사 안에 들어왔는데도 푸드덕대며 도망가지 않고 배를 바닥에 대고 숨을 헐떡이기만 했습니다. 평소처럼 자기들끼리 장난치는 닭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료가 나오는 급식기 앞엔 닭이 별로 없었고 물이 한 방울씩 나오는 급수기 주변에만 삼삼오오 몰려 있었습니다. 양계장을 운영하는 한병무 한양농장 대표(대한양계협회 전북지회 남원육계지부장)는 닭이 매우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더우니까 다들 쉬고 있잖아요. 아예 활동을 안 해요. 정말 배고픈 놈만 조금씩 사료를 먹고 다들 참고 있는 거예요. 입맛이 없으니까요.”

한양농장 같은 현대화한 계사가 온갖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 낮출 수 있는 건 최대 5도라고 합니다. 바깥 기온이 37~38도, 계사 안의 온도가 33도를 넘어가면 닭은 죽습니다. 특히 몸이 커질수록 더위에 취약합니다. 삼계탕과 닭튀김 등에 쓰이는 육계는 병아리로 부화한 뒤 30일령에 닭고기 업체에 출하되는데, 25일령부터 고온에 큰 타격을 받습니다. 바닥에 가만히 앉은 큰 닭들의 배는 빨갛게 익어갑니다. 그러다 그대로 죽습니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쪽으로 떼로 몰려가다 깔려 죽기도 합니다. 차광 시설만 있는 개방형 계사에선, 사람이 아무리 천장에 지하수를 뿌려도 외부 열기를 크게 막지 못해 닭이 35도만 넘어가도 죽습니다. 살인적 폭염으로 남원의 온도가 39.6도까지 치솟았던 2018년, 한양농장에서도 3천 마리가 폐사(전국 833만 마리)했습니다.

8월20일 전북 남원 양계장 안에서 이수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왼쪽)와 한병무 한양농장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8월20일 전북 남원 양계장 안에서 이수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왼쪽)와 한병무 한양농장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양계장에 들어가기 싫은 날

계사 온도가 30~33도이면 닭이 죽지 않더라도 잘 자라지 못합니다. “우리는 (닭고기) 회사로부터 병아리를 받아 키워요. 회사가 원하는 대로 1.8㎏, 2㎏으로 키워주고 (무게) 성적에 따라 사육 수수료를 받아요. 성적이 잘 나오려면 닭들이 사료를 먹은 만큼 살이 쪄야 하는데, 더울 땐 살로 안 가죠. 그러면 생산성이 수수료 기준으로 40% 떨어져요. 오히려 농가엔 손해죠.”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제 손으로 키운 생명이 열에 익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못할 짓입니다. “어떨 때는 ‘오늘 밤에 폐사 나겠다’ 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땐 진짜 양계장에 들어가기 싫어요. ‘폐사 처리를 어떻게 하나’ 하고요. 자식처럼 키웠는데 (사체처리기로) 처리하려면 마음이 안 좋죠. 비위 약한 사람은 적응하는 데 몇 년 걸려요.”

그래서 한 대표는 ‘닭이 죽고 안 죽는 1도’를 낮추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왕겨를 깔아놓은 바닥이 질퍽질퍽해져 닭의 발에 무좀이 생기거나 가슴에 흉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지만 일단 에어쿨링 시설은 완전가동합니다. 또 닭이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사육 두수를 줄여 밀도를 낮춥니다. 500평 계사 두 동에 평소엔 6만5천~7만 마리를 사육하지만, 혹서기에는 6만 마리 정도로 줄였습니다. 애초에 닭고기 회사로부터 병아리를 덜 받고 1.8㎏, 2㎏에 못 미치는 닭 일부도 손해를 감수하고 ‘솎아내’ 출하하는 겁니다. 비타민이 들어간 사료는 기본이고요.

올해는 긴 장마로 더위가 늦어져 아직 한양농장에선 폐사가 발생하진 않았습니다. 폭염주의보(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할 때 발령)가 내려진 날도 있지만 최고기온이 33~34도에 계속 머무는 까닭입니다. “다른 농가에선 조금씩 폐사가 났다는 소리가 들려오긴 하는데, 다른 해와 비교해 큰 폐사 피해는 아직 없어요.” 현재 남원시청에 공식적으로 신고된 가축 폐사 피해 신고는 없습니다.

올해는 무사히 넘기고 있지만 한 대표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남원에선 다른 양계농가들이 올해 집중호우로 40만 마리 넘는 닭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소, 돼지, 오리 역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언젠가 한양농장에 찾아올 불행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두통을 달고 살아야 하나

정부도 폭염과 집중호우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축산 농가를 지키려 생각보다 많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가축재해보험 폭염특약에 가입하는 농가에 보험료를 지원하고 축사 시설 개선을 돕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근본적으로 폭염 일수, 집중호우 일수를 줄이도록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하는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거리를 20분만 걸어도 편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듯 아픕니다. 한참 머리 위를 주먹으로 쿡쿡 눌러야 통증이 조금 가십니다.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폭염도 심해질 겁니다. 폭염 일수는 현재 연간 10.1일(1981~2010년 평균)인데,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배출한다면 21세기 후반에는 35.5일로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한국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 2020’). 여름날 사흘 중 하루는 폭염인 겁니다.

그러면 나는 두통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양계장의 약한 생명처럼 숨을 헐떡여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나는 더욱 살아가는 일이 두렵습니다. 앞으로 카리브섬과 우간다를 여행하고, 맑은 자연에 오두막을 짓고 살며, 과학의 한 분야에 깊게 빠져보고 싶은 나는, 아직 16살입니다.

남원=이수아(16)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취재 도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표지이야기_2020 청소년 기후위기 리포트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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